대한민국 여행/제주도

제주 해녀(海女)

김제화 2025. 7. 12. 12:23

바다의 여자 4, 2023

세계에서 해녀가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인데 제주 해녀의 존재는 세계적이며 독특하다. 일본도 해녀가 있지만, 한국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제주를 방문하여 해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역사와 삶에 대해서 많이 궁금하였다. 그래서 간단하게 나무위키와 올린 글들과 사진들을 참고하여 구성하여 보았다. [해녀]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제주 어촌에서는 해녀라는 말은 쓰지 않고 제주말인 [잠녀, 潛女] 또는 [잠수, 潛嫂]라고 쓴다고 한다. 잠녀는 바다에 들어가 온갖 해산물을 거두어내는(채취) 일을 전문으로 하는 여성으로 그들의 일터인 바다를 바다 밭이라 한다. 제주는 화산재와 용암으로 된 섬이어서 경작할 땅이 귀해 제주 사람들은 바다도 먹을 것을 거두는 밭으로 여겼다. 잠녀들이 바다에서 하는 일을 ‘물질’이라고 한다. 물질 기술은 오랜 시간의 수련과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기술로 전통적으로 보통 8살부터 마을의 얕은 바다에서 헤엄과 잠수를 익혀 15세 무렵에 애기 잠녀가 되어 70~80세가 넘어도 물질을 계속한다고 한다.

잠녀들의 계급 사회

똑같아 보이는 잠녀 사회에서도 상군, 중군, 하군, 이라는 계급이 있다. 상군은 바다 깊이 15m 이상에서 2분 이상 작업하는 숙련된 잠녀이며, 중군은 바다 깊이 8-10m, 하군은 5-7m 정도에서 작업하는 잠녀들이다. 깊은 곳에서 작업할수록 값나가는 좋은 해산물을 거두기 때문에 수입도 더 높은 편이다. 상군 가운데서 지혜와 덕을 갖춘 잠녀를 [대상군]이라 하여 잠녀 공동체의 지도자로 삼는다고 한다.

 

숨비소리

잠녀들이 물속에서 작업하고 물 위로 나와서 내뿜는 숨소리 호오이∼ 호오이∼하는 휘파람을 부는 것 같은 신기한 소리를 내는 데,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다. 숨비소리를 통해 몸속에 쌓인 일산화탄소를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시면서 짧은 휴식을 하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 잠녀들의 숨소리를 [숨비소리]라고 한다. 나는 이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제주에서 보다는 영동지방에 살 때 바다에서 물질하는 제주 잠녀들의 숨비소리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잠녀의 역사

왜 제주에는 여성들이 목숨을 내놓고 연약한 몸으로 차가운 바닷물을 거스르며 바다 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궁금하여 자료를 찾아보았다. 잠녀에 대한 역사는 1629년 이 건의가 쓴 [제주풍토기]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기록된 것을 보면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을 알게 된다. 고려 시대에 이미 남녀 잠수부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남성 잠수부를 포작(包作)이라 하고 깊은 바다에서 해삼과 전복을 잡는 일을 하고 잠녀는 얕은 바다에서 우뭇가사리, 미역, 등을 따는 일을 주로 했다고 한다. 조정에서 이들에게 진상할 전복의 양을 늘리자 너무 힘들어서 포작들이 뭍으로 도망하기 시작했다. 남편인 포작이 사라지자 진상물을 채우려고 관원들이 그들의 아내들을 위협하자 처벌을 피하고자 아내들이 마지못하여 깊은 물에서 전복을 따내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제주에 여자가 많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사연에 근거하고 있다. 남정 내들의 뭍으로의 이주를 막으려고 인조(1629)는 제주도민의 이주를 금하는 법령을 공포하면서 적극적으로 이주를 막기 위해 배를 만들지 못하게 하였다. 이 법은 순조 23년(1923)에 해제될 때까지 거의 200년간 유지되었다. 이렇게 되자 뗏목을 만들어 바다를 건너다가 죽는 사람, 뗏목으로 바다 일을 하다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는 일들이 빈번하면서 제주에는 홀로 남는 여성들이 많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이 없는 가정의 여자들이 생계의 수단으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에 뛰어들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제주에 여자가 많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다음 두 속담은 고달픈 잠녀들의 삶을 표현해 주고 있다.

                            “저승의 돈 벌어 이승의 자식 먹여 살린다.”
                     해녀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한 마디로 말해 주고 있다.
                         “쇠로 못 나난 여자루 낫주(소로 못 태어나니까 여자로 태어났다)”
                    제주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연연이 이어 오던 서글프고 고단한 그들의 삶은 이제 자랑스러운 제주의 전통문화가 되었다. 가정을 지키고 자식을 키우는 제주 여성들의 책임성과 강인함 그리고 독립성을 보여준 자랑스러운 여성상이었다.

 

잠녀들의 잠수복

지금 잠녀들이 입는 잠수복은 과학적으로 만들어져 체온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고 기능적인 기구들은 잠녀들의 물질을 편하고 쉽도록 해 주고 있다. 그러나 지난날 전통적인 해녀들은 특별히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잠수복도 없이 그저 맨몸으로 차디찬 바닷물에 몸을 맡기고 물질을 했으니 지금에 비하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때 그 해녀들은 정말 대단한 여성들이었다.

 

 

※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바다에서 물질하는 남녀들의 생활상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때 제주도 관리 구당사로 파견된 윤응균은 제주도의 남녀가 모두 알몸으로 물질하는 것을 괴이하고 야만적으로 여겨 나체 조업 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 기록을 보면 그때는 남녀가 알몸으로 물질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또 일본 해녀들은 물질을 할 때 윗 가슴을 가리지 않고 드러내 놓고 물질을 하고 있는 사진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구당사(勾當使)-고려 시대에 탐라(耽羅)를 관할하던 벼슬.

 

해녀공동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아무나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따서 팔면 되는 줄로 생각하지만, 물질하는 것도 정해 놓은 법과 질서에 따라 하고 있다. 바다 밭은 어촌계 단위로 운영되며 어장의 경계, 해산물의 채취 자격, 방법 그리고 기간 등을 정해놓고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그것은 바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공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해녀의 전통적 가치와 문화 사업

해녀들은 수 세기에 걸쳐 바다를 생업의 기반으로 하여 살면서 바다의 생태환경과 지형을 잘 아는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들은 또한 가정경제의 주체적 역할을 하면서 가정을 지켜온 자랑스러운 여성들로 봉건주의 사회에서 남녀평등의 실천적 모범을 보여준 실례이다. 지금 제주는 해녀를 관광 상품화하였다. 전문 해녀 양성을 위한 해녀훈련학교가 있어서 그곳에서 국가에서 주는 잠수어업증을 받을 수 있다. 자격증이 있어야 해산물을 거둬서 팔 수 있다고 한다. 남녀가 다 참여할 수 있는데 이제는 하나의 전문 직업이 되고 있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해녀 단기 훈련 체험 프로그램도 있어서 인기리에 운영하고 있다. [제주 해녀]는 2016년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되었다.

김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