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박 호(镜泊湖, Jìngpō Hú ) 6. 2004
경박 호는 약 1만 년 전부터 5차례나 화산이 폭발하여 뿜어 나온 용암이 목단강 강줄기를 막으면서 강물이 사면의 산에 막혀 흐르지 못하면서 쌓여 오르면서 자연적으로 오늘의 절세경관绝世景观)경박 호가 만들어졌으며, 화산폭발 때 형성된 수많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지면서 장관을 이루며 용암과 화산재는 주위 40Km까지 널려 있다. 경박 호의 모양은 서남쪽에서 동북쪽을 향하여 S형으로 펼쳐지는데 면적은 90.3㎢이고 깊이는 평균 40m이며 제일 깊은 곳은 62m라고 한다. 파란 호수 주변에는 8 곳의 이름난 관광코스가 있다.
▶절세경관绝世景观)- 세상에 비길 데 없을 만큼 빼어난 경치

목단강에서 경박 호까지 거리는 110Km, 옛날부터 수면이 거울처럼 맑고 고요하여 명나라 때부터 경박 호라고 불렀고, 독특한 호광산색(湖光山色)과 자연적인 매력으로 중국 44개 관광 명승지 중 하나이며, 2006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경박 호는 세계에서 몇째 안에 드는 아름다운 호수라고 한다.
▶ 호광산색(湖光山色_-호수의 빛과 산색이 어우러져 이루는 아름다운 경치
경박 호는 중국 사람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이며, 오늘날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찾고 있다. 목단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며 화산구와 용암이 넓은 지역에 퍼져있는 곳이다. 경박 호로 들어가는 길은 두 곳이 있다. 공식적인 길은 동쪽 정문을 통해서 가는 길이 있고, 다른 하나의 길은 북쪽으로 나 있는 비공식적인 길로 폭포에 가깝게 닿는 길이다. 바로 이 길의 협곡에 조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폭포 촌이 있다. 우리가 중국에 18년 동안 살면서 경박 호가 유람지로 개발하기 전에 세 번, 개발한 뒤에 한번 가보았다. 그리고 경박 호에서 한 20k 지점에 있는 지하삼림도 볼만한 곳이었다.
경박 호 방문 인연
목단강 강남 촌 조선족 가정교회에서 설교하였는데, 인도하는 자매가 나에게 경박 호를 소개해 주면서 자기 아버지가 그곳에서 여관을 한다고 꼭 한번 가보기를 권하였다. 목단강에서 버스로 한 110킬로를 달리자 경박 호 관문이 나왔다. 입장권은 5원이었다. 관문오른편 바위벽에 다음과 같은 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山上平湖 水上山, 北園风光 胜江南” 뜻은, “산은 물 위에 떠 있고, 물은 산 위로 흐른다” 이다.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우리가 배를 타고 호수로 나아가 보니. 물속에 비치는 산들이 선명하여 마치 우리 배가 산들 위를 떠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뜻을 밝히 알게 되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호수이다. 우리는 폭포와 조선 족 촌으로 가는 길목에서 내려서 걸어서 폭포를 먼저 돌아보고 조선 족 촌을 찾아서 자매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여관에 들었다. (이때의 이야기는 나의 첫 번 중국 단기선교 여행기에 실려 있다.)


개발되기 전의 경박 호의 모습
1994년 6월 처음 경박 호를 찾았을 때는 아직 유람지로 개발되지 않아서 자연 그대로 있을 때였다. 나는 그때 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써놓은 글을 옮겨 본다. 폭포 아래는 깊은 분화구로 이루어져 있어서 물이 가득 담겨 있고 샘솟듯이 흘러나가고 있다. 물을 마셔 보니 담백하고 몸을 씻어보니 미끄러운 기가 있는 미네랄이 풍부한 물 같았다. 여기서 한 4Km 정도 올라가 산정 너머에 넓은 호수 경박 호가 있는데, 호수의 물은 두 갈래로 한 곳은 동쪽으로 흐르고, 또 한쪽은 바로 이 호수로 흘러내리는 데 호수의 턱이 높아서 비가 장마 수준으로 올 때만 호수의 물이 넘쳐흘러 내려서 이곳의 물 폭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폭포에 물이 흐르는 것을 보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우리는 그러한 행운을 누리지 못하였다. (유람 지로 개발하면서 물이 항상 흐르도록 해 놓은 뒤에야 볼 수 있었다.)
장마철에 볼 수 있는 물 폭포

아래 그림은 물이 흐르지 않을 때이며, 나는 그때 이 폭포를 찾았다. 나는 주위를 돌아보고 사진 왼쪽에 보이는 정자 가까운 바위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였다.


바닥이 드러난 개울은 용암으로 깔려있었다. 한 2Km 정도 강바닥을 따라 올라가면서 용암이 흘러내리다 자연스럽게 굳어진 용암의 신비로운 모습들을 보면서 진기한 수석이라도 하나 찾을 수 있을까 기대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검은 용암이 흐르다가 그대로 굳어져서 마치 네모난 타일 조각같이 긴 줄을 이루며 굳어져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나는 조그마한 조각들을 뒤집어 보는데, 화산폭발 이후 내가 처음으로 이 용암 조각에 손을 대 본 사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여러 조각을 주었다. (이제는 호수의 물이 그 위로 항상 흐르게 하여서 자연스럽게 굳어진 용암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산정호수
산정에 오르니 경박 호수는 맑고 아름다웠다. 그때는 지금 같은 호화롭게 큰 관광 배가 없었다. 조그마한 배를 타고 호수 가운데 있는 섬에 잠깐 내렸다가 호수를 돌아보는데, 시구에 있듯이, 푸른 하늘의 구름과 둘러있는 산들이 물에 비추어서 마치 배가 산 위로 가는 것 같은 신기한 모습이었다.

여관에 돌아와서 잠시 쉰 뒤 혼자서 해님을 쫓아 서역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들녘을 걸었다. 흙으로 덮어져서 온갖 풀들이 무성한 들이지만 실제로는 용암이 흘러내려 펼쳐진 들로서 낮은 골짜기도 있었다. 드문드문 흙이 많은 곳에 일구어진 밭에는 옥수수, 콩, 감자들이 자라고 있었다. 잡풀들 속에 진하고 연한 색을 띤 야생화들이 예쁘게 피어 자연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었다. 나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주신 하나님께 이 들녘에서 감사했다. 놀라서 달아나는 메뚜기들, 낯익은 풀벌레 소리, 풀을 뜯으면서 우는 송아지의 음매 소리를 듣노라니 고국의 어느 산간 농촌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젠 오솔길도 더 나 있지 아니하고 풀들이 너무 무성해서 더 갈 수가 없었다. 종일 무덥기만 하던 6월의 해가 저 멀리 서산으로 기울어지면서 어두움의 그림자가 서리기 시작하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경박 호 대첩
이곳은 항일전쟁을 여러 번 치른 곳이다. 1933년 2월 한국독립군과 중국군이 연합으로 왜군과 만주 군의 연합군을 크게 이긴 곳이다. 그때 기록에 보면 경박 호 전투는 한국독립군이 동만 지역으로 이동하던 도중 왜군과 만군의 연합군이 뜻밖에 부닥쳐 일어난 전투였다. 1933년 2월 우가둔(牛家屯)에 머물렀던 한국 독립군은 그달 28일경 중국군 부대와 함께 동쪽으로 이동하여 경박 호 동쪽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날 일본군 약 1개 대대가 동경성(東京城)을 출발, 경박 호 방면으로 진격해 온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이에 한중연합토벌군은 그들의 통과가 예상되는 호수 주변 계곡의 양쪽 산기슭에 부대를 나누어 매복시키고 왜군-만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예상대로 그날 저녁 전 초대 1개 분대와 기병 1개 중대가 지나간 뒤 왜-만 군 후속 부대가 얼음 위를 행군하며 양군의 매복지점에 도달하였다. 이에 연합군은 빙판 위에 그대로 드러난 왜군-만주 연합군을 향해 맹렬하게 사격을 퍼부었고, 불의의 기습에 왜-만 군은 제대로 대응도 못 한 채 도망가고 말았다. 이들을 추격한 연합군은 1개 대대(400여 명 내외)를 거의 전멸시키고 소총과 경기관총 70여 정, 실탄 6,000여 발, 기타 많은 물품을 빼앗는 대승을 거두었다.
금와 왕(金蛙王) 신화
산 중턱에 솟아있는 개구리 모양을 한 바위가 있다. 고구려 이전 부여국 시대 금와 왕의 설화가 서려 있는 곳이다. 동부여의 왕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는데, 천제를 올려 아들 낳기를 기원하였다. 하루는 그가 탄 말이 곤연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있던 큰 바위를 보고 말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바위를 굴려보게 하였더니, 금빛이 나는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해부루가 기뻐하여 "이는 하늘이 내게 준 아이로다."라고 말했다. 이가 곧 금와이다. 나중에 해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이 된다. 어느 날 금와는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한 여인을 만났는데, 이가 바로 유화부인이다. 해모수와 강제로 잠자리를 함께 한 유화부인은 부모에게 버려져 그곳에 있었는데, 금와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궁으로 맞아들였다. 이후 유화부인이 알 하나를 낳았고, 이 알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주몽이다. 이후 주몽이 장성하자, 대소를 비롯한 금와의 일곱 친자인 왕자들이 그를 시기하여 주몽의 제거를 부탁하나, 금와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후 대소가 주몽을 제거하려 하자, 주몽은 동부여를 떠나 졸본부여로 도피하여 고구려를 건국한다. (기원전 37년) 경박 호는 이래저래 한민족과 관계가 깊은 곳이다. (삼국사기) -중국 자료집에서-
Jewh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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