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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행/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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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호남의 맹주 나주 천년목사(牧使) 고을  나주 6.23, 2023지난날 나주는 나에게 그저 지나는 역에 불과했다. 1970-80년대 한국 기독교 선교부 간사로 있을 때는 진도, 비금도로 가려면 목포에서 배를 타야해서 호남선을 여러 번 탄 적이 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일은 열차가 나주역에 닿으면, 배를 담은 광주리를 든 장사꾼들이 열차에 올라와서 “물이 찔끔찔끔 나는 내 배 사시오”하는 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 그때는 나주가 이렇게 천년 목사의 유서 깊은 고을인 줄을 미처 몰랐었다. 후 삼국시대 왕건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의 창업을 도운 해양 세력의 본거지인 나주는 역사의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는 흥미진진한 고장이다. 뒷날 고려 현종(2년)은 거란의 2차 침략 ..
왕건의 사랑 이야기 나주에는 왕건과 두 번째부인인 장화왕후(莊和王后), 오 씨의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이들의 전설 같은 사랑의 이야기는 [고려사 열전 가운데 장화황후 오 씨] 편에 실려 있다.▶ 정현왕후는 나주 지역의 호족 오달련과 연덕교의 딸이다.  “태조가 군사를 이끌고 나주를 행군하던 중 목이 말라 우물을 찾다가, 나주 금성산(錦城山) 남쪽에 상서로운 오색구름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말을 타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열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예쁜 처녀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물을 청하자, 처녀는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 건네주었다. 태조가 이상히 여겨 버드나무 잎을 띄운 까닭을 물었다. 대답하기를 "장군께서 급히 물을 마시다가 혹 체할까 염려되어 그리하였나이다" 하고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
광주 항일 학생운동의 진원지 나주 옛 역(舊驛)나주에서 꼭 찾아보아야 할 곳이 있다. 그곳은 항일 학생운동역사의 뜻을 간직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나주의 옛 역(舊驛)이다. 이 옛 역은 일제 강점기인 1913년 7월 호남선 철로가 놓이면서 1925년 10월 23일 죽림동에 처음 세워진 나주역 건물이다. 이 역이 바로 광주 학생 운동의 진원지이다. 전라남도는 항일 학생운동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하여 2007년 역 건물을 수리하여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 뒤 호남선이 복선으로 놓이고 KTX가 다니게 되면서 현대 시설을 갖춘 나주의 새 역은 나주시청이 가까운 나주역길 56에 세워지면서 이 역은 항일 학생 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역사적 기념물로 남게 되었다.  역사 안 개찰구에는 밀랍으로 ..
소문난 나주 곰탕 나주의 삼대 먹거리나주의 삼대 먹거리는 나주 곰탕, 구진포 장어, 영산포 홍어인데, 구진포 장어는 먹어 볼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나주 곰탕과 영산포의 홍어 요리를 소개하해 본다.  소문난 나주 곰탕나주시 볼거리 1번지에 있는 금성관, 나주목사 내아, 수루 문, 등 가까이에 곰탕집들과 전통 음식집들이 어우러져 먹거리 거리를 이루고 있다. 마침 때가 되어서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다는 나주곰탕을  장태영형제의 권유로 먹어 보기로 했다. 오래전 우유를 풀어서 만든 가짜 곰탕 사건으로 나는 그동안 곰탕을 먹지 않아서 아주 오랜만에 곰탕을 먹어보게 되었다. 나주 곰탕은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맛이 아주 훌륭했다. 나주 곰탕은 전국에 소문난 브랜드로 나주를 찾는 사람들은 한 번은 꼭 먹어보고 간다는 말이 ..
영산포 영산강은 전남 담양에서 발원하여 광주, 나주, 영암을 거쳐 목포까지 122km를 흐른 뒤 바다에 이르는 호남의 젖줄이다. 영산포는 나주시에서 3Km 거리에 있는 영산강의 내륙항인 영산포구로 옛 항구 이름이다. 고려 때로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뱃길이 시작되는 영산포구는 주변 지역에서 생산된 여러 산물이 모이는 곳으로 제법 큰 마을을 이루었으며 내륙에서 바다를 통한 해상 운송업이 발달하였다. 영산포의 유래는 1363년 고려말 공민왕 때 신안군 흑산도에 딸린 조그마한 섬 영산도 사람들이 왜구의 약탈을 피해서 영산강 하류인 이곳에 살게 되면서 영산포라는 마을이 생겨났다. 그러나 1981년 영산강하굿둑(榮山江河口둑)이 완공되면서 영산포의 항구 시설과 뱃길이 사라지면서 영산포라는 이름만 남게 되었다. 그때 포구를..
수묵 화의 고장 진도! 남도전통 미술관남도전통 미술관과 운림산방은 전남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첨찰산 아래 있다. 미술관의 1·2층은 전통적인 동양화의 산수화와 서예의 전시실로 돌아보는 동안 동양 예술의 삼매경에 빠진다.  특히 진도는 동양 예술의 수묵화와 서예 그리고 서양화의 거장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들은 소치 허련, 백포 곽남배 화백, 옥산 김옥진, 전정 박항환, 금봉 박행보, 옥전 강지주, 그리고 서양화가 서암 이우진, 등을 들 수 있다. 이분들의 말년에 평생 쌓아 올린 걸작품들을 진도군에 기증하였다. 진도군은 소치 허련의 생가 옆에 이분들의 귀한 작품들을 기리기 위하여 남도전통미술관을 세워 전시하고 있다. 특히 서양화가 서암 이우진의 작품은 장소가 부족하여 비어있는 두 초등학교를 수리하여 전시..
울돌목(명량, 鳴梁) 명량(鳴梁) 해전의 현장조선이 왜구의 침입으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일 때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KBS 대하드라마《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우리에게 깊이 새겨 주었다. (2004.9.4~2005.8.28) 스물세 번 바다에서 왜군과 싸워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이순신 장군의 슬기로운 전략은 천추에 빛나고 있으며, 전 세계 해군사관학교에서 해전의 모델(교본)로 삼고 있다. 13척으로 133척의 왜군을 맞아 싸웠던 바로 그 격랑의 현장에서 회오리치는 물결을 바라보면서 426년 전, 그날의 격렬했던 명량 해전을 잠시 그려 보는 감회에 잠겨 보았다(6.24 2023). ▶명량 해전(鳴梁海戰)-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 10월 26일(음력 9.16) 이순신의 함선 13척이  일본 함선 13..
나주/ 마한 6.23, 2023 마한(馬韓)  나주 땅을 밟으므로서 삼한 시대의 중심이었던 마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었다. 마한은 삼한의 중심으로 BC 1세기∼AD 3세기경 한강 유역(경기도)에서 충청·전라도 지역에 퍼져 있던 54개의 크고 작은 정치 집단의 연합체이다. 그 가운데 하나인 마한은 삼한 가운데 가장 큰 정치집단으로 54개 소국의 으뜸이었다. 백제가 일어나 온조왕 26년(서기 7년)에 마한은 백제에 합쳐졌다. ▶삼한(三韓)-삼국시대 이전에 한강 이남에 있던 세 나라로, 마한은 서남해에, 진한은 동쪽에, 변한은 남쪽에 접해 있었다. 반남 고분군(潘南 古墳群)나주 반남 고분군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자미산(98m)을 중심으로 신촌리, 대안리, 덕산리의 낮은 구릉지에 34개의 고분이 흩어져 있다. 반남 고분군은 삼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