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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여행기/일본교회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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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주교 역사 ◈ 일본 기독교 역사의 두 줄기는 로마 가톨릭과 기독교 역사이다.1) 가톨릭 선교역사일본이 천주교를 처음 접하게 된 때는 1549년 8월 15일 중국에서 선교하든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소속 하비에르(Xavier1505~1552) 선교사 일행이 규슈 남단 가고시마를 찾음으로 이다. 그는 가고사마 영주 시마즈 다카히사(島津貴久)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성모자(아기 예수 안고 있는 마리아) 성화를 드렸더니 마리아의 아름다움에 영주와 그 어머니가 감탄했다고 한다. 호감을 가진 영주는 하비에르에게 선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그들이 살 집을 마련해 주어서 그곳에 천주교가 자리 잡는데 도움을 주었다. 하비에르는 일본에 2년 3개월가량 머물면서 가고시마, 히라도, 야마구찌 지방에 신자들이 생겨났다. 그가 떠난 뒤..
일본 기독교 선교 역사 2. 기독교 선교역사기독교의 선교는 1873년 미일 화친조약이 맺어지면서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惟新)으로 막부 정부가 끝나고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 통치가 시작되었다. 1854년 미국의 위협적인 압력으로 미일 화친조약을 맺음으로 개항하게 된다. 요코하마가 외국인 중심 거류지였으므로 외국에서 오는 모든 사람이 여기로 모여들었다. 그때는 아직 외국인 선교가 금지되어 있어서 미국 선교사들은 자국민들을 목회하면서 의료와 교육 사업으로 일본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만나고 있었다. ▶ 제임스 헵번(James C. Hepburn,1815~1911) 미국 개혁교회 의료 선교사 일본에 온 첫 번째 의료선교사로 진료소를 내어 일본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교육기관도 세워 영어와 신학문을 가르치니 일본 ..
일본 교회 방문 1 일본 교회 방문기 1982. 9일본이라는 나라는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과 감정이 그리 좋은 나라는 아니다.  우리의 남해안을 끊임없이 침략하여 죽이며 약탈하던 저 왜국, 임진왜란, 국권 탈취, 한민족과 동남아에 저지른 저들의 만행에 대해서 지금도 사과할 줄 모르는 저 민족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데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이 민족의 국기는 일장기(日章旗)라 부르며, 흰색 바탕에 동그란 붉은 큰 점은 해를 뜻하며, 이름은 “히노마루(日の丸)라고 한다.  예로부터 태양신을 숭배해 온 왜국은 "해가 뜨는 나라, 태양이 나오는 곳"이라고 여겼고, 왜국 시조의 주신(主神)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태양신인 것에 영향을 받아, 신사(神社)의 깃발로 사용되어 오다가 일본의 국기, [일장기]가 되었다...
일본 교회 방문 2 홋카이도(北海道) 아이누(Ainu)족홋카이도는 원래 원주민 아이누(ainu)족이 살던 곳이다. 아이누 족은 홋카이도와 혼슈의 도호쿠 지방(東北地方), 러시아의 쿠릴 열도, 사할린 섬, 캄차카 반도에 정착해 살던 원주민이다. 일본의 본 민족인 야마토 족과는 다른 북방 몽골리안 민족으로, 아이들의 엉덩이에 푸른 몽고반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민족과 유전자가 거의 같다. 아이누 족은 역사적으로 개별적인 부족 국가 형태를 지녔으며, 독자적인 언어인 아이누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누'란 단어가 일본 내에서 차별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서 스스로를 우타리(친척, 동포라는 뜻)라고 부르는 아이누 사람들도 일부 있다고 한다. 일본 안에 지금 아이누 족은 약 2만 5천 명으로 추산되나, 15세기경부터 혼슈..
일본 교회 방문 3 고지마 교회, 포화 교회, 도쿄교회 동경으로  6. 20. 월우리가 어디를 방문해 보면 금방 떠나고 싶은 곳이 있는가 하면 좀 더 머무르고 싶은 곳이 있다. 삿포로 이곳 교회야말로 좀 더 머무르면서 주님을 더 배우고 싶은 곳이었다. 친절하고 사랑 많은 미츠하시 목회자 내외와 여러 형제자매님들과 아쉬운 손들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 6시 날틀로 떠나 8:25 동경에 도착했다. 동경 공항에서 아사까 형제가 우리를 데리고 지바에 가서 점심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고지마 교회식사를 마치고 교제하는데 시모다떼 교회의 목회자인 가고지마 형제가 와서 우리를 고지마 교회로 데리고 갔다. 저녁 교제 시간에서는 내가 26세에 전심 사역자가 되었다니까 일본 형제들이 일본에서는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함께..
일본 교회 방문 4 군마껭, 후바다, 후쿠오카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점심을 함께 나눈 뒤 한일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 즐겼다. 도끼 의사, 노 형제의 사진첩에서 군의관으로 만주에서 근무할 때의 사진들을 보면서, 군국 주의 시절 모든 일본 남자들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들도 의사가 되어서 아버지를 돕고 있었다. 뒷마당에는 전통적인 일본 정원을 꾸몄는데 이 군마현에서는 제일 아름답다고 소문나 있다고 한다. 일본 정원의 특색은 커다란 대 자연을 좁은 공간에 축소하여 드려 놓은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가정공원은 축소지향적인 성격을 가진 일본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가정공원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그곳에 며칠 있는 동안 대 자연 속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름..
일본 교회 방문 5 오사카,  히로시마오사카(大阪) 10. 2. 토오전에 일본 형제들과 교제하고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오사카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13:45 히까리 고속 열차로 오사카로 떠났다. 모임에서 사랑의 선물 10,000엔씩을 주었다. 나는 일기를 정리하려고 식당차로 가서 쉬면서 쓰는데 1시간이 지났을까 조병현이 와서 그동안 서먹했던 마음을 푸는데 김종만도 왔다. 음료수를 함께 나누면서 그동안 서먹했던 마음들을 풀었다. 여럿이 어울려 다니다 보니 감정상 충돌도 있고, 모임에서 더 자기를 나타내거나 소개해 주는 강도에 따라 감정의 변화를 받는 일들이 있을 수 있었다. 누구를 소개하는 분도 듣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배려하는 소양이, 듣는 사람도 그러려니 하는 무던함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나 자신도 더 깊고 높은..
일본 교회 방문 6 오사카,  이즈미교토 교회 10. 6. 수 아침 다까스끼 형제의 운전으로 노형, 조, 이 자매가 있는 교토(京都)로 갔다. 이즈미의 오가야 형제가 시계가 달린 만년필을 하나씩 선물로 주고 갔다. 이즈미 모임에서 보낸 6만 원을 만원씩 나누고 만원은 공금으로 쓰기로 했다. 교토 모임에서 우리들의 시내 관광을 위해 나까히라 형제의 안내로 신궁을 보고,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가 살던 300년 전 저택을 돌아보았다. 막부시대 역사의 한 부분을 보았다.                               豊橋(이즈미) 교회 오후에 히까리 특급을 타고 豊橋에 내리니, 개인 병원을 하고 있는 오가와(小川)노형내외의 영접을 받았다. 우리를 식당으로 인도하여 푸짐한 저녁을 대접해 주셨다. 그리고 자매님은 먹고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