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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Tour

진시황의 병마용

                                                                                     진시 왕의 병마 용-경교 기념비

                                                            씨안(西安[서안],  Xī'ān ) 여행  6.15-17, 2005 

 

서안의 옛 이름은 장안(長安, Cháng'ān)으로 산시성(陝西, 섬서)의 서울이다. 중국 6대 중심도시 중의 하나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이름난 도시로 세계 사람들이 모여 오는 관광 중심지이다. 오랜 열국 시대가 끝나고 581년에 수(隋) 나라의 서울이 되었다가 618년에 당(唐) 나라의 서울이 되어 Silk Road의 시작점으로 300년간 국제도시로 번성하였다. 바로 이곳에 세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진시황의 병마용이 있다.

서안 공항에서 미국서 오는 친구를 만나니,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선교사 몇 분들이 마중을 나왔다. 이곳에서 이분들은 어떻게 선교 일을 하고 있는지 듣고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호텔에 들어서 모두와 교제하는 시간에 우리는 내일 병마용을 갈 계획이라고 알리자, 그곳에서 관광안내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교사가 자기가 가르친 신장 출신의 가이드가 있는데 그의 수고비는 생각하지 말고 그의 한국어 실습을 위하여 데리고만 다녀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추천하여 주어서 반가웠다. 한국관광객이 몰려오자 어떤 선교사는 한국어 가이드 훈련학교를 운영하면서 체류비자를 해결하고 있었다。 

 

                                                         병마용(兵马俑, Mausoleum of Qin Emperor)  6.16, 2005

진시황의 병마용은 1974년 3월 29일 우연히 시골마을의 농부 양신만(楊新滿) 등 동네 청년 6명이 우물을 파내려 가다가 흙으로 빚어진 인형을 발견하여 신고함으로써 1,500여 년 동안 묻혀있던 병마용의 신비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발굴된 6,000여 명의 흙으로 빚어진 인형, “병마용”은 1 Km 옆에 있는 진시황릉을 지키던 병사들이다.

                                                                             

중원의 천하를 통일하고 진나라를 세운 진시황은 370만 명의 인력을 동원해 장장 37년의 강제 노역 끝에 이 무덤을 완성했다. 병마용은 하나하나가 각각 다른 용모와 자세를 취해 모두 훌륭한 예술품으로 평가되며 1987년 UNESCO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진시황의 병마용(兵马俑)도 세계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이다. 먼저 우리는 병마용 1호 갱으로 가서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병마용 가운데 이곳만 완전히 발굴하고 수습하여서 관광객들에게 열어놓고 있었다. 병마용의 지하 군단은 살아 움직일 듯 위용을 갖춘 모습은 놀랍고 신비로웠다. 줄지어선 군인들의 얼굴 모습을 하나하나 아무리 뜯어보고 들여다보아도 같은 모습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섬세한 기술은 위대한 작품이라 해야겠다. 병마용은 진시황의 사후에 가까운 여산에 있는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 거대한 군단을 만들었다. 죽어서도 권세와 영화를 누리리라는 어리석은 환상으로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가져온 것은 역사의 비극이라 해야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억울하기는 해도 이런 희생을 통해서 후손들이 엄청난 관광자원으로 부를 누리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천태만상의 모습들

 중국 고고학 발굴단은 4호 갱까지 찾아내어 수많은 부장품들을 수습정리 하였지만 아직 기술문제로 전체적인 발굴은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2호 3호 갱도도 가 보았는데 아직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병용들이 널려 있었다. 아직 기술문제로 땅 속에 묻혀 있는 모든 것들을 쉽사리 꺼내지 못하고 좀 더 기술이 발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진시황(秦始皇)의 불로초(不老草)

진시황에게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39세의 젊은 나이에 천하를 평정하여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 국가를 이룬 왕이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진시황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근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어떻게든 죽음을 피하고 싶어서 신하 서시(徐市)에게 어린 소년소녀 3천 명과 많은 보물을 실은 배들을 거느리게 하여 동해에 있다는 신선이 사는 섬에 가서 불로장생의 약초와 약을 구해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서시는 몇 년이 지나도록 약을 구하지 못하자 일본 쪽으로 도망쳐 버렸다고 한다. 그릇된 인생관을 가진 독재자들 때문에 민초들의 헤아릴 수 없는 희생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불로초'라고 하는 식물은 사진에서 보는  "오리나무더부살이"로 남한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북한에서는 발견되는 데 만병통치 약으로 여겨져 북한 고위 통치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창초물인 사람이 생명나무가 있던 에덴동산에서 저주받고 쫓겨난 뒤로 죽음이 왔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창세기 3:1) 사람이 하나님에게 죄를 지은뒤로 죽음이 왔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불로장생(不老长生)을 위한 불로초(不老草) 같은 식물이나 물질은 근본 없다.  그래서 불로초는 사람의 잠재속에 남아 있는 생명나무에 대한 그리움의 상상에서 만들어진 어리석은 산물일께다. 

"인류는 진시황같이 지금까지 영생하는 길을 꾸준히 찾아오고  있는데, 좀 더 오래는 살겠지만 결국은 죽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며 진리이다.  어리석게도 인류는 죽음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성경은 " 죄의 삯은 사망이라"(로마서 6:23) 했고,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히브리서 9:27)라고 인간의 운명을 정하셨다. 영생은 이 생의 것이 아니고 내생의 것이며, 물질적인 것이 아니며 영적인 것으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죄에서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요한복음 3:16 

 

                                                              진시황이 중국 역사에 길이 남긴 일들

중국은 전국시대부터 문자가 틀려서 서로 간에 소통에 어려움이 컸는데 문자를 통일시켜서 전국적으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였다.

전국에 도로망을 건설하여 왕래를 쉽게 하였다.

지방마다 다른 도량형을 하나로 통일하였다.

세계 불가사의가 될 만리장성을 쌓은 것이다. 이 장성을 쌓느라 희생된 억울한 생명들은 병마용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름 없는 조상들이 흘린 피로 남겨진 유산 덕분에 오늘날 중화의 자손들이 잘 사는지도 모른다.

 

                                                                                             진시황의 지하 궁전

그의 무덤은 하나의 언덕, 낮은 산이다. 아직 발굴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기술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모형으로 된 진시황의 지하 왕궁을 들어가 보았다. 살아생전의 호화로움을 땅 밑에서도 누리고자 실제의 것과 똑같은 모양으로 줄여서 만들었다. 비록 모형이기는 해도 그 크기가 대단했다. 중국 역사가 사마천 사기의 진시황 본기 편에 보면 황제는 즉위 초인 246년에 여산(酈山)에 황제의 무덤(황릉, 皇陵) 공사를 시작하여 208년까지 39년간 공사를 하였다니 나라가 망할 일이다. 황릉은 시안에서 30 km 떨어진 동현의 원산원(驪山園)에 있는 야산이다. 진시황릉은 지상의 황궁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은 크기이며, 수은이 흐르는 5,000여 개의 강과 수십 개의 망루를 가진 도성 안에 온갖 보물과 병사로 화려하게 조성하였다. 진시황릉은 지상 궁전을 재현한다는 개념으로 지어졌으며, 완공이 된 후에는 도굴을 막기 위해 동원되었던 인부들을 모두 죽였다고 한다.      

                                                                                

                                                                                                          경교(景敎) 기념비

점심을 끝내고 잠시 쉰 우리는 비림(碑林) 박물관에 갔다. 장안은 당(唐) 나라의 서울로 많은 유물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비림은 모든 돌 비석들만을 모아 놓은 박물관이다. 그 많은 돌비들 가운데 높이가 큰 돌비가 나의 마음을 끌었다. 서기 623년에 당나라 장안(지금 서안)에 들어온 기독교의 일파인 페르시아 경교의 기념비였다. 경교가 들어온 지 150년 만에 만들어졌고, 845년에 핍박으로 땅에 묻혔다가 1625년에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보던 이 비를 꼭 보고 싶었는데 오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게 되어서 반가웠다. 비석의 탁본을 두 개 샀다. 표구도 할 수 있었는데 표구로 된 것은 지난해 친구가 주었다. 경교에 대해서는 나의 중국 첫 방문기에 이미 써서 여기서는 거듭하지 않으려고 한다. 

Jewh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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