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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선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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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선교부 한국 기독교 선교부 회장 : Wilbur T. McAfee & Helena 선교사한국기독교선교부란 이름은 매카피 선교사가 오산 기독교병원을 설립하면서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매카피 선교사는 자신의 인생 후반부를 한국 선교에 이바지하려고 경기도 평택군 진위면 사후동 산골에 정착한다. 매카피 선교사가 무주구천동 같은 사후동에 정착하므로 그 골짜기는 마치 한국 형제교회의 요람지 같이 알려지게 되었다. 매카피 선교사를 중심으로 하는 사후동 골짜기에서 주님께서 역사하신 일들은 한국 형제교회의 한 역사가 되었다. 한 20년 사후동 골짜기에 서려 있는 이야기들을 해묵은 나의 일기장에서 옮겨본다.                        지역 사회발전에 이바지한 공헌으로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수여받은 국민..
McCafee 선교사와 함께 McCafee 선교사와 함께 1963년 10월 17일(목)매카피 선교사를 나에게 소개해 주신 분은 부평 강태훈 원장이시다. 매카피 선교사가 같이 일하자고 할 때 나는 좋은 직장이라도 얻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매카피 선교사가 개척하고 있는 사후동에서 함께 하려고 짐을 챙기면서 인천 부평교회에서 주님이 내게 주신 축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곳에서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고 일 년 반 동안 너무 많은 축복과 변화를 통하여 내 인생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것을 배우고 자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예수 믿는 원장이 싫어서 떠나려고 생각하다가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구원을 받게 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을 받은 것이다. 인생의 문제로 갈등하든 내가 이제 하나님의 ..
사후동 선교부 농장 산지 개간 프로젝트 산지를 개간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등고선(contour line) 법과 계단식(benching, terracing) 개간 법이다. 산야가 펑퍼짐하고 넓으면 등고선 법으로 개간하면 좋다, 그러나 경사가 진 산야는 계단식이 어울린다. 사후동 산야는 완만하지 않고 경사져서 Benching(계단식)식 개간을 하도록 하였다. 나는 작은 측량기로 등고선을 재면서 개간지를 정하였다. 쓸모없이 버려져 있던 산자락이 개간되면서 자연환경이 바뀌고 있었다. 또 잡목과 잡풀만 자라던 산야는 곧 풍요로운 농지로 바뀌고 있었다. 개간하는 일로 지난 가을과 이번 봄은 바쁘게 보냈다. 축사가 거의 다 지어졌을 때 매카피선교사가 거창 가지리에서 기르던 젖소와 양들을 데리고 염일부와 전 형제가 올라..
사후동 교회 개척 사후동 교회 시작 1965년 3월  겨우 내 공사하여 다음 해 2월에는 농장의 다른 건물들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우선 매카피 선교사의 흙벽돌 이 층 집이 다 지어졌다. 이층에는 반 구대와 넓은 응접실이 있고 아래층은 두 개의 방과 창고 그리고 부엌이 있었다. 부엌이 달린 방은 권사님과 미연이가 살면서, 직원들의 식당이기도 했다. 또 한방은 내 방은 창문 두 개가 있어서 앞쪽으로는 동막으로 가는 골짜기가 환히 내다보이는 위치가 좋은 곳이었다. 반년 정도 안정이 없이 지내다가 이제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니 안정을 하게 되었다. 이 건물은 선교부 본부 건물 겸 매카피 선교사의 사택으로 한국을 떠날 때까지 살았다. 처음에도 사후동 개척교회로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이제 건축일도 어지간히 마무리되고 안정이 ..
퍼져나가는 복음 사후동 교회 개척 1965년이 되면서 사후동 개간과 건축하는 일들이 어지간히 마무리되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선 사후동 골짜기 개척을 하였다. 목장 식구들을 기본으로 하여 마을의 청년들과 모친들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사후동에서 복음이 북쪽으로는 동막, 남쪽으로는 새마을 방골에 이르렀는데, 그 이상은 아직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매카피 선교사는 복음 전파와 교회개척을 위한 특별한 계획이나 훈련된 일꾼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같이 개인적으로 복음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 소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후동 교회가 워낙 골짜기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서 먼 곳에서 깊은 골 안으로 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동막에서 그리고 방골에서 얼마가 나오게 되었고 나중에 먼 거리인 ..
사후동 생활 사후동의 삶 1963-1966내 인생은 이제 사후동 산골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산골에서 한 3년 동안 많은 경험을 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내 앞길의 청사진도 만들게 되었다. 1963~1964년 두 해 동안은 사후동 건설과 농장과 목장을 이루는 일로 내 삶의 모든 것을 바쳐 정신없이 살았다. 1965년 3월에야 매카피 선교사의 집 응접실에서 사후동 교회 개척의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산지에 포도, 복숭아, 사과나무를 심었고 개간지에는 사일리지(silage, 발효 사료) 용 옥수수와 오차드 글라스(Orchard grass)를 심고 채소밭도 만들어 먹거리를 심으면서 사후동은 일상적이 되어 가고 있었다. 두 마리 저지 젖소에서 나오는 우유로 치즈와 버터도 만들고 비트..
한국 기독교 선교 학교 한국 기독교 선교학교McCafee 선교사는 성경학교를 하려는 열망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러나 그의 열망은 현실성이 없는 허상에 불과했다. 매카피 선교사는 가끔 선교부 직원들과 성경말씀을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성경학교를 하려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분이 생각하는 성경학교란 인적 자원과 인프라를 갖춘 것이 아니고 사랑반 성경반 같은 것이었다. 매카피의 뜻에 따라 1965년에 형제자매 10여 명으로 사후동 성경반이 시작되었다. 이 성경반을 나중에 내가 선교학교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다. 공부하던 양평 출신의 김영철형제가 군에 입대하여 군종 하사로 군교회에서 복무하고 싶어서 성경학교 졸업장을 만들어 달라는 편지가 욌다. 그래서 그 형제를 도와주려고 수료증을 인쇄하면서 내가 [한국 기독교 선..
한국 기독교 선교회 의료 선교 오산 기독교 병원병원 사업은 선교부로서는 아주 가치 있는 사업이었다. 선교부 수입과 아울러 지역사회봉사와 복음 선교에 좋은 영향이 되었다. 매카피 선교사에게 오산 기독교 병원은 계획적이 아니라 우연에서이다. 1966년 오산에 나이 많은 의사가 오랫동안 의원을 운영했는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손도 떨리고 하여 의원을 계속 운영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오산지역의 의료발전을 위하여 매카피 선교사에게 그분 이름으로 병원을 설립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매카피 선교사가 오산 기독병원 허가를 받아서 병원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는 오산지역에는 종합병원 성격을 가진 병원이 없었다. 선교부 병원은 그저 기본만 갖춘 종합병원이지만 지역사회 주민들은 크게 환영하고 있었다. 매카피 선교사의 노력으로 미국에서 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