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无锡) · 리양(漂陽) · 난징(南京) 방문 7.18-22, 1997
상해 개발구의 초청으로 상해에 도착하자 우리를 인도할 사 선생이 다른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개발구는 하루 늦게 가기로 하고 자기가 새로 초청을 받은 우시시(장쑤성, 江苏省)를 먼저 가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생각밖에 장쑤성의 남경, 그리고 안후이성(安徽省)의 리양 (漂陽)을 돌아보는 1석 4조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런 곳들을 일부러 여행을 가려고 해도 힘든데 자연스럽게 방문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우시 시(无锡市, : Wúxī)
주석이 없다는 뜻을 가진 도시 이름이 이상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옛날에는 이 지방에 주석이 많아서 유명한 곳으로 알려졌다가 그 뒤로 주석이 나오지 않아서 주석이 없다는 뜻으로 ‘무석, (无锡, wuxi)’이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아침 7시에 떠나는 남경 행 급행을 탔다. 차비는 43원으로 값은 비싸나 에어컨 시설이 잘되어 있고 북방에서는 볼 수 없는 환경이 좋고 편안한 차였다. 그리고 좌석마다 비닐봉지가 하나씩 준비되어 있고, 떠나기 전에 가래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면 벌금 50원이라는 주의 사항이 북경 표준어와 영어로 방송되고 있었다. 북쪽에서는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차였다. 중국의 윗동네와 아랫동네가 사는 수준이 이렇게 많이 달랐다. 저 북방은 아직도 깨이지 못한 좀 미개한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열차는 2시간 50분을 달려 우시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차로 씨베이전(西北鎭) 정부로 가서 전장(읍장) 등 간부들을 만나서 전장 실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그들은 우리를 우시 주위의 아름다운 환경을 보여주려고 아름다운 호수 타이 후(太湖)로 데려갔다.
타이후(太湖[태호], TàiHú) 촬영장
타이후는 장강(長江) 삼각주 평원에 있는 중국 담수호 중의 하나로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이다. 장쑤성과 저장성의 경계에 있으며, 크기는 2,250 km²이며, 깊이는 평균 2m이다. 호수 안에는 약 90개의 섬이 있다. 타이후는 유명한 대운하와 연결되어 있으며, 소주 강(苏州河)과 황푸강의 발원지이다.
지금 중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삼국지와 수호전의 전문 촬영장으로 크고 넓은 지역에 그 시대의 문물로 꾸며 놓아서 세계적으로 이름난 관광지가 되었다. 촬영장을 거닐다보면 마치 우리가 중국의 춘추 열국 시대의 중심에 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운 호수는 나의 마음을 빼앗고 있었으며 이런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우리는 호수를 돌아 산등성이를 넘어 전 정부 양로원에 들렸다. 이층으로 된 건물은 보기 좋은데, 하고 사는 환경이 어찌 그리 깨끗하지 못하고 지저분한지, 어울리지 않았다. 양로원을 돌아보고 우리는 전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식당에 갔는데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둥근 큰 식탁에 둘러앉아 자리를 잡자, 갑자기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내 찻물이 좍 오더니 찻잔에 부어져서 신기했다. 알고 보니 꼭지가 긴 주전자로 가진 분이 손님 뒤에서 찻잔에 차가 비면 언제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이 좍 부어온다. 이렇게 차 봉사를 하기 위해서 많은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내가 신기해하고 좋아하니까 간부들도 모두 좋아했다. 이렇게 차 봉사 대가로 한 사람에게서 5원씩을 받는다고 한다.

상에는 여러 가지 요리가 올라왔는데, 특히 타이후에서 잡은 물고기와 작은 새우 요리 그리고 바싹 튀긴 개구리 요리 접시가 내 눈을 끌었다. 대접을 받은 뒤 우리는 진 정부 회의실에 와서 양로원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의논을 했다. 땅은 한 무(亩. 약 660㎡)에 10만 원을 내란다. 터무니없는 값이었다. 여기 오기 전에 땅은 무상으로 주겠다는 연락을 받고 왔는데, 땅 값이 너무 비싼데 놀랐다. 돌아오는 길에 사 선생에게 땅이 무상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전화할 때는 분명히 무상이라고 했다고 하면서 거짓말쟁이들이라고 욕을 하고 있었다. 그 뒤 내가 상해 개발구에 있는 동안 땅을 무상으로 주겠다는 소식이 우시 정부로부터 왔다는 데, 나에게 알리지 않고 사(史) 선생이 무시해 버려서 나는 이 소식을 한참 뒤에나 들을 수 있었다.
리양(漂陽)
오늘 우리와 함께 하는 여성 간부는 고향이 안후이(安徽) 성으로 거기서 사업을 한다면 좋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소개하였다. 사 선생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리양도 한번 가 보자고 하여서, 이곳에 처음 온 나는 새로운 곳이어서 가보자고 하였다. 리양은 저장성과 안후이성 경계에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교육국 국장과 그의 친구인 과장이 우리를 맞이하여 주었다. 원래 내가 기대한 것은 민정국(사회사업) 관계자를 기대했는데 사실은 내 사업목적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외국 사람이 온다면 그저 오라고 해 놓고 그다음에 무엇인가를 하면 된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공직자들은 자기 지역에 크든 적든 외자 유치를 성공시키면 공적이 크게 인정되기 때문에 외국인이 오면 눈을 밝히고 달려드는 형편이다. 나는 이제 여러 번 중국 관리들을 상대해 보았기 때문에 그들의 방법과 공식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史 선생에게 한 달 전서부터 시간과 경비 절약을 위하여 내가 원하는 몇 가지 기본 조건을 확인하도록 부탁했다. 내려오기 전에 몇 번이고 부탁하고 확인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준비된 일은 없었다. 상해 개발구는 어떤지 이제 가 보아야 알 것이다. 사 선생의 친구의 풍성한 대접을 받고 호텔에 들었다.
리양 기독교회
사(史) 선생이 잠들고 있는 이른 아침 나는 거리에 나가서 택시를 타고 이곳 기독교회로 갔다. 리양 한족 삼자교회는 한 700여 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었다. 새벽기도가 없는 중국교회인데도 문들은 활짝 열렸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넓은 예배당에 홀로 앉아서 기도를 하고 주위를 돌아보고 철문을 나오는데 한 남자분이 구두 수선 기계를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7시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관심이 있어서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그는 이 교회의 집사요 하루에 겨우 10-20원 정도 버는 구두 수선 수입으로 생활하면서 주님을 섬기는 소박한 생활이 마음에 들어서 20원을 주면서 아침이나 먹으라고 격려했다. 돌아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면서 내일 상해 개발구에 가서 간부들을 만나게 될 일을 위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난징(南京(남경], Nánjīng)
돌아오는 길에 지도를 보니 우리는 지금 남경 가까이를 지나고 있어서 여기까지 온 김에 남경을 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 선생 일행을 먼저 보내고 우리는 여기서 남경을 가보고 밤차로 상해로 가서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했다. 남경까지는 버스로 세 시간 정도 걸렸다.
남경 대학살(南京大屠杀) 기념관
기차역에 가방을 맡기고 “남경 대학살 기념관”으로 갔다. 기념관은 집단 매장지 위에다 지어졌다. 침략 제국주의자 왜군이 남경에서 학살하고 여성들을 강간하고 배를 갈라 죽이는 참혹한 자료들은 소름이 끼쳤다. 왜인들이 저지른 잔악한 만행을 중화민족은 역사가 끝날 때까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 남경 대학살 사건은 1,2편으로 만들어 중국 여행기에 올려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양자강 대교(扬子江大桥, Yángzǐ Jiāng)
양자강이 보고 싶어서 서들러 시내버스를 타고 양자강 다리 입구에서 내렸다. 양자강은 강 하류를 일컸는 말인데, 한국 사람들은 양자강이라고 부른다. 중국 사람은 긴 강이란 뜻인 장강, 즉 창쟝(长江, Cháng Jiāng), 이라 부른다. 장강은 티베트 고원 탕구라산맥의 겔라다인 동산에서 발원하여 티베트 고원을 남동쪽으로 가로지르며 깊고 좁은 매우 험준한 협곡을 지나서 청두·충칭·우한·남경·상해를 거쳐 서해로 들어간다. 중국 남부를 서에서 동으로 대륙을 가로지르는 장강은 6,300km로 나일강과 아마존강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으로 중국의 젖줄이다.

장강을 건너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장강의 대교는 6Km가 넘는데, 다리 중간에 정류장이 있어서 내렸다. 다리 난간을 따라서 동서로 걸으며 끝없이 펼쳐진 세상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강 상류와 하류를 오르내리며 물류룰 운송하고 있는 수 많은 배들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삼국시대
3세기 초 후한이 멸망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의 삼국시대가 열린 지역이다. 장강을 중심으로 서편으로 촉나라, 장강 위로 위나라 장강 아래 오나라와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비 관우 장비와 제갈량은 촉나라로, 위 나라를 정복하고 오나라를 굴복시켜 천하를 얻으려고 하다가 패하므로 삼국시대는 끝난다. 지난날 역사의 소용돌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장강은 세월 따라 소리 없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기적적으로 탄 열차
상해로 돌아가려고 남경 역에서 밤 12시 5분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운 지방이라 모기가 많아서 푸른색의 방충 등들이 여러 곳에 놓여 있었다. 미화는 피곤한지 졸고 있었고, 나도 졸다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차 시간 전광판을 보니 우리가 탈 55 열차 개찰이라는 글이 보인다. 뛰어가서 리화를 깨워 개찰구로 달려가니, 여성 역무원이 개찰이 끝났단다. 미화가 외국 사람이라고 사정을 얘기하자 여자 역무원이 우리를 데리고 플렛홈에 나와서 철로로 바로 건너가라고 하고는, 건너편 열차 장에게 이 사람들을 태우라고 소리친다. 남경역은 철로가 많아서 폭이 넓었다.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달려 철로를 건너고 건너서 건너편 플렛홈에 기어올라 열차를 타자마자, 여성 열차장은 푸른 불의 출발 신호를 흔들자 열차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숨이 턱에 닿고 있었다. 이런 위기에 도움을 준 여성 역무원의 친절한 마음을 가슴에 깊이 담았다.
Jewh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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