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hina Tour

고구려 국내 성

                                                                                                통화·집안  10.7, 2002

 동북 삼성의 길림 성은 고구려의 중심으로 많은 고구려의 성과 왕릉과 유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우리 역사의 중요한 지역이다. 옛 고구려의 중심 도성을 이루었던 집안 통화를 가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때가 왔다. 고향이 통화이신 김영배장로님이 미국에서 오셔서 당신의 고향에 함께 가기를 청하여 길을 나섰다. 통화에서 김 장로를 모시러 온 김영수 선생과 함께 이도백화를 가려고 택시를 전세하였다. 기사는 안도로 거쳐 가지 않고 화룡으로 가서 왜 이리로 가느냐고 하니 좀 가까워서라고 한다. 그런데 길은 험했다. 화룡을 지나서 장백산 준령을 넘어가는 1,400 고지 노송령을 오르는데 생각지도 않은 함박눈이 한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긴 언덕길을 택시가 미끄러워서 오르지를 못해서 우리 셋이서 밀고 올라가느라 기진맥진이었다. 어떤 때는 밀어 올려놓으면 택시가 그대로 달려가서 우리를 놔두고 도망가는 줄 알고 긴장한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눈 덮인 언덕에서 차를 미는데 딸랑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소 떼가 나타났다. 이 깊은 백두산 준령에 소 떼라니! 김 선생 말이 방목하는 소라고 한다. 사람이 함께하지 않은 채 내놓고 키우고 있었다. 호랑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생겼다. 우리는 겨우 이도백화에 도착하여서 한 호텔에서 쉬었다. 아침을 양양 할머니 집을 찾아가서 된장국으로 식사하고 나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8:40 통화로 가는 열차를 탔다. 6시간 동안 산골길로 달리는 기차는 그 옛날 고구려 사람들 그리고 대조영 장군 그리고 독립군들이 항일 활동하던 산야들이다. 골골이 지나치는 저 산야에 항일 투쟁하던 독립군들의 애환과 사연들이 서려져 있음을 그려보았다. 통화에 와서 김 선생 집에서 쉬었다.

 

                                                                                    통화(通化, Tōng huà
예전부터 인삼, 한약, 쌀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가 지금은 포도주와 스키의 고장으로 이름이 나 있으며, 지린(길림) 성의 제3대 도시이다. 이 장로는 중학생 때까지 여기에 살았다고 하며, 이번이 두 번째 찾은 고향이라고 한다. 옛날 다니던 중학교 터와 당신이 살았던 곳을 함께 찾아가 보았다. 김 장로는 여기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해방이 되자 가족이 고향 북한으로 돌아가 살다가 인민군으로 나갔다가 포로가 되어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다시 한국군 사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시험을 쳐서 장교가 되어 육군 중령으로 만기 제대를 한 분이었다. 우리는 함께 통화 시내를 돌아보았다.

 

                                                                              지안(集安[집안], Jí'ān) 10.9, 2002
나는 통화에 온 김에 옛 고구려의 중심지였던 지안을 가보고 싶어서 김 선생 큰아들과 함께 갔다. 가다가 한 산골 전 정부가 있는 곳에서는 인삼들이 거래되고 있는 인삼 시장이 서는 날이다. 태백산 준령 각 지방에서 생산된 엄청난 인삼들이 이곳에서 경매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거래된 인삼들이 중국 전국에 팔려나가고 또 한국 등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었다.

 

                                                                                 고구려 국내성(国内城)

지안은 고구려 2대 유리왕부터 20대 장수왕 때까지 425년(3∼427년)간 수도였으며 1만 2000여 기의 고구려 고분이 있다.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가 가득한 곳인데, 중국 정부는 동북공정이란 역사 지우기 작업으로 지난 10년 동안 철저하게 고구려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지금 지안은 옛 고구려의 국내성으로 고구려의 서울이었다.

                     

국내성은 고구려 제2대 유리왕 22년(서기 3년)부터 장수왕 15년(427년)까지 424년간 평양성으로 서울을 옮기기 전까지 고구려의 서울로. 국내성 성벽의 전체 길이는 2,686m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영토를 넓혀서 동북 삼성과 연해주로 넓히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의 틀을 갖추었다우리가 갔을 그때에는 그 옛날 쌓은 성벽의 밑 부분의 돌축이 그대로 있어서 고구려의 예 모습을 조금 느껴 볼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집안을 다녀온 뒤, 중국은 동북공정, 역사 왜곡의 한 과정으로 2년 정도 한국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한 뒤 국내성을 울타리를 둘러치고 당나라 모양의 성과 궁을 지으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옛 국내성의 모습을 지워버렸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목단강 발해 성터도 2년간 막을 둘러치고 ‘한국 사람 출입금지’라는 표지를 붙여놓고,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면서 고구려 냄새가 나지 않는 당나라식 성으로 쌓았다.

                                                                                         장군총
왕릉은 두 곳을 보았는데 장수왕릉인 장군총만 소개해 본다. 집안 현 퉁구의 투구자산 중허리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돌무덤으로 가장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돌무지무덤이다. 무덤의 높이는 14m(5층 아파트 높이) 평면은 장방형(31.5-33m)이며 안은 7층의 계단식 피라미드 같이 이루어져 있었다.

 

                                                                                              광개토대왕 비
우뚝 선 광개토대왕 비는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간악한 왜인들이 글자를 지우느라 입힌 상처들, 그리고 문화혁명 때는 홍위병들이 해머를 들고 비 꼭대기에 올라가서 깨버린다고 뚜드린 상처들, 안 깨어져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 많은 고난을 견디면서도 꿋꿋이 견디어 온 우리의 자랑스러운 고구려 광개토대왕 비, 중국이 역사를 아무리 조작하려고 하더라도 그 옛날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와 겨루며 동방의(동북 삼성과 연해주) 지배자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부정할 수는 없다.

 

                                                                          고려(高丽) 박물관

고려(高丽) 박물관에는 고구려의 문화유산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유물은 고구려의 정신과 살아있는 역사를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한민족의 유산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퍽 아쉬운 일이다. 지금 중국은 고구려를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 안정하지 않고 고구려는 중국의 옛 나라 한-당나라(漢-唐)의 지배 밑에 있었던 변방의 한 소수민족, 한당고국(漢唐古國)으로 쓰고 있다. 지안 고려 박물관은 2003년부터 10년간의 동북공정(역사왜곡과정)을 거쳐서 2013년 5월 1일 새 이름 '지안 박물관'으로 2층에 6개의 전시실로 구성하여 문을 열었다. 

 

역사 왜곡의 동북공정을 마치고 나서 지안 고려 박물관 이름에서 고려를 지우고 지안 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저 안에 전시된 모든 보물은 고구려 고분에서 나온 유물들이다.  

 

                                                                                         북한 만포시(滿浦市)

만포시는 북한 자강도 북서부에 있는 도시로 압록강 연안에 위치하는 국경 도시로 지안을 마주 보고 있다.  록강으로 나갔다. 이쪽 강변에는 보트 등 물놀이 유락 시설들이 있었다. 강 건너편은 북한의 만포시인데, 그곳은 강변에 아무 유락 시설이 없고 사람도 별로 얼씬 가리지 않아서 삼엄하게 보였다.  강폭이 좁아 만포의 시가지를 가깝게 볼 수 있었다. 중국 쪽은 삶의 여유를 가지고 즐기는 문화가 활발한데 비해 건너 쪽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목단강으로 돌아오는 길 10. 11 금
아침에 식구들을 모아 놓고 가정 예배를 드렸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부인을 위하여 기도하는데 부인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도록 식구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했다. 나는 가족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10:10 고속버스로 선양(심양)으로 나왔다. 통화와 선양은 250Km 거리인데 길 공사를 하고 있었고 많은 부분은 이미 아스팔트가 되어서 길이 좋아지고 있었다. 선양에서 다시 고속버스로 하얼빈으로 오는데 새 고속버스와 잘 만들어진 고속도로의 여행은 편하였다. 모든 면에서 중국은 좋아져 가고 있었다. 하얼빈에서 모임의 형제들과 교제의 즐거움을 나누었다.

Jewhakim

        

'China Tou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경협(龙镜峡)  (0) 2026.05.11
북경  (0) 2026.04.23
우시-리양-난징  (0) 2026.04.23
상해 개발구 초청  (0) 2026.04.23
진시황의 병마용  (1) 2026.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