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hina Tour

북경

                                                                                북경-만리장성-용경협-자금성-이화원

                                                                            딸 가족과의 중국 여행  6.30-7.31, 2006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딸 은하가 손녀 주희, 손자 하영과 하늘이를 데리고 한 달간(6.30-7.31, 2006) 중국을 방문하게 되어서 함께 중국 여행을 하게 되었다. 마침 식구들이 북경으로 들어 오게 되어서, 북경에 3일간 머물면서 만리장성·용경협·자금성·북해·이화원을 돌아보록 계획하였다. 그리고 천천히 연변지구와 상해 황산을 차레대로 여행하도록 계획했다목단강에서 이미 알고 있는 북경의 조선족이 운영하는 6인승 차를 며칠 쓰기로 하고 공항에 나오도록 준비하였다. 한국분이 운영하고 있는 Helen 호텔을 예약했다. 이 호텔은 식당을 겸하고 있고 한식과 중식을 제공하고 있어서 편리하였다.

 

북경의 첫날 7.1, 2006 

                                                                 3. 만리장성(长城, 장성)-용경협(龙镜峡)-밤 시장

 

장성은 주전 5세기경부터 조나라·연 나라 등이 외적을 막기 위해 만든 성벽이었다. 흉노족이나 몽골족과 같은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전국시대부터 건설이 시작되어 후대 왕조에 의해 확장되고 개축되어왔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변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해 증축 연결한 것이다. 그 후 역대 왕조들도 계속 장성을 보완하였으며, 특히 명나라가 몽골족의 재침입을 막기 위하여 증축 개축에 힘썼는데, 현재의 성은 대부분 명나라 때 완성된 것으로, 장성의 북쪽 경계는 내몽골 자치구의 남쪽 경계에 이른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은 길이가 만 리가 넘는다고 하여서 한국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며, 중국 사람들은 긴 성이란 뜻으로 장성(长城, cháng 가chéng)이라 하며,  영어로는 'Great Wall'이라 한다. 나는  이번이 장성에 네번째 오는 길이다. 북경을 중심으로 장성 방문지는 공식적으로 세곳. 팔달령장성(八达岭, bādálǐng )·모전욕장성(慕田峪, mùtiányù)·거용관장성( 居庸关, Jūyōngguān)이다.  이 세곳은 지역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팔달령이 중심으로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이번으로 나는 팔달령장성에 세번(1994·2005·2006), 그리고 모전욕장성(2005)에 한번 방문하였다.

                                                                                                                                             팔달령장성(八达岭, bādálǐng) 7.1, 2006

식구들이 도착한 다음 날 바로 북경 여행을 시작하였다. 먼저 가족들과 만리장성에 올라보려고 떠났다. 밤새 날씨가 흐리더니 장성으로 가는 길에 비가 내리더니 만리장성의 입구인 팔달령에 다다르자 비는 그치고 흐린 날씨에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장성을 오르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1994년 처음 팔달령에 올 때 길은 일반도로 였는데, 지금은 고속화 도로로 여행이 쾌적하고 모든 시설이 더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팔달령에 오르는 길도 케이블카와 슬라이드도 있어서 다양하게 즐길수 있도록 해 놓았다.  

 

팔달령은 중원의 대도(大都) 북경을 수호하는 관문으로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입구에서 한 2Km를 오르면 높은 고지에 네모의 넓은 성곽에 이르고 거기서부터는 산 아래로 내려가면서 성은 산마루를 따라 끝 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까지 올라 장성의 여행을 마치는 편이다. 얼마의 사람들이 아쉬운지 반대편 성을 따라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곳에 오르면 동서남북이 탁 트이면서 푸른 하늘은 맞닿을 듯하며 구불구불 겹겹이 이어지는 산맥을 따라 장성은 마치 꿈틀거리는 용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    

Jewhakim

                                                          

                                                                                           

                                                                                    용경협(龙镜峡, lóng jìng xiá ) 7.1, 2006

 

용경협 풍경구(龙庆峡风景区) 중국 베이징 북서쪽 옌칭구(延庆区)에 있는 협곡으로 베이징 16개 풍경구의 하나로 베이징에서 한시간 반 정도의 거리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는 기암 봉우리들이 절경을 이루어 '베이징의 작은 계림(小桂林)' 또는 '작은 삼협'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유람지이다. 1973년 계곡 하류에 댐을 쌓아 인공 호수를 만들면서 이 협곡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협곡의 길이는 7킬로미터이며, 호수의 폭은 30~50미터로 협곡의 양쪽에는 깎아지른  벼랑들이 높이 치 솟아 있다. 높은 기암절벽의 협곡에서 흐르는 물을 막아 수려한 자연경관을 만들어 내는 인간의 솜씨 또한 예찬할만하다. 여러 해 전 왔을 때는 그저 자연 모습 그대로 였는데, 이제 와보니 더 다양한 유람지로 변해 있었다. 여름은 피서지로 겨울엔 빙설 경관으로 화려한 눈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물을 막은 계곡 입구에서 유람선을 타는 선착장까지는 70m로 올라가는 길을 용경협의 상징인 용의 몸통으로 긴 터널을 만들어, 그 안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여러 번 갈아타면서 오르고 올라 마지막으로 암벽 동굴을 빠져나오면 여객선 선착장에 이른다. 용의 몸통 터널을 오르는 아이들을 데린 가족들과 청춘남녀들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면서 모두 즐거움에 넘치고 있었다

                    

지붕이 없는 유람선은 에메랄드빛 호수를 달리며 모든 사람은 눈을 들어 하늘 높이 뻗어 있는 기암괴석을 감상하느라 정신이 없다. 용경협에 들어서면 모든 것을 잊고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양쪽에 깍아지른 절벽들이 병풍같이 두르고 있는 자연의 신비에 취하면서 신선이 놀았던 허공을 올려다보면 그곳에 오토바이가 달리는 쇼가 펼쳐지는데 아슬아슬하고 흥미진진하다.

 

유람선이 막장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한 곳에 잠시 내리는데, 찻집과 선물가게들이 있고 번지점프도 할 수 있는 곳도 있어서 흥미롭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 온김에 기념으로 번지점프를 한번 해 본다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또 한곳에는 협곡을 다라 높은 산정을 오르내릴 수 있는 케이불카들도 줄줄이 다니고 있었고, 호수를 따라 다니는 고가 청룡열차도  타보고 싶은 유혹을 받게 하고 있다. 

Jewhakim                                                  

                                               ∞                               

 

                                                                                                                       북경의 밤 시장

오늘은 만리장성광 용경협 관광을 마치고 북경에 들어오자 날이 기울고 있어서 간단하게 저녁도 먹을 겸 밤거리에 펼쳐지는 먹거리 시장으로 갔다. 중국의 밤 시장은 정말 왁자지껄한 곳으로 먹거리와 사람들로 붐비고 포장마차에는 온갖 먹거리가 넘치는 거리를 돌아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혐오하는 온갖 벌레들인 곤충들, 개구리·전갈 ·귀뚜라미·지네·뱀 등을 꼬챙이에 끼워 튀기거나 구운 것들로 가득한 이곳은 우리들의 식욕을 돋우기는커녕 역겹게 하고 있었다. 이런 것을 처음 보는 아이들은 놀라면서 아무것도 안 먹겠다고 하였다.

Jewhakim                                             

                                           ∞                               

                                                                                                            조양 서서커스 극장

조양극장(朝阳剧场)은  중국이 자랑하는 서커스(杂伎[잡기], zájì ) 전문 극장이다. 고난도 아크로바틱과 공중 곡예로 유명한 베이징 대표 관광 명소로 매일 저녁 공연하며, 오토바이 쇼, 접시 돌리기, 의자 쌓기 등 화려한 퍼포먼스가 약 1시간 동안 펼쳐져서 관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아크로바틱(Acrobatics)-높은 곳에서 줄을 타거나 공중에서 회전하는 등 고난도 신체 균형과 유연성을 요하는 곡예적인 묘기 및 운동.

Jewhakim

                                         ∞                               

  

                                                                              

북경의 이틀째 7.2, 2006 

                                                                            자금성(紫禁城이화원(颐和园)  7. 2 주일, 2006

북경에서의 둘째 날은 주일이어서 호텔 방에서 가족끼리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천안문과 자금성 그리고 이화원으로 갔다.

 

                                                                                    천안문(天安門, Tiān'ānmén )

천안문(天安門 )은 자금성(고궁)으로 들어가는 황성의 남쪽 문이다. 천안문의 만주어로는 《압카이 얼허 오부러 두카, 하늘의 평안한 문》이라는 뜻이며, 풀이하면 "하늘의 명을 따라 백성을 평안하게 다스린다"는 뜻으로 줄여서 천안(天安)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곳에서 명과 청 두 왕조 시대의 황궁 정문으로 사용되었으며 나라의 큰 일들을 이 문에서 발표하였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식이 이곳에서 열렸고 모택동 주석이 이곳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므로 중국은 공산화되어 사회주의 나라가 되었다. 지금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징적 장소로 국가 휘장에도 포함되어 있다.

 

 

                                                                     천안문 광장( 天安门广场, Tiananmen Square)

천안문 앞의 넓은 마당이 "천안문 광장 "이다. 100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광장으로 국가 행사가 여기서 치루어진다. 

※이 광장은 그동안 누구든지 자유롭게 드나들던 곳이었지만, 2024년 10월부터는 하루 전에 예약해야 입장이 가능하며 여권 등 보안 검사를 한다.

이 광장에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문화대혁명6.4사건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Cultural Revolution)- 1666년 5월에 선동된 100만명의 철부지들이 이 광장에 모여 대약진(농업경제)운동 실패로 실권한 모택동이 권력을 되찾으려고 프롤레타리아 민중과 학생폭력 운동을 동원하여 개방개혁파들을 숙청하려고 일으킨 사건이다.  이 문화혁명은 1976년 12월 모택동이 죽음으로 끝나게 되는데, 이 10년동안 중국은 경제 파탄으로 중국은 모든 면에서 20년이나 뒤지는 나라가 되엇다고 한다.  

 

◈ 6.4사건(六四事件, 천안문 민주화운동 사건)-1989년 4월 15일, 개혁·개방을 주장했던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학생과 시민들이 추모 및 민주화를 요구하며 1989년 6월 4일 광장에 모여 일어난 민주화운동 사건이다. 그동안 억눌려 살던 중국의 지성인 젊은 학생들이 일으킨 민주화 운동이다. 두달간 지속된 평화시위는 서방세계에서 "티엔안먼 도살"이라고 표현하듯이 1989년 6월 4일 새벽 무차별적으로 청년 학생들을 탱크로 밀어버리는 진압으로 천안문 광장은 피로 흘러넘쳤다. 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민주화의 불길은 꺼지고 말았다. 시위 진압 당시 맨몸으로 탱크 행렬을 가로막았던 무명의 청년은 텡크맨으로 불리며 6.4사건의 상징적 인물이 된다.  

 

                                                        쉬친셴(徐勤先, XúQínxiān ) 장군

6.4사건에서 기억해야할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쉬친셴(徐勤先) 장군으로  베이징군구 소속 제38집단군 사령관(중장)이다.  천안문 6.4 항쟁 당시 중국 당국이 유혈 진압 명령을 내리자, 인민해방군은 인민에게 총부리를 돌릴 수 없다며 군대의 투입이 유혈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 경고하고 명령 집행을 거부했다. 그는 명령 불복종으로 직위 해제된 후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공산당에서도 제명되었다. 인민을 아낀 장군의 공덕은 기리 기억될 것이다.

                                                       ∞                                                                                                                

                                                                                           자금성(紫禁城, zǐjìnchéng )

자금성은 명나라 황제 영락제가 서울을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1406-1420년에 걸쳐 건설한 황궁으로 명·청나라의 24명의 황제가 살면서 정사를 돌보던 세계 최대규모의 궁궐이다. 1925년 10월부터 고궁 박물관(故宫博物院)으로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자금성(紫禁城, The Forbidden City )은 황제가 거주하므로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금지된 성"이란 뜻을 담고 있다.

크기는 여의도의 3배가 넘으며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 72만 m²의 넓이에 높이 11m, 사방 4km의 담과 800채의 건물과 9999개의 방(실제로는 8886칸)으로 자금성이 궁궐로는 세계에서 제일 크며, 1987년 "명·청 시대의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올라있다. 고궁은 4개의 문이 있다. 북쪽에 신무문, 남쪽에 천안문, 동쪽에 동화문, 서쪽에 서화문이 있다.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 기와와 붉은 벽이 특징이며, 자금성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를 거의 볼 수 없는데. 그것은 자객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자금성 왼쪽에 둥그런 큰 호수를 볼 수 있는데 이곳이 북해(北海)공원이다.

 

황궁은 바깥궁 안궁으로 나눈다. 천안문은 자금성의 정문이 아니고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남쪽문으로 다시 단문이라는 문을 하나 더 들어가면 넓은 광장이 나타나는데 여기가 입장권을 사서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천안문 단문은 바깥궁에 속한 문이며, 자금성 안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오문(午门)이다.  자금성의 관람은 천안문에서 시작하여 단문을 지나 자금성의 관문인 오문에서 표를 사서 들어가면 자금성 안궁으로 이제부터 공식 투어가 시작된다.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태화전 건청궁  교태전 곤영궁을 지나 북쪽 마지막 문인 신무문으로 나가므로 자금성 투어를 마치게 된다. 투어는 거의 일직선 코스로 되어있는데, 그것은 가장 중요한 볼거리가 여기에 다 있기 때문이다. 자금성에는 많은 전각과 방들이 있는데, 특별한 목적이 없으면 별도로 찾아보은 쉽지 않다. 지난날 그곳에서 일어난 애환과 비사들은 지금까지 비밀에 싸여 있는 편이다. 가끔 어떤 자료나 중국의 궁중 사극에서 이곳에서 일어났던 비사들을 들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자금성은 이름 그대로 접근 금지 구역일지도 모른다. 자금성은 정해진 일직선 코스를 따라 3-4개의 궁을 자세히 보고 이해 했다면 자금성을 제대로 본 것이다.   

                                                                       

                                                                                                태화전(太和殿, Tàihédiàn )

 자금성 안으로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태화전은 자금성의 중심이며 자존심으로  가장 웅장한 건축물로 황제의 집무실로 황제의 보좌가 있다. 이곳에서  국가의 중대한 행사인 황제의 즉위식이나 결혼식 등이 열렸다.  

   

태화전을 지나 보게되는 세 궁궐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은 태화전의 축소판으로, 건청궁 (乾淸宮)은 명·청나라 초기 황제들이 거처하며 정무를 보던 중심 공간이었다. 황제의 보좌 앞면 위에  정대광명(正大光明)란 액자가 있다. 내용은 "바른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음으로 교태전(交泰殿)은 명·청 시대 황후의 침전이자 휴식 공간이었으며, 이곳에서 황후는 명절에 조례를 받거나 공식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안에는 커다란 자명종 시계와 물로 시간을 재던 청동 물시계(동루, 銅漏 )가 있는데 그때 궁중의 시간 관리 방식을 볼 수 있다. 이제 가장 북쪽이며 투어 코스의 끝인 곤녕궁(坤寧宮)에 이른다. 곤녕궁은 은 명나라 황후의 침궁이었다가 청나라 때는 신혼방 및 제사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청궁·교태전·곤녕궁을 자금성의 후삼궁이라 부른다.

 

                                                                                              어화원(御花園)

곤녕궁에서 투어를 끝내지 말고  뒷편으로 가면 황제와 황후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던 황실 전용 정원인 어화원(御花園)이 있다. 어화원은 아기자기하게 구며져 있는데, 아름다운 4개의 4계절 정자가 있고, 수석으로 쌓아 만든 인공산인퇴수산(堆秀山) 위에 세워진 정자 어경정(御景亭)은 황제가 자주 올라가서 경치를 감상하던 곳으로 자금성 안팎과 경치를 볼 수 있는 투어의 덤을 주고 있다.

어화원에는 연리지(連理枝)라는 신기한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글자 그대로 뿌리가 서로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결이 하나로 합쳐진 현상을 말한다. 이 연리지를 두고, 화목한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거나, 연인 사이의 깊은 사랑을 상징한다. 바라건데, 이 연리지 처럼 이 세상 모든 부부가 이렇게 금슬이 좋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화원의 울창한 고목과 기암괴석들을 감상하는 것으로  자금성의 투어를 마무리로 하게된다.

처음 자금성을 방문하는 경우 가이드가 있는 팀을 따르면 짧은 시간에 가장 효과적인 투어가 될 것이지만, 개인적인 방문이라면 투어 코스를 미리 공부하고 와야 효과적일 것이다. 자금성 투어는 남문으로 들어와서 북문으로 나가도록 짜여져 있다. 만일 남문으로 도로 나가고 싶으면 온 길을 되돌아가면 된다. 자금성의 투어가 일부라면 이부가 남아 있다.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을 나가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자금성의 북문 신무문( (神武門)

 

북문에 서려 있는 역사의 순간들을 살펴보면, 문루에는 종과 북을 설치하여 매일 종과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1644년 명나라가 망하자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이 문을 나와 건너편 경산에 올라 회화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그리고 또 비운의 사건은  1924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자금성에서 쫓겨날 때 이 문을 통해 궁을 떠났다.  

 

신무문을 나오면 투어팀은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올라 떠나지만, 우리 같이 개인 투어들은 잠시 회포를 풀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자금성을 돌아보느라 수고 많은 나그네들을 위한 선물가게들과 먹거리와 카페 쉼터들이 성벽 양쪽으로 늘어서 있어서 고궁의 숨결이 담긴 커피를 음미하면서 방금 지나온 고궁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숭정제(崇禎帝)가 목 매단 회화나무

북문으로 나가면 길 건너편은 황제가 등산하던 경산이다. 그 경산에 전각을 짓고 그 이름을 황제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뜻을 가진 "수황정(壽皇亭)"이라 지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33살 젊은 나이에 여기에서 생을 마감해서 이곳을 역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장소를 일컫는다. 1644년 이자성의 난으로 북경이 함락되어 국운이 다해짐을 직감한 황제는 1644년 4월 25일 (명나라 숭정 17년 3월 19일) 자결을 결심한다. 그는 황후와 후비들에게 자결하도록 명령하고 자기는 경산의 수황정 앞에 있는 회화나무(괴목, 槐木)에 목을 매어 자결하므로 276년을 이어오던 명제국은 끝난다.   

 

                                                       황제는 자결전에 남긴  두 가지 유언이 전해지고 있다.

                    "짐이 나라를 망치는 군주가 아니라, 신하들이 나라를 망치는 자들이다"

                    "내 시신은 갈기갈기 찢어도 좋으나 백성들은 상하게 하지 말라"는 내용을 숭상제 자신의 옷깃에 써서 남겼다.

숭상제는 16살에 황위에 올라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구조적으로 부패한 위정자들로 나라는 망하기에 이르렀다.

황제가 자결을 결심하고 경산으로 향하자 옆에 있던 몇명의 대신들은 살려고 황제를 버리고 도망갔다. 그러나  환관(태감) 왕승은(王承恩), 충신 한 사람만이 황제를 지키다가 홰나무 밑에서 자결하였다. 훗날 청나라 황제 순치제는 그의 충심을 높이 사 숭정제의 능인 사릉(思陵) 근처에 왕승은의 묘를 만들어 주고 비석을 세워주었다고 한다. 

 

                                                                                     황제가 목매단 홰나무의 정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회화나무는 황제가 목매단 원래 나무가 아니다. 실제 나무는 1966에 일어난 문화대혁명때 사대구습 타파라는 기치아래 철부지 홍위병들에 의해서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도끼로 찍어 없애버렸다.  지금 서 있는 이 회화나무는 1996년 공원 당국이 수명 150년된 나무를 옮겨다 심은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가 황제가 목숨을 끊은 곳이라는 표시로 ≪명사종순국처(明思宗殉國處)≫라는 팻말을 회화나무 아래 세웠다. 

Jewhakim

                                        ∞                               

                                                                                                  북해공원(北海, Běihǎi)

 북해공원은 베이징 자금성 북서쪽에 있는 명·청 황실의 정원으로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황실 정원이다. 넓고 큰 호수의 언덕에 36m 높이의 티베트 양식의  하얀 백탑(白塔)은 이 공원의 랜드마크이다. 청나라가 망하기 전까지 이 북해공원은 오직 황실 전용이었다가, 1925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북해의 넓은 호수에는 화려하게 치장한 크고 작은 유람선들이 꺼 가고 있다. 또 전동과 패달 보트를 빌려서 뱃노리를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전동 보트를 한 시간 빌려서 막내 하늘에게 운전을 하게 했다. 보트는 속도를 고정하여서 안전하고 설살가상 다른 배와 부딪쳐도 별 문제가 없어서 운행에 편리하였다.  북헤에도 볼거리가 여기저기 있다. 우리가 호수를 유람하면서 만난 명소 두 곳, 오룡정과 구룡벽을 인상깊게 보아서 올려 본다. 

 

                                                                               오룡정( 五龙亭, Wǔlóngtíng)

오룡정은 다섯 개의 아름다운 정자로 호수 북서쪽에 줄지어 서있다. 지난날 황제와 황후들의 휴식처로 낚시, 불꽃놀이, 달맞이 또는 연회 등 여가를 즐기던 곳이었다. 다섯 개의 정자들이 구부러진 돌다리로 연하여 물위에 떠 있는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용이 헤엄치는 모양 같아서 지어진 이름이고 한다. 각 정각은 이름이 있는데 가운데 용택정( 龙泽亭)은 가장 크고 화려한데 지붕은 원형, 처마는 사각형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뜻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구룡벽(九龙壁)

중국의 3대 구룡벽 가운데 벽의 앞면과 뒷면에 용이 조각된 유일한 용벽이다.

앞쪽에 아홉 마리, 뒤쪽에 아홉 마리 모두 18마리의 용들은 화려한 색깔과 다른 모습으로 조각한 정교한 기술력과 뛰어난 예술성에 찬사를 보낼만하다. 중국 사람에게 용은 천지조화를 다스리는 신성한 생물로 여긴다. 특히 왕의 권위나 풍요, 행운을 상징하며 숭배의 대상으로 여긴다.

▶중국의 삼대 용벽-자금성·북해공원·산서성 대동

                                             

Jewhakim                                        

 ∞                               

베이징 삼일째

                                                                                                      

이화원(颐和园, Yíhéyuán)은 베이징의 서북부의 하이뎬구 신궁문로(北京市海淀区新建宫门路)에 있는 황실 정원 공원이자 여름 궁전으로 천안문에서 15km 거리이다. 지금 이화원은 여러 세대를 거쳐 인공으로 만들어진 호수이다. 원래는 높이 60m도 안되는 옹산이라는 언덕 아래로 물이 흘러들어 고여서 조그마한 호수를 이루고 있었는데, 서호로 불리었다. 1271년 원나라가 중국을 정복한 쿠빌라이 칸은 제국의 서울을 베이징으로 하면서 수자원 확보를 위해 서호를 파내어 큰 저수지를 만들었다. 호수 바닥을 파낸 흙은 작은 언덕 옹산에 쌓아서 또 하나의 인공산이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이화원의 모습을 갖춘 것은 청나라의 최전성기를 이끈 건륭제 때이다. 1750년 건륭제는 어머니 효성황후의 환갑을 기념해 사찰과 전각들을 세우고 옹산을 만수산, 서호를 곤명호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 은자 480만 냥을 쏟아부어 14년 확장공사 끝에 지금의 이화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왕은 중국 신화를 바탕으로 좋다는 여러 가지 전각과 누각을 지었고, 항저우 서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이곳에 재현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렇게 잘 꾸며놓은 이화원은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으로 영불 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하면서 건륭제가 건설한 모든 명소들은 불태워져 폐허가 되었고, 그리고 귀중한 보물들을 약탈해 갔다.

1861년 청나라의 멸망을 재촉할 서태후가 아들 동치제에 이어 손자 광서제의 수렴청정을 하면서 나라를 지켜야할 해군의 예산을 끌어다가 이화원 복원공사를 11년간 하여 자기 거처로 삼았다. 그러나 1900년 일어난 의화단 사건을 진압하려고 끌어들인 8개국 연합군에 의해 이화원은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파괴되었다.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망하자, 북경시가 공원으로 일반에 개방했다. 1951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보수공사를 하여 대부분의 전각과 정원이 그전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다. 1998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화원 투어

이화원의 중요한 지점은 거의 다 호수 주변을 따라 설치되어 있어서 관광로를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모든 지점을 다 돌아보게 된다. 요소요소에 아기자기한 곳이 많고 유람선도 타야하고 17공교 다리를 건너 섬에도 들려 보려면 하루 해가 길지 않음을 실감하게된다. 이화원의 여름은 무더위와 인파에 지치기 쉬워 나무 그늘을 찾게되고 호수에 뛰어들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이화원 투어를 위해 JAJUWAYO님이 한글 약도를 제공

                                                                                                   동궁문(東宮門)

동궁문은 이화원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문 앞에는 한쌍의 청동 사자가 놓여 있고 세개의 문이 있는데, 가운데 문은 황제나 황후가 출입하는 전용 문으로 어로문(御路門)이라고 불렀다. 문 위에 걸린 현판의 "颐和园" 세 글자는 청나라 11대 광서제의 친필이라고 한다.

 

                                                                                                 인수전(仁壽殿)

이화문 동궁문을 들어 오면 처음 만나게 되는 곳이 인수전이다. 이곳에서 서태후와 광서제가 정무를 보던 곳이다. 인수전 앞에는 청동 봉황, 용, 항아리, 향로가 놓여 있는데, 황제를 상징하는 용은 가운데 놓여 있었는데, 서태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용을 옆으로 밀어내고 봉황을 가운데에 놓아 서태후가 황제보다 더 우월하다는 권력을 과시했다. 

                                                           원래 모습                                                                           봉황이 가운데로 움겨진 모습

   

                                                                                                옥란당(玉瀾堂)

사람들이 옥란당을 찾는 것은 호화로운 궁전이기 때문이 아니라, 청나라 11대 황제 광서제가 10년이나 갇혀 살다가 피살당한 비운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옥란당(玉瀾堂)은 서태후의 거처인 인수전 앞쪽 호숫가에 있는 아담한 사합원 (四合院) 양식의 건축물로, 주변의 화려한 건물들에 비해 조용하고 아담한 분위기를 풍긴다. 청나라 최고의 전성기를 이끈  6대 황제인 건륭제(乾隆帝, 1711~1799) 때 지어져 황제의 여름 별궁으로 이곳에 머물며 국사를 처리하며 황제의 침궁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옥란당이 어떻게 비운의 장소가 되었을까, 한마디로, 청나라를 말아먹은 요괴 서태후 때문이다. 

 

                                                                                                             서태후(慈禧太后)

광서제의 비운을 알기 위해서 먼저 서태후가 누군지 알 필요가 있어서 잠깐 왕실의 관계속으로 들어가 본다. 청나라 9대 황제 함풍제의 황후 효인황후(孝仁皇后)의 궁이 동쪽에 있어서 동태후라 부르고, 후궁인 자희태후는 궁이 서쪽에 있어서 서태후라 부루게 되었다. 황후인 동태후는 글을 모르는 문맹자였고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반면 서태후는 글을 아는 지식인이었고 아들을 낳았다. 그녀의 영리함과 뛰어난 정치적인 감각으로 서로 부부 관계를 넘어 정치적인 동반자가 되었다. 그녀는 자기가 낳은 함풍제의 유일한 아들로 인하여 권력 기반을 다지며 정치적 야망을 키우고 있었다. 함풍제 시대에 와서 아편전쟁과 태평천국 등 내란으로 나라가 망가져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1861년 함풍제가 31세에 죽자, 서태후는 5살인 아들을 황위에 올리니 이분이 10대 황제 동치제이다. 이때부터 서태후는 섭정정치를 하면서 권력욕에 깊이 빠지게 된다. 동치제는 친정정치를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한채 19세 나이로 죽는다. 직계 후계자가 없자, 왕실 집안에 황제감들이 있었지만, 1875년 서태후는 자기 권력 정치를 위해 네 살배기 여동생의 아들을 황위에 올리니 이븐이 비운우의 황제 광서제이다.

                                                                                                          광서제

광서제(光緖帝, 1871~1908)는 청나라의 제11대 황제로, 청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방계 출신 황제로, 4세의 어린 나이에 큰 어머니이자 이모인 서태후에 의해 황제가 되었다. 서태후의 섭정으로 광서제는 성인이 되어 친정을 하면서도 서태후의 간섭과 견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비운의 황제였다.

 

광서제는 아편전쟁과 내란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근대적으로 개혁하고자 무술정변을 일으켰으나 서태후와 보수 세력의 저항으로 개혁은 103일 만에 실패로 끝나고 광서제를 옥란당에 감금시키고 건물의 문과 창문을 벽돌로 막아 감옥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쓰러져가는 나라를 지키려고 개혁을 시도하는 등 마지막까지 고군분투했던 안타까운 군주였다. 그는 37년을 살면서 33년간 왕위에 있었으나 10년간은 감금 상태에서 허수아비 황제로 지냈다. 서태후의 권력에 눌려 황제 노릇도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채 1908년 11월 14일 37세 나이로, 요괴 서태후(74세)가 죽기 하루 전에 바로 여기 옥란당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인은 뒷날 독살로 밝혀졌다.

                      

                                                                                                      장랑(長廊)

옥란당을 지나 오른쪽으로 호수를 따라 조금 가면 낙수당을 만나고 그 다음 장랑에 이른다. 장랑은 건륭제가 어머니 효성헌 황후를 위한 산책로로 만든 것인데, 길이가 728m인데, 이 길을 273칸짜리 긴 회랑으로 만들어서 4계절을 상징하는 유가정(留佳亭)·기란정(寄瀾亭)·추수정(秋水亭)·청요정(清遙亭) 등 4개 정자로 이어지게 했다. 그리고 장랑의 들보에는 1만 4천여 폭 소식채화(蘇式彩畵)로 된 그림이 있는데, 꽃·나무·곤충·새·산수, 서유기·삼국지연의·수호전·봉신연의·요재지이 등의 고전소설과 같은 다양한 소재가 그려져 있다. 이 장랑에 들어서면 그림으로 가득한 별 세계에 들어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림을 자세히 쳐다 보느라면 걸음은 느려지고  뒤에 사람들은 밀린다. 어떻게 이런 거대한 작품을 만들었는지 중국 사람들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화원에서 이 한곳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않은지.

소식채화(蘇式彩畵)- 중국 전통 건축물에 쓰이는 단청 기법으로, 건축물의 들보 등에 그려지는 화려하고 세밀한 그림을 뜻한다. 

 

그리고 유람선에 몸을 싣고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면서 그 옛날 나라가 망해 가는데도 사치와 향락에 빠져 이 호수에서 노니던 서태후를 떠올려 본다.  배 뒤로 보이는 산이 호수에서 퍼낸 흙이 쌓여서 만들어진 만수산이고 탑은 불향각(佛香閣)이다.

                     

                                                                                                     십칠공교 (十七孔桥):

십칠공교는 청나라 건륭제 시대인 1750년에 처음 건설되었다. 너비 8m 길이 150m의 17개 석조 아치형 다리로, 호수 이쪽 곽여정(廓如亭)에서  호수 가운데 있는 인공 섬 남호도 함허당으로 연결되는 다리이다. 다리 난간 위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544마리의 석사자상이 세워져 있는데, 사자들은 저마다 표정과 자세가 달라 뛰어난 청나라 석공 기술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제왕의 즐거움을 위하여 피땀 흘리며 희생한 수 많은 백성들의 고난을 생각해 보았다. 

 

                                               

                                                             십칠공교(十七孔橋)의 신비로운 자연 경관

매년 동지(冬至)를 전후해서 해가 가장 남서쪽으로 기울어지는 해 질 녘이면, 석양이 17개의 다리 구멍을 일직선으로 통과하면서 안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장관이 연출되는데, 이를 금광천동(金光穿洞)이라 한다. 이 때가되면  많은 사진가와 관광객이 이 풍경을 담으려고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Jewhakim                                       

                                                                                                      베이징의 짝퉁시장

짝퉁이란 말은, 가짜나 모조품이란 뜻이고, 중국어로는 쟈더(假的, jiǎde)라고 한다.《짝퉁시장》은 별칭이고 원래 이름은 슈수이지에(秀水街,XiùshuǐJiē)이며, 한국어로는 '수수가'이다. 온 세계에 소문난 유명한 중국 짝퉁 시장은 北京市朝阳区秀水东街8호에 있다. 짝퉁 시장은 8층의 규모를 갖춘 백화점이다. 이 짝퉁시장이 처음엔 길거리 노점시장 형태로 운영되다가 규모를 갖춘 8층의 백화점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곳엔 무엇이든지 다 있는 곳으로 베이징을 찾는 외국인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짝퉁 시장 수수가는 중국을 대표할 뿐 아니라 세계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세계의 모든 명품이 다 있기 때문이다.

 

지하 1층부터 8층까지 의류·가방·신발·시계·안경·실크·MP3·USB·핸드폰 등등 즐비하다. 중국 제품은 말할 필요가 없고, 세계의 명품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어서 쇼핑하기에 아주 편리한 곳이다. 짝퉁이기는 해도 품질이 괜찮은 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물건값이 정가제가 아니라 부르는 것이 값이어서 흥정을 잘해야 한다. 보통 정가에 3~5배 더 부르므로 흥정을 잘해야 본전치기라도 한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한국의 소매상들도 여기서 물건을 사 간다고 한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있는 그곳, 한 번 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우리가 여기서 진주 목걸이 30개를 사는데 개당 30원을 부르는데 20원에 샀다. 중국 자매들과 한국 분들에게 선물로 나누어 준 적이 있다. 난 처음에 한 1년이 지나면 진주색이 변하고 못 쓸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 중국 자매들이 수년을 써도 여전하여 정말 잘 만들었다고 감탄했다. 또 내가 롤렉스 시계를 50원에 사서 수년간 쓰는데 시간이 얼마나 잘 가는지 놀랄 일이었다. 명품을 가져보고 싶은데 형편이 안되면, 여기라고 방문해 보면 어떨지, ㅋㅋㅋ

※ 중국은 짝퉁 전문 나라인데, 워낙 국제적으로 평판이 나빠지자 중국 정부에서 이 짝퉁 시장을 없애버렸다. 그러나 알게모르게 짝퉁은 다른 모양으로 다른  곳에서 여전히 거래되고 있다. 

 

오늘 이화원과 짝퉁 시장 장보기를 끝으로 가족과 함께  한 3일간의 북경 투어를 마치고, 밤 20:30분에 하얼빈 행 침대열차에 올랐다.  이 열차는 저녁 늦게 북경에서 떠나 심양에 한번 서고는 아른 아침에 하얼빈에 도착하는 특급 침대 열차로 15시간이 걸렸다. 이 침대차는 한 칸에 양쪽 벽에 두 개씩 모두 네 개의 침대가 있어서 한 가족이 여행하기에 아주 편했다. 다음 날 아침 6:10분 하얼빈에 도착하자, 하얼빈 이홍국형제가 우리를 위하여 아침  7시 10분 목단강 열차 표를 사서 플레이트 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북경서 하얼빈까지는 대체로 평야 지대인데 열차가 밤새 달려서 자연경치를 볼 수 없었지만, 하얼빈서 목단강까지는 산악지대로 열차가 산굽이를 돌고 시내를 건너며 달리는 열차 안에서 아이들은 동북의 자연을 즐기면서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목단강으로 돌아왔다.  

Jewhakim

 

'China Tour'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만리장성(长城, 장성)  (0) 2026.05.11
용경협(龙镜峡)  (0) 2026.05.11
고구려 국내 성  (1) 2026.04.23
우시-리양-난징  (0) 2026.04.23
상해 개발구 초청  (0) 2026.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