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는 어떤 나라?
▶ 역사적으로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 마야 문명 지대는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와 그 아래로 꽈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에 이르는 지역에 번성하던 문명이다.(네모 사선) 마야 문명 지대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정치: 멕시코의 정치는 삼권분립 제(三權分立制)와 연방제(聯邦制)를 2대 원칙으로 하는 공화 체제.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로 임기는 6년이고, 의회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서울: 멕시코시티(Mexico City, 2천만 명)
면적: 1,964.375㎢(한반도의 약 9배)
종교: 가톨릭(89%), 기독교(6%), 기타(5%)
말과글: 스페인어와 마야어를 포함하는 50여 종의 원주민들의 언어
인구 : 9천6백만 명
인종 : 대략 80%가 메스티소(원주민+유럽인 혼혈), 10%가 원주민(나우아 (Nahua), 마야 (Maya), 사포떽 (Zapotecs), 믹스떽 (Mixtecs), 또또낙 (Totonacs), 따라스코 (Tarascos), 뿌레뻬차 (Purépecha), 아프리카 흑인과의 혼혈 족
돈 단위: Peso(페소) / 환율 : $ 1=10.75페소
▶ 역사
멕시코는 고원 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Mayans(마야)와 Aztec(아즈텍) 문명의 유적지로 B. C. 2000년경부터 농경사회가 형성되었고, B. C. 1200년-1521년까지 번창하던 뛰어나고 고도로 발전된 문명을 건설하였다. 오랜 기간 멕시코 중부(메소아메리카(Mesoamerica)에 있는 여러 크고 작은 부족과 나라들이 어우러져 다투고 있었고, 그 가운데 센(강한) 나라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 나라는 아즈텍 왕국이었다.
마야 왕국은 유카탄 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아메리카의 넓은 지역을 다스리며 번성한 마야문명이다. 고대 마야문명 지역은 멕시코 동남부의 5개 주(치아파스, 타바스코, 캄페체, 유카탄, 킨타나)와 지금은 독립된 나라; 과테말라, 벨리즈, 엘살바도르 북부, 온두라스 서부 일부 지역에는 어디든지 마야의 문명 유적들을 볼 수 있다. 수준 높은 고대 문명을 이룩했던 멕시코는 1521년 스페인의 침입으로 원주민들은 잔인하게 살육당하면서 고유문화가 거의 사라졌으며, 스페인의 식민지로 있다가 1810년에 독립을 하였으나 오랜 국정의 혼란을 겪어오면서 미국과의 전쟁으로 국토의 대부분인 지금 미국의 텍사스, 캘리포니아, 유타, 콜로라도,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주 등을 미국에 빼앗겼다. 지금도 정치적 불안정으로 사회는 안전하지 못하고 자원을 가진데 비해서 백성들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불법으로 미국 국경선을 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 멕시코의 침략 사
남아메리카는 가톨릭을 믿는 스페인의 발굽아래 짓밟히면서 원주민은 거의 학살되다시피 하였다. 그래서 남미는 순수한 원주민에 의한 국가는 하나도 없다. 브라질은 가톨릭인 포르투갈에 의해 정복되었다. 멕시코는 1519년 4월 21일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Hernán Cortés)는 11척의 배와 550명의 병사 그리고 16 필의 말을 이끌고 지금의 유타칸 반도의 베라크루스에 첫발을 내려놓았다. 원주민들은 정복자들의 속을 아무것도 모른 채 침략자들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는데, 가톨릭 정복자들이 넓은 멕시코를 손쉽게 정복할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는 정복자들이 도착하던 1519년은 원주민들의 종교 예언에 따르면 그들의 메시아 케찰 코아 뜰(Quetzalcóatl) 신이 동쪽에서 오게 된다는 해와 맞아떨어졌다. 바로 이 해에 저들이 처음 보는 피부가 하얀 그리고 이상한 옷차림을 한 침략자들을 자기들이 기다리는 신이 온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아즈텍 제국을 망하게 한 종교의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의 제물로 드리는(인신공양), 산 사람의 심장을 꺼내서 신에게 바치는 잔인한 의식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인신공양의 제물이 일 년에 몇 명 정도가 희생되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그마치 일 년에 약 5만 명 정도가 희생되는데 이 많은 제물의 공급으로 부족 간 나라 간 전쟁과 긴장이 팽팽하던 때였다. 정치적으로 힘이 센 아즈텍의 학정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스페인 정복자들이 오자 환영하여 그 편에 서서 아즈텍 제국의 붕괴에 협력하게 되었다. 침략자 코르테스는 아즈텍 제국의 왕인 “목테주마”로부터 초청을 받는다. 코르테스는 원주민 의용병 6,000여 명과 함께 왕궁으로 가서 왕을 잡아 처형하면서 1521년 8월 13일 아즈텍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멕시코에 도착한 지 넉 달 만에 손쉽게 제국을 정복한다. 그 뒤로 원주민들은 침략자들에게 살육을 당하면서 그들의 노예가 되어서 혹독한 노역에 내몰리면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이 가져온 천연두 등의 질병으로 인하여 수도 없이 죽어나갔다. 스페인의 침략 당시 약 2,500만의 인구는 100년도 되지 않은 1605년에 이르러 겨우 백만 명이 좀 넘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침략자들과 통혼하면서 혼혈이 되어 “메스티소”라는 새로운 인간 집단이 생겨나게 되었다.(중남미와 남미 전체가 같은 상황)
▶ 유카탄 반도 (Yucatan Peninsula)
우리가 한 주간 머문 곳은 마야 왕국의 중심 지대이며, 마야문명의 흔적이 가득한 유타칸 반도의 칸쿤이다. 마야 왕국의 자손들은 천 년 전 그들의 조상들이 번영하며 살았던 그곳에서 초라하게 오늘을 살고 있다. 마야어는 지금도 없어지지 않고 약600만 명이 사용하고 있다. 고대 마야 문자는 사용되지 않고 지금은 그들의 말을 로마자로 표기하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치아파스주와 유카탄주 일부 지역에서는 초등학교 때 마야어를 의무적으로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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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cun Resort 7.9-16, 2013
칸쿤은 유타칸 반도의 관광산업이 가장 발달한 중심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들이 모두 칸쿤에 모여 있다고 말한다. 칸쿤은 23km 에 달하는 해변은 천연 상태의 모래밭이 펼쳐져 있어서 중남미 지역에서 가장 손꼽히는 휴양지 중 하나이다. 유카탄 반도의 북동부 구석에 위치한 칸쿤은 바다 건너편으로 쿠바를 가까이 마주 대하고 있다.
이곳은 고대 마야 문명이 숨 쉬는 곳이며 카리브의 아름다운 바다와 고대 문명과 현대가 어우러져 있는 흥미 있는 곳이다. 우리는 이렇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에 묻혀서 한 주간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들의 호텔은 아주 넓은 해변을 차지하고 있는 Moon Place Resrt 이다.
▶ 거북이 보호
Moon Palace 끝쪽에는 거북이가 알을 낳는 곳(산란장)이 있다. 주로 밤이면 거북이가 바다에서 올라와 모래를 파고 알을 한 번에 50-200개를 낳는다. 그리고 알은 50-60일 되면 알에서 깨어난다. 아기 거북이가 바닷물로 가는 동안 상단 한 수는 갈매기 등에 잡아 먹힌다. 신기한 것은 알에서 나온 거북이가 모래 위로 나오면 모두 자동적으로 바다 쪽을 향해 달린다.
이런 아기 거북이를 보호하여 무사히 바다에 들어가도록 돕는 단체가 있다. 아침이 되면 이 직원들이 밤새 알을 낳은 모래를 파서 알을 다 꺼내아 정해진 장소에 다시 묻는다. 그리고 알의 수와 상태 그리고 채집한 날자를 적은 표지판을 세운다. 그리고 부화하는 때가 되면 지켰다가 모두 바구니에 담아서 바다에 가서 놓아준다. 아름다운 일이다. 시간을 맞추면 알에서 갓 나온 아이 거북이를 만질 수도 있고 바다에 갔다가 놓아주는 체험도 할 수 있다.
▶ 여인의 섬(Isla de Mujeres)
오늘 우리는 여인의 섬이라고 부르는 섬으로 day tour를 떠났다. 호텔에서 버스로 항구로 나갔다. 배를 타고 섬으로 건너갔다. 건너가서 알게 된 것은 돌고래들과 함께 수영하면서 즐기는 특별한 수영장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고 있었다. 우리는 수영할 준비가 되지 않아서 구경만 하고 섬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고 섬을 돌아보고 다시 육지로 나오려고 배를 탔다. 얼마를 가서 내려 보니, 육지가 아니라 같은 섬 다른 지역에 온 것이다. 택시를 타고 돌고래 수영장으로 다시 와서 겨우 마지막 나가는 배를 탈 수가 있었다. 덕분에 섬 구경을 잘 한편이다. 나는 배에서 내리면서 어떻게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호텔 직원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호텔 버스를 타도록 잘 안내하여 주어서 반가웠다.
▶ 유카탄 반도에 온 한국 노동자
인신공양으로 희생된 억울한 생명들의 한이 깊이 서려 있는 이 유카탄 반도에는 한민족의 피눈물 나는 애환 또한 서려있는 곳이다. 이 머나먼 곳에 한인들은 언제 어떻게 온 것일까? 서성철이 쓴 “멕시코 초기 한인 이민 역사”에 따르면, 조선 제국 고종 시절 조선 사람이 처음으로 1902년 11월 121명이 하와이 사탕수수 밭으로 노동이민을 떠나게 되고 3년 뒤인 1905 4월 4일 1033명(257 가족+독신 196)이 4년 계약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 채 인천항을 떠나 멕시코 유카탄 메리다에 도착한다. 조선 노동자들은 22개 헤네켄(용설란) 농장으로 나누어 보내졌다. 허황한 선전에 속아 팔려 온 노동자들은 4년간 돈을 벌어 금의(錦衣) 환향(還鄕) 하리라는 꿈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무더운 날씨에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임금 착취와 인간이하의 학대를 당하면서 살아야만 했다. 굶주림과 물 부족은 삶 자체가 고통이었다. 음식문화도 완전히 달라 쌀된장 그리고 김치 대신 팍팍한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 종류의 거친 음식들은 더 힘들게 했다. 하루 할당량을 채우느라 20시간도 모자라는 노동에 지치고 쓸어져 가고 있었다. 헤네켄은 사람 키만큼 크는데 줄기 양옆으로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있어서 그 가시를 다듬어 내는 작업은 고되고 손과 발은 상처투성이로 매일매일을 살아야만 했다. 4년 계약이 끝나고 모두 다시는 헤네켄 농장의 노동자로 일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떠났다. 일부는 쿠바로 가고 얼마는 흩어지고 대부분은 할 수 없이 다시 에네켄 농장으로 돌아와서 재계약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언어도 잘 모르고 4년간 한 곳에서만 살아서 낯선 곳에 어디로 가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일 세대는 그렇게 고난스럽게 살았고 이제 3-4대에 이르는 그들의 자손들이 멕시코 주류 사회에 어우러져 살고 있다.
◎ 헤네켄(Henequen 용설란(龙舌兰)
한 때 이 용설란은 열대의 녹금(綠金, Green Gold)이라고 불렀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헤네켄은 거의 2m까지 자라며, 잎이 용의 혀를 닮았다 하여 용설란이라 부른다. 건조한 기후에 강하기 때문에 유카탄 반도와 같은 덥고 건조한 지형에 잘 자란다. 헤네켄 식물은 원래 여기 원주민들이 노끈이나 밧줄, 또는 마포(麻布)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는데 나중에 유럽인들의 선박용 로프를 만드는 원자재가 되면서 국제무역의 한몫을 차지하게 된다. 그때부터 유카탄 반도 전역에 걸쳐 헤네켄을 대규모로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김제화
jewhakim.tistro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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