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여행기/한국 여행 (6) 썸네일형 리스트형 고성 통일전망대 8. 8-9, 2006 오늘은 기사문리에 사는 막내 처남 석호가 와서 우리를 데리고 북평 장으로 갔다. 동해시(묵호)에서 초등학교(17회)를 나온 나는 이곳이 아주 익숙한 곳이어서 어렸을 때 생각이 많이 났다. 오늘은 북평 장날이다. 시장통에서 메밀묵을 먹으면서 그 옛날 부모님을 따라 부평 장에 오든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날이었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볼만한 장날이었다. 처남이 사는 기사문리로 왔다. 이곳은 강릉 주문진에서 설악산으로 가는 동해안 도로 38선 휴게소가 있는 곳이다. 우리가 만주에서 북한을 거쳐 바로 여기 38선 저 개울로 건너 남쪽 언덕에 짐을 풀고 앉아서 두근대던 가슴을 달래던 안도의 한숨을 쉬던 곳이다. 하늘에 별들만 총총했던 그 캄캄한 밤이 기억났다. 우리는 함께 동해안 통일전망대에 .. 봉평, 이효섭 문화마을 “메밀꽃 필 무렵” 봉평, 이효섭 문화마을 찾아서 7월 31일 수. 한때 비, 흐림 “메밀꽃 필 무렵” 은 효섭문화마을의 주인공 이효섭이 자기가 사는 지역을 배경으로 쓴 단편소설의 제목이다. 우리가 강릉에 살던 70년대에는 나라 자체가 살기 힘들 때여서 지방문화 행사들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월이 좋아져서 메밀 감자 옥수수 조 등 잡곡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들짐승들이 넘나들던 산골이 이제 전국에서 찾아드는 문화도시가 되었다니 반가운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발전한 산골도 가보고, 특히 메밀국수를 좋아하는 나는 그 원산지에서 만들어지는 소문난 메밀국수를 먹고 싶어서 두 동생 그리고 김태선 부부와 함께 떠났다. 문화촌을 돌아보고 우리는 소문난 메밀국수 집에서 메밀국수, 메밀 전, 등 메밀로만 된 점심을 .. 안동 월영교(月映橋)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찾아서... 아산만 방조제(牙山灣防潮堤) 8. 7, 2019 세종에 사는 친구 덕분에 뜻하지 않게 아산만 방조제와 평택호 그리고 현충사를 돌아보는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아산만 방조제는 충남 아산과 경기도 평택을 잇는 방조제로 1974년 5월 22일 준공됐다. 방조제의 길이는 2,564m 높이 17m 아산만 방조제로 아산호가 생겼다. 아산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만으로 호수와 바다로 이어지는 곳이다. 바다와 호수를 가로지르는 해안도로는 서해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이다. 호수를 붉게 물들이며 서역으로 넘어가는 낙조가 절경이라고 하는데 보고 싶은 마음이다. 현충사를 찾아서... 현충사를 이제야 방문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마음씨 고운 친구가 내 뜻대로 아산만과 현충사로 안내해 .. 영주 무섬마을 영주 무섬마을 여행 6. 5-7, 2019 영주 무섬마을이 어떤 마을인지 영주시의 홍보 자료에서 옮겨본다. 태백산에서 흐르는 내성천과 소백산에서 흐르는 서천이 만나 마을을 돌아나가는 물 도리 마을로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해서 무섬이라 부르게 되었다. 무섬은 내성천의 맑고 잔잔하게 흐르는 믈이 마을을 안고 휘감아 돌아나가는 산수의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무섬마을의 시작은 조선 중기 1666년 반남 박 씨 박수(朴燧)가 처음으로 들어와 삶의 터전을 만들었고, 1757년(영조 33년) 그의 증손녀의 남편인 김대(金臺)는 선성(宣城, 예안) 김 씨로 들어와 처가에 자리를 잡은 이래 두 성씨의 집성촌을 이루면서 수백 년의 역사와 유서 깊은 전통마을이 되었다. 고택들과 정자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고.. 도계, 묵호(동해시) 어렸을 때 살았던, 도계, 묵호(동해시) 2001 도계 읍 흥정리 1945년 8월 15일 침략 제국주의 섬나라가 망하고 한국은 왜놈들의 압제에서 해방을 하게 되었다. 역시 왜놈들의 발굽에 짓밟히던 만주도 해방이 되었지만, 그곳은 공산주의가 있는 나라가 되자, 부모님은 우리를 데리고 북한을 거쳐 월남하여 외가가 있는 주문진을 거쳐서 지금 도계의 흥전리에 살게 된다.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던 그 집을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도계 초등학교 2학년 때 6.25 사변이 일어나서 태극기가 휘날리던 우리 학교는 갑자기 인공기가 휘날리는 붉은 인민학교가 되었다. 날마다 전체 학생이 김일성 빨치산 혁명가와 북한 노래를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붉은 교육을 받으면서 몇 개월을 힘들게 보냈던 그 학교를 가보고 ..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