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西湖[시후], XīHú) 12.3-4, 2005
항저우(杭州[항주], Hángzhōu)
쿤밍에서 항저우로 가는 날틀은 승객을 태우기 위해서 계림 공항에 잠시 내리면서, 승객들을 공항 휴게실에 나가 40분간 쉬도록 해 주었다. 휴게실에서 이것저것 돌이 보고 있는데, 아내가 300원 달라는 사기로 만든 예쁜 코끼리 두 마리를 150원에 사 왔다. 말도 모르면서 반으로 깎아 사 와서 신기했다. 날틀이 다시 하늘에 오르자 이 지방의 독특하게 생긴 둥글고 높은 산이 늘어선 들을 보면서 계림(桂

林)을 돌아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항저우 공항에 내리니 비가 오고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안내양에게 서호 가까운 곳의 호텔을 소개해 달라고 하여 소개해준 호텔에 들었다.
항저우는 저장성(浙江省[절강성], Zhèjiāng Shěng)의 서울이며, 상해에서 남서쪽으로 약 180km 정도 거리로, 고속철도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인구는 약 1,220만으로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도시로 알리바바의 본사가 있고, 첨단 IT 산업의 중심지로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항저우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上有天堂 下有蘇杭”(위에는 하늘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 이 문구의 배경은 원나라 때의 곡(曲)인 "쌍조섬궁곡(雙調蟾宮曲)"에 등장하는 구절로, 당시 소주와 항주의 번영과 아름다움을 지상 낙원에 비유한 데서 비롯되었다. 13세기 말 원제국 때 항저우에 3년간 머문, 마르코 폴로(1254-1324)는 서호를 "지상의 낙원" 이라 했다. 국내외 많은 사람이 항저우를 찾는 것은 서호의 아름다운 풍광은 물론이지만, 중국 4대 미인 가운데 한 사람인 서시(西施)의 구국적인 희생의 아름다운 사연이 이 서호에 스며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주(苏州)는 동양의 베네치아로, 항주(杭州)는 중국의 7대 고도 가운데 하나며, 서호(西湖)를 포함하여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중국의 4대 미녀- 서시(월나라), 왕소군(전한나라), 초선(후한, 삼국지), 양귀비(당나라)

항저우의 역사적인 소고
항저우는 2,200년 전 진나라 때 건립된 중국의 7개의 고도 중 하나며, 중국의 10대 명승지로 꼽힌다. 7세기 수나라가 항저우와 베이징을 잇는 대운하를 건설하자 항저우는 상업이 발전하면서 번창하였다. 항저우는 고대 오대십국(907-960) 시대의 오(吴) 나라와 월(越) 나라의 도읍지로 제왕 14명이 머물렀던 곳이며, 또 남송(南宋:1129-1279) 시대에 이르러 번영하면서 이때 서호(西湖)가 관광지로 꾸며지고 화려한 귀족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중국의 많은 철학자와 정치인 그리고 문인을 배출한 유서 깊은 곳이다. 불행하게도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1851-64)으로 도시는 파괴되었고 많은 역사의 귀중한 문화재가 사라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907-960)-당나라 멸망(907년)부터 송나라 건국(960년) 사이, 양자강 하류 화북(중원) 지방에서 명멸한 다섯 개의 정통 왕조와 그 주변 지방 정권들인 십국(十國)과 합쳐서 오대십국 시대라 불렀다.
서호(西湖[시후], XīHú)
서호(西湖)는 항저우 시내 중심에 있는 큰 호수로 중국의 풍경명승구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담수호이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서호는 둘레가 15㎞, 총면적은 60㎢, 평균 수심 2.7m이다. 서호는 원래 바다와 연결된 만이었으나 모래가 쌓여 호수가 되었고, 이후 준설 공사와 제방 축조를 통해 아름다운 인공 호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서호는 소제(苏堤)·백제(白堤)·양공제(杨公堤)란 세 개의 둑(제방)에 의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서호란 이름은 북송 시대의 시인이며 항저우 지방장관이었던 소동파가 이 호수의 아름다움을 중국 4대 미인 중 한 명인 서시(西施)에 비유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서호의 특징을 말하기를, 맑은 날이나 안개끼고 비 오는 날의 풍경도 각각 나름대로 매력을 풍기는 것은, 서호는 어떤 변화에도 한결 같이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수려한 풍광과 역사가 깃들어 있는 서호는 수많은 문인과 학자, 묵객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빼어난 경관 덕분에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중국은 물론이고 온 세계에도 널리 알려진 관광지로 1년 내내 많은 방문객이 줄을 잇고 있다.

서호 10경(西湖十景)
서호 주위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열 곳을 지정하여 서호 10 경이라 부른다. 각 명소는 계절과 날씨 시간의 변화에 따라 서호의 색다른 모습을 나타내 준다고 하지만, 서호를 일 년 내내 지켜보며 관찰할 수 없는 나그네로서는 그날의 서호를 보고 느낄 뿐이다.
서호의 호화로운 유람선은 물결을 헤치며 호수를 한바퀴 도는 동안 서호 10경을 가까이 또는 멀리서 다 볼 수 있는 참으로 낭만적이다. 서호의 유람선을 타는 것 만이 짧은 시간에 서호 10경을 한 번에 다 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람선도 촐랑대는 싸구려보다는 이왕이면 품위 있고 격조 있는 배를 선택하는 것이 서호 유람에 더 가치가 있다.

호수 변을 따라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서호 십경의 명승지 몇 곳을 마주치기도 하고 멀리 보면서 지나치기도 한다. 가이드가 없는 경우, 서호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충분한 시간을 준비하지 않으면 대충 보기 마련이고 뭐가 뭔지 모를 수도 있다. 10경을 하나하나 찾아 보지는 못했지만, 이미 유람선을 타고 대충 돌아보아서 마음에 서호 10 경이 그려져 있는 편이다. 그리고 호숫가를 걷다가 마주쳐 갈음이 멈추어진 10경 가운데 몇 곳을 자세히 올려본다.
서호 1경 단교잔설(斷橋殘雪)
우리는 호수 북쪽 제방인 백제(白堤) 쪽으로 걷다가 우연치 않게 건너게 된 긴 다리가 서호의 제1경 단교잔설(斷橋殘雪)이 었다. 이름의 유래는, 단교(斷橋, 끊어진 다리, 잔설(殘雪), 남아있는 눈) 멀리서 보면 다리의 양쪽 끝에는 눈이 남아 있고 가운데는 녹아 있어, 마치 다리가 중간에서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장관을 연출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눈 내린 풍경을 본다는 것은 길조로 여겨지는데, 지금은 거의 내리지 않는 편이다. 또 이 다리는 첫 사랑이 다시 만나게 된다는 로맨틱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제8경 삼담인월(三潭印月 sāntányìnyuè)
물위에 떠 있는 세 개의 석탑에서 비치는 달빛의 아름다움을 뜻한다. 서호 한가운데 있는 십자형의 인공섬 소영주 (小瀛州)는 항저우의 지방장관인 소동파가 서호를 준설할 때 호수의 수위를 측정하고 수초가 자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운 세 개의 석탑에서 유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이 섬을 왕복하는 여객선이 있어서 섬에 건너가서 거닐면서 섬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서호의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섬 남쪽 물 가운데 서 있는 세 개의 석탑에, 달 밝은 추석 같은 밤에 석탑 안에 등불을 밝히면, 탑에 뚫린 5개의 구멍을 통해 빛이 나와 수면에 비쳐 마치 여러 개의 달이 뜬 것 같은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하는데, 하늘과 호수와 찻잔 속의 달까지 합쳐 수십 개의 달을 볼 수 있다는데, 지나는 나그네는 그저 환상적인 그 광경을 마음에 그려 볼 뿐이다.


삼담인월 (三潭印月)은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명소로 1위안 지폐 뒷면 도안으로 사용되었다.


제10경 뇌봉석조(雷峰夕照)
-뇌봉탑(雷峰塔)이 저녁노을에 물들어 비치는 아름다운 경관이 일품. 호수 남쪽 기슭 뇌봉산(雷峰山)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뇌봉탑(雷峰塔)은 서호(西湖)에서는 어디 지점에서든지 볼 수 있다. 서호 명소로 알려지게 된 것은 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황금노을이 그렇게 아름다워서라고 한다. 뇌봉탑은 977년 오월국(吳越國)에서 처음 세워졌으나, 여러 전쟁으로 피해를 입다가 원나라 말기에는 탑의 골조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이 탑의 벽돌을 빼내어 훔쳐가면서 탑이 무너져 버렸다. 2002년, 무너진 자리에 엘리베이터 등 현대시설을 갖춘 지금의 5층 탑을 재건하여 관광 명소가 되었다.


서호 10경
1경-단교잔설(斷橋殘雪)-겨울에 백제에 눈이 쌓이면 다리 중앙부터 눈이 녹아 지면이 드러난 모습이 마치 다리가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2경-평호추월(平湖秋月)-제방,에 백제(白堤) 서쪽 끝의 전망대로 거울 같은 수면에 가을의 둥근달이 비치는 아름다운 광경.
3경-곡원풍하(曲院風荷)-호수에 펼쳐지는 연꽃 향기 그윽한 곳.
4경-소제춘효(蘇堤春曉)-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제방, 소제에 이른 봄 새벽안개 낀 광경이 가장 아름답다.
5경-화항관 어(花港觀魚)-500여 그루의 모란과 200종 1만 5천 그루의 꽃에 둘러싸여 노는 분홍빛 잉어의 장관.
6경-유랑문앵(柳浪聞鶯)-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들리는 꾀꼬리의 고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7경-쌍봉삽운(雙峰揷雲): 산수화처럼 운치가 있는 곳
8경-삼담인월(三潭印月)-서호 안에 섬 남쪽 석등롱에 불을 밝히면 마치 작은달처럼 보여 운치 있는 서호 제일의 명소.
9경-남병만종(南屛晩鐘)-정자사(淨慈寺)와 영은사(靈隱寺)의 종소리가 울려오던 곳. 지금은 종이 없어져서 더 들을 수 없다.
10경-뇌봉석조(雷峰夕照)-뇌봉산(雷峰山) 꼭대기에 있는 뇌봉탑(雷峰塔)이 석양에 물들어 아름답게 비치는 모습.
서호에 얽힌 오·월국의· 전쟁과 서시
국경을 서로 마주 대한 오·월 두 나라는 오랜 기간 숙적관계였다. 기원전 494년, 오·월 두 나라가 전쟁을 벌였으나, 월나라가 패하게 되자, 월왕 구천은 매우 굴욕적인 조건으로 강화를 청한다. 조건은 금은보화와 왕인 자신은 오왕의 신하가 되고 자신의 부인은 오왕의 첩으로 바치겠다는 것이었다. 오나라 부차가 이를 받아들이자, 아울러 미인계 작전으로 중국 4대 미녀의 으뜸인 서시를 공물로 바친다. 서시의 미모에 빠진 부차왕은 향락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면서 국력이 쇠하는 결과에 이른다. 491년에 구천은 부차왕의 마부로 조상의 묘지기 등 피눈물 나는 치욕의 3년 세월을 끝내고 월나라로 돌아온다. 그는 오나라 왕 부차에게 받은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쓸개를 매달아 놓고 매일 쓸개의 맛을 보면서 복수의 칼을 갈았다. 여기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가 생겨났다. 월나라 구천은 국력을 기르고, 오나라 국력이 쇠퇴한 틈을 타서, 482년, 침략을 단행하여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복수의 한을 풀었다는 고사에 오나라 멸망에 주동적 역할을 서시가 했다. 서시가 부차를 향락에 빠져 살도록 만든 한마당이 바로 이 서호였다. 중국에서는 이 역사의 사건을 내용으로 "서시"란 제목으로 드라마로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청사
항저우는 한국 임시 정부와 인연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은 항저우시 상청구 장생로 호변촌 23호 (浙江省 杭州市 上城区 长生路 湖边村 23号)에 자리 잡고 있다.

전시 내용은 4개의 전시실로 1930년대 당시의 집무실, 침실, 주방 등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놓았다. 김구 선생의 흉상과 당시 요인들의 사진, 이동 경로 등을 볼 수 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과 상하이 사변 승전 기념식에서 폭탄을 투척해 일본 주요 인사들을 처단한 사건으로,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항저우로 옮겨와서 1932년 5월부터 1935년 11월까지 약 3년 6개월간 사용했던 활동 거점이다. 임시정부가 이곳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곳이며, 중국 장개석 국민당 정부의 지원으로 김구 선생이 한국국민당을 창당하는 등 독립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 장소이다.협조로 보존되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의 항일 공동 투쟁과 우호를 상징하는 역사적 장소이다. 특히 중국 젊은이들이 SNS를 통해 널리 알려서 중국의 젊은이들이 찾는 숫자가 적지 않다. 원래 중국인들은 항일 운동을 빡세게한 조선인들에 대한 존중심이 높았었다.

Jewhakim
'China Tour'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 황산(黄山) (2) | 2026.04.21 |
|---|---|
| 3. 황산(黄山) (0) | 2026.04.21 |
| 항저우-호포몽천(虎跑梦泉)(2) (1) | 2026.04.21 |
| 쿤밍-라후족(1) (1) | 2026.04.20 |
| 쿤밍-석림(石林)(2) (2) | 2026.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