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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Tour

자금성(紫禁城)

                                                                                   자금성(紫禁城, zǐjìnchéng ) 7. 2, 2006

자금성은 명나라 황제 영락제가 서울을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1406-1420년에 걸쳐 건설한 황궁으로 명·청나라의 24명의 황제가 살면서 정사를 돌보던 세계 최대규모의 궁궐이다. 중국 정부는 1925년 10월부터 고궁 박물관(故宫博物院)으로 이름하여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자금성(紫禁城, The Forbidden City )은 황제가 거주하므로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금지된 성"이란 뜻을 담고 있다. 크기는 여의도의 3배가 넘으며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 72만 m²의 넓이에 높이 11m, 사방 4km의 담과 800채의 건물과 9999개의 방(실제로는 8886칸)으로 자금성이 궁궐로는 세계에서 제일 크며, 1987년 "명·청 시대의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올라있다. 고궁은 4개의 문이 있다. 북쪽에 신무문, 남쪽에 천안문, 동쪽에 동화문, 서쪽에 서화문이 있다.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 기와와 붉은 벽이 특징이며, 자금성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를 거의 볼 수 없는데. 그것은 자객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자금성 왼쪽에 둥그런 큰 호수를 볼 수 있는데 이곳이 황제의 쉼터이며 놀이터인 북해(北海) 공원이다.

 

황궁인 자금성은 바깥궁 안궁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지금도 자금성에 이르는 길은 그리 가깝지 않다. 천안문은 자금성의 정문이 아니고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남쪽문으로 다시 단문이라는 문을 하나 더 들어가면 넓은 광장을 맞이하게 되는데 여기서 입장권을 사서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천안문 단문은 바깥궁에 속한 문이며, 자금성 안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오문(午门)이다.  자금성의 관람은 천안문에서 시작하여 단문을 지나 자금성의 관문인 오문에서 표를 사서 들어가면 자금성 안궁으로 이제부터 공식 투어가 시작된다.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태화전 건청궁  교태전 곤영궁을 지나 북쪽 마지막 문인 신무문으로 나가므로 자금성 투어를 마치게 된다. 투어는 거의 일직선 코스로 되어있는데, 그것은 가장 중요한 볼거리가 여기에 다 있기 때문이다. 자금성에는 많은 전각과 방들이 있는데, 특별한 목적이 없으면 별도로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날 이곳에서 일어난 애환과 비사들은 지금까지 비밀에 싸여 있는 편이다. 가끔 어떤 자료나 중국의 궁중 사극에서 이곳에서 일어났던 비사들을 들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자금성은 이름 그대로 접근 금지 구역인지도 모른다. 자금성은 정해진 일직선 코스를 따라 3-4개의 궁을 자세히 보고 이해했다면 자금성을 제대로 본 것이다.   

                                                                       

                                                                                                태화전(太和殿, Tàihédiàn )

 자금성 안으로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태화전은 자금성의 중심이며 자존심으로  가장 웅장한 건축물로 황제의 집무실로 황제의 보좌가 있다. 이곳에서  국가의 중대한 행사인 황제의 즉위식이나 결혼식 등이 열렸다.  

   

태화전을 지나 보게 되는 세 궁궐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은 태화전의 축소판으로, 건청궁 (乾淸宮)은 명·청나라 초기 황제들이 거처하며 정무를 보던 중심 공간이었다. 황제의 보좌 앞면 위에  정대광명(正大光明)란 액자가 있다. 내용은 "바른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음으로 교태전(交泰殿)은 명·청 시대 황후의 침전이자 휴식 공간이었으며, 이곳에서 황후는 명절에 조례를 받거나 공식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안에는 커다란 자명종 시계와 물로 시간을 재던 청동 물시계(동루,銅漏 )가 있는데 그때 궁중의 시간 관리 방식을 볼 수 있다. 이제 가장 북쪽이며 투어 코스의 끝인 곤녕궁(坤寧宮)에 이른다. 곤녕궁은 명나라 황후의 침궁이었다가 청나라 때는 신혼방 및 제사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건청궁·교태전·곤녕궁을 자금성의 후삼궁이라 부른다.

 

                                                                                              어화원(御花園)

곤녕궁에서 투어를 끝내지 말고  뒤편으로 가면 황제와 황후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던 황실 전용 정원인 어화원(御花園)이 있다. 어화원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데, 아름다운 4개의 4계절 정자가 있고, 수석으로 쌓아 만든 인공산인 퇴수산(堆秀山) 위에 세워진 정자 어경정(御景亭)은 황제가 자주 올라가서 경치를 감상하던 곳으로 자금성 안팎과 경치를 볼 수 있는 투어의 덤을 주고 있다.

어화원에는 연리지(連理枝)라는 신기한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글자 그대로 뿌리가 서로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결이 하나로 합쳐진 현상을 말한다. 이 연리지를 두고, 화목한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거나, 연인 사이의 깊은 사랑을 상징한다. 바라건대, 이 연리지처럼 이 세상 모든 부부가 이렇게 금실이 좋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화원의 울창한 고목과 기암괴석들을 감상하는 것으로  자금성의 투어를 마무리 하게된다. 처음 자금성을 방문하는 경우 가이드가 있는 팀을 따르면 짧은 시간에 가장 효과적인 투어가 될 것이지만, 개인적인 방문이라면 투어 코스를 미리 공부하고 와야 효과적일 것이다. 자금성 투어는 남문으로 들어와서 북문으로 나가도록 짜여 있다. 만일 남문으로 도로 나가고 싶으면 온 길을 되돌아가면 된다. 자금성의 투어가 일부라면 이부가 남아 있다.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을 나가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자금성의 북문 신무문( (神武門)

 

북문에 서려 있는 역사의 순간들을 살펴보면, 문루에는 종과 북을 설치하여 매일 종과 북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1644년 명나라가 망하자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이 문을 나와 건너편 경산에 올라 회화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그리고 또 비운의 사건은  1924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자금성에서 쫓겨날 때 이 문을 통해 궁을 떠났다.  

 

신무문을 나오면 투어팀은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올라 떠나지만, 우리 같이 개인 투어들은 잠시 회포를 풀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자금성을 돌아보느라 수고 많은 나그네들을 위한 선물가게들과 먹거리와 카페 쉼터들이 성벽 양쪽으로 늘어서 있어서 고궁의 숨결이 담긴 커피를 음미하면서 방금 지나온 고궁을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숭정제(崇禎帝)가 목매단 회화나무

북문으로 나가면 길 건너편은 황제가 등산하던 경산이다. 그 경산에 전각을 짓고 그 이름을 황제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뜻을 가진 "수황정(壽皇亭)"이라 지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33살 젊은 나이에 여기에서 생을 마감해서 이곳을 역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장소로 일컫는다. 1644년 이자성의 난으로 북경이 함락되어 국운이 다해짐을 직감한 황제는 1644년 4월 25일 (명나라 숭정 17년 3월 19일) 자결을 결심한다. 그는 왕자와 공주를 처리하고 황후와 후비들에게 자결하도록 명령한다. 황후는 황제에게 절하고 자기 궁에 가서 목메어 자결한다. 자기는 경산의 수황정 앞에 있는 회화나무(괴목, 槐木)에 목을 매어 자결하므로 276년을 이어오던 명제국은 끝난다.   

 

                                                          황제는 자결 전에 남긴  두 가지 유언이 전해지고 있다.

                                        "짐이 나라를 망치는 군주가 아니라, 신하들이 나라를 망치는 자들이다"

                                           "내 시신은 갈기갈기 찢어도 좋으나 백성들은 상하게 하지 말라"

                                                                   는 내용을 숭정제 자신의 옷깃에 써서 남겼다.

숭상제는 16살에 황위에 올라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구조적으로 부패한 위정자들로 나라는 망하기에 이르렀다.

황제가 자결을 결심하고 경산으로 향하자 옆에 있던 몇 명의 대신들은 살려고 황제를 버리고 도망갔다. 그러나  환관(태감) 왕승은(王承恩), 충신 한 사람만이 황제를 지키다가 홰나무 밑에서 자결하였다. 훗날 청나라 황제 순치제는 그의 충심을 높이 사 숭정제의 능인 사릉(思陵) 근처에 왕승은의 묘를 만들어 주고 비석을 세워주었다. 

 

                                                                                     황제가 목매단 홰나무의 정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회화나무는 황제가 목매단 원래 나무가 아니다. 실제 나무는 1966에 일어난 문화 대혁명 때 사대구습 타파라는 기치아래 철부지 홍위병들에 의해서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도끼로 찍어 없애버렸다.  지금 서 있는 이 회화나무는 1996년 공원 당국이 수명 150년 된 나무를 옮겨다 심은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가 황제가 목숨을 끊은 곳이라는 표시로 ≪명사종순국처(明思宗殉國處)≫라는 팻말을 회화나무 아래 세웠다. 

Jewh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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