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이징, 명 십삼릉(明十三陵) 5. 1994
명 십삼릉(明十三陵)은 명나라 황제 13명의 무덤이 모여 있는 역사 유적지로 베이징에서 약 50km 거리에 있는 천수산(天寿山, tiānshòushān) 기슭에 있다. 13 능은 명나라 3번째 황제 영락제(永樂帝) 7년(1409)부터 마지막 승정황제 17년(1633)까지 230여 년에 걸쳐 막대한 인력과 물자가 동원되어 만든 13개의 무덤으로 총면적은 120㎢로, 여의도의 41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명나라 역사(1368~1644) 276년 동안 16명의 황제가 통치했는데, 그 가운데 13명의 황제와 23명 황후 그리고 1명의 귀비가 묻혀서 '명 13 릉'이라 부른다. 중국 고대 황실의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과 유물을 통해 명나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2003년 <UNESCO>, 세계문화유산목록에 올려져 있다.

명나라 흥망성쇄와 황릉 만들기
중국 역사에서 발견하는 왕조들의 특히한 점은 정권을 잡으면, 바로 자기가 묻힐 무덤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을 본다. 특히 진나라 진시황도 자기 무덤 공사로 나라의 국운이 기울어져 멸망에 이르렀고, 명나라도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1368년 주원장도 난징(南京)에서 명나라를 시작하면서 자기의 다음 생을 위한 무덤 만드는 일을 시작하였다. 3대 황제 영락제는 1421년 서울을 베이징으로 옮겼는데, 수도를 옮기기도 전인 1409년부터 베이징에 이미 자신의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곳은 계속 능이 만들어지면서 능묘군이 되었다. 명나라 역사 276년 가운데 240년은 13개의 황릉을 만드는 일에 국가의 역량을 기울였다. 황제들은 나라의 부강과 백성들의 안위를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들이 죽어서 살게 될 내세의 삶을 준비하느라 국고를 탕진하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다가 나라가 망했으니, 이 어찌 어리석다 아니하겠는가! 명 13 릉을 거닐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신성시하던 능묘군이 관광지로 변화되어 벌어들이는 수입이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고 있다니, 전 세대의 고통과 희생을 어찌 마음 아파 만 할 일이겠는가!

명 13릉 분포도
13기의 능묘군을 가진 명 13 릉은 조화로운 일체이면서 동시에 황제마다 축구장 5-6배의 각자 독립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13번째 사릉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로 국운이 다하자 자결한 숭정제의 능으로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조성되어 규모도 제일 작고 초라하다. 영락제의 장릉이 제일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머지 12 황제의 능은 이보다 더 크게 만들어질 수 없었고, 능도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져 건물의 구조는 거의 같다. 장릉의 건축물은 자금성의 구조를 본떠서 붉은 담장에 황색 기와를 사용했고, 건물과 누각이 어울려 황제의 권위를 잘 보여준다.
이 능묘 군에 묻혀있는 13명의 황제;
1. 장릉(성조,영락제), 2. 헌릉(인종, 홍희제), 3. 경릉(선종, 선덕제), 4. 유릉(영종, 정통제/천순제), 5. 무릉(헌종, 성화제), 6. 태릉(효종, 홍치제), 7. 강릉(무종, 정덕제), 8. 영릉(세종, 가정제), 9. 소릉(목종,융경제), 10. 정릉(신종,만력제), 11. 경릉(광종, 태장제), 12. 덕릉(희종, 천계제), 13. 사릉(사종, 숭정제)이다. 사릉은 13 릉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으며 초라하다. 숭정제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로 국운이 기울자 자금성 뒷산에 올라 목매달아 자결했다.
▶관광지로 개방된 세 황릉 : 장릉 정릉 소릉

명 십삼릉은 중국 전통문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중국 고대 황릉의 대표적 걸작으로 두 외국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소감을 밝혔다.
“황릉은 중국 건축 구조에서의 중요한 업적이며, 황릉의 배치는 건축물과 조경 예술이 결합된 가장 위대한 사례라고 말하며, "최대의 걸작"이라고 평한다. "문루에서 산골짜기 전경을 감상할 수 있고, 자연 속에서 장엄한 광경을 곱씹을 수 있으며, 모든 건축물은 풍경과 어우러져, 백성의 지혜가 건축가와 건축자의 손을 빌어 효과적으로 표현되었다”
-영국의 역사가 Joseph Needham-
▶곱씹다-말이나 생각 따위를 곰곰이 되풀이하다.
“명 십삼릉의 예술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는 "건축에서 '움직임'과 관련된 가장 위대한 사례는 명나라 황제의 능묘이다"라고 평하며, 산을 등지고 건축된 능묘 건축군의 구조가 "장엄한 기세로 산골짜기의 공간을 과거의 제왕을 기념하는 데 활용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영국의 도시 기획자 Edmund Bacon-
명 13 릉 돌아보기
13 릉은 우선 주차장에서 내려 정릉에 이르기까지 거의 9-10km를 걸어야 한다. 우선 능 정문인 석패방을 지나 대궁문 그리고 비루를 지나면 신도(神道)라 일컫는 신성한 참배길에 이른다. 7km가 넘는 이 길이 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넓은 묘역은 공원으로 몇 시간에 다 돌아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리고 저 멀리 산비탈을 따라 펼쳐진 능묘들은 그림의 원경같이 보면서 지나치게 된다. 묘역 탐방의 핵심은 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정릉이다.

우리가 13 릉을 찾아본 것은 1994년 5월이었고 이때는 아직 중국이나 한국 단체 관광객이 공식적으로 오갈 때가 아니어서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을 때였다. 그때는 발굴된 유물들을 지하궁전에 전시하고 있었다. 문제는 지하궁전에서는 일절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여서 한 장도 찍지 못하였다. 또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던 때여서 촬영이 더 어려웠었다. 그래서 그때 우리는 지하궁전에서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참배 길, 신도(神道)
명나라 황제들의 무덤군인 13 릉으로 들어가는 신성한 참배길로,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거대한 석상(석상생)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신기하고 볼만하다. 명나라 수백 년 역사의 숨결이 스며있는 황능의 신성한 길은 7.3km 정도이다. 길 양 옆으로 늘어선 돌사람(石人)과 돌동물(石獸)들이 기이한 모습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감정은 여기서만 느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각 동물 석상은 4마리씩 한 쌍을 이루는데, 두 마리는 서 있고 두 마리는 무릎을 꿇고 있다. 이는 밤낮으로 교대하며 황제를 지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석상들은 황제가 살아생전 거느렸던 보위대를 석조물로 재현한 것으로, 사후에도 황권이 여전함을 보여주는 희극적인 표현이다.
석조물들의 구성 성분을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 구분 | 세부 내용 | 상징 · 뜻 |
| 망주(望柱) | 길 입구의 육각형 돌기둥 2개 | 신도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 |
| 동물 석상 | 6종(사자·해태·낙타·코끼리·기린·말) 총 24마리 | 황제의 호위와 수호, 사후 세계의 풍요 |
| 인물 석상 | 3종(훈신, 문신, 무신) 총 12명 | 황제를 보필하는 문무백관의 충성 |
| 비정(碑亭) | 영락제의 업적을 기리는 신공성덕비 안치 | 황제의 치적 기록 및 기림 |
참배 길을 따라



명 장릉(長陵)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永樂帝,1360~1424)와 인효문황후의 능이다. 장릉은 영락 7년(1409)에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지하묘역 조성에만 4년이 걸렸다. 장릉이 차지하고 있는 건축 면적은 약 12만㎡, 즉 축구장 17배나 되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13릉 중에서 건물 규모가 가장 크고, 자금성 태화전에 맞먹는 목조 건축물인 능은전은 보존 상태가 아주 좋은 편이다. 장릉의 능은전은 금사(金絲)를 입힌 60개의 녹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다. 가운데 있는 네 개의 기둥은 높이가 14.3m에 직경이 1.17m에 이른다.


장릉의 중심건물은 '능은전(陵恩殿)'으로, 과거 황실의 제사를 모두 이 건물에서 지냈다.
명 13릉 황실 제사를 재현하는 현장의 모습

조카의 황위를 찬탈한 영락제
비숫한 시기에 청나라와 조선에는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삼촌들의 반란이 있었다. 1403년 청나라 영락제는 조카 건문제의 왕권을 찬탈했고, 조선에도 1455년 세조는 조카 단종의 왕권을 찬탈하였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자신의 아들 26명 중 9명을 지방의 분봉 왕으로 병권을 주어 국토방위에 힘쓰게 했다. 북쪽 변방 연경(燕京·베이징)의 왕이었던 영락제는 주원장의 넷째 아들로 9명의 분봉왕 중 세력이 제일 강하고 야심도 컸다. 1398년 주원장이 70세로 병사하자 손자인 주윤문이 22세로 2대 황제에 오르니, 이가 건문제(建文帝)이다. 삼촌들의 세력을 두려워한 건문제는 삼촌들을 숙청하고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과정에서 1,399년 영락제가 쿠데타를 일으켜 4년 만에 난징을 함락시키고, 조카의 황위를 빼앗아 1403년 황제에 오르면서, 제국의 서울을 자신의 근거지인 베이징으로 옮겼다. 명나라는 이때부터 환관 정치가 시작되면서 부정과 부패 그리고 음모 술수의 수렁에 빠져 나라가 망해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4년간 100만 명을 동원하여 황궁인 자금성(紫禁城, zǐjincheng)을 건설하여서 오늘날 빛나는 중국 문화의 세계적인 유산으로 남게 했다. 그리고 주변의 나라들을 제압하여 국위를 선양하고 문화정책으로 2만 여권에 이르는 편찬사업에 역량을 쏟았다. 그러던 영락제는 노구를 이끌고 1424년 몽골 정벌에 나섰다가 병사한다.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여 23년간 천하를 호령했던 그도 64년을 살고 마침내 장릉의 지하 현궁(玄宮)에 깊이 잠들게 되었다.
Jewh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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