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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한 마당/Dr.정 논문 읽고

Dr. 정인택 논문을 읽고...

                

 

나는 2015년 10월 24일 DR. 정인택 형제의 박사학위 논문, “형제 운동의 기원과 발전 및 한국으로의 전래” 읽었다.

나는 이 논문에 너무 이끌리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나는 그동안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해서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가진 형제교회의 역사적 지식이란 것은 일목요연한 것이 아니고 조각들이었다. 이렇게 가지고 있던 puzzle 조각들이 이 논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하나하나 맞추어져 가는 스릴을 느꼈다.    

 

(나는 Tyndale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회사 과정에서 몇 페이지의 형제교회의 시작 동기와 배경에 대한 몇 장의 에세이를 써 본 적이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복음사역을 하는 동안 우리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는 기독교 사회에 대해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야 한다고 여러 형제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때는 선교사들이나 뜻있는 선배 형제들이 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분들이 그런 필요성을 인식은 하면서도 실제로 예산을 들여서 번역을 하고 출판하는 홍보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너무 영적으로 치우치면서 종말론에 집착하다 보니 이런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이단이란 소리를 더 많이 듣곤 하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편하게 “간추린 교회사” P. 201-202? 에 있는 중국의 Watchman Nee 형제의 “A Little Flock Movement”와 Plymouth Brethren Movement“를 곧 잘 인용하곤 했다.)

“간추린 교회사, 증보판” by A. M.  레위크/ A.M. 하만 공저, 생명의 말씀 사, 2001 에는 P. 180-182 

 

I. 서론에서
저자는 서론에서 우리 자신의 역사과정을 알기 위해서 무엇부터 알고 시작해야 하는 지를 잘 일깨워주면서 길을 열어 주고 있었다.
       
II. Brethren운동의 기원과 배경
이 단원에서는 저자는 Brethren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당위성에 대해서 자세하게 논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찾게 해 준다. 오늘 우리가 여기 있기 위해서 지난날 어떤 역사의 변천 과정을 겪어내려왔는지를 알게 되면서, 우리 역사의 근원을 밝히 드러내 주고 있어서 시원하다. 이것은 마치 우리 존재의 현재성이 끊어졌던(단절) 과거의 흐름과 연결되는 극적인 만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III. 형제 운동의 발전과정
우리는 제이단원에서 밝고 힘차게 떠오르던 해가 갑자기 제3단원에 와서 침침하고 우울한 먹구름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불안한 국면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선열들이 싸우고 나누어지는(분열) 마음 아픈 모습들이다. 모든 명예와 권위를 내 동댕이치면서까지 낮은 자리에 있었던 그분들의 순수하고 경건한 마음도 사단은 그냥 두지 않았다. 용서와 관용 품어주려고 하는, 즉 하나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그곳은 곧 냉정한 원칙(법)들만 서가고 있었다. 바로 사단은 이 법(원칙)을 통해 분열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었다. 좀 더 잘해보려는 노력은 과대 적용을 낳았고, 그것은 바로 교회 안에 바리새적인 문화를 세우는 일이 되었다. 그 중심에 폐쇄적인 교회의 대부(代父)로 잘 알려진 고집불통의 마음을 가진 “Mr. John Darby” 라는 분이 있었다. 이제 우리가 이런 선열들의 유쾌하지 않은 모습들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하나 될 수 있기 위해서 뭉침(연합)의 조화를 이루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별히 이 논문에서 초기 형제교회의 세 흐름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 데 대해서 반가운 마음이다.
1. Darby의 폐쇄적(Exclusive)흐름
2. Newton의 개방적(Open) 흐름
3. 또 다른 개방적인 Bristol의 베데스다 교회의 George Muller와 Craig 흐름

 

정죄하고 다투던 일들이 드디어 1848년 8월 2일 발표된 소위 “The Bethesda Circular”(베데스다 회람, P.73) 사건으로 영국에서의 형제교회는 길을 달리하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베데스다 회람은 전체 형제교회로부터 출교 한다는 다비의 독선적인 선언문이다.(원인은 논문 본문을 참고) 우리는 이 분열의 과정을 잘 살펴보면, 연합을 이루는 데는 용서와 관용이 제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출교, 교제의 단절, 등은 시간이 지나면 최선이 아니었다는 것을 반드시 알게 된다. 저자는 한국 모임은 개방적인 교회라고 표현하는데, 좁은 뜻에서는 그렇지만, 한국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다비적인 요소로 갈등하는 면도 있다. 개 교회 독립이라고는 하지만, 지역적으로 큰 교회의 영향을 받고 있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느 모임과 또는 누구와 교제하면, ‘교제를 끊는’ 등은 바로 다비 형제가 저지른 역사적인 잘 못을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또 개교회의 독립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한 교회나 한 형제를 전체 공동체에서 제외시키기 위해서 공동 모의를 하는 것은 중앙집권적인 행세를 하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한 번 지은 죄는 용서가 되지 않고 평생을 따라다니게 하는 마음들, 나와 좀 다르다 싶으면 정죄하거나, 또 성도의 사 생활을 간섭하여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마음들은 하나로 화목하려는 데는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사랑과 동정이 없이 원칙만 주장하던 여러 지도자들이 그렇게 하다가 쓰러져갔다. 나 개인적으로는 한국 모임이 Darby 같은 요소가 없는(배제) Bristol의 베데스다교회의 죠지 뮐러와 크레익 형제들과 같은 흐름의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영국에서 일 년 공부하는 동안, 두 부류의 모임에 다 있으면서 경험해 보았다.) 나는 캐나다에서 세 개의 모임을 걸쳐서 생활하고 있는 데 간판이 “Gospel Hall”이던지 “Bible Chapel”이던지 Darby적인 요소가 없는 열린 마음의 형제자매들이 있는 곳에서 생활해 오고 있다.  


 

IV. 형제 운동의 한국으로의 전래
한국에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한국에는 Brethren의 모습으로 예배하는 교회가 있었다. 그러면 과연 누가 한국에 처음으로 Brethren 교회를 한국에 가지고 왔느냐 하는 것은 “누구”라고 꼭 찍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매카피와 제임스 두 선교사들은 한국에 Brethren을 가지고 들어 온(전래자) 첫 번째 분들은 아니지만 한국 땅을 밟은 첫 선교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 한국 형제 운동의 지역적 발생 상황,
한국의 Brethren은 여러 가지 방면에서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면 어떤 자매와 형제들은 일본 승송 형제의 전도로 이루어진 돈의동 교회에서 복음을 들었고, 부평 강태훈 형제 같은 분은 선한 사마리아 원을 후원하는 미군부대에서 미군 형제에 의해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경험하게 되면서 돈의동 모임으로 인도함을 받는다. 이 돈의동에서 앞으로 한국 모임을 시작하게 되는 여러 형제들(강태훈, 서창식, 박준형, 등등)이 만나 지게 된다. 저자는 형제교회가 서울에서부터 퍼져 나가고 있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인천 부평교회에 대해서 조용한(침묵) 것은 의문점으로 남는다.  발생상황 도표에도 1962년에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부평교회 이름이 없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나는 1962년 11월 부평교회에서 구원받고, 1963년 1월에 침례를 받았다.) 부평교회가 역사과정을 통해서 지금 한국 모임의 교제 가운데 있지 않다고 해서 배제만 하는 것보다는, 부평교회가 한국 형제교회의 초창기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 부평교회와 강태훈 편을 참고( http://blog.daum.net/jewhakim)

 

3. 한국 형제교회 운동의 건실한 발전을 위한 제안 
한국 형제교회의 미래에 대한 제안은 바람직하고 건설적이다. 한국 형제교회가 반세기를 지나면서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 발전하여 왔다. 변화하는 세대에 대응하는 국내외 선교에 대한 정책과 대책이 당연히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일찍이 누가 이런 형제교회의 미래에 닥쳐 올 일들에 대해서, 누가 염두에 두고 고심하고 연구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아직도 7-80 노인들이 영적으로 지배하는 이 구조 속에 미래가 보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고민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점들과 방향 제시에 귀를 기울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 형제교회는 과거 지향적인 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면도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내고자 형제교회 초기의 인물들에 대해서 자꾸 되 뇌이며 부각하려고 노력을 해 왔다. 찬란한 내 집안 조상들을 아무리 내 세워도 그것은 나를 세우기 위한 겉치레뿐이지, 지금 보여 줄 것이 없는 내 모습은 초라할 뿐이다. 그렇게 훌륭한 선열들을 모신 형제교회의 후예인 우리에게는 지금 누가 있느냐를 사람들은 묻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훌륭한 조상들은 훌륭한 교육을 받은 지식 분자들이었지만, 후손들을 교육시키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종말론적인 신앙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100년이나 더 된 시대 분들의 이름으로 우리를 대변하려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무리인가! 우리가 금 수저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하려는 것인가!(I was born with Silver Spoon in my mouth) 형제교회의 장래를 염려하는 저자의 모든 제안은 우리 모두 연구해야 할 진지하고도 심각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 모임의 모든 형제자매들이 이 논문을 꼭 읽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형제교회의 3세대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 형제교회의 정체성을 밝혀주는 이 논문을 쓰느라 수고한 Dr. 정인택 형제에게 주님의 귀하신 이름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Canada Toronto,
Hiltop Bible Chapel

김제화

jewhaki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