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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여행기/쿠바

쿠바, 바라데로

◆ Cuba, Varadero Resort(쿠바 바라데로) 1. 2015

 

쿠바공화국(Republic of Cuba)

   

    

Cuba는 중남미에 있으며, 북으로는 약 150km 거리에 플로리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미국 플로리다를 마주 보고 있고, 서쪽으로는 멕시코의 유카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름난 휴양지 칸쿤과 마주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아이티와 도미니카가 가까이에 있다. 

정부 형태 : 사회주의(공산) 국가

나라 크기 : 110,860

서울 : Havana(아바나)

인구 : 11,423,952(2008 조사)

종족 : 60%가 물라토(흑인과 스페인계 백인의 혼혈), 25%가 스페인계 백인, 15%가 흑인이며 그 밖에 소수의 메스티소(백인과 인디언의 혼혈)가 있다.

말과 글 ; 스페인어 / 도시에서는 영어도 가능.

돈단위 :  내국인용 CUP와 외국인용 CUC로 이중화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993년까지만 해도 내국인용 화폐와 외국인 용 화폐가 따로 없었지만, 소련붕괴로 인해 쿠바의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쿠바 페소의 가치도 추락하자 쿠바 정부에서 경제난 극복을 위해서 이중 화폐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종교 ; 스페인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로마가톨릭교회가 쿠바 혁명 이전에는 85% 이상이었으나 카스트로 정권 아래서 종교가 정부의 지배를 받으면서 종교가 반혁명 활동으로 여겨지면서 40%로 줄어들었다. 쿠바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된 뒤 종교를 탄압했으나, 몇 년 전부터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기독교로는 침례교가 넓게 활동하고 있으며, 유대교, 그리고 로마 가톨릭과 아프리카 요루바족의 전통종교가 섞인 혼합 종교인 산테리아(Santería)도 민중 종교로 활동하고 있다. 동부 지역에서는 아이티에서 온 이민자의 영향으로 부두교와 일본 창가학회도 있다.

한국과의 관계 : 북한과는 1960년부터 수교 관계에 있으나 한국과는 아직 없지만, 미국과 수교가 이루어진 뒤 한국 외교부 장관이 쿠바를 방문하여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서 가까운 장래에 외교 관계가 맺어지리라 믿는다.

 

▶ 쿠바 역사

살인자 콜럼버스가 쿠바섬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원주민 시보네족()과 타이노족 등 5만여 명의 원주민들은 농경생활에 종사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1492년 쿠바에 도착함으로서 원주민들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1511년 스페인은 D.벨라스케스를 파견하여, 1514년에는 전 지역을 정복하고 식민지 체제를 확립하였다. 원주민들을 총동원하여 사금(砂金) 채취와 농장 노동 등으로 혹사하고 있었다. 거기에 1528년의 대()에스파냐 반란, 1530년의 악성 유행병 등으로 거의 전멸상태에 이르렀다. 더 착취할 노동력이 없어지자 스페인은 16세기 초부터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를 데려와서 담배·사탕수수 재배에 종사시켜 막대한 이윤을 거두어들였는데 19세기까지 쿠바에 데려온 흑인 노예는 100만 명에 이르렀다. 학대와 탄압에 시달리던 흑인 노예들의 오랜 반란과 투쟁 끝에 드디어 1902520(18981210스페인으로부터 독립, 미국이 1898~1902년 통치) E. 팔마를 수반으로 하는 공화제 정부가 수립되었다. 신생국가는 지도자들의 부패와 무능으로 혼란을 겪다가 1956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멕시코에서 망명정부를 준비하다가 쿠바에 돌아와서 게릴라 활동을 벌인 끝에 19591월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다. 총리로 취임한 카스트로는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게 되면서 미국계의 모든 사탕 수수밭과 석유회사를 국유화하면서 19611월 3일 미국과 국교를 끊고 적대관계를 가지게 된다. 2014년 12월 부터 미국과 쿠바가 국교정상화를 위한 대화가 시작되고 있어서 곧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Cuba Varadero Resort / 1.20-27, 2015

 

       

1959년 쿠바가 공산화 되어 미국과 외교 관계가 끊어지면서 미국의 경제봉쇄 압력을 받으면서 중남미의 아름다운 섬 쿠바는 바다에 갇힌 섬이 되었다. 이때로부터 쿠바는 캐나다 사람들의 겨울 휴양지가 되었다. 200411월에는 쿠바 안에서는 미국 달러 사용이 금지되면서 캐나다달러가 환영을 받게 되었다. 싼값에 87일을 평안한 호텔 그리고 풍성한 음식과 더불어 대서양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쿠바는 현대 생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휴양지이다. 물론 도미니카나 멕시코 칸쿤 등지와 비교하면 시설과 서비스는 많이 못 하지만 비용이 싸다는 이점이 있다. 사회주의 이상을 지향하는 모든 나라가 다 실패하고 있듯이 쿠바도 가난과 정치적인 퇴보를 가져오면서 세계적으로 고립돼 왔다. 이제 살기 위해서 이념을 뒤로한 채 미국과 다시 손을 잡고 있다. 또한, 쿠바에는 1921년부터 한국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이민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몇 대에 걸친 혼혈로 한국말을 모르고 또 한국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으로 살고 있다. 우리는 중국 사회주의 나라에서 선교사역을 오래 하면서 북한도 여러 번 다녀보았고, 쿠바는 어떤 사회주의 나라인지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나라 안에서 종교 활동은 어떤지도 알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추운 캐나다 추위를 잠시 벗어나서 따뜻한 대서양의 쿠바 생활을 경험하려고 떠났다.

          

 

입국 절차  1. 20  

우리는 토론토를 떠나 세 시간을 날아 쿠바 Varadero Airport에 도착하였다. 쿠바는 사회주의 나라여서인지 입국 절차의 다른 모습을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는 비자가 필요 없지만 날틀 안에서 나누어진 Tourist Card가 바로 입국 비자가 되는 것이다. 입국 절차는 이민국 직원과 방문자 단둘이 있게 되는 칸막이 방에 들어가면 일체 말은 없고 오로지 여권과 카드만 가지고 일을 하면서 우리의 얼굴 사진을 찍는다그리고 카드 반을 잘라 한쪽은 자기가 보관하고 다른 한쪽은 여권에 끼워주는데, 이 카드를 출국할 때 다시 제출해야 하므로 잘 보관하라고 한다. 여권과 카드에 도장을 찍고 이민관이 버튼을 누르면 나가는 문이 열리다. 이 문을 나가 짐을 찾아서 보안 검색대를 지나서 밖으로 나가게 된다. 밖에는 내가 타고 온 항공사 이름을 쓴 피켓을 든 여행사 안내원들에게 가서 우리가 머물게 될 호텔 이름을 말하니까 3번 버스를 타라고 한다. 이렇게 모아진 관광객들을 가득히 태우고 호텔마다 들리면서 내려주곤 하는데, 한 시간 여 달려서 우리가 예약된 R-C-Arenas-Doras Hotel에 들었다. 시간은 좀 늦었지만, 늦게 도착한 손님들에게 식사 서비스는 아주 좋지를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잠이 깨어보니 이게 웬일인가! 무언가가 오른손 팔뚝을 기득이 물었다. 모기?

 


 
이곳은 겨울이라고 하는데 캐나다 북방의 추운 곳에서 온 우리에게는 한여름이다. 푸른 바다에 몸을 담그니 강릉의 진리 바다가 생각났다. 야자나무 외에는 바다와 모래 생김새는 강릉 진리와 같다. 또 하나 다른 것은 바닷속에 조개가 없다. 대 자연의 품에 안겨 시름없는 순간들은 지상낙원을 느끼게 했다. 천국은 이것보다도 더 아름다울 텐데 얼마나 좋을까!! 

호텔에서 캐나다달러를 조금 바꾸었는데 $1에 78 페소였다(1$=78CUP). 정원에서 일하는 청년이 영어를 제법 하여서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 일하여 한 달에 받는 월급은 미화 $20 정도라고 하였다. 호텔 maid들은 한 달에 $30 정도에 팁이 생기니까 여자들은 수입이 괜찮은 것 같았다. 나는 그 청년에게 큰 야자 열매 두 개를 따도록 부탁하였더니, 따서 마실 수 있도록 해 주었다. $ 2을 손에 쥐어주었더니 그랴샤, 그랴샤(고맙습니다), 하면서 아주 좋아한다.

 

 

 

식당에는 음식이 넘쳐나고 있어서 매끼마다 무엇을 먹을 것인지 고민이 되었고, 리조트 안에 특수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들이 여러 곳이 있는데 메뉴를 보고 찾아다녀야만 했다. 음식과 각종 주류와 음료수 등은 모두 무료이므로 먹고 마시는 것은 여기 있는 동안은 자유로웠다. 식사를 하고 나면 서양 사람들은 대개 팀을 놓는데 몇 나라의 리조트를 경험해 본 결과 모두 팁을 잘 놓지 않는다. 그것은 리조트에서 팁이 포함되어 있다고 선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놓는 사람들도 더러는 보였다. 나는 자주 만나는 종업원과 사귀게 되어 대화도 좀 하고 그의 친절에 정이 가면 매끼마다 일불정도를 놓는데, 그러면 우리를 기다렸다가 나타나기만 하면 좋은 자리로 안내하고 최대한 서비스를 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 일불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저들에게는 하루 일당이 되므로 아주 고마워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 우리가 방에 있는 시간에 Room maid가 왔는데 우리 앞에서 담요로 예쁜 학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호텔 로비에 커피 바가 있는데 모두 무료지만 커피를 만들어 서비스하는 바텐더에게는 팁을 일 불 정도 주는 편이다대개 식당에서는 팁을 안 주어도 여기서는 주는 편인데, 그가 근무하는 동안 받는 팁만 해도 대단할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공산 정부는 종교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서 지금 누구든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믿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경계를 하고 있고 외국인의 선교활동은 금하고 있어서 음성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여기서도 외국인의 선교활동도 자유롭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특히 반세기가 넘게 적대관계에 있던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화가 지난 해부터 시작되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다. 한밤에 소나기가 쏟아지기는 했어도 날은 매일 좋았다. 비록 날씨는 좀 서늘하고 파도가 세게 일어나기는 해도 물가에서는 놀도록 해주어서 매일 바다와는 결코 떨어진 적이 없었다. 적십자 조끼를 입은 친구들이 구조대원(Life Guide) 역할을 하고 있었다.


 

쿠바의 서울 Havana Day Tour 1. 25      

 

 

우리는 오늘 쿠바의 서울 아바나를 가 보기로 하였다.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는 몇 곳의 리조트들을 들려 손님들을 모아 가득히 태웠다. 버스는 주로 바다를 끼고 달리고 있어서 큰 바다에 붙은 자연을 즐기면서 하바나로 달렸다. 140km 정도로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바닷가에 있는 큰 성을 잠시 돌아보며 쉬도록 해 주었다. 바로 바다 건너편에 우리가 토착하게 될 쿠바의 서울 아바나가 보였다. 

 


침략자 스페인 사람들이 건설한 도시는 아름답게는 보였지만 저들에게 학살당한 원주민들은 생각하면 피눈물 나는
      

       

혁명광장(Revolution Square)

아바나 중심지에서 지난날 미 대사관 자리와 광장을 돌아보고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Revolution Square로 안내되었다. 말이 혁명광장이지 볼거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쿠바 사회주의의 아버지 호세 마티(Jose Marti)의 동상 그리고 건물 벽에 새겨진 혁명의 지도자 체게바라(Che Guevara,왼쪽)와 카밀로(Camilo,오른쪽)를 기념하고 있었다. 

 

 
문화유산이라고 할 만한 원주민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보고 싶지만 볼 수 없었다. 우리 버스가 지나가는 아바나 시가지 골목들의 아파트와 집들은 낡고 초라한 모습들이 나라의 가난을 보여주고 있었다.

            

                                                                    

         ♣ 철인 모형의 조각상, 그냥 지나치면 조각상이라고 느낀다. 말을 걸고 돈을 주니 받는 것을 보니 사람이다. 

 

                                                  ♣ 곰 조각상들을 늘어놓은 광장

 

곰 모형들을 전시한 광장에서는 수집가들을 위하여 쿠바의 특별한 돈들을 팔고 있었다. 나는 쿠바 사회주의 혁명의 신화적 인물인 체 게바라 얼굴이 있는 한 장의 돈을 5페소 달라는 것을 3페소를 주고 샀다.

               

 

자유시장에 들렸다. 가격은 정가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이의 머리만한 야자 열매가 일 페소여서 하나씩 사서 마시는데 얼마나 시원하던지...

         

 

일찍이 중국과 통상무역이 활발하여서 굴러다니는 차라는 차는 거의 다 중국 산이다. 중국에서 흔하게 보는 金杯(진뻬이) 차 회사의 크고 작은 차들을 쉽게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중국은 상당한 자금을 정유에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쿠바에서 택시로 영업하고 있는 대부분의 차들이 이제는 미국에서 조차도 보기 힘든 미국의 50-60Classic Car들의 천국이라 할 만큼 많이 볼 수 있었다.

 

             

78일 있는 동안 닷새를 매일 바다에서 실컷 수영한 것은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바다 가에도 리조트의 Cafeteria가 있어서 마실 것을 마음대로 마실 수가 있도록 해 주어서 편리했다.


떠나는 날 1. 27

쿠바 사람들은 말한다. 쿠바는 두 계절만 있다고 한다. 몹시 더운 계절과 더운계절이다. 지금이 더운 계절로 우리말로 하면 겨울이어서 이때는 쿠바 사람들이 바다에서 수영하는 일은 없단다. 그런데 이 계절에 캐나다 사람들이 와서 바다에서 수영한다고 모두 미쳤다고들 한단다. 아름다운 쿠바의 푸른 바다의 추억을 간직하는 날들이었다. 사회주의를 오래 하다 보니까 리조트의 자연경관도 다른 나라 같이 좀 더 아름답게 꾸며 놓지 않아서 수준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머문 곳은 3성인데, 이곳에서는 4성에 머물러야 칸쿤 같은 곳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한주간의 휴식을 마무리하고 오늘은 떠나는 날인데 점심을 먹고 check out은 했는데 공항 가는 버스가 자유롭지 못하다. 태우러 오는 버스는 한정 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 아주 불편하여서 또 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긴다. 택시를 타고 가면 되지만 밤 날틀이라 그렇게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어두워져서야 버스가 왔다. 리조트들을 들려서 사람을 태우다 보니까 이렇게 늦게 오는 것 같았다. 10시 반이 되어서야 공항에 도착하였다. 출국할 때는 우선 Check In을 하고 보딩 패스를 받아서 출국세 내는 곳에 가서 출국세 25페소를 내고 보딩 패스에 납부도장을 받은 다음에 출국장으로 가게 된다.(쿠바를 들어갈 때는 출국세 25페소를 미리 준비해 가지고 있어야 편리하고 안전하다) 늦게 데려다주어서 모두를 바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김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