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왕국(The Kingdom of Den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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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이름 : The Kingdom of Denmark(입헌군주국)
서울 : 코펜하겐(Copenhagen)
나라 크기 : 43,094㎢ (그린란드와 페로의 두 자치령 영토)
인구 : 약 5660만(2015)
말과 글 : 덴마크어(Danish)
종교 : 국교 루터교 95%이며 복음주의 기독교 3% 정도
돈 단위 : 덴마크 크로네(Danish Krone, DKK)
참전국. 6.25 동란 때 지상군은 보내지 않았지만, 4개의 수술실과 356개의 병상을 갖춘 병원선 '유틀란디아(Jutlandia)를 보내 준 우방국으로 고마운 나라이다.
덴마크는 북해와 발트해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유틀란트 반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5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난날 바이킹의 나라로 유럽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외세의 침입으로 시달려왔다. 1157년 발데마르 1세가 국내를 통일하고 발데마르 왕조를 세웠다.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구축한 성채가 지금 코펜하겐의 시작이었다. 이 작은 나라가 일찍이 세계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덴마크에는 그 유명한 문화 예술 관광 상품이 많은 나라로 안데르센과 어린이 장난감 레고의 본사가 있고, 개발도상국의 멘토가 되는 개척자 구룬트비히와 달가스 그리고 신학자며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가 있는 나라다.
Copenhagen Tour Feb. 23-24,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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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1박 2일 짧은 여행이지만 농촌개발을 공부할 때 그토록 많이 배우며 존경했던 위대한 선구자들이 있는 나라여서 가보고 싶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주어져서 기뻤다. 비록 그분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을 보고 배우러 가는 길은 아니지만, 그런 훌륭한 애국 개척자들의 숨결이 있는 땅을 밟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울림이 있으리라 믿어진다.
오늘은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가는 날. 안개가 가시지 않은 아침 햇빛은 엷게 온 누리를 비취고 있었다. 원래 나 혼자서 가려던 여행이었는데 신형 부부, 전창숙 자매도 함께 하게되어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는 북으로 달려 Skandinaviekai 항에서 거대한 Ct Ferry에 올랐다. 여기가 지난해 8월 16일 쌀쌀 날씨에 수영하던 바로 그곳이었다. Ferry는 얼마나 큰 배인지 차를 싣는 곳은 축구장만큼 넓었다. Baltic 해를 건너면서 먹는 점심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세 시간 푸른 바다를 건너서 Denmark Gedser란 항구에서 입국 도장을 찍고 코펜하겐으로 달렸다. 안개가 짙게 끼여 있고 흰 눈이 쌓인 끝없이 넓은 들을 지나는 130Km의 여정은 좀 지루했다. 오후 16:30 코펜하겐에 도착하여 호텔에 들었다. 깊어가는 밤에 나는 혼자서 어두워진 길에 나가 내복도 입지 않은 몸으로 몹시 추운 북구의 차가운 기운을 느끼면서 어두워진 거리를 따라 항구까지 나가 보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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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코펜하겐 기차역 광장에서 잠시 자유 시간을 주었다. 우리는 이 도시의 중심이 되는 광장에 가서 사진들을 찍으며 이 나라의 서울 코펜하겐의 이모저모를 즐겼다. 중국 처럼 자전거가 많기로 소문난 이곳 역 광장에는 헤아릴 수 없는 자전거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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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춥고 눈이 온통 덮고 있어서 긴 시간 돌아다니기가 어려워서 모두 건물 안에서 활동하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모두 데리고 예술원에 들어가서 덴마크의 문화 예술 품들을 감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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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인어 공주 상(The Little Sea Maid)
우리는 다시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인어 상이 있는 바다가로 갔다. 이 인어공주(人魚公主)는 1836년 덴마크의 아동작가 안데르센이 쓴 동화이다. 한 소녀 인어가 인간 왕자를 사랑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이 되는 내용이다. 그 뒤 인어공주는 뮤지컬이나 애니메이션 등으로 지금까지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코펜하겐 시는 1913년 시의 상징으로 인어공주 상을 만들어 코펜하겐 해안 바위에 설치하였다. 아름다운 동화와 함께 인어공주 상은 덴마크의 Brand로서 세계적으로 예술과 관광 상품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때 덴마크는 오늘날처럼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 꽃의 나라, 물의 나라가 아니었다. 1864년 프로이센(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많은 전쟁 배상금을 물게 되었고 비옥한 곡창지대인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2개 주(州)를 빼앗기는 아픔을 겪었다. 중앙은행은 파산하였고 남은 땅이라고는 북해와 발트해의 거친 해풍에 시달리는 돌, 모래, 잡초가 거의 차지하고 있는 스칸디나비아의 황무지뿐이었다. 잿더미로 변한 도심의 처참한 모습, 국민들은 희망을 잃고 실의와 좌절과 절망에 빠져 어두운(암울)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기독교 지도자이고 역사학자이며 시인인 구룬드비히 목사가 정신적인 지도자로서, 그리고 실천적이 지도자로 공병 대령 출신의 달가스가 등장하게 된다. 오늘날의 덴마크는 위대한 두 분의 지도가 오늘의 부요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선구자이었던 그룬트비히 목사님은 정신적인 지도자로 빌 4:13에 있는 말씀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조국 건설에 대한 큰 Vision으로 국민들을 설득하였다. 덴마크 구국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는 그는 국민의 성격 개조가 곧 국가건설(character building equal -be the same- Nation building. transformation of national charter is reconstruction of nation)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우고 1년 단기과정의 국민고등학교를 세워 18세의 청년들에게 인성교육을 중점적으로 시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삼애(三愛) 정신으로, 곧 애신(愛神), 애린(愛隣), 애토(愛土)였다.
삼애 정신의 해설;
애신(愛神)이란 조물주와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주장이면서도 덴마크 국민이 된 운명(運命)을 사랑하자는 것이며,
애린(愛隣)은 이웃, 곧 부모, 형제, 자매 온 국민을 사랑하자는 것이며
애토(愛土)는 흙을 사랑하자 내 조국의 땅을 사랑하자는 것이었다.
위 설명을 구호로 정리하면;
첫째, 덴마크 사람들이여, 하나님을 사랑하자
둘째, 덴마크 사람들이여, 백성(이웃)을 사랑하자
셋째, 덴마크 사람들이여, 덴마크(땅)를 사랑하자
♣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하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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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룬트비히(Nikolai Grubtvig 1783-1872)
이 분은 덴마크 중흥의 아버지이다. 그는 신학자, 시인, 역사가, 정치가이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진랜드우드에서 태어나 코펜하겐대학 신학 부를 졸업하고 목사 자격을 얻은 뒤 마을 교회에서 소박한 농민들의 신앙을 지도했다. 1825년 “교회의 대답”이란 책을 써서 신앙의 자유를 부르짖다가 7년 동안 설교를 금지당했다. 1848년 코펜하겐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방의 의무, 신앙, 언론, 출판, 집회, 등의 자유를 위하여 지도적인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의 토지를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힘주어 말하면서 국민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국민 고등학교의 창설을 주장했다. 삼애의 정신으로 국민의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 박토인 덴마크를 개척하여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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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가스(Enrico Dalgas) 1828-1894 (대한민국의 새마을운동의 모델이 됨)
달가스는 국토개발에 크게 기여한 국가적 영웅이다. 전쟁에서 패하여 실의에 빠져 있던 덴마크 국민들에게 용기와 의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그는 1866년 오르후스에서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함께 "히스협회"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하여 유틀란트의 히스 지대 개간에 착수하였다. 그는 공병대 장교로서 비보르에서 근무하는 동안 유틀란트의 토양을 연구하고 이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때의 지식이 히스(heath, 잡풀) 지대의 개간에 큰 도움이 되었다. 히스협회 회원들의 열성에 감동한 덴마크 국민들이 황무지에 나무 심는 일에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함으로 거친 땅을 옥토로 바꾸어 놓았고, 국민들도 실의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하는 북쪽 사막 불모지대에 북반구의 추위를 견디어 내는 작은 나무들을 심었고 그 뒤로 점점 큰 나무들을 심어서 차가운 북풍을 막는 자연 방풍림을 만드는데 성공을 하였다. 이로서 덴마크는 낙농과 농업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 가난을 떨치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나라도 교회도 어느 집단도 이상과 신념 그리고 실천력을 가진 지도자들이 있어야 앞날이 있다는 귀한 본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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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혁명정권은 농촌 5개년 개발사업을 벌이면서 농촌 지도자들에게 한국 농촌의 장래에 대해서 덴마크의 사례를 거울로 삼게 했다. 그래서 나도 덴마크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하면서 이상적인 농촌의 꿈을 꾸게 되었다. 그룬트비히 목사님과 달가스의 이야기는 일본과 한국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신화처럼 받들고 배우는 사례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우치무라 간죠가 1911년 소개했다. 그뒤 전쟁의 폐허에서 국가 재건의 정신적 원동력으로 이용되었다. 한국에서는 군사혁명으로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 운동의 개척정신의 활력소로 류태영 박사가 소개하였다.
왕궁 근위병 교대식
11시가 되자 우리는 왕궁 근위병 교대식을 보게 되었다. 덴마크도 여왕이 있는 나라로 화려한 궁전 근위병의 교대식은 볼만한 관광 상품이었다. 추운 지방이어서인지 근위병들의 옷 색이 흰 눈에 비해 좀 밝지 못하고 어두워서 마음 또한 밝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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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3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을 주어서 나는 우리 일행을 데리고 박물관으로 가서 덴마크의 역사와 문화를 감상했다. 15시 정각 우리를 태운 독일 관광차는 안개 자욱한 코펜하겐을 뒤로하고 눈 내린 고속도로를 달렸다. 3시간 동안 어두운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 편안한 선실에서 교제의 꽃을 피우면서 독일 땅에 오니 밤 9시였다. 이번 여행에서 달가스가 개척한 북방의 삼림지대와 개간지 그리고 낙농 농장을 돌아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어느 날 다시 이 땅을 밟은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꼭 '히스 지대의 개간지와 방풍림 지대를 가보고 싶다.
◈ 바다의 신비로운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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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보듯이 발틱해는 반도를 따라 내륙 깊이 들어와 더 흐르지 못하고 호수 같이 갇혀버렸다. 그리고 육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민물과 섞이면서 염도가 0.3-0.6로 엷어져 있다. 반면에 발틱해 밖 대서양 쪽에 있는 북해는 염도가 바다의 평균치 보다 높은 3.5%이다. 염도가 다른 이 두 바닷물이 지도에서 보는 붉은 표시인 Grenen 지점에서 만나면서 사진에서 보는 현상이 일어난다. 두 물이 만나면서 합쳐지지 못하고 흰 거품을 일으키면서 경계를 이루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서로 섞이게 된다. 우리는 독일에서 발틱해로 똑바로 덴마크로 올라갔다가 그대로 내려왔기 때문에 이런 물의 현상을 볼 수는 없었다. 다만 이 바다를 왔다 가면서 이 신기한 현상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언젠가 볼 수 있으리라는 바람으로 남겨 본다.
김제화 jewhakim.tistro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