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을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1980년 3월 Hamburg에서 사역할 때 Day Tour를 한 적이 있는데 함께 모아 본다. 두 번째는 우리가 케냐를 방문하는 경유지로서 돌아오는 길에 이틀 머물면서 암스테르담 도시를 돌아보았다.
◈ Netherlands
넓이 - 41,526㎢
수도 - 암스테르담 (인구 742,884)
지형 : 해안 저지대
인구 : 16,400,000.
참전국. 6.25 동란 때 한국의 자유를 지켜주려고 지상군 5322명이 참전한 우방국으로 고마운 나라이다. 120명이 전사하고 645명이 부상, 두명이 실종되었다.
▶ 간단한 역사
우리가 흔히 부르는 Netherlands 는 “낮은 땅 덩어리”라는 뜻이어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이름보다는 Holland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그 이유는 네덜란드는 12개 주 가운데 홀란드 주가 가장 크고 16세기경 홀란드 주가 경제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나라 이름처럼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주의 행전 수도 헤이그에서 이준 열사께서 대한의 독립을 염원하며 자결하신 곳이기도 하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더치(Dutch)라고도 부른다. 13세기 무렵 영국으로부터 양모를 값싸게 들여와서 가공 생산하는 중계무역을 하다가 점차로 영국과 상권을 가지고 경쟁하게 되면서 17세기에 들어와서 영국과 전쟁까지 하면서 가장 강력한 해상세력을 갖게 된다. 이때부터 영국에서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치를 떨고 버러지 같다고 비아냥거리는 은어로 더치(Dutch)라고 불렀단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은 아끼는 정신이 더치(Dutch)의 정신이라고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짠돌이의 나라. 공짜가 없는 나라. 우리가 흔히 친구들과 어울려 가서 음식을 먹을 때 각각 돈을 내는 것을 Dutch pay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이 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은 풍차, 튤립, 치즈 그리고 운하이다. "세계는 신이 만들었으나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은 지형적 악조건 속에서도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낸 적절한 표현이다. 네덜란드 상징처럼 여겨지는 운하들은 오랜 세월을 두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거친 자연을 극복한 결과물이다. 이 나라의 튤립 축제는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 Amsterdam
암스테르담은 수도이나 행정부는 헤이그에 있다. 13세기 무렵 암스테르담 강 하구에 댐을 쌓아서 만든 도시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부채꼴 형태로 운하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국토의 25%가 바다보다 낮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운하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약 1 000개의 다리로 연결된 9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스테르담이란 이름은 원래 “암스테르담 강의 둑”이란 뜻으로 13세기에 어민들이 암스테르담 강의 둑을 설치하고 정착한 데서 유래되었다.
▶ 첫 번째 Amsterdam day Tour 1980 3.
영국에서 선교사 훈련 코스를 공부하고 있을 때, 한국인 선교를 하고 있던 하노버 독일 교회가 나를 세 번이나 초청하여 주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가운데 Hamburg에 며칠 머무는 동안 365Km 떨어진 곳에 있는 화란의 서울 Amsterdam에 혼자서 Day Tour를 가려고 하자 김 형제 부부와 전 자매가 같이 가겠다고 나섰다. 이곳에서는 자매들이 혼자서 여행할 엄두를 못 내다가 내가 가니까 시간들을 낸 것이다. 나 홀로의 여행에 친구들이 있어서 심심치 않고 위안이 되었다. 아침 일찍 우리를 태운 버스는 화란으로 달렸다. 화란에 들어서서 얼마를 가자 풍차가 보이는 것이 독일과 다른 풍경을 그려주고 있었다. 1980년 3월 수면보다 낮은 나라는 바다 쪽으로 길고 긴 제방을 쌓았고, 스며든 물들을 퍼내는 거대한 풍차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암스테르담에서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물길을 따라 물 위의 도시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다리들, 돌로 옹벽을 쌍아 그 위에 지은 건물들은 물 위의 도시를 실감 나게 했다. 겨울에 얼어붙으면 스케이트를 타고 다닌다고 하니 편리한 교통로이기도 했다. 기차역에서 어떤 불란서 친구가 우표 판매기에서 쩔쩔매기에 도와주었더니 붙이고 남은 우표를 다 나에게 주고 가버렸다. Post Card를 써서 집에 보내려고 경찰에게 우체국을 물으니 길 건너편에 있단다. 한국까지 얼마냐고 물으니 55 cent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은 어두운 밤이었다. 친구같이 함께 해 준 형제와 자매들이 고마웠다. 오후 자유시간에 우리는 광장을 거닐면서 거리 구경을 즐겼다. 여기는 3월이기는 해도 북반구라 쓸쓸하기만 했다. 우리 모두는 비록 하루에 다녀오는 길이기는 하지만 Holland의 더 많은 것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함께 교제하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
♣ 두 번째 Amsterdam 방문 2004 1. 17. 금
시내 관광, 암스테르담은 케냐를 오가는 중간 기착지이다. 아내와 함께 케냐에서 돌아올 때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시내투어를 알차게 할 수가 있어서 대단히 기쁜 일이었다. 이틀을 머물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관광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흰 눈이 쌓이고 내리는 1월이어서 아름다운 튤립은 볼 수 없었지만, 시내 투어와 물길을 따라 시내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 것 같다.
▶ Amsterdam 시내 관광 1월 17일 금. 흐림. 해, 비.
어저께 우리는 열대의 나라에서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은 북반구의 추운 이곳에 내려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피곤한 아침을 맞이했다. 암스테르담을 관광하려고 공항에 나와서 city tour를 예약했다. 우리는 공항버스로 시내에 들어와 city tour 본부 가까운 곳에 내려서 거리 구경도 하면서 지도를 보고 따라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모여 온다. 시내 관광버스가 왔다. 가이드는 여자로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 러시아, 로 말할 수 있다고 하면서 우선 탄 사람들의 언어를 파악하고 있었다. 기본은 영어로 하고 필요에 따라 독어, 러시아어 등으로 하겠다고 한다. 상냥하고 친절 미가 넘치는 여성으로 모든 관광객들을 편하게 해 주고 있었다. 두 시간 반 시내 곳곳을 다니는 관광이 시작되었다. 영어나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필요에 따라 간간히 스페인어와 러시아어로도 설명해 주었다. 두 시간 반 동안 시내의 이름 있는 곳은 다 돌아다닌 것 같다. 큰 비는 아니지만 비와 함께 시내 관광을 했다.
▶ 담(Dam) 광장
현재 담 광장이 있던 자리에는 Y자형으로 흐르는 암스테르담 강을 막으려고 건설한 Amsteldam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광장의 이름을 Dam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암스테르담의 이름이 여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광장 주위에는 왕궁과 신교회,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흐의 미술 박물관, 백화점 등 오래된 건물들과 명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 왕궁(Palace)
담 광장에 자리 잡고 있는 왕궁은 암스테르담 시장과 행정관들이 근무하는 시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1648년 착공해 1665년 완공한 건축물이다. 호화로운 건조물로 내부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뛰어난 예술작품을 모아 꾸며져 있다. Holland가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으면서 1808년 루이스 나폴레옹 왕이 암스테르담을 찾아와 살려고 내부를 개조하여 왕궁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비아트릭스 여왕이 외국의 국빈을 영접할 때 사용하는 왕실의 영빈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왕궁 옆에 있는 17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카타리나(신) 교회(NIEUWE KERK)는 국왕의 대관식이 치러지는 유명한 곳이다.
▶ Diamond Center(암스테르담 다이아몬드 센터)
우리의 관광의 마지막 코스로 다이아몬드 가공 Center에 왔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다이아몬드의 연마 기술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었다. 15세기에 벨기에의 유태인들이 개발한 다이아몬드 연마 방법이 네덜란드에 전수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암스테르담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다이아몬드 생산지 중의 하나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다이아몬드 사업은 실제로 유대인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한다. 다이아몬드의 품질은 색상, 무게, 크기, 순도, 가공 기술에 의해 평가 된다는데, 다이아몬드 연마의 뛰어난 기교와 연마 기법은 “암스테르담 컷(Amsterdam Cut)”이라는 말로 불리면서 세계에서 그 질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강국이라고 한다. 나는 여기서 남미에서 생산되어 여기서 가공된 여러 색깔의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보았다. 가장 단단한 물질인 금강석을 자르고 깎는 데는 역시 금강석을 도구로 쓴다고 한다. 그리고 깎을 때는 빛이 잘 비추는 각도로 깎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넓은 이층은 다이아몬드를 실제로 깎아서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가공된 다이아를 현미경으로 그 깎아진 모습을 보도록 해 주었는데 신기했다. 그리고 각양 모양을 한 다이아를 파는 방에 들어가서는 문을 일단 닫고 경비가 문을 지키고 선다. 크고 작은 아름다운 다이아가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몇 천불 유로 하는 다이아를 보면서 저 돈이 있으면 중국에서 선교 사업에 쓸 수 있고, 굶주린 북한 주민들을 얼마나 도울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투명하고 하얀 돌들을 왜 그리들 좋아하는지. 우리는 더 어둡기 전에 운하 유람선을 타야 하는데 나가지는 못하게 하고 있어서 마음이 바빴다. 다이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바싹 달라붙어 가격을 묻고 하는데 우리는 정말 피곤했다. 나는 가이드에게 우리는 지금 운하 유람선을 타야 하는데 시간이 바쁘다고 하니까 manager에게 말해서 바쁜 사람들은 나가도록 해 주어서 우리는 나올 수 있었다. 가이드는 배 타는데서 가깝다고 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아래층에 내려오니 주로 유대인들의 문장과 모양들로 된 고급스러운 선물 센터였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델프트 도자기였다. 흰색과 청색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적인 명품으로 이 도자기에 채색하는 깔끔한 청색은 “델프트 블루”라 부르고 있었다.
▶ 운하 유람선 여행
늦을 새라 표를 끊어서 배에 탔다. 오늘 마지막 배라고 한다. 비는 더 내리는데 단체 손님들이 한 떼가 와서 배는 꽉 찼다. 어두워진 운하를 따라 배는 옛 도시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도시의 야경을 보면서 구불구불 운하를 따라 도는데 많은 다리를 지나고 있었다. 이 도시에 1000개의 다리가 있다는데 자매는 배가 다리를 지날 때마다 하나하나 세어서 147개의 다리를 지났다고 했다. 운하 양쪽에는 17세기에 지어진 붉은 벽돌집과 견고한 옛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듯 새로 지어진 현대 건축물과도 멋진 조화를 이룬다. 운하 주변으로 기울어진 집들도 보인다. 물렁한 땅에 나무 말뚝을 박고 지은 집이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기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없단다. 도로변 건물 외관은 시에서 수리를 해주고 보조금을 주는 대신 임의로 고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400년 넘은 집들이 21세기에도 계속 있는 이유였다. 배는 시내 가운데를 돌아 빠져나와 강 하구로 나간다. 암스테르담 항이라고 한다. 강과 바다가 만나고 있었다. 수많은 배들이 불빛을 어두워진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시가지를 관통하는 암스텔 강과 40여 개의 운하가 시로 연결되어 도시는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겨울에는 운하가 얼면 스케이트로 오가고 한 단다. 암스테르담 항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시내 운하로 들어선다. 운하에도 정박 금지 지역이 있고, Stop 사인도 있고 교차로에는 반사경 등 교통 시설물들이 잘 되어있다. 운하에서도 교통사고가 나는 가보다. 배는 여기저기 돌아 올라와 드디어 중앙 역이 있는 곳에 오므로 두 시간의 운하 tour는 마쳤다. 투어가 끝날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고 내려 비속으로 다녔다. 땅과 운하 여행으로 암스테르담의 모두를 대충 돌아본 하루였다.
김제화
jewhakim.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