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식민지 전쟁
1760년대까지 13개의 영국 식민지는 애팔래치아 산맥 동쪽 대서양 연안을 따라 250만 명의 인구가 살았다. 그리고 남부와 서부 모든 지역은 대부분 스페인이, 부분적으로 네덜란드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었다. 북미(미국과 캐나다)의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7년 전쟁으로 영국이 승리하자 1763년 2월 10일 파리 조약에 따라 북미의 모든 프랑스 점령지역을 캐나다를 포함하여 모두 영국이 차지하게 되었다.
▶ 미국 독립의 여정
영국은 프랑스와의 7년 전쟁으로 진 전쟁 빚을 갚으려고 식민지인들에게 부담스러울 만큼의 세금을 매기면서 정치적으로 그들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법들을 만들어 압박했다. 이에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은 미국 독립 전쟁 (1775-1783)으로 이어졌다. 이때까지 만 해도 식민지인들은 독립에 대한 생각은 거의 없었고 영국의 지나친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은 정도였으나, 1776년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이 쓴 [상식, Common Sense]이라는 책이 식민지인들의 생각을 크게 바꾸게 된다. 페인은 영국인들이 미국인들을 착취하기만 하고 미국인들은 이득을 보는 것은 없다고 주장하며, 우리 스스로 독립하여 군주나 귀족에 의한 정치를 버리고 공화정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보스턴 차 사건(The Boston Tea Party)
미국 독립전쟁에 있어서 보스턴의 차(Tea) 사건은 영국의 학정과 과중한 세금에 저항하는 식민지인들의 선전 포고나 다름없었다. 1773년 차 세법에 반발하는 60여 명이 인디언 옷을 입고 동인도 회사 배에 올라가 차 상자 92,000파운드(약 46톤)를 바다에 던져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더 참지 못하고 폭발한 사건이다. 크게 분노한 영국은 탄압법을 만들어 식민지인들을 억죄려고 하자, 1779년 9월 식민지 대표 회의를 열어 ‘권리와 불만의 선언서’를 발표하면서 영국제품의 조직적인 불매 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식민지인들의 생명과 자유 그리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민병대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1775년 4월 19일 보스턴의 렉싱턴 콩코드(Battles of Lexington and Concord)에서 드디어 영국군을 향한 독립군의 첫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 독립선언서 발표
1776년 7월 4일 미국은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을 작성하고 프랭클린과 애덤스가 수정을 거쳐 완성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독립선언서에는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인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가 침해받는다면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이 국민의 권리임을 주장하며 독립의 정당성”을 이야기하였다.

1776년 7월 4일 13개 주 대표들의 미합중국 독립 선언식
$2 짜리 돈 뒷면에 역사적인 미국 독립선언식 그림을 넣어서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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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777년 이들은 국기에서 영국 국기를 지우고 13개 주를 상징하는 13개의 별을 넣었다.


6년에 걸친 영미의 전쟁을 끝낼 결정적인 전투는 요크타운(YorkTown) 전투이다. 버지니아 식민지 동쪽 영국군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요크타운에서 콘월리스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 7,000여 명이 고립된 채 뉴욕으로부터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781년 9월 5일 프랑스 함대가 영국 함대를 채서피크 만(Chesapeake Bay)에서 격파하여 승리하면서 요크타운의 해상을 봉쇄한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의 11000명과 프랑스 8000명 그리고 프랑스 함대 36척이 요크타운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1781년 10월 17일까지 증원군은 오지 않자 10월 19일 영군 콘윌리스 장군은 항복하였다.
☞ 미국의 독립
드디어 1782년 12월 영국 의회는 미국의 독립을 승인하였다. 처음 미국의 독립은 동부연안의 13개의 식민지를 묶은 것이지만, 장차 미대륙을 하나로 통합하는 가능성의 첫 발을 띠게 된 것이다. 그리고 1783년 9월 3일 프랑스 파리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전후 보상문제를 해결하면서 드디어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독립 기념일은 7월 4일로, 1776년 13개 주 대표의 대륙회의에서 ‘미국독립선언문’을 선포한 7월 4일로 기념하고 있다.


☞ 미대륙이 통합되기까지
미국의 독립은 동해안의 13개 식민지에서의 독립이지 아직 대륙 전부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팔래치 산맥 서쪽은 프랑스와 스페인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고, 일부 남부는 멕시코가 차지하고 있었다. 1848년까지 사들이거나 전쟁으로 지금의 미 대륙을 차지하면서 지금의 미합중국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나 안으로는 원주민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아직 통일과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땅을 지키려는 원주민과 뺏으려는 침략자 백인과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남북 전쟁(1861–1865)도 함께 치르면서 미대륙은 피로 물들었다. 1890년에 이르러서야 원주민이 완전히 굴복하므로 내전은 끝나게 된다.
▶ 미국 백인과의 인디언 전쟁(American Indian wars 1622-1890)
이 넓은 대륙에 온 유럽 사람들이 따로 터를 잡고 살아도 되련만 하필이면 원주민들이 사는 곳에 개개면서 분란을 일으킨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원래 원주민의 바람은 조상 대대로 살아오든 땅에 그대로 살도록 놔달라는 것이다. 백인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땅이 필요했고 또 그 땅 밑에 잠겨 있는 보물(광물)에 욕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이 평안히 살도록 놔두지 않았다. 미국 정부의 원주민 말살 정책은 워싱턴을 비롯한 에이브러햄 링컨에 이르기까지 시행되었다. 우선 원주민들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내려고 정부가 마련한 ‘원주민 보호구역(Reservation)’에서 살도록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에 생사를 건 원주민의 격렬한 저항은 엄청난 희생을 가져왔다. 문명인이라고 자처하는 유럽 사람들, 처음 도착한 영국의 청교도들은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 청교도들이 원주민 학살의 앞장에 섰다니, 하나님(기독교, 천주교)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이 살인마 적인 만행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또 백인들은 원주민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키는 정책으로 미국 캐나다에서 어린아이들을 강제로 부모로부터 떼 내어(격리) 기숙사에 가두어 백인동화 교육을 십 년이 넘도록 해보았지만. 천륜을 어긴 반인륜적인 그들의 뜻은 이루지 못한 채 그 아픔의 상처만 남았다. 침략자 백인들은 이 땅의 주인인, 원주민의 땅을 빼앗으려고 두 세기 반이 넘도록 그들에게 저지른 악행은 인종 청소, 학살 등의 잔인함이었다. 또한, 백인들의 희생도 원주민 못지않게 컸다. 이 기간에 상당히 많은 미국 원주민이 캐나다로 피하여 와서 보호를 받았다.
미합중국 건립 과정에서 백인들이 원주민에게 저지른 잔인함과 악행은 세월을 두고 아파하면서 반성할 일이다. 그래서 미국 정부가 원주민에 대한 회개와 보상을 위해서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원주민들은 그것으로 자식들을 공부시켜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살게 하면 그 민족도 희망이 있겠고, 원주민 보호구역이란 것도 없어지고 다 같이 사는 세상이 될 텐데, 왜들 그렇게 허랑방탕하고 사는지 딱하기만 하다. 그들이 몇 세기를 백인들이 건설한 문명사회에서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민족들과 어울려 살지만. 대부분 원주민은 여전히 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영겁의 세월이 얼마나 더 흘러야 바꾸어 지겠는지…
※ 이후 백인들은 원주민, 인디언을 서부 영화의 전쟁 오락물이나 왜곡된 민족의 이미지인 마스코트나 주제(테마)의 주역이 되도록 모자라는(열등한) 인간으로 낮추어(비하) 버렸다.
☞ 원주민 학살과 강제 이주
원주민 학살 사건
백인들이 미 대륙에 도착하면서 크고 작은 습격과 약탈 성폭행 학살 등은 두 세기 반이나 계속되었다. 그 가운데 큰 사건 몇 가지를 들어본다,

시팅 불(Sitting Bull) 전쟁
남북 전쟁 중인 1862년 다코타 주의 원주민 수족(Sioux) 사이에 발생한 첫 전쟁이었다. 미국 정부가 강제로 이주시켜 11년에 걸쳐 관리하는 수족 보호구역에 식량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굶주림을 참지 못한 4명의 전사가 백인 농장주 일가를 죽여 버린 일로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은 6주간 계속되었으며, 원주민이 미 제7 기병대를 섬멸하였다. 500명 이상의 미군 병사와 이주자가 죽었고, 수족의 희생도 컸다. 이 사건은 ‘다코다 전쟁’으로 불린다. 링컨 대통령의 명령으로 미네소타주에서 원주민 말살 정책이 시행되면서 모든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추방하였다. 그때 수족의 일부가 캐나다로 피했다.
샌드 크릭 학살(Sand Creek Massacre)
1864년 11월 29일, 샌드 크릭 학살이라고 불리는 악명 높은 인디언 학살 사건이다. 콜로라도주 남동부의 샤이엔족과 아라파호 족의 티피가 있는 땅에 민병대가 습격하여 약 150명의 남녀노소를 죽이고, 남녀의 성기나 머리 가죽을 벗겼다. 어떤 백인들은 베어간 원주민의 코와 벗겨간 머리 가죽으로 담배 파이프나 기념품을 만들었다니 얼마나 잔인한가!
사우스다코타 운디드 니 학살(Wounded Knee Massacre) 사건
1890년 12월 29일, 사우스다코타 운디드 니의 노던 다코타 원주민 보호구역을 습격하여 남녀노소인 300명 이상의 인디언들을 학살한 ‘운디드니 학살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원주민과의 전쟁은 막을 내린다.
원주민 강제 이주
원주민들의 터전을 빼앗으려는 백인들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큰 희생을 치르면서 인구도 줄어들게된다. 동부의 원주민 가운데 가장 문명화된 Cherokee(체로키) 부족의 강제 이주 역사를 짧게 실어본다.
♣ Cherokee 원주민의 비극
역사는 늘 강자에 의해 약자가 희생당하면서 이어져 왔다. 체로키 부족은 미 대륙의 동부에서 남동쪽 미시시피강 유역에 널리 퍼져 살고 있었다. 16세기 유럽의 백인들이 들어오면서 자연과 더불어 구름따라 평화롭게 살던 이들에게 불행의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이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으려는 백인 침략자들로부터 자신들의 땅을 지키려는 싸움은 치열했다(치카모가 전쟁). 1794년 미국 정부와 휴전 조약을 맺은 뒤, 그들은 치카소족, 무스 코지족, 촉토족, 세미놀족과 5대 부족 연합을 결성하고, 백인의 문명을 받아들여 서양 교육제도 등 백인 사회 구조를 받아들여 문명화된 다섯 부족이 되었다. 1821년에는 체로키 사람 [세쿼야]에 의해 체로키 문자가 만들어졌다. 85음절로 구성된 문자는 배워 사용하기가 쉬워서 빠르게 보급되었다. 그들은 백인의 생활양식을 좋아했고, 백인들과의 혼혈도 이루어졌다. 지금 체로키의 혼혈인 가운데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가수와 배우들이 있다.
눈물의 길(Trail of Tears)
1830년대에 평화롭던 이곳에 금광이 발견되면서 금을 캐려는 백인들이 그들의 땅에 침입해 터를 잡자 체로키족들은 백인들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을 벌였다(세미놀 전쟁). 광대한 미시시피강 유역의 기름진 토지를 탐낸 백인들은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을 쫓아내려고 법을 만들기에 이르는데, 그것은 원주민 말살 정책이었다. 백인들은 원주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늑대같이 생각하였다. 이 악한 법의 최종결정자는 그때 미국의 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이다. 남미에서는 가톨릭이 북미에서도 기독교를 믿는다는 백인들에 의하여 원주민을 학살하는 비극의 역사를 남겼다. 미국 정부는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으려고 1838년 군인을 동원하여 백인의 문화를 받아드린 '문명화된 5대 부족을 함께 강제로 1900Km나 떨어진 미시시피강 서쪽의 오클라호마 주로 강제로 쫓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주정책은 추운 겨울이 닦아오는 12월에 시작되어 다음 해 3월에 도착하기까지 체로키 부족에서만 굶주림과 질병으로 4000명 이상이 죽었다. 옮겨가는 동안 여인들은 백인들의 성폭행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 Amazing Grace는 이들의 장송곡이 되었고, 역사는 이들이 걸어간 길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불렸다. 체로키 부족 가운데 일부는 산속으로 숨어 살다가 세월이 좋아지자 내려와 체로키 마운틴 등지에서 체로키 민족 마을을 이루고 관광산업 등을 일으켜 살고 있다. 지금 미국의 체로키 인구는 약 32만 명으로 알려졌다.

▶ Andrew Jackson 앤드루 잭슨 대통령
어려서 부모 형제를 다 잃고 혈혈단신 자수성가하여 대통령에까지 오른 인물로 미국 돈 20불짜리에 그 얼굴은 남겼지만, 그는 가장 비인도적이고 잔인한 원주민 말살 정책의 책임자로 원주민들의 비극을 만들어 낸 장본인으로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역사에 남겼다.

⁂ 미국이란 나라가 생겨나기까지 짧은 역사이지만, 원주민과 여러 나라가 얽힌 많은 사건은 모두 건너뛰고 줄거리만 옮겨 보았다. 자료 인용 과정에서 바르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여주시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자료 제공, 위키드 우리 백과사전 등 사이트에서-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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