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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중국선교답사여행

9. 목단강 시

오늘 리화가 직장에서 목단강시 정부의 왕 국장이 나를 만나고자 한다는 소식을 리화가 가지고 왔다. 오후에 시에 가서 만났다. 내가 캐나다에서 온 줄 알고 사업가들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나에게도 목단강에 투자하면 여러 가지 좋은 혜택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바로 이 만남을 통해서 나는 정부 관리들을 상대로 교육, 사회복지 시설을 설립하는 일에 대해서 다양하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연길서부터 마음에 싹터 오던 교육 또는 사회사업 시설을 설립하여 정착하고자 하는 마음이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나는 중국에 도착하면서 어떻게 중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면서 주님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깊이 잠겨 기도하면서 목단강까지 온 것이다. 이곳에서 나의 선교 전략의 청사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합법적으로 정착하여 사회적인 명분을 가지고 살면서 현지인들과 삶을 나누며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중국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내 손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를 못하였다. 빈손으로 이 어려운 중국에 선교하겠다고 덤벼든 내가 혹시 무엇인가 현실을 착각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가 아닌지 자신을 한심스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나의 현실은 이렇게 초라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심장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시편 121편 말씀이 나의 믿음을 격려해 주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주일에는 리진과 함께 목단강 중국인 교회로 갔다. 예배당 건물을 짓고 있어서 극장을 빌려 주일날만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약 2000명 정도 모이고 있었는데, 약 ¾정도가 40대 이상이었다. 한 시간 전부터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설교는 여성 목회자가 하였다. 이곳은 동쪽과 서쪽 두 곳에 허가된 중국인 교회가 있는데, 심양 신학교를 나온 부부가 돌아가면서 설교를 하고 있었다.

 

인육 요리

예배가 끝나고  데리고 간 세 아이와 함께 뽀오즈(包子, 만두)를 사주려고 좋게 보이는 음식점으로  가자고 하니까 꼬마가 싫다고 한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 집은 사람 고기로 뽀오즈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시장통으로 가서 아주머니가 하는 만두집 앞에서, 여기는 하자, 아이는 좋다면서 들어가 앉는다. 쌀죽과 만두를 시켜 먹으면서. 아이에게 너는 그 집이 사람 고기로 만두를 만든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어른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했다. 중국은 음식 맛이 좋으면 그렇게 말들을 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 전 아이들을 납치해서 그 고기로 요리를 해서 팔다가 발각되어 중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들도 있었다. 셋이서 10개의 뽀오즈와 미조우(米粥,쌀죽) 3그릇을 먹은 값이  5원이었다.

 

팔 여인 투강(八女人投江)

목단강 강변 공원 입구에는 “八女人投江” 이란 제목을 단 입체 조각상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이 조각상은 항일 전쟁 때 여덟 여성 열사들이 일본 침략주의 군대와 끝까지 싸우면서 쫓기다가 목단강에 연해지는 한 지류에  이르렀다. 그들은 거기에서 왜군과  마지막까지 싸우면서 부상한 전우들을 맨 채 물속으로 뛰어들어 건너다가 왜군의 포화로 물거품과 함께 사라져 간 꽃다운 여전사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항일 정신을 기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여덟 열사의 박물관이 있다. 이 여덟 명 가운데는 몇몇 소수민족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조선족과 만주족 여인들이 있었다. 조선족 두 열사는 한복 차림의 모습으로 조각하여 조선 여인의 정체성과 용맹스러움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박물관에는 여덟 여성의 유품과 받은 훈장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조선 여인들의 이름은 안순복(安順福, 23)과 이봉선(李鳳善, 25)으로 꽃다운 나이에 일본 침략자들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어간 그들의 기백에 머리가 숙어졌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들이 지금도 빛나고 있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살다가 죽으면 그 이름이 하늘과 땅에서 영원히 빛나게 될 것이다. 

 

저녁에 미화집에서는 여러 사람이 마작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마작은 청나라 때 만들어졌다는데, 청나라가 망한 이유 중의 하나가 마작이라고도 한다. 마작은 한번 시작하면 세월 가는 줄을 모른다. 처소의 어떤 형제는 과거에 마작으로 한창 돈을 벌기도 하고 날리기도 할 때는 3~4일 그대로 앉아서 마작만 한 적이 있다고 하면서 마작은 중국을 병들게 하는 큰 악이라고 했다.

 

 

마작에 미친 부인

내가 도문의 김 장로와 마패에 갔을 때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마작에 미친 부인을 죽이고 자기도 자살한 사건을 들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마작에 미친 부인이 아기를 재워 놓고 몇 판만 하고 온다고 간 것이 해가 져 가고 있었다. 들에 일 나갔던 남편이 돌아와 보니 아기가 기저귀에 감겨 질식해 죽어 있었다. 화가 난 남편이 도끼를 들고 가서 마작하는 부인을 그대로 찍어 죽였다고 한다. 중국에서 마작의 병폐는 남. 여 할 것 없이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목단강에서도 아침에 북산 공원을 가보면 누각 같은 데 모여서 마작과 카드놀이 하는 것을 쉽게 보는 데,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1원씩이라도 걸고 하고 있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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