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국의 서호(北國的西湖) 경박호 6. 1994
목단강시에서 경박 호까지 거리는 110킬로 정도. 경박호는 옛날부터 수면이 거울처럼 맑고 고요하여 명나라 때부터 경박 호라고 불렀다. 경박 호는 독특한 호광산색(湖光山色)과 자연적인 매력으로 중국 44개 관광 명승지 중 하나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1983년 8월 11일 경박호에서 피서를 즐기면서 [뛰어나게 아름다운 경박]이라는 뜻의 ‘경박승경’(鏡泊勝景)이란 친필 휘호를 남겼다. 2006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경박 호는 세계에서 몇째 안 가는 아름다운 호수라고 한다.
▶호광호색(湖光山色)-호수의 빛과 산색이 어우러져 이루는 아름다운 경치
경박호 관문 오른편 바위벽에는 “山上平湖 水上山, 北園風光 勝江南” 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이 뜻은 “산은 물 위에 떠 있고 물은 산 위로 흐른다 ”이다. 호수에 들어서면 엷은 안갯속으로 물에 비치는 물에 잠긴 듯하여 마치 산들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섬으로 보이며, 그 위를 배를 타고 떠다닐 때는 흡사 선인(仙人)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우리가 실제로 배를 타고 호수 가운데로 나아가 보니. 물속에 비치는 산들이 선명하여 마치 우리 배가 산들 위를 떠가는 모습이었다.
경박 호는 약 1만 년 전부터 5차례나 화산이 폭발하여 뿜어 나온 용암이 목단강 강줄기를 막으면서 강물이 사면의 산에 막혀 흐르지 못하면서 쌓여 오르면서 자연적으로 오늘의 절세경관(绝世景观) 경박 호가 만들어졌으며, 화산폭발 때 형성된 수많은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며 용암과 화산재는 주위 40Km까지 널려 있다. 경박 호의 모양은 서남쪽에서 동북쪽을 향하여 S형으로 좁게 길게 45km나 펼쳐지며 총면적은 91.5㎢이고 깊이는 평균 40m며 제일 깊은 곳은 62m로 중국 강남의 대표적 호수인 항저우(杭州)의 서호(西湖)와 견주어 [북국의 서호, 北國的西湖]로 불린다. 경박호는 8개의 유명한 관광코스가 있는데 그것은 8개의 반짝이는 진주처럼 파란 호수 위에 박혀 있다.
경박폭포
경박호의 가장 멋 있는 경관은 폭포이며 경박호를 찾는 목적 또한 폭포를 보기 위함이다. 폭포의 모양은 화산활동으로 지층이 뚝 끊어져 아래로 내려 꺼져서 깎아지른 절벽을 세워놓은 모양이다. 내가 경박호를 찾았던 1994년 6월에는 폭포에는 물이 흐르지 않았다. 비가 많이와서 장마나 져야 물이 흘러 폭포에 떨어지곤 했다. 왜냐하면 위쪽 호수와 폭포 사이가 높아서 흐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중국이 관광산업이 발달하면서 지방경제 발전을 위하여 경박호를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폭포 위 지면을 낮추어 평소에도 호수 물이 항상 흐르도록 하여 살아 있는 폭포가 되게 하였다.
폭포가 보통때는 40m의 폭으로 물이 20m 높이의 벼랑 아래로 떨어지지만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많아지면 좌우 100m 정도의 넓은 폭으로 폭포수가 떨어질 때에는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듯 장관을 이룬다.
향수 쌀(响水米)
발해의 서울 상경용천부와 경박호 사이에 있는 향수(响水) 향(면)이라는 곳에서 생산되는 유명한 쌀이 있는데, 그 이름 하여 “향수 쌀”이다. 용암 위로 덮어진 화산재로 만들어진 논은 흙 깊이가 얇은 데서 재배되어 생산되는 쌀이다. 이 쌀은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아주 비싸게 팔릴 뿐만 아니라, 특별한 루트를 통하지 않고서는 100% 진짜를 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중국에 있는 동안 이 지역의 관리가 갖다 준 진짜 향수 쌀을 몇 번 먹어 본 적이 있다. 진짜를 먹어 본 뒤로 우리가 그 지역 쌀가게(양식(粮食点)에서 살 수 있는 향수미는 질이 떨어지는 2, 3등 품들이었다. 진짜 향수 쌀을 한 번이라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참 맛을 모른다. 향수 쌀은 우선 밥을 하여 솥뚜껑을 열면 약간 파란색을 띠고 찹 쌀밥같이 차질고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며 밥맛이 기딱차게(기막히게) 좋다.
경박 호 대첩
이곳은 항일전쟁을 여러 번 하던 곳이다. 1933년 2월 한국독립군과 중국군이 연합하여 왜군을 크게 대파한 곳이다.
금와 왕(金蛙王) 신화
산 중턱에 솟아있는 개구리 모양을 한 바위가 있다. 고구려 이전 부여국 시대 금와 왕의 설화가 서려 있는 곳이다. 부여 왕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 아들 낳기를 기원하였다. 하루는 그가 탄 말이 곤연(鯤淵)이란 곳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있는 큰 바위를 보고 말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바위를 치워보게 하였더니, 금빛이 나는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해부루가 기뻐하여 "이는 하늘이 내게 준 아이로다."라 말하며 아들로 삼으니, 이가 곧 금와이다. 해부루의 뒤를 이어 부여의 왕이 된 금와는, 태백산(太白山) 남쪽의 우발수(優渤水)에서 사냥을 하다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만나 유화(柳花)를 방에 가두었더니 내리쬐는 햇볕을 받고 잉태하여 알을 낳았는데, 금와왕은 그것을 보고 알을 버리게 하였는데 짐승이 알을 밟지 않고 도리어 품어주는 등 기이한 일이 생기자 유화부인에게 그 알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 알에서 뒤에 고구려의 시조가 된 ‘주몽(朱蒙)’이 태어났다. 이후 일곱 왕자가 주몽을 해하려 하자, 주몽은 동부여를 떠나 졸본부여로 피하여 고구려를 건국한다.(기원전 37년)
발해의 서울
발해가 첫 도읍지를 경박호 서남쪽 150㎞ 떨어진 동모산(東牟山), 지금의 길림성 돈화시 성산자산<吉林省 敦化市 城山子山>)으로 정했다. 그 뒤에 두 번째 서울로 경박호에서 25㎞ 떨어진 곳에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를 수도로 삼은 160여년 동안 지내다가 다시 지금의 영안시 발해 전에 세 번째 수도를 삼았다. 경박호는 이래저래 한민족과 관계가 깊은 곳이다.
※ 나의 첫 경박호 방문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앞으로 여러 번 찾아보고 공부를 하면서 더 깊고 자세한 경박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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