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이사랴 빌립보 Caesarea Philippi
가이사랴 빌립보는 갈릴리 호수 북쪽 40K 지점인 헤르몬산 서남쪽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주전 4년 헤롯 대왕이 이곳을 북부 지역의 수도로 삼았다.
A.D. 1세기 초 헤롯왕을 이은 아들 빌립 2세가 이 성읍을 확장 건설하면서 황제의 이름인 ‘가이사(Caesar)’라고 이름을 지었으나 지중해 연안의 가이사랴(행8:40)와 구별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인 Philip을 덧붙여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하였다. 오늘날 이곳은 바니아스(Banias)라 불린다. 요단강의 세 발원지 가운데 한 곳이 여기에 있다. 만년설이 있는 헤르몬산에서 마르지 않는 물이 흘러나와 이 지방을 비옥하게 하면서 요단강을 거쳐 남쪽으로 흘러가면서 메마른 땅을 적시며 갈릴리호에서 잠시 물다가 죽음의 사해로 흘러들어 간다.
신약성경에 그 이름이 두 번 나온다. (마 16:13; 막 8:27) 구약 시대의 이름은 바알갓이다(수11:17, 12:7, 13:5). 바알갓은 가나안 사람들이 행운의 신으로 이 지역은 우상과 귀신의 소굴이었다. 그리스 시대에는 동굴에 허리 위쪽은 사람의 모습이고, 염소의 다리와 뿔을 가지고 있는 PAN 신의 신전과 제우스 신전, 네메시스의 뜰, 판의 뜰, 거룩한 염소의 무덤 신전 등 다양한 신전들이 있었다.
예수님 시대에 이런 불경한 지역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뀌는 빛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예수님이 벳새다에서 소경을 고치신 뒤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를 찾았을 때,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침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대답을 했다.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라고 고백했다. 이 불경한 우상의 지방에서 예수님의 정체성은 바로 만군의 하나님이시며 구세주이심을 나타낸 것이다. 그 뒤로 이곳에는 베드로 신앙고백 교회당이 생겨났고, 순례 객의 신앙고백을 되새기는 곳이 되었다니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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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지파의 주거지(라이스) (사사기 18:1-10)
단은 야곱의 아내 라헬의 시녀 빌하에게서 난 야곱의 다섯째 아들로 이름의 뜻은 재판장이다(창세기 30:5, 6, 35:25).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곳에 살고 있던 일곱 족속과 싸워서 주도권은 잡았지만, 가나안 족속을 다 없애지는 못하였다. 여호수아가 12지파에게 땅을 나누어주었다 (수 19:40-46). 이제부터의 과제는 각 지파는 분배받은 땅에 들어가서 그곳에 사는 가나안 족속들을 제압하여 지배하면서, 자신들이 살 지역을 개척해야 했다. 단 지파에게 하나님이 주신 땅은 에브라임과 베냐민 지파와 경계선을 이루며 서쪽 지중해 해안의 평야지대와 산지로 비옥한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블레셋과 아모리 민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철기 문명을 가진 선진 민족들이어서 그들을 정복하기는커녕 도리어 쫓겨나서(삿 1:34) 하나님이 주신 땅을 얻지 못하고, 산지에 숨어 사는 신세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때 단 지파에 삼손이라는 영웅을 내려주셨다. 그러나 삼손은 자기 힘을 블레셋을 물리치고 지파가 땅을 차지하는 데 힘쓰지 않고 자기의 육욕을 즐기는 데 쓰다가 망해버렸다.
아마 다른 지파처럼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지 못해서인지, 단 지파는 분배받은 땅을 취하지 못한 채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단 지파는 5명의 용사를 택하여 새로운 정착지를 찾도록 내보냈다. 그들이 새로운 정착지를 찾기 위해 다니다가 에브라임 지파의 지역에 이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마침 이 마을의 촌장으로 있는 미가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그 집에 있는 레위 지파의 한 청년을 알게 되었다. 그 청년이 미가 집의 제사장이라는 것을 알고(삿 17장)는 그들은 그에게 자기들의 길이 형통할 것인지 하나님께 물어봐 달라고 했다. 미가 집의 제사장은 신상(우상)에 기도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그 땅을 하나님은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삿 18:10). 단 지파의 정탐꾼은 거짓 제사장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라이스로 갔다.
▶ 라이스(Laish)
'라이스'(Laish)는 오늘날 '텔 엘 카디'(Tell el Qadi)이다. 그곳은 가이사랴 빌립보와 가까워 헤르몬산에서 흘러나오는 풍부한 물로 토지가 비옥하였고, 사람들은 안전한 가운데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아모리 족속이나 블레셋 족속의 압제도 없었고 시돈 사람들의 통치 밑에 있기는 하지만 시돈과는 거리가 워낙 멀어서 간섭을 받지 않은 채 평안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 라이스가 자기들 지파가 정착하여 살기에 딱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돌아와 보고하자 모두 그곳이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 믿고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곳은 가이사랴 빌립의 온갖 우상과 잡신들이 우글거리는 소굴이었다. 단 지파가 라이스를 취하러 가는 길에 에브라임의 미가 집에 들러 다섯 용사가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오자, 그 제사장이 왜 이러느냐고 묻자,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 아버지와 제사장이 돼라, 네가 한 사람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낫겠냐 하자,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단 백성을 따라나섰다. 단 지파가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들을 칼날로 쳐서 정복하였다. 그리고 라이스를 단이라고 이름 짓고 새긴 신상을 세우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백성이 되면서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게 된다.
◈ 우리는 단 지파가 우상 숭배에 힘쓰면 살던 라이스 지역을 돌아보면서 풍족한 자연환경에서 하나님을 잘 믿고 살았더라면 자손만대 축복을 받았을 텐데, 어떻게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섬기는 악한 지파가 되었는지 한심하기만 했다. 동굴 안의 돌벽에는 우상 조각들이 지금도 남아있어서 씁쓸한 마음이었다.
◈ 갈멜산(Carmel Mount)
감람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 사이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오르니 오래된 수도원과 엘리야의 기념 석상이 우리를 맞이했다. 엘리야의 얼굴은 위엄이 넘치며, 바알 선지자의 어깨를 왼발로 밟고 오른손엔 끝이 구부러진 칼을 높이 들고 있다. 구부러진 칼은 바알 선지자 450인을 칼이 구부러질 정도로 죽였음을 상징하는 것이란다. 그리고 받침대에는 외경 집회서 48:1에 있는 말을 라틴어, 아랍어, 히브리어 세 나라 글로 새겨져 있었다. “그때 예언자 엘리야가 불같이 일어났으니 그의 말씀은 횃불같이 타 올랐다”
사론의 평원
수도원 마당에는 해 시계가 있는데 우리 시계의 시간과 같아서 모두 신기해했다. 옥상에 오르자 사방이 활짝 열린 세상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옥상 바닥에는 방향도(方向圖)를 그려 놓아서 어디가 어딘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구나"(아 2:1)라고 솔로몬이 노래한 사론(Saron) 평야가 남쪽으로 열려 있고, 북쪽으로는 다볼산(Tabor, 561m), 좀 멀리 이스르엘 평야, 갈릴리 호수, 그리고 항구도시 하이파가 보인다. 푸른 숲이 우거진 풍요로운 갈멜산도 온갖 우상과 바알, 아스다롯, 아세라 등 귀신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엘리야도 동굴에 있었듯이 지금도 가톨릭교도들이 만든 마리아 동굴, 그리고 여러 우상들의 동굴이 차지하고 있었다.
◈ 갈멜산의 히브리어(학카르 멜)는 ‘포도원, 과수원’이란 뜻이며, 봉우리는‘무흐라카(불이 내려온 곳)’라 부른다. 갈멜산은 그 일대에 퍼져 있는 143km의 긴 산맥이며 수도원이 있는 곳은 갈멜산 봉우리(531m)이다. 산 아래는 기손 강이 이스르엘 평야를 적시며 흐르고 있다.
◈ 사론 평원(the Field of Sharon)-갈멜산에서 지중해 연안을 따라 욥바에 이르는 들판이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구나. 아가서 2:1 ( I am the rose of Sharon, and the lily of the valleys) 원어에는 우리 성경에 나오는 꽃말은 없고 히브리어 원어는 '하바펠레트'로 그저 꽃(Flower)이란 뜻이어서, LXX역에는 꽃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므로 원문에는 수선화(영어 장미)니 백합화라는 꽃말은 없고, 그저 사론 평야에서 자라는 모든 아름다운 꽃들을 일컫는 말이다.
♣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의 대결(왕상 18:19-40)
갈멜산은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이 싸운 곳으로 유명하다. 이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최악이었다. 우상 숭배자인 왕후 이세벨의 조종을 받는 아합 왕이 여호와를 섬기는 지조를 지키지 못하자. 백성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신교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지자 엘리야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양단간에 결판을 내기로 작정한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내가 오늘 바알 선지자들과 내기를 할 테니,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으라”라고 엄히 경고한다.(왕상 18:21) 그리고 바알 선지자들에게 선전 포고를 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한 사람과 450명의 바알 선지자와의 대결이다.
엘리야는 송아지 두 마리를 잡아 각을 떠서 따로따로 나무 위에 올려놓고 각각 자기 신의 이름을 불러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우는 신이 참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 하기로 했다. 수가 많은 바알의 선지자들이 먼저 시작했다. 주문을 외우고 춤을 추며 칼로 몸을 베어 피를 흘리면서 해가 맞도록 광란의 푸닥거리를 했지만 바알은 아무 대답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드디어 엘리야가 나섰다.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뜻하는 12개의 돌로 단을 쌓고 그 단 둘레에 곡식 종자 두 세아(14.17L)를 용납할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네 통의 물로 번제물과 나무 위에 세 차례나 부어 물이 번제물과 나무를 적시고 넘쳐흘러 도랑에도 가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엘리야는 여호와께 기도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을 때, 여호와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본 모든 백성이 일제히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 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 이시로다."라고 찬송했다.
그러자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명하여 바알 선지자 450명 모두를 잡게 하여 산 아래 기손 강에서 죽였다.(왕상 18:20-40)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시켜 부도덕한 죄에 빠지게 한 악의 원인을 제거함으로 백성들이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영적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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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사랴
우리를 실은 버스는 메마른 광야를 가로질러 37K를 달려서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 가이사랴에 도착했다. 가이샤라는 로마제국 시절 팔레스타인의 수도였다. 바닷가에는 허물어진 야외극장이 있었는데 사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식 원형 극장으로 대단히 컸다. 아름다운 바다를 끼고 있는 야외극장에서 노래와 춤이 어우러졌을 것이고 비인간적인 격투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야외극장 주변에는 많은 건축의 돌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일으켜 세워 놓은 것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Pontus Pilatus라는 라틴어가 쓰여 있었다. 틀림없이 예수님을 재판한 본디오 빌라도의 기념비였다. 그리고 해변 성채도 가 보았다. 비록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기는 하나 그 폐허의 잔재들을 보면서 로마제국의 화려함과 큰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도시를 건설할 때 필요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12km 떨어진 갈멜산 샘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교각 수로는 지금도 일부 남아있어서 그 당시의 토목공사의 기술을 짐작하게 했다. 가이사랴는 지중해를 낀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다. 가이사랴는 백부장 고넬료와 집사 빌립의 거주지였다(행 10:1, 21:8). 바울이 예루살렘 소요 중에서 이곳에 이르러 2년간 구금되었던 곳이기도 하다.(행 18:22, 21:8, 23:23-33, 24:27, 25:11, 26:1). 나의 감기는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목을 몹시 조이고 있어서 하루를 지나는 것이 아주 힘들었다.
교각 물길(水道, Aqueduct)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아치형 교각은 가이사랴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만든 물길이다. 갈멜산 남쪽의 샘으로부터 약 19 Km에 이르는 물길은 물의 낙차를 이용한 구조물로써 로마시대의 대표적인 구조물이다.
◆ 가이사랴의 역사
헤롯왕(주전 37-주전 4)이 이곳에 항구 도시를 건설하고 로마 황제를 위하여 '가이사랴(Caesarea)'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렀다. 가이사랴는 약 12년간의 공사 끝에 주전 13년경에 완성되었다. 새로운 항구를 건설함으로써 로마의 문물을 신속히 받아들이고 사마리아의 농산물을 로마에 수출하게 되었다. 헤롯이 이렇게 큰 항구 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통치자임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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