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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여행기/1.독일한인선교

제2차 독일 선교 여행(1)

이번 독일 방문은 가을 학기가 끝나고 거의 한 달 정도 크리스마스와 새해  휴가 겸 실습과제를 주면서 쉬게 되는 기간에 독일에서 또 초청을 하여 주었다.   

 

                                              Hannover and Berlin Dec.15,1979-Jan.13,1980

 London city Mission

런던에서 독일로 가는 날틀 시간이 좀 이른 아침이어서  런던 어디에서 하룻밤 쉬는 것이 좋은지 독일 형제 Dieter와 의논하는데,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London city Mission에 £1(1 파운드)만 내면 잘 수 있다고  같이가자는 기쁜 소식을 알려 주어서 고마웠다. 오늘 독일을 가려고 Dieter 형제와 함께 London으로 올라와 London city Mission 본부에 왔다. 숙박료 £1을 내고 선교회 응접실 소파에서 자게 되었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나그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저녁을 막고 나자 모두 노방 개인전도를 나간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피카딜리 광장 부근에 흩어져서 지나가는 아무나 붙들고 말을 걸어 전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Dieter와 함께 하였지만 언어 관계로 활발한 전도는 할 수 없어지만 젊은 형제자메들이 열정적으로 전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우리도 한국에서 전형적으로 시장에서 노방전도나 밤집회에 거리에 나가서 개인전도를 하여 집회로 인도하든 모습들이 떠올랐다.  

잠을 자려고 하는데 소파가 좋지를 않아서 얼마나 불편했는지 밤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잠깐 눈을 붙이고는 아침 4:30에 잠이 깨었다. 아침 7시 날틀이어서 잠을 더 청할 수가 없었다. 고맙게도 Dieter 형제가 일찍 나에게 와서 다리 건너 Tower Hill Subway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나섰다. 아직 한 사람도 움직임이 없는 이른 새벽 찬바람이 몸을 좀 움츠리게는 하지만, 아직 둥근달이 떠 있는 여명의 시간에 소리 없이 고요히 흐르는 템즈(Thames) 강의 Tower Bridge를 걸어서 건너는 기분은 상쾌하였다. 날마다 많은 사람이 이 다리를 보려고 밀려오는데, 우리는 이 새벽에 아무도 없는 이 다리를 독차지하고 즐기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어찌 말로 다 하랴.  

 

Heathrow Airport까지 지하철 차비는 £1.40이었다. 독일 날틀 루프트한자 LH 727은 주말이라 사람이 없어서 안락하고 편했다. 도버해협을 1시간 20분 정도 날아 건너 하노버에 내리니, 엘리스 자매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에 김복림 자매가 연애하는 남자 친구 최영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을 믿도록 전도를 한참 했다.  그는 독일에 광부로 와서 여러해 째 일하고 있었다. 잠시 후 조 형제도 와서 즐거운 교제를 나누었다.

 

 Bach strass Gemeinde(박스트라스 모임)  Dec. 16 Sun 1979

오늘 Bach strass 교회는 가정 주일 예배로 주일학교 어린이들도 함께 만찬 예배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성탄절을 맞이하는 기간이라 어린이들의 발표회가 있어서 즐거웠다. 오후에 한국 사람들은 아래층에서 다시 모여서 골로새서 1장으로 성경 공부를 하였다. 오전 오후 모든 순서를 마치고 돌아와서, 내가 여기 방문을 마치고 베를린을 방문하려는 것에 대해서 의논했더니 엘리스와 김정애 등 자매들의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자매들이 나에게 이번에는 자기들이 초청했으니까, Hannover만 방문하고 영국으로 돌아가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년 2월에 다시 Hannover에 오면 그때 Berlin을 방문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Berlin과 Hannover의 자매들이 서로의 관계가 좋지 않은 마음을 살짝 보여주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지만,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하노버 엘리스와 베를린 요한나 자매님들의 헌신적인 수고로 한국의 딸들이 주님께로 돌아와 주안에서 자매들이 된 것은 외화벌이와 함께 얻은 귀한 축복들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두 지도자가 어떤 일로 거리감이 생겨서, 양쪽 한국 자매들끼리도 교제가 좀 멀어지게 되자 공식적으로 서로 오 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들이 바탕에 깔려 있어서 비록 주님의 일이라 할지라도, 처음부터 내가 베를린 자매들과 교제하는 일을 싫어하고 있었다. 하노버 자매들은 나에게 베를린 자매들을 자기네들보다도 더 좋아한다느니, 하는 감정 섞인 말들을 서슴없이 뿜어내어 나를 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자기들이 나를 독차지하려는 하나의 질투라고 할까. 그것은 또 Berlin 자매들에 대한 미움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게 뭐 사랑싸움도 아니고 주님을 섬기는 종에게 왜 이렇게들 해야 하는지 한심하기만 했다.                       

전에 내가 베를린에 먼저 와서 머물 때, 엘리스는 나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가 초청했으니까 이리로 먼저 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적이 있었다. 사실 하노버가 먼저 초청은 했지만, 도착하는 시간을 서로 정해져 있었고, 그 전에 베를린을 방문한 것인데, 내가 베를린에 먼저 와 있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시기심이 난 것 같다. 나라가 동서로 갈라져 있고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데, 마치 한 동리에서 하는 일 같이 그러고들 있었다. 나는 하노버 자매들에게 한국 형제들이 드문 이곳에서 내가 이왕 여기 왔으니까 여러분만 교제하고 가게 하지 말고, 베를린도 교제하도록 편하게 생각해 주면,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돕는 것이 아니겠냐고 설득과 이해를 시켰다. 우리가 초대했으니까,라는 말을 여러 번 들으면서 참  이기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노버로 초청을 받아 오면 여기 자매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독일 어느 곳도 갈 수 없다는 뜻 같았다. 저녁에 오은숙 자매님이 내일 나이 많은 곽복숙 자매와 함께 만나서 필요한 것 있으면 자기가 사주겠다는 고마운 전화가 왔다. 곽 자매는 간호사로서 40대였는데, 독일에 와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고 있었다.

다음 날 곽자매님 댁에 초청을 여럿이 갔는데,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인지 그가 끓인 된장국은 정말 맛이 있었다. 아주 오래 만에 먹는 맛있는 된장국은 속을 개운하게 해 주었다. 저녁 집회는 “사랑”이란 주제로 교제했다. 밤 근무 자 외에는 모두 왔다고 했다. 집회 뒤 자매들이 Christmas 준비를 위해서 의논들을 했다. 자매들이 나에게 모처럼 독일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데 필요한데 쓰라고 엘리스 DM 40, 오은숙 DM 100. 곽복숙 DM 30의 선물들을 주어서 고마웠다.

 

Berlin 방문 12.27-30

엘리스가 나에게 12월 27-30 베를린을 방문하도록 하라고 일정을 잡아 주었다. 갑자기 왜 마음들이 바뀌었는지 궁금하지만, 나의 가는 길을 열어 주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요한나 자매와 전화를 할 수 있도록 걸어 주었다. 이제야 엘리스의 친절과 넓어진 마음을 보여 주고 있어서 고마웠다. 저들이 스스로 묶어두었던 나를 풀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 일은 베를린 자매들에게 보여 주는 하노버 자매들의 말 없는 사랑의 교제이기도 했다. 나 때문에 서로 꼬인 마음들이 조금 풀어지고 회복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은숙 독일 남자 친구 전도

오늘은 오은숙 자매가 자기 독일 남자 친구에게 전도해 달라고 해서 약속된 시간에 오은숙 병원 기숙사에 가니 그녀의 독일 남자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어를 안다고 해서 복음을 전하며 대화해 보니 그저 기본 수준이어서 은숙 자매가 독일어로 통역을 했다. 자매들이 모두 30대가 넘어가는데 한국 남자들 특히 믿음을 가진 남자들이이 흔치 않아서 짝을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모두 믿음들은 있어서 안 믿는 남자 친구를 사귀면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기특하기도 하였다. 저녁 성경모임에는 모르는 자매들이 여섯 명이 왔는데 모두 병원 선교회 식구들이었다. 모두가 형제교회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해서 형제교회의 역사와 믿는 진리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더니 반응들이 좋았다.

 

선미 자매 남편 전도
오늘은 선미 자매의 부탁으로 믿지 않는 자매 남편에게 전도하려고 선미 자매 집을 방문하였다. 나는 그의 남편을 데리고 아주 기초부터 시작해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복음을 전했더니, 그는 이제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 눈이 좀 뜨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는 처음부터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하지 않고 좋게 생각하여서 선미와 결혼했다고 하였다.  

 

국제결혼 한 이은자 자매 방문  
오늘은 날씨가 대단히 추워졌다. 오전에 Vacuum으로 응접실을 청소하면서 크리스마스 준비하는 일을 도왔다. 눈 덮인 숲 속을 혼자 거닐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다보니 주님께서 부족한 이것을 붙들어 주시고 승리케 해주신 놀라운 은혜를 새삼 깨닫게 되어서 주님께 감사했다. 오후 4시경 김갑숙 자매와 함께 Holland 인과 결혼해 사는 이은자 자매의 병원 기숙사를 방문했다. 그 남편이 좀 괴짜였다. 내가 그에게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으니, 유아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아마 그는 이렇게 대답하면 모든 문제가 끝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유아 세례가 성경에 있느냐? 고 물었더니, 그는 성경에는 없다고 대답한다. 내가 그에게 유아 세례가 시작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주었더니 처음 들어본다면서 알겠다고 하면서 좋아했다. 그래서 이름뿐인 기독교인이 되지 말고 구원의 확신을 하고 침례를 받으라고 전도했다.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즐거운 마음으로 대답해해서 신기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그 병원에서 한인들이 모여서 성경 모임을 가졌다.

 

Bach Strass교회 Dec. 23 Sun
나는 오늘 Bach Strass모임 만찬 예배에서 독일어 성경으로 시편 95-96을 독일어로 읽었다. 독일어는 배운 적이 없지만, 이제는 그저 글자는 읽을 수 있었다. Allen에서 두 조카가 올라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어서 기뻤다. 오후에는 한국 사람 15명이 모여서 성경 모임을 가지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저녁에는 김갑숙 자매와 함께 영남 조카 기숙사에 가서 우영, 두영 두 조카들과 시간을 보냈다.

 

Christmas Eve
독일도 예외 없이 성탄절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 나는 지난 한 해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드렸다. 가족들과 함께 이 즐거운 시절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에 아내와 아이들 모습을 담아 보았다. 오전에 복림 자매가 연애 중인 최영을 데리고 왔다. 자매는 그가 구원받은 형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지나온 자기 인생을 말하는데, 그 가운데 이혼이라는 슬픈 사정을 듣고 동정이 갔다. 그가 이제 마음을 조금씩 예수님에게 열고 있었다. 결국,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믿고 김복림 자매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모임 

저녁에는 엘리스 응접실에서 성탄절 이브 모임으로 많이들 모였다. 내가 말씀을 보고 나니, 선물교환이라는 순서가 있었다. 나는 좀 놀랐지만, 자매들이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이런 행사가 있는 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Steinberg 장로님이 성경 담는 가방에 카드와 DM 150을 넣어 주셨다. 자매 모임에서 Y-shirt하나, 조형이 Parker 볼펜, 영남이가 고급 볼펜, 한숙 부부가 양말 3개 손수건 한 케이스, 엘리스가 부켄 차, 비누와 케이스, Keswick Calendar, 일기장을 주어서 이 나그네를 위로해 주었다. 다음 날 스타인벡 장로님 댁에서 식사 초대로 모두 모였다. 한복을 입은 자매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이렇게 그림 한장을 남겼다.   

 

Merry Christmas    
아침 식탁에서 갑숙 자매가 자기 학교 All Nation bible College 그림카드, DM 50, 전차 표 6장, 그리고 초콜릿 하나를 주어서 그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웠다. 오후에는 우리 한인 형제자매들이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있는 요양원을 찾아서 즐거운 크리스마스 Carol들을 부르고, 내가 5분 정도 설교를 하였다. 한평생을 이 병원에서 80이 넘도록 사는 노인 방을 방문해 보았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있는 나라가 부럽기도 했다.

 

우리 한인 팀은 Steinberg 장로님과 이곳 수양관 관장 마스커스 목사님(침례교) 댁에 가서도 Christmas Carol을 불러드리면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해 드렸다. 오늘은 조카 영남의 생일이어서 그에게로 가서 두 조카와 함께 조카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어저께 크리스마스 행사로 우리 모두 좀 피곤한 밤을 보내고 밝고 환한 새 아침을 맞이하였다. 엘리스 아침 식탁에는 두 조카와 모두 6명이 함께하게 되어 사람과 음식으로 가득해서 기뻤다. 독일에 새로 온 Mr. 김이란 젊은 친구도 초대되어서 그에게 초보 전도를 했다.

12시에는 정문식 씨 댁에 가서 국수 무침을 해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정 씨의 구원 문제를 깊이 다루었다. 그는 고전 5장의 문제로 마음 문을 완전히 열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설명을 듣고 나더니 그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기뻐했다. 저녁에는 그 집에 모두 모여서 식사를 나누고 9:30에야 성경 모임을 가졌다. 늦게 전차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피곤하여 지쳤다. 매일 그렇기도 하지만 오늘은 종일 입을 다물지 못한 하루였다.

 

복음의 능력 Dec. 27 Thu
Boccum에서 광부로 일하고 있는 이동현 형제가 올라와서 반가웠다. 그는 그가 일하는 탄광 지대에 있는 한인교회가 신신학 계통 교회라고 해서 그 형제를 내 방에 데리고 가서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를 교제하여 보았다. 그는 현대신학 사상만 들어서 믿는 자의 구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구원의 도리를 성경 구절을 찾아가며 전하는데, 그가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제 믿는다고 하면서 구원의 확신의 큰 기쁨을 가졌다. 내일 Berlin에 가서 요한나 자매님을 줄 선물을 하나 사려고 Banhof(역)에 갔다. 돌아와서 잠시 쉬는데 김복림 자매가 최영 청년을 또 데리고 왔다. 그는 험악한 얼굴과 불신이 넘치는 마음으로 왔다. 사실 예쁜 복림 자매를 얻고자 억지로 따라온 것이다. 내가 성경말씀으로 그에게 말하는 동안 그는 머리를 숙이고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쥔 채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와 내가 신경전을 벌이기를 반 시간 그가 내뱉는 진실한 말 한마디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이렇게 내뱉었다. “구원받아도 죄지으면, 구원이 무슨 쓸데가 있느냐?” 나는 그에게 구원은 이 세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머리를 숙이고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있던 머리가 끄떡끄떡 하기를 몇 분 잠시 침묵의 시간을 주고는 성경을 보자니까 응한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말씀을 전했다. 그는 받아들이며 어둡고 찌그러져서 무섭던 그의 얼굴에 평온한 웃음이 퍼져 나가고 있었으니 성령의 역사가 참 놀라우셨다. 그로부터 그는 주안에 형제가 되었다. 

 

                                                                        Berlin 방문  Dec. 28-31 Mon 

하노버 초청 기간에 베를린을 방문하게 된 것은 하노버 자매들의  너그러움 때문이었다. 

10:10 Berlin 행 열차를 탔다. 빈자리에 앉아서 한 참 가니 자리 주인이 온다. 나는 이번에도 자리표 사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 앞으로 4시간이나 가야 하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한참 후 그 일행이 식당 칸에 간다고 나보고 앉으라고 권해주어서 편하게 앉아 올 수가 있었다. 베를린 역에는 자매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한나 아파트에 와서 윤이란 자매와 여기 자매들 사이에 있는 여러 어려운 문제들을 말해 주어서 들으며 교제하느라 11시가 넘어서야 내 방에 들어와 쉴 수가 있었다. 다음 날 윤정신 자매가 점심을 초청해서 몇 자매와 함께 병원 기숙사에 갔다. 형제교회는 주일마다 만찬 예배를 먼저 드리고 잠시 쉬거나 아니면 바로 설교 시간이 있는데, 한국에서 이런 예배 습관이 없던 자매들이 왜 주일마다 만찬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만찬 예배의 중요성에 대하여 성경말씀으로 자세히 교제하여 주었다. 주님이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나를 기억하라고 만들어 주신 만찬 예배만이 교회가 하나님에게 드리는 진정한 예배이다. 우리는 만찬 상에서 나를 위해 몸이 부서지시고 생명을 피를 흘리시면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신 예수님의 희생을 대하면서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찬송하게 된다. 회수는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닐지라도 주일은 예배드리는 날이므로 성찬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요한나 집에서의 만찬 

                

요한나 집에서의 모임 Dec. 30 Sun
오늘은 한인들이 모두 독일교회에 나가지 않고 요한나 자매님 집에서 모였다. 요한나 자매님이 만찬 예배를 준비하려고 물어서, 이미 교회에서 매주하고 있는데 따로 하지는 말자고 했다. 히브리서 12:1-412:1-4 말씀으로 교제하면서 우리들끼리의 오붓한 모임을 가졌다. 오후에는 나기 장로님 댁의 초청이 있어서 갔다. 처음 왔을 때 뵙고 여러 달 만에 부부를 다시 뵈니 반가웠다. 차와 다과를 나누고 나올 때 넓적하고 큰 초콜릿 하나와 DM 50 이 든 봉투 하나를 주셨다. 저녁에는 요한나 아파트에서 다시 성경 모임을 했다. 나는 창세기 3장에서 “사단의 유혹”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교제했다. 집회 뒤 함께 차를 나누며 헤어짐을 또 아쉬워하면서 늦게까지 교제했다.

오전에는 몇몇 자매들과 교제하고 오후에는 Allen에서 온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또 천주교에 다니는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가르쳐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예쁜 꽃이 보여서 요한나를 주려고 한 송이 샀다. 돌아오나 베를린 자매들이 모여 있었다. 자매들이 내년 베를린 한인 수양회 강사로 초청하겠다고 말해 주어서 반가웠다. 자매 모임 DM 400, 윤영자 DM 200. 내순이가 표를 사주고, 자리표 DM 30은 다른 자매가 내주었다. 떠나가는 나그네를 위하여 여러 사람이 역에 나와 주어서 고마웠다. 13:42분 기차는 흔드는 고마운 손길들을 뒤로하고 떠나가고 있었다. 이번에 자리를 준비해 주어서 편한 여행이 되었다. 하노버 자매들이 그저 3일간의 짧은 시간만 주어서 서로 섭섭지 않게는 해 주었다. 깍쟁이 같은 자매들. 

 

                                                                   Hannover Dec. 31 월

오자마자 저녁 성경 모임이 있어서 마음이 바빴다. 지난번 전도했던 최영 형제가 와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동안 기쁜 생활을 했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웃음 띤 얼굴로 대답해 주어서 고마웠다. 영생의 문제도 해결되었고, 예쁜 색시도 얻게 되었으니 어찌 아니 기쁘랴! 오늘 성경 모임에는 현대건설에서 기술 용역으로 파견된 두 분도 함께하게 되었는데 말씀 공부를 통해 그동안의 의문들이 풀렸다고 간증했다. 독일도 년 말에 불꽃놀이(fire work)를 하는 습관들이 있어서 몹시 시끄러웠다. 탕! 탕! 하고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해 주고 있었다. 독일에서도 옛날부터 년 말이 되면 폭죽을 터트리면서 귀신을 내쫓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귀신 놀이는 세계 어디에도 있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 믿음 하나로 지금 내가 이렇게 영국과 서독 양쪽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부족한 나로서는 기적이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그것은 내게 향하신 기도의 응답이었다. 부족한 이 사람의 사역을 통해서 서독에서 몇 사람의 한인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믿음의 짝을 이루어 사는 것을 보면서 많은 물질보다 더 귀하고 귀했다. 영원히 찬양받으시며 경배를 받으실 분은 주님이시다. 나의 사역도, 공부도, 가정도 다 주님께서 보살펴 주시는 은혜로 될 수 있었으니, 이 은혜를 어찌 다 감사하리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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