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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선교 학교와 여행

8-5. Echoes service, Bath

Bath 11. 10 Sat

Echoes service Office(영국 형제교회 선교부)

Echoes service 사무실에 가서 Warren 회장을 만났다. Warren 사무실의 카펫을 좀 손질해서 고쳐 주었더니 모두 고맙다고 하면서 기뻐했다. 이분은 10년 이상 회장직을 해 오면서 선교지와 국내 교회와의 다리 역할에 힘써 왔다. 주일 저녁 내가 이분들의 교회인 Members Chapel에서 설교한다고 지방 신문에 내서 내 이름이 신문에 나와 있었다

Echoes Service에서 일하시는 Mr. Scanding 노형이 Echoes Service 사무실 안내를 해 주셨다. 4층 도서 보관실에 가니 폐쇄적인 모임의 대부이며, 세대 주의를 이론화한 John Darby의 책들과 다니엘 주석자 스트레 글라스, 등 지금은 다시 발간되지 않는 고서들이 많았다. 운영체제는 네 분이 안건을 의결 처리하고 있었다. Warren과 Stone 형제님이 Full Time으로 일하고 있었고, 다른 두 분은 자원 봉사자로 일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이 온 세계에 나가 있는 영국 형제교회 선교사들의 본부이며, 선교지와 지역교회 간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선교사를 제일 많이 내 보내고 있는 선교부로 알려져 있다.                                                      

 

Bath Members Chapel 11. 11. Sun

120년의 역사를 가진 이 Members Chapel 교회는 저녁인데도 120여 명의 식구가 모여서 만찬 예배를 드리니 은혜로웠다. 완고하고 폐쇄주의로 나아가는 웨일스의 여러 모임보다는 개방적인 모임이었다. 오후에 Mr. Warren은 나에게 저녁에는 20분을 넘지 말라는 부탁을 몇 번이나 해 주는 것을 보니까, 너무 오래들 하는데 모두 질린 모양이었다. 이곳 월간지에 나의 Profile을 자세히 실어주어서 반가웠다. 이럴 때 영어를 더 잘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아쉬워했다. 환등 10분, 내 간증 10분 이렇게 해서 20분을 했다. 그리고 모임 장로님이 한 10분 말씀하시고 마무리했다. 끝나고 나서 여러 사람과 교제했다. 한국에 대해서 너무 몰랐는데 주님께서 한국에서도 역사하셔서 기쁘다는 인사들이었다. 교회에서 £10 개인들이 보낸 £20의 선물을 전해 주었다. 강릉 무의 캠프에서 찍은 생생한 슬라이드를 본 회장은 나에게 그런 생생한 사진들을 좀 달라고 청했다. 나는 컥 선교사와 다른 선교사들이 많이 보내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그분들이 보낸 사진들은 모두 이렇게 생동감과 발전하고 있는 사회 모습은 별로 없다고 했다.

 

Betty 할머니와 함께 11. 12 Mon

오늘은 학교로 돌아가는 날이며, 어쩌면 Bath는 다시 오지 못할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와 두 학기를 같이 생활한 Betty 할머니를 10:30에 만나서 몇 곳을 구경하면서 오전 시간을 보냈다. Fish & chip으로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Betty와 헤어질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내가 처음 학교에 와서 모든 일에 서툴 때 Betty는 자상한 누나같이 나를 잘 도와주었다. 그리고 함께 Echoes service 사무실로 왔다. Betty 할머니는 침례교 집사 일을 하는 자매이지만 말씀을 전하는 은사가 계셔서 Members 형제교회의 자매회에 초청을 받아서 말씀을 전하기도 해서 서로 잘 아는 사이들이었다. 울타리는 달라도 서로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서로 교제하면서 살다가 주님 나라에 가면 될 텐데,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누구든지 주안에 형제자매라면 누구든지 교제의 자유를 누려야 될 것이다. 똑같아야만 교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리새인과 같은 부류 일 것이다. 나는 고맙고 친절한 Betty 할머니와 또 이 땅에서는 다시 보지 못하면 주님의 나라에서 만나자는 아쉬운 말을 남기면서 헤어져야만 했다. (Betty 자매님은 내가 학교에 오는 날부터 영국을 떠날 때까지, 그리고 15년 뒤 우리가 중국에서 일할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며, 적은 생활비에서 조금씩 모아서 보내주시던, 고맙고 자상한 자매님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노년에 시력을 읽고 불편하게 사시다가 주님께로 가셨다. 주님께서 그를 칭찬해 주실 것이다.)

들어오는 길에 예쁜 장미가 보여서 £1를 주고 사서 들어와 Mrs. Warren에게 드렸더니 노 자매님이 젊어진 것 같다고 좋아했다. 자매님은 나에게 예쁜 그림과 Bath를 소개하는 예쁜 책에 사인하여 주셨다. 아름다운 Bath 도시와 친절했던 분들을 기억하게 하는 좋은 기념물이 되었다.

 

Kirk 선교사가 보낸 추한 사진들

북아일랜드 밸파스트에서 오신 컥 선교사는 신실한 모임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 목수가 되었다. 믿지 않는 생활을 하면서 술을 가까이하고 주말마다 싸움질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어떤 형제님 댁의 식탁을 수리하다가, 요한복음 3장 16절이 떠오르면서 구원의 확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 선교사로 나와서 한국말을 빨리 배운 탓에 한국말로 복음 설교를 하게 되는 귀한 선교사가 되었다. 컥 선교사는 큰 카메라를 목에 걸고 농촌 지역을 다니면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우리에게 빼 주는 일은 없었다. 그분이 보낸 사진에 대해서 이곳 선교부 직원들이 만족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저께 저녁 교회에서 내 슬라이드를 보더니 탐을 내고 있었다. 다음 날 Echoes Service 사무실에 가서 컥 형이 보낸 사진들을 보니 시골 찌그러져 가는 초가집과 거름더미와 변소 초라한 모습들을 담은 것들이 전부였다. 일부러 초라한 모습들을 골라서 보낸 것 같다. 한국의 발전하는 모습이나, 전통문화와 고궁 그리고 바다와 산야의 아름다운 자연, 등  볼만한 사진들은 하나도 없었다. 선교사들이 하는 짓을 보면 선교지 백성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얻기 위한 상품같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특히 내 슬라이드 사진 가운데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뛰어드는 젊은 형제자매들의 모습, Camp fire, 큰 바다 게를 뜯어먹고 있는 사진들을 줄 수 있느냐고 물어서, 학교에 돌아가서 현상해서 보내주겠노라고 약속드렸더니 직원들이 기뻐하였다. 발전하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주면 선교 후원이 줄어들까 봐서 인지  어쩌면 그렇게 한국의 가난하고 초라한 모습만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그래야만 선교사들이 고생하고 살고 있다는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는지, 형제교회 선교사들은 정말 회개하고 마음을 고쳐야 할 것 같다. 이 일과 연관해서 미국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본다. 한국에서 문서선교를 하던 엠마오 통신 성경학교 팀의 던함 선교사가 미국의 한 교회에서 그런 초라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선교 보고하는 것을 마침 그 모임에 참여한 이동원 목사(유학생 시절)가 보고 들었다. 집회가 끝나고 이 목사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더라고 했다. 내가 영국 오기 전에 이동원 목사가 나에게 말해 준 것이 기억나서 기분이 씁쓸해한 적이 있다. (내가 중국 선교사로 있을 때 안양 평촌 교회 선교관에서 잠시 머무를 때 Wec 선교회 영국 본부에서 computer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분을 만나 교제하는 가운데, 그분은 나에게 대개 선교사들이 현지의 초라한 모습의 사진들을 보내 주는 데 반해 한 아프리카 선교사는 그런 초라한 모습보다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해 주어서, 나도 크게 깨달은 바가 되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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