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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선교학교

9. 추억을 가슴에 담고

1월 반 학기 Jan. 14 Mon. 1980
이 학기가 나에게는 마지막 학기인데 내가 반 학기 늦게 와서 반 학기를 마저 채워야 한다고 해서 이 학기를 하는 것이다. 첫 시간 인상 깊은 선생님의 수업을 받았는데, Wycliffe 선교사로서 콩고 원주민 언어를 만들어 주고 성경을 번역하는 일로 평생을 바치다가 은퇴하신 선교사님의 강의는 나를 감동하였다. 눈뜬장님의 눈을 밝혀주는 빛의 사역이었다. 번역팀이 콩고 글로 번역을 하다가 아주 어려웠던 점은 성령을 콩고 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하느냐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선교사들이 찾아낸 것은 한 지역에 일 년 한번 그들의 신이 내려온다고 믿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그들이 부르는 그 신을 성령이라고 번역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할 때 God을 중국 사람들이 믿고 있는 하늘의 신 상제(上帝)나 귀신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신(神) 자를 쓴 것과 같다. 그러나 한국 성경 번역에서 한국 토속종교에서 이미 하늘의 신 ‘하나님’의 개념이 있어서 어려움이 없었다.

햇빛에 감사하는 기도 Jan. 17 Thu
며칠 만에 해가 떠오른 화창한 날이었다. 모처럼 해가 나서 인지 교회의 저녁 기도시간에 한 자매님이 오늘 햇빛을 주셔서 감사하는 기도를 했다. 나는 처음에는 햇빛에 감사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렸다. 한국에서는 여름에 너무 더워서 감사는커녕 한숨 쉴 때가 있는데, 내가 처음 영국에 와서 거의 3주간 해를 보지 못하니까 해가 그리워졌던 것을 생각하면, 햇빛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위한 투자 Jan. 19 Sat.
돈이 없어서 꼼짝도 못 하는 Walter 형제를 데리고 Bournmouth로 갔다. 나는 그동안 사고 싶은 책들을 사느라 오늘 투자를 좀 했다. (Mathew Henry Commentary, Josephus, Early Christian Writings, History of the Bible in England, Historic of Christian Doctrine) 달리는 차 창 밖은 황색의 밝은 수은 가로등이 아름다운 야경을 이루고 있었다. 건너편 창가의 네 여인이 재잘대며 웃어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두고 온 가족들이 생각났다. 맞은편에 앉은 무표정하고 근심 가득해 보이는 얼굴을 한 Walter의 흰 눈동자만 번득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동안 New Milton에 도착했다. 자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영국 생활을 주님은 어떻게 인도하시려는지 궁금했다.

마지막으로 보는 대서양 Jan. 20 sun
간밤에 비가 내렸고 오전도 간간이 비가 내리다가 밝은 햇빛이 대자연을 안고 있었다. 오후 Walter를 데리고 Baton on Sea Cliff로 나갔다. 잔디밭에는 햇빛을 즐기는 노인들이 푸른 잔디 위에 가득했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대서양 저 너머로 지는 석양을 한 번 더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생에 한 번도 카메라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Walter에게 카메라 사용하는 것을 가르쳐서 사진을 찍게 하고 찍어주었다. 얼마나 잘 찍었는지 모르겠다. 파도가 찰싹거리는 자갈밭 위를 걷다가 차돌 같은 것으로 된 또 하나의 Skull(해골)을 찾았는데 전에 북쪽 해변서 찾은 것과 비슷했다. 푸른 바다, 푸른 자연 그리고 푸른 하늘이 맞닿은 거기에 내가 서 있었다. 수평선 저 너머 한 점 먹구름에 가려 겨우 얼굴을 내민 해님은 말없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사연 많은 인생의 애환들을 어둠에 다 묻어버리고 새로운 내일을 맞게 해 주려고 어두움의 장막이 드리우고 있었다. 추위 속에서 견디고 있는 해초들의 모습들이 측은했다. 돌아와 Julian 자매와 글자 만들기 놀이를 했다.

이스라엘 여행을 위한 준비  Jan. 24 목
한국 대사관에 가서 별 어려움 없이 6월 30일까지 체재 연장과 이스라엘 입국 허가를 받았다. 이스라엘 대사관에 갔는데, 오전 10-12:30까지만 영사 업무를 본다고 하여 헛수고를 했다. 대사관은 경계를 아주 심하게 하고 있었다.

런던 지하도의 재미있는 광경

지하도의 긴 길을 가는데  젊은 남녀가 붙어서 Kiss 하느라 정신이 없는 데 경찰이 와서 쫓아 보내는 광경이 재미있었고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또 런던 길거리에 군밤 장수가 있어서 흥미로웠다. 어둠이 깃든 Piccadilly Square에는 번쩍거리는 네온 불빛 속에 흥청거리는 밤의 거리는 유혹적이었다.

Cello 연주회 Jan. 28 Sat
Brian 차로 옷가지라도 살까 해서 Lymington open market에 갔지만 살만한 것은 없었다. 저녁에 Dr. Hudson 부부와 Walter와 함께 Bournmouth에 있는 Cello 연주회에 갔다. 연주자는 믿는 자매였다. 처음으로 Cello 연주를 감상하는 좋은 기회였다. 연주 후 교장 Dr. Hudson이 바이올린 한 곡을 연주하시는 데 멋있었다. 그리고 짧은 메시지로 음악회를 마쳤다. 교장 선생님은 그 지역에서는 존경받고 쓰임 받는 분이셨다.

미국 초청장 Jan. 28 Mon
미국 방문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나에게 기쁜 소식이 왔다. 강태훈 형님 보낸 초청장이 왔다. 주님은 나의 기도와 소원을 들어주시고 계셨다. 이제 한국 대사관의 경유 허가와 미국 비자를 받는 일만 남았다. 서독에서 엘리스로부터 전화가 왔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이스라엘에서 체재 연장을 해야 할 경우를 위해서 나의 신상 정보를 보내달라고 하여 보냈다. 저녁 학생 Devotion은 내 차례였는데 나의 마지막 봉사였다.

오늘은 대사관들만 드나드는 하루였다.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는 고성능 카메라가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있었다. 문의 Buzzer를 누르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비자받으러 왔다니까, 문이 열린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바로 한 달 비자를 받았다. 또 미국 경유 허가를 받아야 해서 한국 대사관에 갔는데 대사관 counter의 여성이 오늘은 파우제 하는 날이라고 내일 오란다. 그래서 좀 사정하고 머뭇거리는 동안 영사가 마침 Counter에 나왔다. 나는 아주 멀리서 왔노라고 말하니, 신청서를 받고는 오후에 오란다. 그때 영국에 와 있는 동포들이 한가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시간을 쪼개어 대사관을 찾아가는데 마치 옆집에 온 것 같이, 우리 사정도 모르고 그냥 오후에 오라, 정말 화가 나는 일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큰소리를 치게 마련인 것 같다. 영국 대사관 근무자들의 불친절한 태도는 잊지 못할 일이다.

미국 입국 Visa
오후에 한국 대사관에 가서 미국 경유가 허가된 여권을 찾아서 미국 대사관으로 갔다. 미국 대사관도 경계가 삼엄했다. 벌써 부자나라 대사관이라 달랐다. 규모가 큰 건물에 황금색 독수리가 건물 중앙에 앉아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비자 신청을 하고 한 2시간 정도 기다리니 비자가 나왔다. 할렐루야! 반가운 일이다. 좀 초조하고 염려스러웠는데 세 대사관에서 모든 것을 받아 쥔 내 기분은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웠다. 돌아오는 열차에서 오늘 힘든 하루를 보냈지만, 기쁨을 가득 안은 하루여서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떠날 준비 3-8 Feb.
이제 떠날 준비로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Walter와 John 노형 댁에 가서 차를 나누며 교제했고, 노형님께서 나의 앞으로의 여정을 위하여 기도해 주셔서 고마웠다. 저녁 모임에서는 내가 떠나는 것에 대해서 광고해 주셨다. Mr. Baymont는 내일 자기 집에 와서 한국 환등을 보여 달라는 소식을 교장이 나에게 전해 주었다. Walter는 내가 떠나는 것을 제일 섭섭해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와서 Betty 할머니를 의지했던 것 같이, 그동안 Walter도 나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Walter와 같이 찍은 사진을 찾아보니, 이게 웬일인가? 그가 나를 찍은 사진이 글쎄 몸을 반을 끊어서 찍은 것이 아닌가! 그에게 보여 주면서 어떻게 이렇게 찍었느냐고 물으니, 처음 사진을 찍어보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베를린에서 요한나 자매님의 전화가 왔는데 베를린 수양회 날 자를 의논하여왔다. 책들을 상자에 포장해서 세 상자를 집으로 보냈다. 옷들과 책 등 한 상자를 Walter 형제에게 주었더니 몹시 기뻐하였다. 내가 입으려고 웨일스에서 산 후버가 달린 털모자의 점퍼를 주었더니 요즈음 자기는 추워서 밖에 나가기가 힘들었는데 고맙다고 그 자리에서 입었다,

Quiney 노 자매님의 선물
저녁에 비를 맞으며 Quiney 노 자매님께 찾아가서 그동안의 살펴준 사랑에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아이들에게 주라고 초콜릿 한 통을 주셨다, 그리고 그동안 나를 주려고 푼푼이 모으셨다는 봉투를 하나 주시기에, 혼자 사시기에 힘든 일이 많으실 텐데 필요한데 쓰시라고 사양해도,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네 것이라고 하면서 손에 쥐여 주셨다.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노 자매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었다. 85세인 노 자매님께서 건강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봉투에는 £10 £20 짜리로 모은 £100가 들어 있었는데 조금씩 모으신 것이다. 내 마음이 찡하였다. 사실은 지금 돈이 부족해서 미국행 표를 예약 못 하고 있었는데, £100를 주님이 주시므로 표를 예약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기적이 아닌가!

Mr. Baymont 초청

연로하신 Baymont 부부께서 나의 한국 슬라이드를 보고 싶어 하셔서 오후 Tea table에 초청하여 주셨다. 이 달달한 영국의 Tea도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먹었다. 한국 환등을 보면서 활발한 한국 형제자매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은 아직 복음을 전할 기회가 많은 나라라고 하시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 영국은 이제 젊은 세대는 하나님이 없는 나라로 만들어져 가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한숨을 내 쉬셨다. 선물 봉투 하나를 주시면서 두 분이 따뜻하게 포옹해 주셨다.

미국행 표 예약 Feb. 6 Wed
서독에 갔다 와야 미국 가는 표를 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셔서 오늘 표를 사놓고 서독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표를 사는 것이 많이 싸기 때문이다. 여행사에 가서 4월 28일 New York 경유 Chicago 표를 예약했다. 이제 Visa와 표를 가졌으니 이제 미국 가는 일은 현실이 되었다.

마지막 수업 Feb. 8 Fri
오늘이 1월 학기 중간이 되는 날이고 Chelston Bible College에서의 마지막 공부였다. 오늘 독일을 가야 하므로 기차로 런던으로 가야 해서 차 시간이 되어서 수업 도중 일어나자 교장과 선생들과 학생들이 나를 박수로 보내 주었다. Brian형이 나를 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그동안 이 부족한 나를 여러 교회에 소개하여 주시고 보살펴 주시던 Dr. Hudson 부부와 헤어지는 것이 몹시 서운하였다. 학생 카드로 마지막 기차표를 샀다.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New Milton을 뒤로하고 열차는 런던을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물설고 낯 설은 이곳을 이 열차로 오면서 어리벙벙했던 일 년 전, 이제 정들고 낯익은 이 산천들이 바람같이 지나가고 있으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차창으로 스치는 낯익은 자연들은 이제 추억 속에 묻혀가고 있었다. 지난 한 해 주님은 이 부족한 것을 많이 가르치시고 훈련해 주셨다. 겪었던 모든 경험이 주님을 섬기려고 나아가는 나의 삶의 밑 걸음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이제 또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떠나가고 있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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