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dy 자매의 방문 6.23-25 1998
Judy 자매는 토론토 장 장로의 딸인데 토론토 법과 대학을 나온 변호사로 지금 상해에 있는 소쥬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는데, 부모의 권유로 우리를 찾아오게 되었다. 연길로 오게 되어서 맞이하러 내려갔다. 공항에서 맞이하여 집회가 예정된 석두 촌 한족 교회로 갔다. 조선족과 한족이 함께 어우러진 연합집회가 되었다. Judy가 처음으로 중국 농촌 집에서 음식을 먹고 자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훈춘서 북한 변경과 소련 변경을 돌아보고 열차로 목단강으로 함께 올라왔다. Judy는 주말이나 방학 때 학생들과 여행이라도 가려면 학교 당국에 신고해야 하는 간접 감시를 받고 있다고 했다. 선교헌금으로 만 원을 내놓아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부탁한 토스터 기를 가져와서 고마웠다. 목단강에는 아직 토스터 기가 없는 곳이어서 부탁을 했다. 다. 자매가 준 자금 가운데 당장 필요한 몇 곳을 지원할 수 있게 되어서 고마웠다. 우선 고성 강길선 자매 아들 장학금 1000원을, 춘양 교회 전화 가설비 530원을 지원했는데 사실은 내가 연락하기 편하기 위해서였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모이는 도문 처소에 방석을 사도록 400원을 도왔다.
오늘 단오(5.30)라고 해서 여러 사람이 단오에 먹는 쭝즈(粽子)를 가져왔다. 쭝즈(粽子)는 찹쌀에 대추 하나를 넣어서 넓은 대나무 잎으로 싸서 말린 마리엔차오(吗连草) 잎으로 묶어서 찐 삼각 밥이다.
새 아파트 학습 6.15-18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서 두 번째 학습을 하였는데 아직 새로운 곳이어서 아주 조심스러웠다. 7월 5일 첫 주에 그동안 준비한 대로 처음으로 목단강 가정교회에서 성찬 예배를 드렸다. 17명이 모였지만 성찬에는 구원받고 침례를 받은 몇 사람으로 제한했다. 한족 교회는 매월 첫 주일에 성찬 예배드리는 데 비해서 중국 조선족 교회들은 성찬 예배에 대해서 무지하고 소홀히 하고 있어서 강조하였다.
아멘 선교회 7.6- 13
아멘 선교회에서 연길을 거쳐서 우리에게로 왔다. 선교회 회장님 우리 아들 일을 듣고 관심을 가지고 오셨다고 하셔서 고마웠다. 회원들도 모두 모르는 분들이지만, 모두 학교 후배들이어서 선배 대접을 처음 받아 보았다. 은퇴하신 회장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만든 선교회로 매년 한두 번씩 선교지를 방문하여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미 지난해 우리 이삿짐을 함께 가지고 들어오면서 알게 된 인연들이었다. 이렇게 우리 선교사역을 도울 자 없는 이 막막한 곳에서 주님은 교제할 수 있는 만남을 허락해 주시고 계셨다.
천진 시 9.24-28
윤 형제는 중국 군대에 갔다가 왔음에도 중국어가 시원치 앓고 세계관도 좁아서 견문도 넓혀줄 겸 천진 가는 길에 데리고 내려갔다. 소개로 알게 된 한국 선교사 송을 만났다. 송 선교사 팀은 오피스텔을 얻어서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은 날씨가 더워서 춘추 내복을 벗고 팔 짧은 옷들로 갈아입었다. 송 선교사의 따뜻한 영접과 위로가 고마웠다. 저녁에 되자 송 선교사 팀의 규칙상 조선족은 오피스텔에 머물지 못한다고 하여 다른 조선 형제 집에서 쉬도록 해 주었다. 오후에 처음 온 천진 시내와 수상 공원을 돌아보았다. 다음 날 천진 한인교회에서 홍수 이재민들을 위한 교회 바자가 있어서 가서 돌아보다가 코르덴바지 하나를 샀다. 저녁에는 한국 사람이 하는 목욕탕에 갔는데 나는 이런 목욕탕이 처음인데 아주 좋았다. 요금은 50원인데 북방 사람들인 우리에게는 비싸서 어울리지 않았다. 한국 식당 등 물가가 한국 같아서 생활비가 많이 드는 곳이었다. 주일 오전에 한국인만 모이는 한인교회에 가보았다. 마침 종교 당국에서 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중국 국적의 사람은 절대로 참석시키면 안 된다는 법이 있다고 나에게 설명하여 주었다. 한의학을 공부하는 미국서 온 선교사는 한 부부를 6개월 훈련하여 윈난성 소수민족 사역을 위해 보내 놓고 후원하고 있었다. 다른 선교사는 내 몽골에 보내 놓고 후원하고 있었다. 미 종족 선교에 대하여 마음들을 쓰고 있었다. 이분들은 같이 일꾼을 보내 놓고 재정을 지원하면서 관리하고 있었다. 청도를 가야 하는데 기차표가 며칠 동안 없어서 날틀 표를 샀다. 점심은 임 선교사가 짜장면으로 사주셔서 고마웠다. 저녁은 송 사모님이 게탕을 만들어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송 선교사는 친절하고 마음이 넓은 분이셨다.
마지막 주일 12.27
올해의 마지막 주일 도문 처소에서 보내면서 말씀을 전하며 교제하였다. 점심은 피복공장 양 경리가 초청하여 주었다. 최 선생과 최 경리와 함께 식사하면서 조선 갔던 일들을 나누면서 앞으로 조선을 드나들면서 참고하여야 할 일들을 나누었다. 저녁은 윤 형제와 처소 식구 호범이 집에 가서 성경 모임을 가졌다. 호범 초등학생의 다친 팔을 고쳐주기로 했다. 방학하면 바로 수술을 하도록 하라고 하고 수술비 2000원은 우리가 돕기로 했다. 호주 목사의 낭패 이 분은 호주에서 회계사로서 일하면서 신학교를 다녀 목사가 되었는데 목회는 하지 않고 교육 목사로서 봉사하면서 7년 전부터 일 년에 한 번씩 휴가 겸 중국에 들어와서 순회하고 있었다. 이 분이 여러 해 전에 길림 반석 시 한 조선족의 교회당을 짓도록 자기네 교회가 후원을 하고 헌당식도 했단다. 그 교회의 조선족 장로와 집사가 한 분씩 있는데, 다음 해에 들어와서 전해와 같이 집사 집에 머물면서 부흥 집회를 하는데 둘째 날 집회를 인도하다가 공안국에 잡혀가 감방에 한 주일 갇혀 있다가 4000원 벌금을 물고 풀려났다고 한다. 원인을 알아보니 그동안 장로와 집사가 서로 다투고 있었단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이 분이 장로가 미워하는 집사 집에서 머무니 장로가 한패라고 생각하여 시기가 나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런 마음 아픈 경험을 하고 이번에는 동족 소련 변경 동영의 한 조선족 처소에서 며칠 집회를 하고 있는데, 한밤중에 자는데 갑자기 집사가 오더니 지금 삼차구 공안국에서 잡으러 오고 있는데 빨리 피하라고 하여 자다 말고 짐을 챙겨서 눈 쌓인 논 들판을 안내자 한 사람과 함께 죽으라고 달려 큰길에 오니 트럭이 하나 지나가서 세워서 돈을 주고 그곳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그 목사는 나에게 지금 생각하면 사실은 공안이 나를 잡으러 오는 것도 아닌데 집사가 나를 쫓아내려고 일을 만든 것 같다고 몹시 언짢아하고 있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그토록 열정을 쏟던 중국은 다시 오지 않았다)
이 해의 축복들
“우리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화에게소로다.”시 211편
미국 Atlanta 한인 침례교회 여전도회 이혜숙 회장의 전화가 왔다. 서울 은평교회에서 함께하던 김형숙 자매의 제안으로 올해부터 매달 $50을 후원하겠다는 반가운 소식.(2.17)
유치원 사범학교 리홍 학생의 장학금을 위하여 토론토 김대억 목사가 학생들이 모은 $ 600을 보내 주어서 그의 하반기 학자금이 해결되었다.
토론토 감리 교회에서 매달 $100을 후원한다는 반가운 연락이 왔다. 나는 이 교회를 잘 모르는데 우리가 개척할 때 한번 이 교회의 남선교회 주말 수양회에서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었는데, 그때 변화와 감동한 분들이 있었다는데, 이분들이 우리 아들 사고 일로 마음이 동해서 인지 이렇게 중국 선교를 후원하도록 일을 만든 것 같다. 주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여러 가지로 채워주시고 계셨다.
New York Flushing에 있는 김필식 목사가 선교헌금 $500을 보냈왔다.(6.)
1998년을 보내면서,
올 한 해도 많은 일이 있어서 바쁜 한 해를 보냈지만, 아직 정착의 길은 열리지 않고 있어서 답답한 마음이다. 9월에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길이 열려서 나름대로 후원하도록 한 것이 큰 보람이다. 다시 오는 새해에 주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중국에서 또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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