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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1996-1998 정착

이런 일 저런 일

중국식 손님 대접 문화

강남 조선족 소학교 교장의 초청으로 학교에 갔다. 교무실에서 김인순 여선생이 나에게 본이 어디냐고 물어서 알고 보니 종씨 집안 동생뻘이 되었다. 이 여선생 덕분에 집안 형님과 조카들도 알게 되어서 반가웠다. 오늘 함께하는 손님은 목단강 시 동안구 만사 처 주임 한족 부부와 조선 사람 성형과 의사 서성복 씨였다. 조선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서로 사귀는 시간을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헤어지려고 인사를 하자, 교장이 아니라고 하면서 한 곳에 더 가야 한단다. 따라가 보니 가라오케(노래방)였다. 평생 처음 중국 노래방에 와 본 것이다. 공기도 안 좋고 분위기도 안 좋아서 힘들어하다가, 교장에게 공기도 나쁘고 그만 가자고 해서 나오니 저녁 6시였다. 이제 정말 헤어지는가 하고 인사를 하자, 교장이 또 아니라고 하면서 아직 안 끝났다고 하면서 우리를 데리고 다른 조선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나는 도저히 먹을 수도 없는데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고 힘들었다. 이제는 어두워진 저녁 식당을 나와서 오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하자, 민사 처 주임이 그냥 헤어지면 섭섭하다고 목단강에 딱 한 곳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헤어져야 한단다. 나는 이런 커피집이 있는 줄도 몰랐다. 거기서 시간을 보내다가 9시나 되어서야 헤어졌다. 나는 아직 이곳 사람들의 습관과 교제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오늘 처음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였는데,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이렇게 하는 것이 중국 사람들이 손님을 접대하는 일상적인 순서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나는 오늘 이분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면서 중국에서 살려면 구별된 색깔보다는 보통 중국 사람으로 함께 잘 어울리면서 융통성 있게 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안 시 환쟈 향 유치원 건축공사비 예산 2.1997  

오늘 환자 향(면) 회의사무실에서 간부들과 유치원 건축공사비에 대해서 의논을 하였다. 향 정부에서는 1㎡에 850원을 내놓았다. 나는 너무 비싸다고 하면서 500원 예산을 내놓았다. 오후에 다시 유치원 건축비를 의논하여 1㎡에 550원으로 조정이 되었다.

 

유치원 설립계약 취소

그런데 4월에 내 유치원 땅에 다른 사람이 집을 짓고 있어서 탈이 생겼다. 두 달이 지나서 목단강 시 정부 화교위원회에서 나를 오라고 해서 가보니, 환 쟤 향 간부들을 올라와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향 간부들의 이동이 있었는데, 이때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계약한 내 땅을 넘겨 준 것이라고 변명한다. 물론 누군가가 돈을 받아먹었을 것이다. 새 향 장은 젊은 사람으로 자기는 외부에서 와서 내용을 잘 모른다고 하면서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땅을 주도록 하겠다고 제안한다. 나는 거절하고 계약금(6,000원)을 돌려받았다. 한나라의 지방정부와 외국사람 사이에 맺은 계약이 이렇게 휴짓조각같이 여기는 이곳 정부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 사람도 계약해 놓고 융숭한 대접까지 받고 함흥차사 된 사례도 있고 보면 피차가 서로 이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일들을 통해서 중국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사람들이 한 일들을 통해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유치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내 힘이 부치는 것을 주님은 아셨다. 나도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데 핑계가 없었다. 이 일로 나의 근심을 덜어 주셨으며, 우리가 하기에 부담이 없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기를 바라보게 되었다. 모든 것은 “여호와 이레” 이다.

 

막힌 수세식 변기통

지난번 아파트 학습 때 변기통이 막혀서 물이 내려가지 않아 한 주간째 고생하고 있었다. 그동안 수리공을 불러서 뚫느라고 노력했지만 되지를 않았다. 어제는 시장 안에 있는 화장실을 갔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지켜보고 있어서 볼일이 되지를 않았다. 한 참 거리에 있는 유료 화장실은 깨끗하고 사람이 많지 않아서 편했다. 그러나 이렇게 다니는 것이 너무 불편했다. 오늘 새 변기로 갈기 위해서 지난번 뚫으려고 애쓰던 수리공을 데리고 와서 그에게 도대체 뭐가 막혔는지 알고 싶으니, 깨보라고 했다. 깨어보니 그 안에 큰 감자 하나가 들어가 박혀 있었다. 이제 기억이 났다. 학습 때 동녕 시골서 온 자매가 설거지물을 변기통에 붓는 것을 보았다. 시골에서 아직 수세식을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자매가 무심코 버린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시집간 딸의 사연

내가 복음을 전하여 회심한 사범학교 교수인 손 자매님이 한국에 시집간 딸이 한국 남편을 버리고 도망간 문제를 의논하면서 도와주기를 청하였다. 밤 10시경 한국에 전화하여 손 선생 딸과 결혼한 한국 남자와 통화를 했다. 그는 결혼 비용 5백만 원과 훔쳐간 자기 여권만 돌려주면 결혼사기로 고소한 것을 취하하겠다고 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한국에 나갈 욕심으로 원치 않는 결혼식을 하고 나가서 이렇게 배반한 것이다. 몇 달 뒤 한국에 나가는 길에 따로 두 사람을 만났다. 남자가 폭력이나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 남자는 요리사로 열심히 사는 것 같았다. 그저 가정의 부인으로서 살림을 잘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살림보다는 돈벌이를 해야 하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중국에 돌보아야 할 아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 남자를 속이고 살다 보니 이런 갈등이 생겨난 것이다. 싫으면 혼자 떠나지 남편의 여권은 왜 가지고 떠났느냐고 묻자, 중국에 들어가서 부모님을 괴롭힐까 봐 그랬단다. 두 사람 잘 타일러 이혼 절차가 잘 마무리된 것 같다.

 

호적 이름 바꾸기와 여권 얼굴 바꾸기

최 자매가 갑자기 한국에 간다고 한다. 가는 방법은 한국에 시집간 동생의 시어머니 이름으로 온 초청장으로 자기가 나가려고 호적 이름을 바꾸고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한국에 나가는 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한국 여권도 이곳에서는 중국 돈 5만여 원 (한국 돈 5백만 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여권에 사진이 다른데 어떻게 남의 여권을 가지고 나갈 수 있냐고 물으니, 여권 위조 업자가 여권을 냉동실에 30분 정도 넣었다가 꺼내면 사진을 쉽게 뗄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자기 사진을 붙이고 가짜 철 도장을 누르면 된단다. 이렇게 하는 것을 여기 말로 골(사진)을 바꾸어 나간다고 한다. (그때 한국 여권은 풀로 사진을 붙였기 때문에 쉽게 가능한 일이었다)

 

유치원 사범학교 장학금

멍리쥔(孟丽君) 학생

주님의 은혜로 어린 두 자매를 자급자족하는 주일학교 교사 양성을 위하여 유치원 사범학교에 보냈다. 중국은 초등학교와 유치원 사범학교는 중학교를 나온 학생들이 가는 고등학교 수준의 3학년 학제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사람들이 편입하는 경우는 열외로 2년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멍리쥔(孟丽君) 1995년 목단강 유치원 사범학교에 입학하여 1997에 졸업하여 유치원교사로 일하면서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리홍(李红) 학생

동녕 한족 교회의 설립자 추이 자매의 딸 리홍을 목단강 유치원 사범학교에 입학시켰다. 학교에서는 2년 치 학비와 교과서값 1950원을 내라고 요구한다.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몇 년 치를 한 번에 내라고 하느냐고 묻자, 그렇게 안 하면 학생들이 중간에 그만둔다고 한다. 여기 대학도 4년 치 학비를 한 번에 내라고 하기도 한단다. 이렇게 학비를 미리 다 내게 하는 나라가 또 있는지 궁금하다. 중국 부모들이 자녀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다. 리홍도 동녕에서 유치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교회의 어린이들을 잘 가르치고 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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