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선교학교 (13) 썸네일형 리스트형 8. Chelston Bible College 학교로 돌아옴 10.1 Mon, 1979 오늘은 아무 부담이 없는 날이라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나는 그동안 영어로 대중 앞에서 말하고 교제하는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마음이 몹시 피로해져 있었다. 9시가 넘도록 내 방에서 나오지 않고 쉬었다. 참 좋은 아침이었다. 차를 한잔 먹으려고 나왔더니 Priscilla 자매님은 아들에게 옷을 입히고 도시락을 들려서 기술학교를 보내고 있었다.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돌아올 때까지 늘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자매님의 수고가 많으셨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포근한 소파에 앉아서 마시는 홍차 한 잔이 그동안의 피로를 다 가시게 하는 듯했다.. 점심시간에 Mr. David Hollingsworth 가 직장에서 점심을 나와 함께 하시려고 오셨다. 자매님이.. 7-1. Bitten Bible chapel 선교사 수양회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7. Llanfairfacan 선교사 수양회 Llanfairfacan 선교사 수양회 9.15 M-22 St, 1979 오늘은 4주간의 런던 생활을 끝내고 선교사 수양회가 있는 Wales 북쪽 Llanfarefacan으로 가기 위해서 13:00 Holy Head 행 장거리 열차를 탔다. 웨일스 켈틱 어에는 ‘LL’ 자를 두 번 겹쳐 쓰기도 하는데, 발음은 된 후음(guttural sound)을 내는 "크"였다. 두 시간 정도 가서 Chepster 역에서 사람들이 오르는데 저쪽으로 가는 여성의 뒷모습이 Ruth 자매 같아서, Ruth 하고 불러보니 그였다. 그는 반가워하면서 마침 비어 있는 내 옆자리에 앉아서 배가 고프다고 하기에 마침 주머니에 있는 사탕을 몇 개 주니 좋아했다. 함께 여행하면서 그동안의 일들을 나누면서 2시간 이상 지루하지 않게 목적.. 6. London의 이모저모 런던 생활 8.21-9.15 1979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기만 하다. 내 팔자에 세계의 도시 런던에서 한 달을 생활하게 됐으니 말이다. `Logos Language School에 가서 한 달 회화반 오전 과정을 등록했다. 세를 든 이 층 집주인은 Greece 사람으로 자기네는 아래층에 살고 이 층 방 4개를 학생들에게 세를 놓고 있었다. 방세는 한주 £17이었다, (£1=4.24DM).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온 학생들이 살고 있었다. 하나의 공동 냉장고는 자기 물건은 표시를 해야 했다. 가스레인지로 알아서 해 먹는다. 내 형편에 방세가 싼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가 내 일생에 또 오리라고 생각지 않아서 돈 보다 얻게 될 가치가 더 크리라 믿었다. 자치에 필요한 간단한 살림 도구를 준비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4. Wales Wales로 가는 날 3. 1979 아침 식탁에 내려가니 Dr. Hudson의 메모가 놓여 있었다. Bristol까지 가는 기차 여행안내였다. 참으로 자상하셨다. 안 도와주셔도 내가 알아서 갈 수 있는데 이미 준비하셔서 나의 수고를 덜어 주셨다. 오늘부터 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리라는 바람이 커지고 있었다. New Milton에서 7:14분 차로 떠나 Southampton에서 갈아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Salisbury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서북쪽으로 올라가는 여러 시간 동안 영국 서부의 자연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피곤하지 않았다. 마주 보고 앉는 열차 좌석 중간에 간이 식탁이 있어서 편했다. 드디어 Bristol에 도착했다. Bris..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