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국선교학교

4. Wales

Wales로 가는 날 3. 1979

아침 식탁에 내려가니 Dr. Hudson의 메모가 놓여 있었다. Bristol까지 가는 기차 여행안내였다. 참으로 자상하셨다. 안 도와주셔도 내가 알아서 갈 수 있는데 이미 준비하셔서 나의 수고를 덜어 주셨다. 오늘부터 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리라는 바람이 커지고 있었다. New Milton에서 7:14분 차로 떠나 Southampton에서 갈아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Salisbury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서북쪽으로 올라가는 여러 시간 동안 영국 서부의 자연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피곤하지 않았다. 마주 보고 앉는 열차 좌석 중간에 간이 식탁이 있어서 편했다. 드디어 Bristol에 도착했다.

Bristol 

차에서 내리면서 보니 머리가 검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저 멀리 나를 알아보는 두 부부를 찾으면서 나아가고 있었다. 저만치 키가 좀 작은 노 신사 부부가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든다. 나를 알아본 것이다. 나그네가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그분들의 차로 시내를 벗어나 긴 다리를 건너자, Wales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영어와 웨일즈어로 된 표시판이 나를 맞아주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영연방 Wales였다. 70Km를 달리면서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웨일스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즐겼다. 그분들이 사는 Wales의 작은 마을 Abegavenny로 왔다. 원래 함께 나를 맞이하기로 한 부동산 소개 사업가이신 Mr. Patfield 씨는 바빠서 다음 화요일 만나기로 했다고 했다. 제임스 선교사의 여동생 남편은 Mr. Lloyd 셨다. 두 분은 은퇴하시고 여생을 여기서 보내시려고 새로 지은 이 층 주택을 사서 보금자리를 마련하신 것이다. 제임스 선교사의 여동생은 간호사로 은퇴하셨다고 한다. 풍성한 대접을 받으면서 Wales의 밤이 깊어갔다. 그 집 아들 Steven이 나의 환등의 해설을 녹음해 주어서 고마웠다. 그는 sales man을 하고 있다고 하며, 여자 친구와 곧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Abegavenny Gospel Hall 3.25 Sun 1979

영국 Wales에서 첫 주일을 Mr. Lloyd 부부와 Abegavenny 교회에 갔다. 예배에 앞서 장로님은 내가 왔음을 알리고 나의 천거 서를 읽어주었다. 그리고 교회의 환영을 받았다. 헌금 시간에는 천으로 만든 두 개의 헌금 대를 두 손에 들고 헌금을 거두고 있었다. 하나는 붉은색 헌금 대는 H(교회), 남색 헌금 대는 M(선교)이라고 쓰여 있었다. 선교와 교회를 위한 헌금을 구분해서 원하는 대로 헌금을 하게 하고 있었다. 예배 뒤 교회의 목회자이신 Mr. John Weaver 가 나와 악수하면서 내 손에 무엇인가 주어서 나중에 보니 £5였다. 그렇게 악수할 때 무엇을 받아보는 경험은 처음이다. 주님의 사랑을 전해주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 것 같다.

Cwmbran 교회

주일 오후 27Km를 달려서 Cwmbran이란 산골 마을에 도착하였다. 먼저 장로님이신 Mr. Peter Scammer 댁에 들려 Tea port (차와 비스켙과 케이크로 된 간단한 저녁)을 즐기고 교회로 갔다. 15분 환등을 보여주고, 10분 정도 간증을 하였다. 교회에서 £10를 주시고, 개인들이 악수할 때 £5, £5 주셔서 오늘은 20파운드나 축복이 되었다.

Monmouth 방문 3.26 Mon

오후 Mr. Lloyd 차로 함께 Monmouth라는 곳에 갔다. 산길 좌우편에 펼쳐져 있는 산야에는 등고선을 따라 이루어진 개간지들은 참 인상적이었고, 끝없이 푸른 초장에서 유유히 풀을 뜯고 있는 젖소들, 양들, 말들은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아름답고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몇 달 공부하느라 찌든 마음과 정신을 회복하는 좋은 시간이 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월요일 저녁에 나의 간증을 듣고 교제하기 위해서 한 가정에 모여 Tea port을 나누며 교제하였다. 집회가 끝나고 헤어질 무렵 한 자매님이 £5를 손에 쥐여주셨다.

Cardiff 3.27

아침에 Mr. Lloyd 노형은 나를 데리고 Wales 서울인 Cardiff시로 간다고 하셨다. 나는 그곳에서 무슨 계획이 있느냐고 물으니, 특별한 계획은 없고 그냥 시내 구경을 간다고 하셨다. 여기 온 며칠간은 하루도 쉬지 않고 집회에 참석하느라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해 있었는데 오늘 가벼운 마음으로 나들이를 가게 되어서 기뻤다. Cardiff 신 Wales의 서울로 고풍 있는 고성으로 잘 보존되어 있고, 그 옛날 웨일스 봉건주의 영화로운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고성과 시내를 돌아보고, 나는 박물관을 보고 싶다고 청하여 박물관에 갔다. Wales의 역사와 기사 시대의 색다른 문물들을 보면서 즐거웠다. 오늘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쉬면서 City Tour를 한 좋은 하루였다.

Cardiff시에는 생각보다 모임들이 많은 데 20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이곳의 모임들은 지난날 어떤 영적 깨달음에 의해 한 모임이 50여 명이 넘으면 나누어져서 새로 모임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시내에는 한 Block 내지 두 Block마다 작은 모임이 개척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시내 한 모임에 참석하고 그다음 블록에 또 모임이 있는 것을 알려 주어서 보았다. 그때 형제들은 식구가 많으면 형제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가 어려우므로 가족 형태의 가까운 교제를 위하여 그렇게 했다고 한다. 이상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식구들이 적어져서 가까운 몇 개 모임들이 함께 모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Wales는 석탄 대 생산지로 한때는 Cardiff의 항구는 석탄 무역항으로 인구가 몰려들어서 도시가 크게 발전하다가 석탄 생산이 줄어들면서 지금은 경공업 서비스업 관광업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편이라고 한다.

Wales 알아보기

원래 웨일스 사람들은 잉글랜드에서 영국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가 서쪽으로 쫓겨 와서 자리 잡고 살다가, 1536년 잉글랜드 왕 헨리 8세에 의하여 영국에 합병되었다. 크기는 강원도만 하고 낮은 산악지대로 원만한 산야로 자연환경도 비슷하다. 웨일즈 사람들의 성격은 활발하고 경쾌하여 노래하며 춤추는 것을 즐겨한다고 하여 "노래하는 민족"으로 별명이 붙어 있다고 한다. 어쩌면 한민족과 닮은 데가 있는 것 같고, 그들의 깃발이 용으로 상징하는 것도 중국과 우리네 종교문화와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다.

인구는 약 3백 만이며, 웨일스의 원주민은 켈트인으로 그들의 나라였다. 17세기 후반부터 영어와 잉글랜드 문화가 들어와서 그들의 언어와 전통문화가 서서히 사라져 갔지만, 지금도 웨일즈어(캘틱어)를 완전히 하는 사람들이 56만 명이나 있어서인지, 낯 12시 뉴스는 웨일즈어로 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웨일즈어는 점점 나이 많은 세대의 언어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지금도 영어를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로표지판 등 에는 이중언어로(영어와 웨일즈어)  되어 있었다. 

 

 Bristol로 3.29 Thu

오늘은 Bristol시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시는 Mr. Pet Field이 나를 데리러 오셨다. 이 분은 1972년 서울을 방문하여 제임스 선교사와 한국을 돌아보았다고 하셨다. 오늘 나를 데리고 가다가 무인지경에서 길을 잃어버려서 들에서 많이 헤매어서 미안해했다. 마침 지나는 차가 있어서 길을 물어 제대로 올 수가 있었다. 그분 집은 마치 별장 같았다. 이 분은 독신으로 사시면서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집회가 있는 날이라 함께 교회로 갔다. 이 분의 교회는 고아의 아버지로 유명한 Mr. George Muller가 설교하시던 바로 그 교회였다. 역사가 있는 이런 모임에서 주님께 경배를 드린다는 것이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내 마음을 쓸쓸하게 하는 것은 옛 영광은 다 사라지고 적은 무리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 40분간 환등을 보여 드리며 간증을 하였다. 집회가 끝나고 서로 교제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어떻게 된 사람들이 좀 친절하지도 않고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서먹하게 있다가 모두 헤어졌다.

 

Bristol 알아보기

18세기 Bristol은 교통의 중심지이며 노예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도덕적으로 깊이 타락하고 있었다. 구원을 확신한 John Wesley 목사와 그의 동역자들이 함께 성결 운동으로 세속화된 기독교를 개혁한 감리교 역사의 산실이었다. 그러나 개혁자 웨슬리 목사와 그의 동역자들의 아름다웠던 개혁의 빛들이 이제 시들어져 가는 것 같고, 오만 번의 기도 응답으로 고아들의 생명을 살리던 고아의 아버지 George Muller가 살던 Bristol이 이제 그렇게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없는지, 그때의 영광을 되살리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품은 Bristol, 이 속에 사는 영혼들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렇게도 성령의 불이 뜨겁게 타던 그때, 차고 넘치던 찬양 소리가 사라진 교회당은 지금 health club으로 쓰고 있는 모습은 내 마음을 너무 허전하게 하고 있었다.

Bath 3.30 Fri.

Mr. Pet field씨와 함께 시내에 가서 나에게 £25가 든 봉투를 주면서 나중에 자기가 좀 더 보내 주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그리고 나를 기차역에 데려다주셨다. Bristol에서 기차를 타고 Bath에 내리니 할머니 학생 Betty가 나를 맞아주었다. Sister Betty는 영국의 추억 속에 잊지 못할 몇 분 가운데 한 분이시다. Betty 자매님은 유대인인 남편과 살다가 홀로 되어 지금까지 침례교회에서 집사로서 사회봉사도 하면서 주님을 열심히 섬기는 헌신 되어 있는 경건한 자매 설교자이다. 형제교회 자매회의 부름을 받아 말씀 교제도 나누는 자매님이었다.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살고 계셨다. 이곳은 로마 시대 유적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관광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오후에 500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로마제국의 Abbey(천주교 사원)를 돌아보았다. 오후 늦게 Hey Hill Baptist Church의 목사님이 나를 데리러 왔다. 나와는 동갑내기로 활달하고 재미있는 분으로 이름은 Geoffrey 였다. 그분 집에 도착하니 서독에서 앤더슨과 엘리자베스의 편지가 와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다음 날 오전에 Betty와 함께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온천 목욕탕과 시내를 둘러보았다. 아내에게 보낼 벽걸이 하나를 사는데, Betty가 자매를 위하여 앞치마를 하나 사주셨다. 오후에 침례교회의 Michael 형제가 와서 나를 데리고 자기가 일하고 있는 Hospital Radio Station Studio를 구경시켜 주었다. 저녁 지방 소식 시간에 Hey Hill Baptist Church에 한국에서 Evangelist 김제화가 왔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Hey Hill Baptist Church 4.1 Sun

Bath에 있는 Hay Hill Baptist Church는 대단히 크고 웅장했다. 안에는 이 층으로 되어 있고 수백 명이 앉을 수 예배당이다. 이 층은 올라가지 못하게 해 놓았고 강대상을 중심으로 하는 자리에만 앉게 하고 있었는데, 백여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넘쳤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기독교가 몰락해 가고 있는 영국을 보는 듯했다. 과거의 영광은 이제 다 어디로 갔는가? 하고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목사는 나를 앞으로 나오게 하고는 몇 마디 한국에 대하여 Interview를 한 뒤 한국 찬송을 듣기를 원한다고 하여 "No Turning Back"을 한국어로 불렀다. 자매들 가운데는 모자와 수건을 쓰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에서 £10를 주시면서 나를 격려해주셨다. 며칠 머문 이곳에서 나는 여러 가지 영 육 간에 귀한 경험과 배움을 얻었다. 그리고 Geoffrey는 혹 앞으로 영국 비자를 신청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천거서 한 장 써주어서 고마웠다.

 

Echoes of service 

이 Bath 시에 영국에 으뜸가는 복음주의 선교회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교회사의 한 장을 메우고 있는 형제교회(Plymouth Brethren)의 선교회의 아담한 3층 건물이 124 Wells Road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독교가 빠르게 쇠퇴해 가는 영국에서 그래도 천여 명 가까이 선교사를 세계 여러 나라에 보내 지원하고 있었다. 영국의 모든 교단 가운데 가장 많은 선교사를 내보내고 있는 자랑스러운 형제교회의 선교회이다. 내가 이곳을 두 번째 방문하게 된 것은 남부 바닷가 도시에 있는 Swan Sea Bible College에서 교수를 하는 얼 데릭 한국 선교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초청을 받았다. Echoes 회장, Mr. Warren의 초청으로 그 댁에 머물면서 또 새로운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Echoes에서 세계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을 어떻게 돕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수요일 저녁에는 한국의 소식과 간증을 하는 시간을 주어서 뜻하지 않은 귀한 교제들을 모임에서 나눈 것은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큰 특권이었다. 또 Betty 노 자매님도 회장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모임의 자매회의 초청으로 말씀 교제도 나누며, 사회활동을 통해서 모임 자매들과 교제하면서 여러 모임의 자매회의 초청을 받기도 하여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이 그렇게 폐쇄적이 아니었다. 어떤 전문분야에 있는 믿는 형제나 자매가 단지 모임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거리를 두고 교제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모르면 그가 누구든지 배우는 여유를 누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영육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라 믿는다.

New Port로 4월 2 Mon

오늘은 또 길을 떠나야 한다. Betty와 함께 Bristol역에 나와서 학교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나는 Wales New Port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지난 삼일은 즐거운 날들이었다. New Port에 내리니 Mr. Lloyd 부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Lloyd 부부가 나를 데리고 Cardiff에 있는 당신의 딸네 집으로 갔다. 사위는 프랑스 사람으로 함께 양장 양복 판매장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한 20여 곳의 형제교회가 있다고 했다. 저녁에 Adams Down 교회 모임이 있어서 나를 데리고 갔다. 아름답고 큰 건물은 300여 명도 앉을 수 있는 예배당에 겨우 15여 명이 왔다. 주일에는 한 25여 명이 나온다고 했다. 형제교회든 아니든 영국 전체 기독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슬픈 통계가 이미 나와 있다. 영국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이제 영국은 하나님의 영광이 제삼 세계로 옮겨갔다고 싶게 말하는 것을 듣곤 한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Charles Darwin 1859년 '종의 기원. 이란 어처구니없는 진화론으로 하나님의 창조론을 부정하기 위하여 내놓았을 때 아직 창조과학 지식이 없었던 그때 기독교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진화론을 강하게 반대하다가, 결국은 진화론과 타협하면서 창조론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면서 기독교는 진화론이라는 허상 앞에서 서서히 무너지면서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 생각해 본다. 이 교회는 1852년에 시작되었고, 1877년 10월에 지금 이 예배당을 지었다고 했다. 한 세기가 넘어가면서 부흥의 불길은 진정 시들어져 가고 있는가? 집회 뒤에 형제자매들 멀리서 온 나를 반가워 해주면서 잠시 교제의 즐거움을 나누었다. 교회에서 £10, 그리고 Mr. Lloyd 딸이 £10, 또 Lloyd 노형도 £2를 주셨다. 가는 곳마다 학생이어서 사랑의 교제가 적게나마 끊이지 않고 있었다. 오늘로 잠시 외유를 마치고 다시 Abegavenny 노형 댁으로 돌아왔다.

도깨비 시장 4.3 Tue

오늘은 이곳의 거리에서 자유 시장이 서는 날이다. 꼭 한국의 장날을 연상케 했다. 볼거리가 많고 재미있었다. 가지고 있던 살림 부스러기, 가지고 있던 것은 무엇이든지 다 가지고 나와 팔려고 벌려 놓고 있었다. 특히 가축을 파는 곳에는 많은 양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시장터에 한국같이 먹을거리가 별로 없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Abegavenny gospel Hall 전도대회 4.4 Wed

이곳 교회의 전도대회를 위해서 Lloyd 노형과 나는 전도지를 가지고 집집이 돌리는 일을 했다. Lloyd 노형이 길에서 한 남자분을 만나 전도를 하면서 자기 처남이 한국에 선교사로 가 있는데 내가 그에게서 침례를 받은 형제라고 소개하면서 인사를 시켜 주셨다. 오전에 우리 구역은 그런대로 전도 집회 초청장을 다 돌린 셈이다.

Barcord Gospel Hall

12시가 다 되어서 우리는 39Km 정도 떨어진 Barcord란 곳으로 떠났다. 해발 450m 산정에 차를 세우고 준비해 간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으니 꼭 Picnic을 나 온 것 같았다. 한 형제 댁에서 tea를 나누고 모임으로 갔다. 교회는 8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예배당은 아담하고 실내 장식은 아름답게 웅장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Pipe organ도 벽에 달려 있지만, 지금은 쓰는지 의문이었다. 여기도 예배당 크기에 비하면 너무 적은 25명 정도가 모였다. 환등을 보여주고 간증을 하였다. 사회자는 주님께서 한국의 소식을 우리가 들을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큰 특권이라고 하셨다. 집회 뒤에 친절한 교제의 악수들을 해 주셨다. 어떤 자매님이 교제를 £5를 손에 쥐여주었다. 모임에서 봉투를 하나 주었는데 자그마치 £50나 들어있어서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받아 본 교회 선물 가운데 제일 많은 축복이었다.

Abegavenny교회 4.6 Fri

금요 모임에서는 Abegavenny 교회에서 한 10여 분 간증하고 환등을 보여주었다. 주로 이 지방은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고, 동양인이 거의 없어서 한국 형제를 만나서 한국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었다. 제임스 선교사 때문에 조금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모임에서 £10든 봉투 하나를 주셨고, 한 성도가 £3를 주셨다.

Cwmbran 방문 4월 7 Sat

오늘은 처음에 간 적이 있는 Cwmbran에 있는 Stephan 형제와 Jullian 자매님이 와서 나를 데리고 다른 교회로 갔다. 나를 위해서 교제의 집회를 마련한 것이었다. 저녁 집회는 한국에 대해서 듣기 위하여 모인 모임이었다. 나의 간증을 하고 환등을 보여주었다. 모두 한국에서 주님께서 역사 하시는 일들을 들으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모임에서 £10를 주셨다. 다른 모임에서 내 간증을 처음 들었던 자매님들이 거기 있었는데 반가이 교제의 악수를 하면서 처음보다는 영어가 많이 좋아졌다고 격려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Jullian 자매님 댁에서 차와 cake을 나누면서 교제하고 나를 데려다주었다.

Anderson 선교사의 방문 4.10-11 Wed

오늘은 앤더슨 선교사님이 한국에서 고향 애란 Balfast로 가는 길에 독일에 들러서 한국 자매들과 교제를 하고 이곳에 오시는 날이다. Lloyd씨와 함께 New Port 공항에 가서 맞이했다. 고국을 떠나 좀 쓸쓸하던 차에 앤더슨 선교사를 보니 아버지를 만난 듯이 반가웠다. 독일에서 박용숙 자매님이 보낸 100마르크를 전해주셔서 자매님께 감사한 마음이었다. 주님은 여러 가지로 날 돌보아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음 날 오전 앤더슨 형님과 잠시 교제할 수 있었다. £90과 100마르크가 든 봉투 하나를 한국 가서 집에 전해 달라고 드렸다. Balfast에 갔다가 한국을 가실 테니 이 봉투가 한참 후에나 전해지겠지. 앤더슨 형이 내 생활에 보태 쓰라고 £50와 50마르크를 주셨다.

Glanlyn Gospel Hall weekend Conference 4.13 Fri

오늘은 Lloyd 부부가 나를 데리고 Glanlyn Gospel Hall에서 있는 주말 Conference에 갔다. 여러 모임에서 오신 형제자매님들의 교제가 풍성했던 하루였다. 강사는 Scotland에서 온 Mr. Graig Rodgers로 그의 말씀은 모두를 감동시키는 듯했다. 아주 심한 Scottish 억양을 쓰고 있었는데 England에서는 Scottish 사투리라고 말한다. 오전 오후 종일 그곳에서 보냈다. Barcoed 모임에서 온 Holifield부부가 나를 보더니 반가워하면서 악수하는 손에 £10를 쥐여주셔서 고마웠다. 먹고 놀고 있어도 주님은 이렇게 은혜를 주시니 너무 놀라운 일이었다.

Clive Gospel Hall 수양회 4.14 Sat

이 집에 있는 동안 노 자매님은 요리하고 나는 항상 설거지하고 Lloyd씨는 마른 행주질을 하였다. 부엌일을 끝내고 노형과 함께 뒤에 있는 텃밭 일을 해드렸더니 아주 기뻐하셨다. 그리고 오전 9시경에 부부는 나를 데리고 Clive Gospel Hall에서 있는 주말 수양회를 갔다. 어제와 같이 여기서도 아는 얼굴들이 여러분 있었다. 가까이에 폐허가 된 고성 주위로 연못이 둘러 있는데 아름다웠고 쉬는 시간에 좋은 산책길이 되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인지 봄기운을 물씬 느꼈다.

Abegavenny Gospel Hall 4.15 Sun.

오늘 Abegavenny 교회의 만찬 예배에서 12살 먹은 아이가 찬송을 택하여 같이 부르게 되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을 내 일찍 보지 못해서 그 아이가 아주 귀하게 보였다. 나는 “홀로” 찬송을 읽고 기도로 참여하였다. 오늘 예배는 성령님께서 역사 해 주셔서 마음에 풍성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동안 형제자매님들과 정이 들었는데, 오늘 작별의 인사를 나누어야만 했다.

Mount Joy Gospel Hall-제임스 선교사 모임-

저녁에는 New Port에 있는 Mount Joy Gospel Hall에 갔다. 제임스 형님과 동생 Lloyd 노형 부부가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하신 곳이고, 제임스 선교사는 이 교회에서 한국 선교사로 천거를 받았다. 넓은 강단은 회중석보다 높게 만들어져 있었고 보기 좋은 문양으로 된 난간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강대상을 이렇게 꾸미는 것은 영국교회의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제임스 형님이 한국에서 강대상을 꾸미는 것을 싫어하고 회중과 눈높이를 같이하려는 것을 보면서 영국에서 그렇게 하는 줄로 생각했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이 하고픈 생각을 한국에서 해보는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높은 강단에는 세 분이 앉아 계시는데 사회자, 성경 읽는 분, 찬송 인도자들이었다. 저녁 모임인데도 한 백여 명이 모여서 풍성했다. 제임스 형님의 안부를 묻는 분들이 많았다. 시간이 없어서 환등 만 보여 드렸다. 대개 설교가 30분 정도로 제한되어 있어서, 다른 형제분이 설교하고 그리고 나에게 한 10여 분을 주신 것이다. 나는 이분들이 시간 계획에 너무 융통성이 없다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형제를 통해서 한국 소식을 보고 듣고자 하는데 한 10여 분 더 앉아 있을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안 되는가 보다. 교회에서 사랑의 교제 £10를 주셨다. 영국 모임은 영국 설교자에게는 사례를 얼마나 하는지는 모르지만, 주로 내가 받아보는 축복들은 10파운드가 기본이었다.

Adams Down Gospel Hall 4, 16 Mon

아침 식사 뒤 Mr. Lloyd와 나는 집 뒤에 있는 Sugar Loaf 산으로 올라갔다. 돌담에 핀 이름 없는 야생화들이 나그네의 마음에 시상의 감정을 일으키고 있었다. 저 아래로 보이는 농촌 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였다. 오후에는 Adams Down 모임의 수양회에 참여했다. 부딪혀 보면서 많은 경험을 한 재미있는 휴가가 끝나가고 있었다. 경애하는 Lloyd 부부는 내가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잘 해 주셨고, 주위의 교회들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여기 있는 동안은 분위기가 좀 완고하신 모임들만 방문하는 경험을 가졌다. 그동안 Lloyd 노 형 부부가 이 부족한 사람을 위하여 계획해 주시고 차 운전을 하여 주시는 수고를 많이 해 주셨다. 두 내외분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학교에 돌아가면 또 영어문제 속에 부딪히며 살 것을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무거워 오는 듯하다. 그저 운명같이 부딪혀 보는 것 외에는 아무 대책이 없었다.

Back to School 4.17 Tue

지난 두 주간은 꿈만 같이 지나갔다. Lloyd 부부께서 또 나를 Bristol 역까지 데려다주셨다. 너무 고맙고 친절한 분들을 뒤로하고 3:15분 차로 South Hampton으로 해서 New Milton 학교로 돌아왔다. 사랑하는 아내의 편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매가 일일 공부 배달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수고가 많고 힘들까 그래도 살려고 애쓰는 아내의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였다. 사역하다가 내가 공부하러 나왔다고 누가 관심을 가져나 줄 것인가? 모임의 사역자가 성경학교에 공부하러 갔다고 반동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누가 우리 가정을 생각해 주겠는가? 언제나 아내를 좀 편하게 해 줄 수 있겠는지? 그동안 축복된 것 가운데 얼마를 집에 보내고 나니 학비가 좀 모자란다. 돌아온 친구들과 그동안의 경험들을 나누며 즐거워했다. 모두 두 주간의 생활 간증들을 듣고 보니 내가 제일 바쁘게 살다가 온 것 같았다.

김제화

 

'영국선교학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8-1. 두 권의 책  (0) 2020.06.30
8. Chelston Bible College  (0) 2020.06.30
7-1. Bitten Bible chapel 선교사 수양회  (0) 2020.06.30
7. Llanfairfacan 선교사 수양회  (0) 2020.06.30
6. London의 이모저모  (0) 2020.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