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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Holy Land Tour)/3.성지 순례

Masada, 결사 항쟁의 요새

 

 

▶ 국립 유적지 입장권

마사다에서 각 사람에게 이스라엘 전국 모든 유적지를 방문할 수 있는 입장권이 주어졌다.  

 

 

 

♣ 마사다(Masada)

 

 

마사다는 사해 수면으로부터 434m 네 면이 바위 낭떠러지로 홀로 우뚝 서 있는 천연 요새다. 넓이는 축구장 10배 정도(600 m×120~350m)로 물 75만 리터를 보관할 수 있었다. 요새 전체는 높이 5.4m 너비 3.6m의 성벽으로 들러 쌓여 있고, 높이 22.5m의 망대가 37개를 세워 방비하였다. 흙은 비옥하여서 농사하기에 적합하였고, 충분히 비축된 양식과 기름 포도주 등은 일 년이 넘도록 보관할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사해 건너편은 요르단이다.              

           

▶ 결사 항쟁의 마지막 요새
마사다는 유대인들의 결사 항전의 요새로 2001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유서 깊은 곳이다.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으로 사해를 바라보는 천혜의 요새이다. 처음 이곳을 요새로 만든 사람은 하스몬 가의 대제사장 요나단(BC161-142)이며 ‘마사다’라고 이름 지었다. 그 뒤로 헤롯이 요새를 견고하게 건축했다(BC. 37-31).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국가의 위기 때마다 이곳을 피난처로 삼았다. BC 586년 시드기야 왕 11년 바빌론에 의해 멸망한 뒤에, 아시리아(앗시리아, 앗수르)가 알렉산더에게 망하여 그리스에 속하게 되면서 유대 나라는 장장 600여 년 동안 주변 국가의 지배를 받으면서 민족의 수난을 겪게 된다. 그러나 제사장의 가문인 마카비가 저항운동을 벌여 164년 드디어 그리스의 세력을 몰아내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마카비의 아들 대에 이르러 하스몬 왕조가 일어나 거의 한 세기 동안 독립된 유대 왕국을 누리다가, 70년 로마 장군 Titus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면서 마사다는 마지막 결사 항전 지가 되었다.        

         

마사다를 오르는 길은 등산로와 케이블카가 있다. 우리 그룹은 케이블카로 성채 위에 쉽게 올랐다.

 

 

요새에 내리자 시원한 바람이 무더운 가운데 있던 우리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사해로 들어가는 요단강 물줄기와 사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동서남북이 넓게 터진 들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성채는 천혜의 요새였다. 요단강 건너편은 요르단이다. 흙벽돌로 만들어진 로마 군인들의 막사들만이 폐허로 남아 지난날들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여기저기 돌아보다가 마침 저기 한쪽에서는 일단의 군인들이 선서식을 하고 현수막을 불로 태우면서 오른손 주먹을 쥐고 올리면서 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장교들의 임관식을 하고 있었다.

 

 

▶ 마사다의 마지막 결전

AD 66년 5월 가이사라에서는 유다 독립전쟁을 일으키어 로마군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성채 로마군은 아마 이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마음 놓고 있을 때, 갈릴리 유다의 아들 ‘메나 헴’은 빠른 공격으로 마사다를 차지하게 된다. 메나 헴은 예루살렘 전투에서 죽게 되자 유다의 아들 메나 헴의 조카 엘리아자르가 요새의 사령관이 되면서 마사다는 유대인들의 마지막 격전지가 된다. AD 70년 8월 예루살렘의 함락되면서 유다 모든 지역이 로마군의 발굽에 짓밟히게 되자 나라를 지키려는 애국주의자들 967명은 마사다에서 로마군을 맞이하게 된다.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정복한 Titus 장군은 마사다에서 끝까지 버티고 있는 유다 군 때문에 그는 아직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72년 실바(Silva) 장군에게 10군단(9000명)과 유대인 포로 6000명을 이끌고 가서 토벌하도록 한다. 로마군은 2년에 걸친 무수한 정상 공격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요새 꼭대기의 견고한 성벽을 파괴하기 위한 공성퇴(Battening Ram)를 끌고 올라갈 수 있는 인공 토성을 쌓는 일을 6개월에 걸쳐서 하는데 그 노역자들이 모두 유대인 포로여서 성위에서 그들을 죽일 수가 없었다. 드디어 거대한 인공 토성, 즉 경사로가 다 만들어지고 거대한 공성퇴가 그 비탈길을 따라 마사다 성채와 맞먹는 높이로 올라서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엄청난 공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군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공성퇴에서 날아오는 50kg의 돌들에 성벽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마사다가 점령되는 일만 남아 있었다. 

         

 

▶ 죽음으로 승리

그날 밤 사령관 엘리에제르(Eliezer ben Yair)는 모두를 모아 놓고 비장한 마지막 연설을 한다.

“용감한 나의 동료들이여, 우리는 오래전부터.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섬기지 않기로 맹세했소……. 내일이면 우리의 부녀자들은 치욕을 당하며 우리의 자녀들은 노예로 팔려가고 우리는 참혹한 죽임을 당할 것이오. 우리에게 자유가 있을 때 우리 손에 칼이 쥐어졌을 때 우리 스스로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합시다. 로마 군인들이 쳐들어 왔을 때 우리의 죽음을 보고 경탄하도록 하게 합시다.” 이에 감동한 가장들은 집으로 돌아가 처자식과 이별의 키스와 포옹을 하고는 처자들을 칼로 죽였다. 그런 다음 남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열 명을 추첨하여 뽑아서 900여 명이 넘는 동료들을 죽이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남은 열 명이 한 사람을 추천하여 아홉 명을 죽인 뒤 자기도 마지막으로 목숨을 끊도록 했다. 이렇게 하여 전사들은 여호와와 조국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마감하고 평화롭게 잠들었다. 이런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학식이 있는 한 여인과 지도자 엘리에제르의 친척 여인, 두 사람은 아이들 5명을 데리고 지하 물 저장고 깊은 곳에 숨었다.

 

▶ 허망한 정복

드디어 73년 5월 2일 날이 밝자, 로마군이 성채로 쳐들어 왔을 때는 마사다는 불에 타고 있었으며 평화롭게 잠든 유대 전사들이 로마군을 맞이하였다. 지난 2년 동안 고통 속에 투쟁해 온 로마군이 얻은 것은 승리의 영광이 아니라, 허망함이었다. 절대 굴하지 않는 그들의 기개가 로마를 이긴 것이다. 로마군들이 성채를 뒤진 끝에 물 저장고에 숨어 죽음을 피한 두 여인과 다섯 아이를 찾아냈다. 이것을 유대 역사가 요세프스가 기록하여 유대 전쟁사의 한쪽으로 남겼다. 유대 전사들의 신앙과 애국충절을 기리는 마사다 최후 항전은 "마사다"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에서 여호와와 나라를 사랑하고 생명을 바친 고귀한 믿음과 씩씩한 기상과 꿋꿋한 절개를 보게 된다. 우리도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 이 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겠다.  이 영화는 작품이 아니라 실화이다.   

 

▶ 장교 임관식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고 순교한 이 고귀한 정신과 희생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살아남게 되었다. 애국선열의 피가 뿌려진 이곳에서 임관하는 이스라엘군 장병들이 애국 충성을 다짐하는 선서 식장이 되었다. 미침, 오늘 장교들의 임관식이 열리고 있어서 잠시 볼 수 있었다. 고난 속에서 그렇게도 열망하던 국가건설의 염원을 담은 이스라엘 국가를 부르는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스라엘 나라 노래 (희망)

הַתִּקְוָה 하티크바 희망
הכֹּל עוֹד בַּלֵּבָב פְּנִימָ
콜 오드 바레바브 폐니마
נֶפֶשׁ יְהוּדִי הוֹמִיָּה
네폐쉬 예후디 호미야
וּלְפַאֲתֵי מִזְרָח, קָדִימָה
울파테이 미즈라흐 카디마
עַיִן לְצִיּוֹן צוֹפִיָּה
아인 레찌욘 쪼피야
עוֹד לֹא אָבְדָה תִּקְוָתֵנו
ּ오드 로 아브다 티크바테이누
הַתִּקְוָה בַּת שְׁנוֹת אַלְפַּיִם
하티크바 밭 슈노트 알파임
לִהְיוֹת עַם חָפְשִׁי בְּאַרְצֵנוּ ?
? אֶרֶץ צִיּוֹן וִירוּשָׁלַיִם
? 리히요트 암 호프쉬 베아르쩨이누
에레쯔 찌욘 비이루샬라임 ?





이 마음에 유대인의 영혼이
여전히 갈망하는 한,
저 멀리 동방의 끝을 향하여,
시온을 향하여 바라보고 있는 한,
우리의 희망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네.
2천년 간 이어져 온 그 오랜 희망은.
? 우리의 땅에 속박없는 나라를 세우리라는 그 희망,
시온과 예루살렘의 그 땅에. ?


As long as in the heart, within,
A Jewish soul still yearns,
And onward, towards the ends of the east,
an eye still gazes toward Zion;
Our hope is not yet lost,
The hope two thousand years old,
To be a free nation in our land,
The land of Zion and Jerusalem.


 

임관식에서 장교들은 이 구호를 외치면서 결의를 다진다. [Forgive, but not forget….]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말라, 그리고 “ Never Again, Masada! 마사다는 다시 함락되지 않으리라!”라고 외치면서 전의를 다진다. 그리고 [Aushwitz or Masada, Is it time to choose again!] [아우슈비츠]냐 [마사다]냐, 지금이 선택할 시간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이 한목숨을 하는 비장한 다짐의 시간이다. 

▶ 군인들의 다른 두 모습 : 큰 숄(shawl)을 걸친 군인은 유대교 보수파(Orthodox)로 유대 회당에서도 여호와께 기도할 때는 언제나 저 큰 숄(shawl)을 두루고 기도한다.

 

▶ 이스라엘 여군

이스라엘은 여성도 남자와 똑 같이 2년을 근무하는 병역 의무제이다. 적은 인구에 병력보충을 위해서이며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 남녀가 따로 없다. 도시에서 경계 근무하는 여군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여군도 때에 따라 테러리스트와 육탄전을 할 때도 있는데 이스라엘 여군과 맞서는 걸 두려워한단다. 왜냐하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여자 손에 죽을 경우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믿음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현역일 때는 모든 군인은 유사시를 위해 휴가 때에도 총과 실탄을 몸에 붙이고 살아야 한다. 해수욕장에서도 애인과 연애할 때도 어디를 가든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수억의 아랍인(Masada)에 둘러싸여 있는 이스라엘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언제 어디서 테러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유비무한의 태세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 : 준비가 되어있으면 근심이 없다

 

▶ 휴가 중에도 무기와 함께

 

이스라엘 여군과 함께

한 곳에서 일단의 여군들을 만나게 되었다. 말을 걸자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그래서 함께 사진을 찍으며 잠시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옆에 아저씨는 우리 차 운전기사. 

 

광야(Wilderness)

마사다를 내려와 마사다 성채가 바라다 보이는 광야에서 그곳의 생태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뜨거운 열기에 메마른 들에는 풀이라고 할만한 식물은 보이지 않고 작은 동글동글한 물주머니를 단 선인장류가 거친 들을 지키고 있었다. 로마군이 마사다 성채 탈환을 위하여 2년 동안이나 이 들판에 머물렀다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갔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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