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독일 방문은 들리는 곳이 너무 많아서 세 번에 나누어서 올린다.
Berlin에서 동독을 지나 Hamburg까지 2.8-4.6 1980
이제 세상은 너무 가까워지고 있다. 하루 만에 영국에서 바다를 건너 오늘 아침은 베를린에서 떠오는 해를 만나고 있었다. 이제 영국에서의 모든 일을 마치고, 독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쉬려고 베를린 친구와 산과 들로 다니며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누리며 쉬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동차로 동독을 통과하여 Hamburg으로 여행 하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베를린에서 동독을 거처 함부르크 까지는 한 290Km로 서독 차량 통행이 허락되어 있었다. 우리는 Berlin에서 동베를린을 지나 Naven에서 5번 도로를 따라 동독을 한참 지다 가다가 길을 잃어 한 동리에 들어갔다. 그곳은 작은 시골 역이 있는 곳으로 역 마당에는 조그마한 시장이 서고 있었다. 돌아 나오려고 하는데 동독 경찰차가 금방 따라왔다. 우리 passport를 가져가서 보고 있었다. 친구가 가서 미소 짓는 얼굴로 동독 경찰에게 길을 잃었다고 하면서 Passport를 찾아왔다. 동독을 지나면서 보이는 자연 풍경은 아름다운데 해 놓고 사는 환경은 초라하게 보였고 사람 사는 곳은 활기가 없어 보이는 조심스러운 여행이었다. 얼마를 달리자 저 멀리 서독 깃발이 휘날리는 국경선 관문이 보인다. 이제 동독을 무사히 빠져나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시름을 잊게 하고 있었다. 간단한 절차를 거치고 드디어 서독 땅에 들어서자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 나라 동독을 통과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
Remembrance of Elbe River
동독을 벗어나 Nünenburg이란 곳에 이르자 아름다운 Elber River가 굽이쳐 흐르는 낭만 넘치는 풍광이 펼쳐지고 있었다. 긴 여로에 피곤도하고 정처가 없이 떠도는 나그네라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곳에서 쉬기로 하였다. 장맛비로 Elbe 강물은 흙탕물로 넘치고 있었지만 엘베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Hamburg에서 Feb.15 Fri-19 Tue
며칠을 조용히 쉬면서 재충전이 되었다. 오늘은 Hamburg로 가는데 날씨가 썩 맑지 않았다. Hamburg에 들어와서 항만 선교를 하는 Budik 선교사 댁에 머물면서 이곳에 있는 여러 한국 형제자매를 만나서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Happy Birth Day Feb. 18 Mon
오늘 낯에 신형제가 왔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니 가 보면 안다고 하였다. 그는 나를 데리고 창숙 자매 병원 기숙사로 왔다. 방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꽃다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좀 놀라고 당황하는데, 모두 내 생일을 축하한다고 하면서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그때서야 오늘이 내 생일인 줄을 알게 되었다. 나도 미처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내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준비들을 해 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어떻게 내 생일을 알아냈을까, 신기했다. 창숙 자매가 생일 선물로 볼펜과 DM 50을 주었다. 잡채와 미역국을 해주어서 오래간만에 생일 같은 기분을 느껴보았다.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창숙 자매의 남자 친구도 와서 한번 더 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어서 반가웠다. 우리 모두 함께 시내에 나가서 183m의 높이 치솟은 Hamburg의 상징인 Tower에 올랐다. 돌고 도는 Sky Rounge 무대에 앉아 마시는 따끈한 한잔의 커피는 인생의 낭만을 느끼게 해 준다. 온 세상이 내 발아래에 펼쳐지며 나는 천상의 세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며, 저 아래 세상에 허우적 거리며 사는 중생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였다.
Hannover Feb. 20-22 Fri
이제 꿈만 같은 시간들은 다하고 이제 긴장하고 복닥거리는 시간 속에 싸여 한동안 살아야 하는 현실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오늘은 Hannover에 계획이 있어서 가야만 했다. 사실은 22일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여행을 가야 하기 때문에 며칠 후에 다시 올라와야 하는 일이 번거로워 여기서 볼일을 다 보고 하노버로 가고 싶지만, 엘리스가 짜 놓은 계획을 바꿀 수가 없었다. 신형제가 나를 데리고 역에 나가니 자리가 없다. 신형이 13마르크를 더 내고 일등 칸 자리를 사주어서 고마웠다. 차를 타고 한잠을 자는데 열차 장이 와서 깨워 내 표를 검사하더니 차를 잘못 탔단다. Bremen에서 내려서 하노버 가는 차를 갈아타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어서 고마웠다. 신형이 내 생일을 축하한다고 선물 봉투 하나를(DM 100) 주어서 고마웠다. Bremen역에 내려 한 30분 기다리니 하노버 가는 열차가 왔다. 하노버에 오니, 엘리스는 어디에 갔다가 늦게 돌아온다는 message를 남겨 놓았다. 나는 그사이에 그동안 밀린 세탁을 하고자 세탁기를 돌리려고 하는데 독일 글들이라 기능 선택이 힘들었다. 그래서 장한숙 자매에게 전화를 하여 기능을 알아서 세탁기를 돌렸다. 엘리스가 오기 전에 빨래가 빨리 마르기를 기대하면서 밤은 깊어갔다. 다음 날 하루도 쉴 틈 없이 10여 명이 모여서 말씀 집회를 가지며 그동안의 이야기들로 교제의 꽃을 피웠다.
다시 Hamburg로 Feb. 22 Fri
그동안 너무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집에 소식을 보내지 못하여서, 오늘 그동안의 소식과 DM 200을 넣어서 집으로 보냈다. 역에 가서 DM 45를 덴마크 돈으로 바꾸니 150 길다가 되었다. 오후에 Hamburg에 도착하여 다시 Budik 선교사 댁에 짐을 풀었다. 신형이 달려왔다. 내일 나는 나 혼자 덴마크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웬 말인가, 자기네 부부와 창숙 자매도 함께 가려고 예약을 했다고 해서 대단히 기뻤다. 이로서 우리 일행은 네 사람이 되어서, 나 홀로의 여행이 아니었다. (※덴마크 여행기는 일반 여행기에서)
베를린에서 Feb. 25-March 7 Mon
어젯밤 덴마크 여행에서 밤늦게 돌아와서 피곤해진 이 몸은 도저히 아침에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늘어져서 더도 말고 하루만 더 푹 쉬고 싶지만, 베를린 한인 수양회 때문에 또 길을 나서야만 했다. Hamburg 역에서 피곤한 몸을 Berlin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졸다 보니 Berlin에 왔다. 밖에 나오니 친절한 요한나와 차애 자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에 요한나 자매 집에 모여서 교제하면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저녁 늦게까지 교제하던 형순 자매를 오늘 밤 당직을 하게 된 내순 자매가 데려다주고 온다기에 따라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멋있게 보이는 Bier pinsel이란 곳에서 Bier와 salad을 들면서 잠시 여담을 즐겼다.
베를린 수양회 Feb. 29 Fri - March 2 Sun
베를린 자매회에서는 수양회를 위하여 안내서를 만들어 서독 광부촌에도 안내서를 보내어 알리고 있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받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들로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있어서 고마웠다.
이번 수양회에서 나는 말세에 있을 예수님의 예언 말씀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다. 한인 수양회는 40여 명이 참여함으로 성황을 이루었다. 독일 모임 자매님들도 뒤에서 음식 준비하는일을 도와주고 있어서 고마웠다.
처제 경표가 수양회 끝나는 날 자기 집에 와서 쉬라고 말해 주어서 고마웠다. 매일 주님의 오심에 대한 말세의 징조를 말하면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다. 주일 저녁으로 수양회를 마치고 문자매 차로 경표 처제 집으로 갔다. 하노버에서 엘리스 자매의 전화가 왔다. 3월 11일 함께 Cassel로 전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알려 주셨다. 어저께 수양회를 마친 오늘은 그동안의 피로 때문에 하루 푹 쉬려고 폼을 잡고 있는데, 문자매가 한국 자매들을 사랑하는 나기 장로님 댁에서 점심 초대가 있다고 가야 한단다. 정말 안 가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한 10여 명의 자매가 모여서 Pizza 등을 들면서 즐거운 교제를 나누었다. Nagi 장로님께서 또 선물 봉투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DM 50) 저녁은 Sue와 Chinese Rest. 에서 식사하고 처제 경표 집으로 갔다. 경찰인 경표 남편에게 전도를 좀 했더니 자기는 가만 놔두어 달라고 사정이었다.
엘리스의 전화 March. 6 Thu
아침 엘리스에게서 온 전화는 내 마음을 놀라게 했다. 내가 돌아가는 길에 미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분도 나같이 직선적인 성격이라 생각나는 대로 쏘고 있었다. 엘리스는 나에게 마치 친동생 같이 여기는지 어려운 줄 모르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있었다. 좋게 생각하면, 나를 좀 가깝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도 여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미국을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데 엘리스가 왜 충격을 받았는지 참으로 별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하노버의 공식적인 계획이 끝나면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고자 하는데, 엘리스는 나의 파리 여행 등이 좋은 간증이 못된다고 하면서 나의 여행 계획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아니 여기 사람들이 누구든지 휴가 때가 되면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데 왜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은 좋은 간증이 안 된다고 엘리스가 생각하는지, 이것 또한 답답한 일이었다. 엘리스 자매는 영적으로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경건하신 분인데, 비해 나는 그저 자유롭게 사는 보통 사람에 불과했다. 우선 그분은 독신으로 인간의 기본 욕망을 극복하고 홀로 성공적으로 살아온 인생이다. 주님께 스스로 드려진 고자로서 온전히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린 분과 감히 누가 견줄 수가 있겠느냐? 그의 마음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이 모두 육신과 세상적으로만 보이는 것 같았다. 꼭 주님의 일과 관계가 있어야만 어디든지 가고 온다고 생각하는 그분과 자유롭게 어디든지 가고자 하는 내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찌 되었던, 그분들이 너무 경건들 해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가 좀 가난하다고 얕잡아 보아서 그러는지, 어려운 줄 모르고 그저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 자매의 생각에는 신앙인이 그런 관광지에 가보아야 유혹이나 받지 신앙적으로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런 마음도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덮어놓고 나쁘게만 생각하는데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믿음 생활이 나 와 같아지기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비인격적이고 독선 내지는 이기적일 것이다. 나는 영적이고 너는 육신적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은 영적 교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주님의 돈으로 세상의 일을 위해서 낭비를 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걱정해 주고 있기도 한 것 같았다. 그의 모든 염려는 다 내가 영적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좋은 마음에서 일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그럴지라도 이 젊은 사람은 한국에서의 사역을 위하여 여기를 마지막 왔다가 간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가서 보고 느껴보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그는 이해해 주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손님이 오면 주변의 여러 가지를 경험하도록 소개도 하고 구경도 시켜주는 편인데, 이 자매는 그런 면에서는 절벽이었다. 나를 데리고 오로지 주님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만 머리를 쓰고 있었지 자기 나라의 문화 유적, 2차 대전 때의 독일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거나 보여 준 적은 없다. 처음 Frankfurt에서 식물원에 함께 가본 것이 전부이다. 짬짬이 내가 알아서 찾아가서 나 혼자 보고 즐길 뿐이었다. 이런 점은 서로 맞지 않아서 가끔은 티격태격하였다. 그러나 별 큰일은 없었다. 그저 잔소리 많이 하는 누님이라 여겼다.
Philharmonic Hall
Berlin의 Philharmonic Hall은 세계적인 음악 홀이다. 곽 자매가 표를 예약해 주어서 여럿이 함께 가서 첼로(Cello} 연주를 잘 감상했다. 사실 나는 오케스트라를 좋아해서 이왕 Berlin의 유명한 음악의 전당에 온 김에 카라얀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를 보고 싶었지만, ㄴ가 베를린에 올 때마다 그런 시회가 없어서 섭섭했다. 저녁에는 멀리 박용숙 자매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엘리스가 나의 여행 계획에 불만이 있다고 말해 주면서 내년에 또 초청하려고 하는데 실망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 주었다. 나에게 압력을 넣기 위해서 여기저기에다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아이고, 어찌할꼬. 이번 베를린 한국 자매 모임에서 그동안 구고했다고 DM 1000이라는 큰 선물을 주어서 나를 놀라게 했다.
Berlin March 7 Fri
오늘은 어젯밤 당번이었던 훈 자매가 가고 회월 자매가 당번으로 왔다. 회월 자매가 나의 팀을 따라 이스라엘 여행을 가고자 하는데 요한나 자매가 그에게 이스라엘을 가지 말고 한국을 가도록 설득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독일 말로 하더라도 들리는 단어들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나는 대강 알고 있어서 내가 요한나 자매 얼굴을 보기가 미안했다. 내가 이스라엘 가는 한국 팀 리더인데 어떻게 내 앞에서 그를 못 가도록 회유(懷柔)하고 있는지 한심한 노릇이었다. 요한나 자매가 엘리스 자매와 관계가 좋지를 않아서 인가! 내가 인도하는 Team 인데도 그는 협조적이지 않았다. 오전에 베를린 역에 가서 돈 바꾸는 곳에 가서 내일 네덜란드에 가서 쓰려고 DM 50을 바꾸었다. 오후에 여러 자매들의 따뜻한 손길들을 받으면서 Hamburg 열차에 올랐다.
Amsterdam Day Tour March 8 Sat.
비록 하루 여행이지만, Tulip과 물의 나라 Nederland의 서울 Amsterdam 여행기는 일반 여행기에 올려놓았다. 하노버, 베를린, 함부르크 방문 계획 사이에서 틈을 내어 하루에 갔다 올 기회를 얻은 것도 다행한 일이었다. 엘리스가 알면 경을 칠 일이다. 우리가 머무는 Hamburg에서 Amsterdam까지는 365.40Km로 긴 여행이기는 하지만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이어서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암스테르담 여행기는 일반 여행기에)
Hannover로 March 9 Sun
점심을 전창숙자매가 초청하여 주어서 병원 기숙사에 갔더니 신형제 부부도 와 있었다. 여행 가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 사진들을 보고 모두 기뻐하고 나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들을 보고 남자답다는 입바른 소리를 하는데 기분은 괜찮았다. 오후에 함께 독일의 철혈 재상이라고 하는 비스마르크 동상이 있는 공원을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독일 통일의 주역으로 높이 35m의 거대한 동상이 제작되어 장크트 파울리 지구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우뚝 세워졌다.
고마운 형제자매들과 헤어져 나는 16:45 기차로 하노버로 돌아왔다. 내일은 엘리스 자매와 남부로 장거리 전도 방문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이 전도 여행은 엘리스 자매님이 한국의 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베여있는 정성 어린것이었다. 나는 Bonn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전화하여서 이스라엘 여행 가는 우리 일행들의 허가를 도와달라고 청하니 협조해 주겠다고 말해 주어서 반가웠다. 오후에 김학열 자매와 우체국에 가서 집에 DM 500을 보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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