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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행

안네의 일기

                                                                                         Anne Frank(안네 프랑크)

 

안네 가족의 수난

안네는 1929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업가인 오토 프랑크(Otto Frank)의 두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나치 압박을 피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전 가족이 옮겨와서 프린젠 크라프트 (Prinsengracht) 263번지에서 식품회사를 운영하게 된다.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압박이 조여오자 1942년 7월 오토 씨가 운영하는 식품회사 건물의 제일 위층에 Otto Frank 부부는 두 딸 (Margot, Anne)과 함께 숨어 살게 된다. 뒤에 Dussel이라는 사람, Daan 부부와 그들의 아들 Peter도 이 집에 같이 숨어 생활하게 된다. 이들이 숨은 건물은 앞쪽의 집과 뒤쪽의 집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앞쪽은 사무실로 사용되었고, 뒤쪽 건물의 맨 위층에 이들이 숨어 살게 된다. 사무실 벽에 있는 책장을 밀면 뒷집으로 가는 숨겨진 길이 있는 독특한 이중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때부터 안네는 “사랑하는 일기”라고 시작되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 일기장은 42년 6월 12일 아버지인 오토 프랑크가 안네의 13세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었다.

 

                                                                                                   안네(Anne)와 일기장 

 

안네는 생일날부터 체포 직전까지 은신처인 골방에서 하루하루의 주변 일상사를 기록했다. 그것은 저널리스트를 꿈꿨던, 한 감수성 풍부한 소녀 성장의 기록이자 시시각각 옥죄어 오는 나치의 마수를 바라보는 연약한 인간의 절규이기도 했다. 외출은 물론 창문마저도 닫힌 2년여의 밀실 생활, 그런 와중에도 안네에게 초경이 찾아왔고, 소녀는 함께 지내는 소년에게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안네의 일기”는 1942년 6월 14일부터 1944년 8월 1일로 끝나고 있다. 1944년 8월 4일 2년간의 은신 끝에 누구의 밀고로 비밀경찰 칼 조셉 실버바우어가 이끄는 체포 팀에 의해 안네 가족과 치과의사 가족 여덟 명과 은신 생활을 도와주었던 네덜란드 사람들도 함께 끌려가게 된다. 그러고 안네의 일기장은 그곳에 그대로 남겨지게 된다.

 

프랑크 일가 4명은 9월 6일 다른 유대인 1015명과 함께 화물차에 실려 폴란드 아우슈비츠에 도착했다. 선별 작업을 거쳐서 15세 미만 어린이와 노인 등 549명이 당일 가스실에서 학살됐고, 나머지는 남녀별로 수용됐다. 아버지 오토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남았고, 안네와 언니 마고와 어머니는 독일 하노버 가까운 베르겐 벨젠 수용소에 보내졌다. 당시 베르겐 벨젠은 극히 불결한 상태였고 장티푸스가 만연해 있었다. 1945년 3월 엄마와 언니 마고가 영양부족에다 장티푸스까지 겹쳐 안네 앞에서 죽고, 결국 안네도 며칠 후 엄마의 뒤를 따랐다. 베르겐 벨젠 수용소는 안네가 죽은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영국군에 의하여 해방된다. 영국군이 벨젠 수용소에 들어왔을 때 거의 일만 명의 죽은 시체들이 널려 썩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 보았던 긴 무덤들은 이 시체들을 묻기 위해서 영국군이 길고 넓게 구덩이를 파고 불도저로 시체들을 쓸어 넣어서 만든 무덤들이었다.

 

안네의 일기장

 오토 프랑크 가족이 잡혀간 다음날 이 무역 상회에 근무하고 있던 오토 씨의 비서로 그동안 음식물 등을 날라다 주던 네덜란드 사람 미프 히스 부인은 몰래 이방을 찾아갔다가 흐트러진 방에 뒹굴고 있던 붉은색 바탕 주황색 무늬 표지의 안네의 일기 장을 발견하여 가져와 보관함으로서, 독일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탄압한 가장 생생하고 충격적인 고발장인 “안네의 일기”가 역사에 살아남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홀로 살아남은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사업을 다시 시작한다. 히스 부인은 오토에게 "안네의 일기장"을 전해준다. 그리고 오토 씨는 끈질긴 조사 끝에 베르겐 벨젠 수용소에서 근무했던 간호사에게서 아내와 딸들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안네의 일기는 1947년 “'어린 소녀의 일기”란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그 뒤 50개 이상의 나라에서 번역돼 5천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안네의 일기”는 전쟁과 인종차별에 대한 가장 우수한 기소장이라고 평하고 있다. 16세 소녀라면 누구나 알았을 사춘기 감성들, 특히 이성에 대한 표현들은 안네의 아버지가 들어내는 것을 꺼렸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빼놓았던 부분들이 더해진 원래 안네의 일기가 새로 나오게 되었다. 식품회사를 하던 건물은 박물관으로 지금  "안네 프랑크의 집(Anne Frank Huis)으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열어 놓았다.  나는  두 번이나 암스테르담에 간 적이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가 보지는 못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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