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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행

제3차 독일 선교 여행(2)

                                                        독일 남부 선교 여행  3.11- 4. 6. 1980  

이번 남부 독일의 선교여행은 거의 두 주간의 대장정이다. 하노버에서 내려가면서 Kassel를 거쳐 푸랑크푸르트( Frankfurt )에서 머물면서 그 아래로 하이델버크(  Heidelberg) 그리고 NATO 사령부가 있는 슈투트가르트( Stuttgart )를 방문하는 여정이다.  

 

하노버 수양회 준비

하노버 자매들이 전도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바로 수양회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서 빡빡한 일정이다. 자매회에서 수양회와 우리 일정의 안내서를 만들어서 알리고 있었다.                                      

 

Frankfurt, Heidelberg 선교여행 3.11-22 1980

엘리자벳과의 전도 순방 여행은 이미 두 번이나 경험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더 멀리 남부 독일로 가는 여정으로 내려가면서 여러 곳에 들려서 상담과 성경모임을 가지게 될 예정이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성령께서 은혜를 주셔서 영혼들이 깨어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간절히 기도하였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우리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도로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고 있을 뿐이다.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이미 엘리스 자매에 대해서 모두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나만 처음 만나는 편이다.  

[하노버를 떠나기 전에 슬픈 소식들을 한국으로부터 듣고 마음이 좀 무거웠다. 장인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나는 장인에게 고마운 일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처음 유평 공회당을 쓰도록 내주셔서 교회의 시작이 되게 해 주셨고, 날이 추워오자 당신이 쓰시는 사랑방을 내주셔서 매주 한 번씩 복음 집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시므로 개척교회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리고 땅을 내주셔서 유평교회당을 짓도록 해주셨다. 유평 교회를 위하여 큰일을 해 주시고 떠나셨다. 유평 교회는 이러한 헌신과 여러 형제들의 수고가 있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랑방 집회가 있는 날이면 참석하셔서 나의 복음 설교를 듣곤 하셨다. 또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것에 대해서 전도도 하였지만 시원하게 믿는다는 말씀을 들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장인은 마음에 믿고 계셨다. 사랑방 병석에 계시면서 누우신 옆 벽에 요한복은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를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여 함이라”는 말씀을 연필로 써 놓으시고 돌아가셨다. 이 말씀은 장인의 신앙고백이었다.  영생에 들어가셔서 편히 쉬실 장인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주님의 은혜가 고마웠다. 아버지를 여의고 허전해할 자매에게 위로하는 글을 보냈다.

 

Kassel
하노버에서 오후 2시에 떠나 3:30분경에 Kassel에 도착하여 Mr. 최란은 한국 부부 집을 찾아갔다. 내외분이 친절하게 맞이하여 주었다. 나그네들을 위하여 한국식 좋은 점심을 준비해 주셨다. 식사 뒤 잠시 찬양을 하고 성경 말씀을 나누면서 교제를 하였다. 오후에 나는 잠시 시간을 내어서 영국에 계시는 Johnes 노형에게 나의 미국행 Ticket 일자를 연기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오늘 저녁은 독일 목회자 Achenbach가 사역하는 Free Evangelisch Gemeinde(자유복음교회)에서 쉬게 되었다. 

 

국제결혼한 가정 방문
오전에 서독인과 결혼하여 사는 한국 자매 집을 방문하였다. 엘리스가 그와 교제하는 동안 그냥 있기 뭐해서 나는 그 집 어린 딸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어린 딸은 한국말도 영어 못하고 나는 독일어를 못하여 두 벙어리가 다니고 있었다. 내가 아는 독일어 단어 몇 개로 통하고 있었다.  우리는 집 건너편 언덕을 넘으니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숲 속에 있는 콘크리트 건물 지붕 위에는 나무들이 심어 져 있는 창고들이 있었다. 이 이상한 집들은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을 피하려고 탄약과 무기를 숨겨둔 곳이었다. 녹 쓴 철길이 이 깊은 숲 속까지 들어와 있었다. 이차대전 영화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이렇게 기가 막히게 볼 걸이가 있는데 엘리스는 나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대개 볼거리는 의논하지 않고 오늘 같이 알아서 보아야 했다. 내가 미리 정보를 알아서 어디를 보려고 의논하면 늘 부정적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숲 속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돌아왔다. 
                                  

                                    

▶ Evangelical Freikliche Gemeinde  March 13 Thu
Gaessen에 도착하여 한 병원에 들려 조정자 자매와 다른 간호사와 함께 식사를 나누고 성경 교제를 하였다. 그리고 저녁에는 여섯 명이 모이는 독일 노인들의 가정 모임에서 엘리스와 내가 간증을 나누며 교제하였다.

 

Lemka의 사랑의 집

Mrs&Mr. Helmut Lemka 가정은 푸랑크푸르트에 있는 Evangelical Freikliche Gemeinde에 나가시는 분들로 여기에서 활동하는 동안 내가 이 집에 머물게 되고, 엘리스는 다른 곳에 머물게 되었다. 도착하는 오늘이 목요일인데 저녁에 기도 모임이 있다고 하여서  Evangelical Freikliche Gemeinde에 갔다. 사회자가 한인 선교를 위하여 수고하는 엘리스 자매가 온 것을 환영한다고 하고, 또 저 멀리 한국에서 주의 복음을 위하여 수고 많은 김 형제가 우리 교회에 온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환영하여 주었다. 그리고 남부 지방을 순회하고 있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자고 했다. 독일 형제자매들이 주님께서 자기네 교회에 처음 한국 형제를 보내주셔서 반가워하는 기도들을 하였다. 여기 형제교회는 기도 시간에 자매들은 의자에 앉아 있고 형제들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또 특색이었다. 나에게 한국 소개와 함께 간증을 해 달라고 청해서 엘리스가 통역으로 10분 정도 간증을 했다. 교회에서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엘리스와 나를 위해서 특별헌금을 하자고 광고하여 즉석 헌금을 하였다. 그리고 집회가 끝나고 우리에게 각각 DM 250을 주셨다. 오늘은 주님께서 이 교회로 하여금 축복을 받게 하여 주셨다. 집회를 마치고 Lemka 형제 식구들과 돌아왔다. 응접실 식탁에는 여러 가지 음료수들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여기서만 만드는 사과주라고 했다. 마셔보니 괜찮았다. 언어가 안 통하였지만 자매님과 중학교 일 학년 딸이 몇 마디 영어를 할 수 있고, 내가 독일어 몇 마디 할 수 있는 것으로 대충 통해서 다행이었다. 내 방에 돌아오니 책상에 몇 가지 음료수를 준비해 놓으셨다.  

 

괴테 House  March 14 Fri
내 방이 길가 쪽으로 있어서 이른 아침부터 차 소리에 잠이 일찍 깨었다. 아침 9시경 엘리스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은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오전은 쉬라고 한다. 나는 Frankfurt가 이번이 두 번째인데 괴테 생가를 가보고 싶었지만, 엘리스가 원하지 않을 것이 빤하여 말을 못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오늘 기회가 왔다. 오전에 시간이 있으니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나는 Mrs. Lemka 자매에게 밖에 나간다고 말씀드리고 나와서 Taxi로 괴테 생가로 갔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그가 살던 집은 기념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가 쓰던 살림 도구들은 골동품 측에도 들지 못하는 것들이지만 괴테가 쓰던 것이어서 빛을 내고 있었다. 하찮은 도구를 누가 썼느냐에 따라 그 값이 달라진다는 교훈을 마음에 담았다. 걸작들을 남긴 한 문학가의 유물들은 내 마음에 새로운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다가 점심시간에는 엘리스 자매가 찾을 것 같아서 지도를 보면서 물어 물어서 걸어서 돌아오느라 힘은 좀 들었지만 보람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국제결혼가정 상담  3.15 토
오후 시간 계획은 되어 있는데 오전에도 엘리스는 방문할만한 곳이 없어서 전화를 여기저기 하다가 한 부인이 해산한 병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교회 비용으로 전도 심방 목적으로 왔지만 전에 전도 여행할 때같이 이번에는 스케줄이 정확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매일매일 엘리스가 연락하여 만드느라 그 수고도 대단하다. 오후 독일인과 결혼한 순자라는 부인 집을 방문하였다. 남편과의 관계가 심각한 가운데 있었다. 남편이 때리고 그래서 경찰을 불렀고 구속하게는 안 했지만 경고를 받게 해서 지금은 때리지는 못하고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구원의 확신에 대한 말씀을 교제하는 동안 마음이 밝아지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성령의 인도  March 16 Sun
아침 식탁에 나가니 LemKa 형제분이 나에게 봉투 하나를 전해 준다. 봉투를 열어보니 DM200이 들어 있어서 무슨 돈이냐고 물으니, 
지난 목요일 기도회에서 엘리스와 나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헌금할 때 한국형제에게 헌금을 하고 싶었지만, 돈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헌금을 못했다고 하는 노 자매님이 나에게 전해주라고 보내왔다니, 이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 일인가! 내가 배워야 하는 믿음 생활이 여기에 있었다. 어떤 일에 대해서 마음에 감동을 받고 그때 바로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면 뒤에라도 바로 꼭 하는 것이 성령을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스런 감정이 마음에 오래 남아 있게 된다. Lemka 형제님은 첫날 이 지방의 특산인 도수가 낮은 사과주를 맛보도록 해 주었고, 그다음 날부터는 다른 음료수와 함께 내 방에 매일 갖다 놓아주셔서 고마웠다.                     

 

현대건설 건축설계 팀 1980. March. 17

오전 10시경 엘리스는 나를 중동 현대건설 건축설계 팀으로 와 있는 정근창씨를 역에서 만나도록 해 주고 자기는 오후에 데리러 오기로 하고 갔다. 정찬근 씨를 따라 그들이 머물고 있는 Apt에 가보니 현대건설 설계기술용역 팀이 7-8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팀은 여기서 중동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건축 설계도를 만들어 보내고 있었다. 모두 모아 놓고 복음 집회를 한 시간 가졌다. 그동안 여성들만 모이는 집회만 하다가 갑자기 남자들만의 집회를 하니 분위기가 좀 이상한 것 같이 느껴졌다. 모두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요리사가 만든 점심은 정말 맛있었다. 오후에도 모든 분들이 말씀 듣기를 원해서 다시 한번 구원의 복음을 설교했는데, 모두 반응이 좋았다. 오후에 엘리스를 만나서 한 곳을 방문하고 오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서 한 식당에 들렀다. 엘리스는 프랑크푸르트의 돼지 뒷다리 요리가 유명하다고 한번 먹어 보라고 시켜 주었다. 자매는 고기라고는 먹지를 않아서 나 혼자서 다 먹을 수가 없었지만, 그 지방 bier와 함께 하루의 피곤함을 덜기에는 족했다. 

                                                                                                    

Heidelberg Castle(하이델베르크 성)  March 18 Tue

오늘은 Stuttgart에 있는 한국 간호사 자매를 심방 가는 날이다. Badsoden에 가서 박용숙 자매를 태우고 함께 떠났다. Heidelberg에 들어서자 네카르 강이 마을 가운데로 흐르고, 저 높은 쾨니히슈틀(Konigstuh) 언덕에 고색 찬연한 Heidelberg Castle 이 온 세상에 군림하는 듯 우뚝 서서 아래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하이델베르크는 라인강 지류인 네카르 강변에 자리한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 주의 도시이며, 인구는 약 20만 명이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하이델베르크 성과 1386년에 설립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유명한 도시이며, 부패하고 타락한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성경의 믿음을 회복한 위대한 개혁의 군주 프레더릭 3세(Frederick Ⅲ)의 업적이 빛나는 도시이며, 영화 황태자의 사랑으로 소문난 이 성은 일 년에 300만 명이나 찾는 관광지이다. 성 아래에는 파노라마 같이 펼쳐지는 작은 도시는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한 폭의 그림이다. 

 

신성로마제국의 왕궁이기도 했고, 프레데릭 선제후가 살던 권력의 중심이었던 이성은 여러 번의 전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받았다. 기독교와 로마 가톨릭과의 30년(1618-1648) 전쟁으로 성은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심한 피해를 입었다. 전쟁으로 입은 상처를 회복하려는데 또 프랑스와의 전쟁(1689-1693)으로 또 한 번 상처를 받는다. 다시 복원 노력을 하는데 1764년 번개로 화제가 나서 성 일부가 폐허가 되었다. 성은 수난을 많이 겪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아픈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채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궁

이 성에는 볼 만한 두 곳이 있는데 먼저는 이 성의 보물을 전시하고 있는 프리드리히 (Friedrichsbau) 궁인데 요금을 내고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한 곳은 성 밑 지하실에 있는 독일의 자랑인 세계에서 가장 큰 포도주 통이 있다. 엘리스에게 들어가 보고 가자고 하자, 약속 시간을 말하면서 분위기가 들어가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 눈치여서, 그분의 성격을 잘 아는 나는 그만두었다. 그래서 중세의 보물이 가득한 프리드리히 궁은 들어가지 않고, 세계에서 제일 큰 포도주 통이 있다는 성밑 지하로 내려갔는데, 표를 사야 하기에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서 저만치 보이는 통의 옆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곳까지 와서 내용은 보지 못하고 건물의 겉모습만 보고 돌아서야만 했다. 종교개혁의 역사가 있는 곳도 좀 돌아보았으면 좋으련만, 엘리스의 눈치를 보느라 박 자매와 나는 고성을 시답지 않게 보고 나와서 좀 아쉬운 마음이었다.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프리드리히 궁의 오른쪽 옆의 긴 벽은 복구하지 못한 채 남겨진 폐허의 흔적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포도주 통

1751년에 만들어진 포도주 통은 폭이 약 7m, 높이가 8m나 되고 담을 수 있는 포도주는 22만 1726 리터 정도라고 한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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