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메리카 대륙 횡단 여행기
세 번째 여정 6.12-14, 2022
라스베이거스 제일침례교회-Red Rock national Park-Mojabi desert, NE.+Joshua desert, CA.-Jushua Tree Park-Riverside(안창호 기념)-Los Angeles, CA.
◈ 제일 침례교회 6.12, 2022
주일을 맞이하여서 라스베이거스의 제일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처음 보는 귀한 성도들과 함께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교회가 준비한 애찬 시간에 내 앞에 국제결혼 한 부부가 앉아 있어서 인사를 나누고 보니 미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분으로 독일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고, 한국에서도 일 년간 근무하였다고 하였다. 나는 반가워서 그와 독일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대위 시절에 한국에서 근무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한국의 평화를 지켜주느라 수고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굳게 악수하였다.
◈ Red Mountain National park, NE
라스베이거스에서 서쪽으로 약 24km 떨어져 있으며 국가보존 지역으로 산과 들이 일련의 붉은 암석층들로 가득 차 있다. 매년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이곳의 모든 산은 붉은색을 띤 세상으로 하이킹 코스로 인기가 있고, 가장 높은 산은 2,485m의 라마드레 산이며, 암벽의 가장 높은 곳은 910m로 많은 젊은이들이 암벽 등반에 도전하고 있다. Red Rock의 중심부에 있는 Keystone Thrust Trail은 지질학적 신비로움을 경험하기 좋은 등산코스로 알려져 있다.
▶ Keystone Thrust-이곳의 지형은 추력 사암 단층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추력 단층(keystone thrust)이란 오래된 암석이 젊은 암석 위로 밀려 오르는 지각의 균열 현상을 말한다. 추력 단층은 붉은색과 황갈색 사암으로 바다의 모래와 석회질 퇴적물로 형성되어 있다. 지각이 압축되어 비스듬한 단층이 생겨난다. 사암 덩어리와 밑에 있는 석회암 덩어리가 비슷한 덩어리 위에 밀어 올려져 석회암 위의 사암 위의 석회암 위의 사암 산이 번갈아 가며 여러 층으로 만들어졌다.
열린 대자연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푸른 하눌과 붉은 암석 그리고 회색 암석 아름다운 자연을 꾸며주고 있다.
◈ 모하비 사막(Mojave(Moabi) Desert and Joshua deserts)
오늘의 목적지는 LA로 I-15 고속도로로 가면 편하고 빨리 갈 수 있지만, 안 목사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해 주려고 모아비 사막을 통과하는 길을 택했다. 원주민 모하비의 이름을 따서 Mojave Desert이라고 부른다. 모하비 사막은 국립 보호구역으로 캘리포니아주, 네바다주, 유타주, 애리조나주에 걸쳐있는 네 개의 사막 가운데 가장 작고 건조한 지역으로 가장 더울 때는 섭씨 56(134F) 도에 이르며 해발 610~1,220m 사이에 있어서 "높은 사막"이라고 부른다. 관리소에서는 이 사막을 여행할 때는 충분한 휘발유와 음식, 물, 비상용품들을 준비하도록 권하고 있다.
▶ 사막 거북이 보호
겉으로 보기에는 메마르고 건조한 쓸모없는 땅으로 보이지만, 땅 밑에는 은, 텅스텐, 철, 금 다양한 광물이 숨겨져 있고, 땅 위에는 거북이, 도마뱀, 뱀, 전갈, 코요테, 토끼, 설치류. 등이 깃들어 사는 곳이다. 신기하게도 이 사막에만 사는 거북이를 보호하려고 도로에는 천천히 가라는 주의를 주고 있다.
모아비 사막은 Nevada를 벗어나 California주에 들어서면서 Joshua Desert로 이름이 바뀌면서 이어지고 있다. 지평선 저 너머로 펼쳐진 사막은 사람 사는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은 채 고요하기만 하다. 뜨거운 열기로 숨이 막힐 정도이며 저 멀리 그리고 가까이에서는 끊임없이 회오리바람이 모래 먼지를 일으키고 있어서 사막의 진풍경을 경험하는 순간들이었다. 휴게소는 아주 드물게 있었다. 사막에는 Sage Brush라는 풀이 척박한 이 들판을 가리고 있었다. Joshua Desert에서부터 Joshua Tree가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한다.
◈ Joshua tree National Park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은 캘리포니아 남부에 있으며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쪽으로 2시간, 라스베이거스에서 남서쪽으로 3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죠수아 나무는 유카(Ucca) 식물과의 하나인데, 이곳에 정착했던 몰몬 교도들이 여호수아(Joshua)가 기도할 때 하늘을 향해 팔을 들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하여 이름을 여호수아 나무라고 불러서 나무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고지대의 모하비 사막과 저지대 콜로라도 사막이 맞닿는 이곳에 조수아 나무의 군락지를 이루는 독특한 생태계로 지질학자들과 생태계학들에게는 경이로운 곳이며 세계의 보물이라고 한다. Joshua Tree는 이 사막의 랜드마크로 원산지는 모하비족 지역이며 모하비 사막에서만 자란다. 해발 700-1500m 이상에서 자라며 평균 150년을 산다고 하다.
◈ Riverside City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있는 인구는 313,000명 도시로 로스앤젤레스의 동쪽 약 100km에 지점에 있다. 이곳을 찾은 것은 애국지사 안창호 선생과 애국동포들이 살던 곳으로 안창호 선생의 기념 동상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 도산 안창호의 기념 동상(Dosan Ahn Chang-Ho Memorial)
미국 LA 한인타운에서 80Km로 1시간 거리에 있는 Riverside County는 Joshua Desert 끝자락이다. 이런 곳에 어떻게 한국의 애국지사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기념 동상이 서 있는지 놀라운 일이다. 동상은 Riverside 시의 3750 Main St와 University Ave가 만나는 곳이다. 시 정부 건물 가까운 리버사이드 보행자 상가(Riverside pedestrian mall)로 내려가는 길에 먼저 영국의 식민통치에 무저항주의로 맞선 인도 간디의 동상이 있고 길을 건너 내려가면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기념 동상이 있다. 다시 길을 건너 내려가면 미국 흑인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동상이 있다. 한국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더 안창호 선생을 기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상 주위 부조에는 그때 안 선생과 교민들의 의 일상적인 생활 모습을 엿보게 해 놓았다.
▶ 부조-모양·형상을 도드라지게 새김.
▶ 귤 따는 선생의 모습 ▶ 일과 뒤 공부하는 한민족학교 ▶ 예배드리기
◈ 세계 민권 명예의 전당(International Civil Right Walk of Fame)
2012년 세계 민권 명예의 전당에 아시아인 최초로 안창호의 이름과 발자국이 헌정되었다. 이 전당을 운영하는 트럼펫워즈 재단 부이사장은 헌정사에서, “안창호는 평화를 사랑했던 한국의 마틴 루터 킹으로 절망에 빠져있던 한국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비췄다” 라며 전 세계에 안창호의 이름과 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높였다.
▶ 민권 명예의 전당-세계 각지에서 자유와 평등 구현에 앞장선 인물들을 기념해 지난 2004년 만들어졌다.
◈ 도산 안창호의 날(Dosan Ahn Chang Ho Day)
1. Riverside 시는 8월 11일을 “도산 안창호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Riverside 시 정부는 오렌지 농장에서 귤을 따던 선생이 대한의 정치적 지도자가 된 것을 크게 사서 2017년 안창호 사적지로 지정하여 동상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고속도로 나들목(interchange) 이름을 도산 안창호로 짓고 도산 안창호 메모리얼 하우스(한국학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 California 주는 도산의 생일인 11월 9일을 도산 안창호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회는 2018년 8월 28일 도산 안창호의 날 제정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LA의 흥사단은(1913) 기념일의 목적은 "민족의 영원한 스승인 도산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후세에 얼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에서 한 아시안을 기념하는 일은 드문 일이며, 특별히 California 주에서 아시아 사람의 생일을 기념일로 삼은 일은 처음이라고 한다. 실제로 선생은 LA 한인사회를 있게 한 코리안 커뮤니티의 아버지이다.
◈ 파차파 캠프(Pachappa Camp)
Riverside는 한인들이 한때 1000여 명에 달했다. 안창호는 1904년 한인 협동조합을 만들고 ‘파차파’ 공동체 마을을 만들었다. 낮에는 농장에서 일하며 밤에는 영어 등 민족교육을 하며, 일요일에는 주일예배를 드렸다. 각종 모임을 통해 동포애를 나누며 단합에 힘썼다.‘파차파 캠프’는 미국 내 한인 공동체의 첫 실례가 되었고,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정신의 발원지가 됐다.
▶“파차파(Pachappa)”는 원주민의 말로 한인들이 살던 곳의 길 이름이며 뜻은 모른다. ▶ 귤 따는 노동을 하는 안 선생의 모습
안창호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을 깨우치는 교육가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 활동이 여의치 않게 되자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그는 1902년 11월, 아내 이혜련과 제물포를 떠나 태평양을 건너면서 바다에 떠 있는 하와이섬을 보면서 자신의 호를 도산(島山)으로 지었다.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선생은 리버사이드 카운티에 정착하여 생계를 위하여 오렌지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게 된다. 이때 LA에서 살던 우리 동포들은 대부분 농장에서 일하거나 세탁소에서 일했다. 주위에 있는 한인들을 모아 민족교육을 하는 한편 “'오렌지 한 개를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선생과 함께 동포들은 오렌지 농장 또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온갖 인종차별과 고된 노동을 견디고 땀 흘려 번 월급의 50% 이상을 기꺼이 독립자금으로 내놓아 상해 대한 임시정부를 세우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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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1878, 11.9~1938, 3.10)
안창호 선생은 1878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다. 그가 열여섯 살 때 청일전쟁(淸日戰爭)을 겪으면서 일본과 청나라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우리에게 힘이 없는 까닭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된다. 그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는 먼저 힘을 길러야 한다는 중요성을 절감하고 1895년 상경하여 선교사 언더우드가 세운 구세학당(救世學堂)에 입학하여 서양문물을 처음 대하게 된다. 3년간 열심히 배우면서 독립 활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되어 한국의 첫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에 다녔다.
▶ 구세학당(救世學堂, 지금의 경신 중고등학교)-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언더우드(Underwood)가 설립한 학교.
◈ 흥사단 창립
1902년 선생은 국내에서의 교육 활동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왔지만, 생계를 위해서 귤 농장에서 일하면서 1904년 의친왕, 정재관 등과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창립하였다. 공립협회는 1907년에는 지방회 7곳을 둔 북미 최대의 한인 자치단체로 발전했다. 1907년 그는 귀국하여 "대한 사람은 실력을 길러야 한다."라고 역설하는 애국 계몽운동으로 많은 청년이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1908년 안창호는 만민공동회를 개최하고 고향에 점진학교를 설립했으며, 신민회 결성, 평양 대성학교 설립, 미국 흥사단 창설 등 민족의 각성과 인재양성에 전력을 다했다. 1909년 김좌진, 이갑 등과 서북학회를 창립했다. 일제 탄압으로 105인 사건이 일어나 서북 지역 항일 인사들이 대거 투옥되자, 이 사건 이후로 안창호는 인재양성을 주장했고, 이시영, 이동휘, 김좌진과 같은 급진파는 만주로 이동하여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105인 사건-1911년 1월 1일부터 조선총독부가 서북 지방의 신민회, 기독교, 부호, 지식층 등의 항일 세력에게 데라우치 마사타케 암살 모의 누명을 씌우고 대거 체포하여 한국의 민족운동을 대대적으로 탄압한 사건.
◈ 조선 통감 이토히로부미와 회동
도산이 국내에서 민족의 계몽 교육가로 활동하던 시기인 1907년 조선 통감 이토히로부미로부터 만나자는 요청을 받고 만난다.
이토히로부미는 안창호에게 “나의 모국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도 함께 서양에 못지않게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라고 하면서 협조해 주기를 부탁한다.
이에 대한 선생의 대답은 단호했다. “한국의 개혁과 발전은 한국인들 스스로의 힘과 노력에 맡겨야 한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서양의 간섭과 압력을 받았다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박했다.
이는 조선의 근대화 등을 명목으로 한반도를 침탈하던 일본의 기만적인 실상을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었다.
◈ 상해 임시정부 내무 총장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안창호는 다시 미국에 가서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1911-1919), 1913년 5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을 설립하여 박용만, 이승만과 함께 미국 한인사회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안창호는 리버사이드에서 오렌지 따는 일을 계속하다가 3.1 운동으로 임시정부가 설립되려 하자 모은 성금을 가지고 상하이로 가서 1919년 4월 13일 선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총장에 임명되었다.
◈ 일본 군국주의 탄압
▶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
1926년 1월 일제강점기 조선에 결성된 교육, 계몽, 사회운동 단체로 안창호, 이광수, 주요한, 주요섭, 김동원 등에 의해 국내 흥사단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1937년 일제가 흥사단을 말살하기 위해 동호회 회원 150여 명을 검거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일본의 회유로 안창호와 뜻을 함께했던 이광수, 김성수, 최남선 등은 말년에 친일파로 변절하여 제국주의에 협력하였다.
▶ 윤봉길 의사의 의거와 안창호의 체포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 공원 폭탄 사건의 관련자로 지목되어, 도산은 상해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어 4년형을 받고 수감 중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59세로 1938년 3월 10일 순국하였다. 살아생전 독립을 보지 못하였지만, 모두가 절망할 때 도산은 끝까지 희망을 얘기했으며 그의 삶은 오직 대한민국의 독립뿐이었다. 1973년 서울특별시에 도산공원이 조성되면서 부인 이혜련과 도산공원에 합장되었다. 남겨진 가족은 부인 이혜련 여사와 5명의 자녀(안필립, 안필선, 안수산, 안수라, 안필영)들이다.
◈ 안창호와 일본 검사의 대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도산이 체포되어 경성 지방법원 검사의 심문에 답한 내용이다.
검사 : 너는 독립운동을 계속할 생각이냐?
안창호 : 그렇다. 나는 밥을 먹는 것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먹었고, 잠을 자는 것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잤다.
이것은 나의 몸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검 : 너는 조선의 독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안 : 대한의 독립은 반드시 된다고 믿는다.
검 : 무엇으로 그것을 믿느냐?
안 : 대한 민족 전체가 대한의 독립을 믿으니 대한이 독립할 것이요, 세계의 공의가 대한의 독립을 원하니 대한이 독립할 것이요,
하늘이 대한의 독립을 명하니 대한은 반드시 독립할 것이다.
검 : "너는 일본의 실력을 모르느냐?
안 : 나는 일본의 실력을 잘 안다.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지닌 나라다. 나는 일본이 무력만 한 도덕력을 겸하여 가지기를 원한다.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기를 원치 않고 좋은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이웃 나라를 유린하는 것은 결코 일본의 이익이 아니 될 것이다.
원한 품은 2천만을 억지로 국민 중에 포함하는 것보다 우정 있는 2천만을 이웃 국민으로 두는 것이 일본의 복일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동양의 평화와 일본의 복리까지도 위하는 것이다.
◈ 도산이 동포들에게 남긴 유언 1938.3.10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동포들이 겪은 고통에 마음이 아플 뿐이오. 일본은 자기가 일으킨 전쟁으로 망할 것이오. 그러니 아무리 힘들더라도 참고, 힘을 모으시오.” 그는 민족을 일깨우고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꺼지지 않는 민족의 등불이었다.
♣ Red Rock Canyon State Park, CA. 록 캐니언 주립공원)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공원으로, 경치 좋은 사막 절벽(Bluff), 뷰트(butte), 장엄한 암석이 특징이다. 각 지류 협곡은 흰색 점토와 붉은 사암이 교대로 겹쳐져 선명한 색상을 띠고 분홍색 화산암과 갈색 용암으로 이루어져 돋보인다. 공원은 미국 국도 395번과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을 연결하는 14번 국도에 있다.
♣ Los Angeles
로스앤젤레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남부에 있는 대도시로, 인구 3백8십만으로 California 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 미국 전체에서는 뉴욕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다.
LA에 들어와 우리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Koren Mall에 가서 한국 식당부터 찾았다. 한인들이 많은 Korean Town은 한국이라고 착각할 정도이다. LA는 이번 방문으로 4번째이다. 2022년 California주의 한인 인구는 557,491명으로 집계되었고, 그 가운데 231,147이 LA에, Orange County에 116323명이 살고 있다. 해외 한인 동포들이 제일 많이 사는 곳이다.
Convention에서 마련한 Sonesta Hotel에 들었다, 그리고 저녁에 제41차 SBC Convention이 열리는 새누리 침례교회에 참여하였다. 새누리 침례교회는 LA 교민 역사와 함께 해 온 동포 중심의 교회이다. 교회의 창설자는 김동명 목사이며, 사모는 "죽으면 죽으리라"의 저자 안희숙 여사로 산 순교자로서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알려진 분이다. 그 후임자로 오신 목회자와 교인들이 교회를 확장시켜서 3층 지하 주차장을 가진 큰 건물을 가진 교회로 발전하였다. 회의장 밖에는 선교단체들 , 사회봉사단체들, 신학교에서 Booth를 열어 각종 정보들을 나누고 있어서 많이 모을 수 있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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