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만 방조제(牙山灣防潮堤) 8. 7, 2019
세종에 사는 친구 덕분에 뜻하지 않게 아산만 방조제와 평택호 그리고 현충사를 돌아보는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아산만 방조제는 충남 아산과 경기도 평택을 잇는 방조제로 1974년 5월 22일 준공됐다. 방조제의 길이는 2,564m 높이 17m 아산만 방조제로 아산호가 생겼다. 아산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만으로 호수와 바다로 이어지는 곳이다. 바다와 호수를 가로지르는 해안도로는 서해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이다. 호수를 붉게 물들이며 서역으로 넘어가는 낙조가 절경이라고 하는데 보고 싶은 마음이다.
현충사를 찾아서...
현충사를 이제야 방문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마음씨 고운 친구가 내 뜻대로 아산만과 현충사로 안내해 주어서 고마웠다. 이 선한 일 위에 하늘의 축복이 있으리라 믿는다.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고 한목숨 초개 같이 버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나는 존경한다.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를 나는 좋아한다. 이순신이 두만강 하류 녹둔도에서 만호로 근무하던 곳은 북한 라선시 두만강리 맞은편이다. 나는 양식 지원을 위해 두만강리를 방문했을 때 모래톱 위에 세워진 숭전대(이순신 장군 기념유적지)에서 건너편 녹둔도를 바라보며 여진족과 한판 승부를 벌리고 있는 이순신 장군과 조선병사들을 떠 올려 본 적이 있다. 이순신 장군과 여러 번의 만남이 난중일기에도 실려 있다. 우리 신앙인도 나라와 민족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 이 한목숨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칠 때 그 이름이 천추에 남을 것이다. 기념관에 전시된 난중일기 원본이나 유물들은 장군의 삶의 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현충사(顯忠祠)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충무공(李忠武公) 이순신의 영정(影幀)을 갖춘 사당이 있는 곳이다.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이 끝난 해인 1598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戰死)하자 충무공의 호국 정신과 애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유생(儒生)들이 조선 조정에 건의했고, 조선 숙종 32년(1706)에 숙종의 어명으로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지었다. 1707년 숙종이 ‘현충사”란 현판을 내렸다.
영정은 전신을 그린 족자인데, 그것을 걸어놓고 사람들이 문 앞에서 향을 피우고 허리를 굽혀 절하는 데, 중국의 영향을 받은 유교식 예법이다. 존경의 표시이지만, 존경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그림이나 어떤 형상에 미신적이나, 종교적인 뜻을 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충무공 장검은 400년 넘게 충남 아산의 이충무공 종가에 대대로 전해 내려온 두 자루 칼로, 난중일기와 함께 이순신 장군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이 칼은 두 자루 모두 197cm이며, 무게는 5kg이다. 이 칼은 실전용이 아니고, 의장용이다.
칼날에는 “三尺誓天 山河動色”과 “一揮掃蕩 血染山河”라고 새겨져 있는데 장군의 글씨다.
뜻은, “三尺誓天 山河動色”(삼척 서천 산하 동색) - “석자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一揮掃蕩 血染山河”(일휘소탕 혈염산하) - 한 번 휘둘러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라는 뜻이다.
이 칼은 칼자루 속에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戊生)”는 글이 새겨져 있어서, 만든 사람과 때(1594년, 선조 27)를 알 수 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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