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lands Bible School 11. 27 Tue.1979
Moorlands Bible School 교장인 Dr. Copley의 초청으로 오늘 그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조직신학과 변증학을 가르치는 의사 Dr. Parker는 같은 모임의 장로이신데 당신의 교회로 나를 초청하여 주셨다. 오늘 Dr. Copley란 분이 나를 데리고 가려고 나의 학교에 오셨다. 이 분들의 교회는 New Milton에서 45Km 북쪽에 있는 Christ Church 라는 도시에 있었다. 이 분의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이 분이 Moorlands Bible College의 교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분은 영국의 명문 Cambridge에서 Ph. D. 를 받은 뒤 십자가 군병들 양성을 위해서 이 학교를 세워서 운영하고 계시는 분이셨다. 가는 동안 나는 그분에게 한국 형제들을 위하여 초청장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그렇게 해 주겠다고 해서 반가웠다. 가까운 시간 내에 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이 교회는 주중에는 화요일에 모이고 있었다. 이 교회는 열린 교회로 지역 사회 실력자들이 많았다. 저녁 시간인데도 많이 모였다. 나에게 10여 분 시간을 주어서 간증과 함께 한국을 소개했다. 모두 한국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알게 되어서 반갑다고 했다. 이 모임은 지금까지 경험한 다른 교회와 다르게 교회도 개인도 일절 아무 사랑의 교제가 없었다.
Moorlands Bible College 방문 1. 1980
며칠 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자전거로 13Km 떨어진 곳에 있는 Moorlands Bible College를 찾았다. 교장 Dr. Copley는 반갑게 맞이하여 주면서 학교를 돌아보도록 안내하여 주었다, 김종만 형제의 동생 김종민의 입학허가서를 만들기 위한 자료를 드렸다. 그리고 한국 사정을 이야기하고 학교의 공증된 재정 보증서를 만들어 주도록 요청했다. 그때 한국 사정은 자비 연수나 유학은 안 되었다. 그래서 초비(비용 부담 초청) 형식으로 해야만 했다. 김종민같이 젊은 형제가 와서 학문적으로 잘 배워서 한국 모임의 큰 일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유학을 주선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 학교와 이 학교는 학점 인정학교로 여기에 와서 2년 졸업을 하고 다시 학위를 주는 정규학교 3학년에 편입할 수가 있었다. 영국은 고등학교가 13년이기 때문에 인문 계통과 신학교는 3년으로 학사 학위가 주어지고 있었다. 영국은 Bible College 학위는 B.TH(Bachelor of Theology, 신학사)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 또 원하면 상위 학위를 위해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가 활짝 열려 있는 나라였다. 세월이 또 며칠 흘러 다시 학교를 찾아서 Dr. Copley를 만났다. 김 형제의 입학원서와 신원보증서류가 만들어졌다. 내가 참고인 난에 sign 하므로 김 형제가 유학 오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떠나기 전에 그의 유학을 확실하게 해 놓게 되어서 기뻤다.
Dr. Copley의 장학금 제안
Dr. Copley와 차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는 나에게 공부를 더 하라고 제안을 했다. 나보고 1년 마치고 자기네 학교에 와서 2년 졸업하면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정규 학교에 편입하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원하면 석사까지도 공부할 수 있도록 길은 열려 있다고 격려하여 주었다. 이왕 이렇게 멀리 와서 영어도 이제 이만큼 배웠는데 계속 공부를 더 하는 것이 좋겠다는 도움말을 해 주어서 고마웠다. 나는 한국 교회의 실정을 말해주고, 우선 나는 가족이 있고 공부할만한 돈이 없다고 했다. 교장은 내 사정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무슨 명목으로든지 장학생으로 우리 학교에서 돕겠다고 하면서 학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 Dr. Hudson이 형제를 여러 교회에 소개하듯이 우리 학교와 교회가 형제를 돕기 위하여 그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내 가정에 관해서 묻자, 우리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가족이 올 수 있도록 절차를 밟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수원 김장환 목사님 다음으로 두 번째로 공부시켜 주겠다는 지인을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넓은 목장지대와 흐르는 시냇물을 즐기는 동안 해는 서녘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석양의 붉은 태양은 나에게 불타는 용기와 희망을 불러 주기도 하면서, 또 지는 붉은 태양은 나에게 순식간에 쓰러져 버릴 종말적인 일들을 생각하면서, 주님 오시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도록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영국에서의 공부와 학위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돌아오니 Bristol에서 Mr. Patfield 장로님이 보낸 £30의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해 주시는 그분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고 있을 집에 다시 DM 200을 넣어서 보냈다.
김제화/ jewhakim@daum.net/ jewhakim.tistro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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