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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선교학교

2-1 Portland, Oregon주 6.16,1980

Portland로 가는 길  6월 16 Mon.

아침 Mr. Vance와 함께 목사님 댁에 가서 $ 100 수표와 함께 휴대용 작은 King James 성경을 선물로 주셔서 고마웠다. 인디언 기념 품 가게에 가서 $40 어치의 선물을 샀다. 그리고 방송선교 $20, 이종섭 $10, 김종만 $30을 보냈다. 넉넉지 않지만 받은 것을 나누고 싶었다. 오후 8:30 Portland 버스를 타기 위해서 Greyhound Terminal로 나왔다. 너무 고맙고 친절했던 Mr. Vance 가족과 그동안 정이 들어 나를 꾀나 좋아한 Bruce의 흔드는 손길을 받으면서 Greyhound는 북으로 향하여 떠나고 있었다. 이제 또 시카고에서 온 것 같이 3일을 타고 가야 해서 조금 아득하기는 했다. 피곤도 하지만 다시 못 올 길이라 생각하고 미국 중부 동부를 일주하는 즐거움을 누려보려고 했다.  
밤을 지나 이른 아침 3시경 Barstow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Mr. Harry Birdsall로부터 소개받아서 한동안 펜팔을 했던 Carol 여학생이 살던 곳이었다. 약속 없는 방문이지만 어디에 사는지 한 번쯤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4시간이나 기다려서 Sacramento로 가는 차에 올랐다. 차는 달리고 또 달린다. 내 옆자리에는 손목에 부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는 서부의 사나이처럼 생긴 사나이와 대화하면서 잠시 시간 가는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손은 왜 다쳤느냐고 물으니 술이 너무 취해서 싸움이 생겨 경찰서 신세를 지고 풀려났다고 했다. Freso란 곳에서 쉬는 시간이 되어서 그 친구와 함께 Cheese Burger를 먹고, 달리는 차에서 잠을 좀 잘 수가 있어서 피로가 풀린 듯하였다. 남부의 메마르고 거친 들에 비하면 California 중앙 지대는 아주 비옥하고 풍요로웠다, California 주 남에서 북으로 가로질러 끝없이 벋어 올라가는 # 2번 고속도로 양쪽에 핀 꽃들이 아름다웠다. 카세트를 들으면서 지평선 저 너머로 지는 아름다운 석양은 이 나그네를 울적하게 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해지는 저편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의 만남이 가까워 오고 있음이 마음을 설레게 해 주고 있었다. 지금은 6월 16일 밤 8:30이다. 6월 18일 Redding이란 곳에서 7:20 Portland행 Express를 다시 갈아타고 달리면서 차안에서 한 잠을 잤더니 피로가 좀 가셨다. 오는 길에 야간 장거리 차는 자리가 드문드문 비어서 좀 불편은 해도 다리를 복도에 뻗고 누워서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Chicago에서 미국 중부로 내려와서 가장 남부 Mexico주에서 Arizona 주로 이제 다시 California주 동부를 타고 북으로 일주하고 있었다. 릴레이식으로 계속 갈아타고 갈 수 있는 Greyhound의 교통망의 편리함은 대단했다. 차도 좋고 화장실이 있어서 제일 편했다. 차는 대개 두 시간마다 휴식하고 기사는 4시간마다 갈아탔다. 아침 9:30 드디어 Portland에 도착했다.

Oregon 주 Portland 6.18, 1980

저 멀리 우뚝선 헬렌 산 아래 자리 잡은  Portland 시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러나 화산 조짐을 보이고 있던 Mt. Hellen이 6월 18일 5.0의 지진과 함께 폭발하여 화산재가 6000m 상공으로 날아 80Km나 덜어진 이곳까지 날아와 도시를 덮치고 있었다. 내가 여기로 오고 있는 동안 이런 큰 자연재해가 일어난 것이다. 내가 찾아 왔을 때는 헬렌 산은 화산의 연기 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고 Portland 시는 화산재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창밖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방진마스크를 하고 다니고 있었다. 길거리는 흰 화산재로 덮여 온통 세상이 하얗게 되었다.

Grusy 선교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한국을 떠난 뒤로 8년 만에 다시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얼싸안고 기뻐했다. Grusy 선교사 집으로 와서 함께 커피를 나누고 잠시 교제하다가 그는 출근하고 나는 한참 잠을 즐겼다. 오후 6시경 일어나서 가까운 Park에 나가니 여학생들이 야구(Soft Ball) 시합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 친구들의 응원 소리가 컸다. 아직 한국에서 여학생들이 야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신기했다. 나는 기념으로 거리에 쌓인 화산재를 한 봉투 담았다.

(2010년 우리는 미국 창조과학 팀과 Mt. Hellen을 방문하여 탐사 연구를 자세히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헬렌 산은 봉우리가 터져서 400m나 낮아졌고, 이 화산 폭발로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몇 가지 사실들이 거짓임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이 부분은 창조과학 탐사 여행에서...) 

다음 날 Lloyd Center를 돌아보고 Shopping을 좀 했다. 그곳에 있는 여행사에 가서  Hawaii 경유 한국 행 Ticket을 $ 507에 샀다. 그리고 Hawaii에 계시는 Mr. Hockaday에게 내일 도착 시간을 알려드렸다. Grusy 선교사는 Chicago Moody 신학교를 나온 분으로 Team 선교회 선교사로 나왔었다. 이 분은 한국말도 잘하고 음악에 재질이 있어서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등 여러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재능이 있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전도하고 한국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한국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부인은 전혀 달랐다. 그는 집에 머물며 Shopping 하는 것을 좋아하여 선교사로서 활동하는 데는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었다. 늘 집을 떠나서 선교에 힘쓰는 남편이 가정을 소홀히 한다는 이유를 들어 이혼하였다. 그리고 돌아와서 지금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이 분은 주님을 정말 사랑하고 선교에 헌신적인 분이었다. 이런 분에게 헌신적인 부인이 함께 했더라면 얼마나 큰일을 할 수가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쉬운 일이다. 그토록 주님을 섬기고자 애쓰던 이 분의 인생이 정말 아까웠고, 이 분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재능을 쓰지 못하고 이런 일이나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혼이 이분을 이렇게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혼한 부인은 반년이 안 되어 새 남편을 얻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왜 재혼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성경에 결혼은 한 번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만일 부인이 죽었어도 재혼은 안되느냐고 물으니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기는 한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순수하고 깨끗한 믿음의 마음이 존경스러웠다.(2010년 Portland를 다시 방문했을 때 그 사이에 그 부인은 또 이혼하고 다른 살림을 차렸다고 하는데, 그 딸과 아들은 엄마를 멀리하고, 아버지 하고만 연락하며 살고 있었다. 아들 딸을 키운 엄마가 그렇게 인생을 살아서 자식들에게서도 버림을 받고 있었다.)  오후 근무 시간에 함께 가서 그분이 운전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교제하였다. 노선이 시내에서 시 외곽으로 나가 한가한 마을들을 지나 돌아오는 길이어서 좋은 교제의 시간이 되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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