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어(柴河) 교회 학습 11.23-25, 2001
한족들을 향한 선교의 문이 열리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지난 2년 동안 한족(汉族) 사역을 전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려왔다. 그동안 산발적으로는 한족 학습 반을 여기저기서 하기는 했어도 길게 가지는 못했다. 차이허 교회에서 학습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히 소개를 받아서 하게 되었는데, 이 학습을 통해서 그렇게도 원하는 한족 사역이 실마리가 풀리게 되었다.
오늘부터 차이어 중심 교회에서 삼 일간 학습하게 되었다. 처음 만나보는 형제자매들이지만 반갑기만 했다. 차이허 교회의 사역자도 학습하는 오늘 아침 처음 악수를 하였다. 모여진 60여 명 가운데 절반 정도는 자기 마을에서 가정교회를 인도하는 일꾼들이었다. 오전, 오후, 저녁, 이렇게 하루 세 번 학습하였다. 멀리서 온 분들은 읍내에 사는 형제자매 집이나, 예배당에서 쉬었다. 이번에 나는 “구원의 진리”를 깊이 가르쳤다. 짬이 날 때마다 개인 개인들을 만나 교제하느라 나는 쉬는 시간도 잊고 있었다. 그렇게 교제하는 가운데 30여 Km 떨어진 골 안에서 온 알잔(二站) 촌에서 온 몇 분이 왔는데 이 만남이 지금까지 영적 관계를 맺게 되었다. 중국 사람들 가운데에는 예수님을 믿는 내용이 조금 이상한 면도 있어서 모두가 성경 말씀에서 믿어지고 깨달아지는 말씀이 그들 믿음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데 힘썼다. 예를 들면, 예수를 믿기는 하는데 왜 믿는지 이유를 모른다든지, 믿는데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든지, 믿는데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지를 모른다든지, 어떤 사람의 믿음이란 것은 병 낫는 것, 또는 신비한 어떤 경험에 두고 있지,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받은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했다. 한족들은 이번 학습이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교제여서 모두의 속을 드러내는 시간이 되어서 처음에는 모두 쑥스러워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말하는데 용기를 내어 대화에 참여하는 활발한 시간이 되었다. 나는 모두에게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전도를 하려면 자기의 간증(이야기)부터 할 수 있어야 하고 담대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오늘은 학습 삼 일째이고 마지막 날이며 주일이다. 비록 삼일 간의 학습이기는 하지만 모두 전력을 다하고 있었고 진지했다. 오전 주일 예배는 8시 반에 차이러 교회의 400명의 식구와 함께 드리게 되어서 많은 새로운 얼굴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서 기뻤다. 나는 마 5:10-13에서 말로만 예수 믿고 복 받았다고 하지 말고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설교를 하는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여서 성령께서 저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시는 것 같았다. 오늘 점심은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잉어를 사서 푸짐하게 요리를 해서 먹도록 했다. 즐거운 점심을 함께하고 나서, 나는 한족들이 즐겨 부르는 “问一问이란 찬송 한 절을 배우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한 시간 더 학습하고 마쳤다. 앞으로 여러 곳에서 온 한족 처소(가정교회)들을 방문하기로 약속하면서 헤어졌다. 알잔 촌에서 온 식구들이 나에게 알잔을 가지고 청하여서 나선 김에 가보기로 했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였다.
차이어 전(柴河镇)은 읍 도시로 해림 시에 속해 있었고, 목단강에서 35Km쯤이다. 이 교회는 지역 중심 교회로 멀고 가까운 5~6곳의 농촌가정교회를 거느리고 있었다. 중국은 대개 행정 중심(市(시), 镇(읍), 乡(면) 도시교회가 그 주변의 교회들의 중심 교회 역할을 하면서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편이다. 이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류슈에동 형제는 특수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데, 관에서도 회심하여 바르게 살려고 하는 이 친구를 지지해 주는 편이다. 10여 년이 넘도록 이 친구와 함께 일하는데 믿음직하지 못하여 거리감이 있는 사이였다.
우리의 목적은 새로 세워지거나 발전해야 하는 가정교회들은 삼자교회의 조직이나 지배에서 나와서 자율성을 가진 독립교회가 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종교법 시행령에는 목사 장로 외에는 성례를 행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몇 년 뒤에 자체적으로 침례를 베풀며, 만찬 예배를 인도하는 이런 일들이 가능하여졌다. 종교 시행령에는 편의에 따라 침례나 약식 세례 가운데 하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우리는 성경 원래 행습인 침례를 하였다. 물론 누가 또 위 기관에 꼬장질(일러바치기)하면 주의를 받거나 심지어 벌금을 물기도 한다. 그동안 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는 일들은 몇 번 있었지만,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일은 믿음으로 감수해야 할 것이다.
二站(알잔) 가정교회 11. 25-26
차이허 교회의 학습에 알잔 촌 가정교회에서 세 형제와 펑친 자매가 왔다. 학습이 끝나고 나는 그들과 함께 그분들이 사는 마을을 가기로 하였다. 우리 세 사람과 모두 일곱 명이다. 앞자리에 세 사람 뒷자리에 네 사람이 끼어 타고 골 안으로 달리는데 목단강이 흘러가는 산길이었다. 산골인데 아스팔트가 20Km는 깔려 있어서 물었더니 이 골짜기 끝에 수력발전소가 있어서 아스팔트를 했는데 남은 부분은 내년에 한다고 한다. 35 Km를 가니 알잔 촌(二站村)이 탁 터진 넓은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500여 호의 마을이다. 그리고 이촌에 딸린 작은 마을이 셋이나 있었다. 처소를 하는 손 형제 집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 가정교회는 8년 전 이 집 딸 펑친이 몸이 안 좋아서 목단강 원춘 병원에 입원했다가 간호사인 조선 자매에게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고 돌아와서 부모에게 전도하여 믿고 자기네 집을 열어 모이기 시작했단다. 저녁 집회에는 100여 명이 왔는데 빽빽하게 앉았다. 환 풍이 되지 않는 집안은 공기가 몹시 탁하였다. 구원의 복음을 전했다. 밤늦게까지 교제를 하고 잠을 청하는데 겉 바람이(외풍) 너무 세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추워서 몸을 움츠리고 자서 아침은 몹시 피곤하였다. 오전에도 집회를 마련하여서 사람들이 120여 명이 좁은 집에 끼어 앉느라 집회 중에도 소란했다. 점심으로는 옥수수죽을 끓였는데 맛이 좋았다. 농촌이라 인정이 많고 사람 사는 곳 같았다. 나눔의 집을 위하여 잡곡, 콩 종류, 옥수수, 등을 푸짐하게 차에 실어주어서 고마웠다. 주님이 인도하시면 계속 가르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넘치고 있었다. 이때부터 알잔 교회는 이 지역 우리의 학습하는 제2의 중심지가 되었고, 가정모임에서 교회 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가게 되었다.
알잔 한족 처소(가정교회)
나눔의 집 학습 12.3-4 알잔 처소 중심 형제자매들을 나눔의 집으로 오게 해서 학습을 하면서 좀 더 서로를 아는 시간을 가졌다. 50중 반이 넘어가는 순 형제, 장 형제와 가정모임을 인도하고 있는 순 자매와 왕 자매들과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좀 더 깊은 학습을 하였다. 오늘 그들에게 침례와 만찬 예배에 대해서 가르치다가 알게 된 것은 이들은 원래 Witness Lee(호함파) 계통에 속해 있던 적이 있어서 구원의 확신과 침례 만찬 예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다음 주일 교회의 성찬 예배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왜 그들에게서 나왔느냐고 물으니, 그들은 교조 중심이고 헌금도 위로 올려 바쳐야 하고, 설교도 위에서 내려오는 자료에 따르고 독재적이어서 싫어서 그만두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알잔 마을에 있던 교회는 없어졌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영적으로 통하고 마음에 맞는 형제자매들을 만나서 기뻤다.
알잔 만찬 예배 12.16주일
아침은 말씀 집회로 모였다. 여기는 농촌이라 저녁 모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녁은 성찬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첫 만찬 예배에 참여하는 우리는 이분들이 어떻게 만찬 예배를 드리는지를 살펴보았다. 여러 찬송이 있고 나서 두 대야의 물과 수건을 가지고 들고 빽빽이 앉은 그 사이를 비집고 돌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씻고 닦게 하고 있었다. 자매가 성찬에 대한 간단한 말씀을 전하는데 여러 자매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뒤 몇 사람이 감사의 기도를 드린 뒤 두 사람이 각각 한 손에 떡과 잔을 담은 접시를 들고 빽빽하게 앉은 복잡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가서 “이것은 예수님이 나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 희생하신 몸과 피다,라고 선언하고 떡을 주고 잔도 마시게 하는데, 그 소란함과 무질서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같은 말을 7-80번 하느라 배찬 자의 입에서 침이 떡과 사람에게 튀고 비위생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배찬 자가 떡과 포도주를 마시고 싸서 서랍에 넣고 성찬은 마쳐진다. 이런 별난 방법의 성찬식은 처음 경험했다. 모두 돌아가고 순 형제 가정 다섯 사람만 데리고 만찬 예배에 있어서 개선할 필요가 있는 일들을 나누었다. 먼저 만찬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해서 먼저 나누었다.
- 개인적으로 구원받은 그 믿음을 교회 앞에서 간증하고 침례를 받은 사람만 참여하도록 하자. - 손을 씻게 하는 일들은 예배 가운데서 하지 말고, 각자 집에서 씻고 오도록 하자. 아니면 문 어귀에 물 대야와 수건을 걸어놓고 들어 올 때 씻고 들어오게 하자. 이미 예배가 시작되어 찬송가를 부르고 안정된 분위기에 손 씻는 일로 20여 분 동안 소란하게 하여 집회를 산만하게 말자는 의견에 모두 끄덕이며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 배찬 자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 떡은…. 이 잔은….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다. 배찬 할 때 사회자가 그렇게 선언하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하고, 떡을 떼고 잔은 각자 떼고 마시고 조용히 주님의 희생을 감사하고 기도하도록 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경건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하자 모두 좋은 방법이라고 받아들였다. 다음에는 이렇게 개선된 방법으로 만찬 예배를 드려 보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에도 모였다. 지금은 겨울이어서 시간이 많아서 모이기가 편하여 좋았다. 오전 학습을 마치고 식구들이 우리 가축들을 위하여 사료를 많이 실어주어서 고마웠다. 알잔 식구들과 내가 신앙의 코드가 같아서 무리 없이 교제가 깊어져 가고 있었다.
베이 깡(北岗) 한족 처소 12.30
주일 차이허 학습 반에 참여했던 식구들이 사는 베이깡(北岗) 한족 처소를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그들을 찾아가는 길은 첩첩산중을 돌고 돌아 119Km나 달려가는 먼 길이었다. 베이깡 촌은 발전소로 인하여 만들어진 큰 호수 변에 있는데 알잔 건너편이라고 할 수 있다. 산골 깊숙이 림창(林厂, 벌목장)이 있어서 흙길이지만 길은 좋았다. 림 창이 잘될 때는 살기가 좋았다고 하며 이 산골에 간이 은행도 있었다고 한다. 나무를 오래 베어 먹으면서 림창이 약해져서 모두 떠나고 이제는 가난한 농촌이 되었다고 한다. 막상 처소 식구들을 만나서 교제해 보니 한 500여 호가 사는 이곳에 믿는다는 사람들이 세 패로 나누어서 모인다고 하여서 기가 막혔다. 점심을 이 자매 집에서 먹고 16명 정도 모여서 성경 모임을 가졌다. 자매들이 나눔의 집을 위하여 말린 작은 버들치 같은 물고기들을 주었다. 나도 90원어치 큰 물고기를 샀다. 여기는 중국 내지로 바다가 멀어서 멸치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르고 산다. 그러나 나름대로 멸치 대신 먹는 것이 있다. 이 작은 민물고기들과 미꾸라지들을 말려서 보관하면서 먹는다. 원래 여기가 호수가 되기 전에는 깊은 계곡으로 마을들도 많이 있었고 중학교도 있었는데 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모두 물에 잠겨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큰 호수가 생겨난 덕분에 농촌에서는 고기들을 잡아서 생계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여기 와서 알게 된 것은 호수 건너편 알잔 교회를 도로로 가려면 130Km를 돌아가야 하는데, 겨울에는 얼어붙은 얼음 위로 12Km만 건너가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모험을 하기로 하였다. 나도 이런 얼어붙은 호수를 운전하여 건너가는 것은 처음이다. 얼음은 단단히 얼어서 꺼질 염려는 없지만, 처음이어서 조심스러웠다. 호수가 파랗게 얼어서 밑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서 더 긴장되었다. 같이 가는 정 노인은 겁이 나서 기도를 했단다. 처음 건너가는 얼음 위라 긴장하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2km의 눈 덮인 호수 얼음판 길
알잔 교회 순 형제 집에 오니 모두 반가워했다. 가져온 물고기로 요리를 해서 식구들과 저녁을 했다. 저녁 집회를 마치고 추운 밤길을 달려서 돌아왔다. 알잔서 우리 집은 73Km 정도였다. 오늘 처음 새로운 곳의 가정교회와 좋은 교제를 나누었다. 험한 산길을 다녀오느라 뒷바퀴 shock이 하나 떨어져 나갔다. 한 해가다가는 마지막 날에 차 수리소에 가서 shock을 새로 넣고 계기판 휴스도 나가서 새것으로 넣었다. 새 차인데 벌써 이렇게 잔잔한 일들이 생기고 있었다.
김제화/ jewha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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