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한국 미국 그리고 캐나다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한국과 캐나다 방문 1.13-14
인천 자유공원
강릉 진리에서 올라온 김제현 동생과 인천에서 유람선으로 월미도 영종도 무의도를 돌아보면서 그 옛날의 감회에 젖어 보았다. 자유공원 밑에 있는 China Town에 가서 중국 사람들이 하는 짜장면을 먹어보면서 한국 전쟁 뒤 겪었던 산동 중국 사람들의 고생스러웠던 시절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중국이 공산화되자 인천 건너편 중국 산동에서 많은 중국 사람이 가까운 인천으로 피난 왔다. 한국도 말할 수 없이 가난한 데다 6.25 사변이 일어나면서 화교들의 생활도 몹시 힘들었지만, 이들은 채소장사 중국 특유의 가락국수 짜장면 호떡을 주 무기로 삶을 꾸려나가면서 오늘날 잘 사는 화교들이 되었다. 그때 함께 공부하던 화교 친구들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지역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곳이며 자주 다니던 곳이었다. 나는 자유공원에 올라 맥아더 동상이 있는 곳에 한참 머물렀다. 10대 후반 내 인생이 몹시 춥고 울적할 때면 이곳에 올라 붉게 물드는 서역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던 시절이 주마등 같이 지나간다. 그때는 하 인천에서 자유공원을 오르면 건너편 골짜기에 제물포 고등학교 그 위에 기상대의 펄럭이는 깃발들 그리고 맥아더 동상 그리고 홍예문을 넘어 동인천역으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내동으로 내려가는 길, 아니면 홍예문 아래로 인천경찰서 시민 관으로 가는 그 길들이 내가 걸어 다니던 코스였다. 내동을 거쳐 도원동 고개를 넘어 숭의동 공설 운동장 부근 살던 곳을 돌아보았다.
은퇴연금 신청서
토론토에 돌아오자 정부에서 보내온 은퇴 신청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서운함 마음이 일어났다. 어느덧 우리가 65세를 지나고 있었다. 정부에서 온 문서들을 보니 이제 세금 그만 내고 연금을 받아 살라는 내용이다. 마치 한 삶이 다해가는 것 같은 허전한 마음이다. 지금으로서는 경제도 힘든데 연금이라도 받으면 선교사역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오늘은 아주 여러 해 만에 Family Doctor에게 가서 종합 건강검사를 받았다. 이 나이에 와서 조금씩 건강에 문제가 오고 있었다.
날틀 안에서의 기적
3월 17일 저녁 7:42 Chicagoㅇ에서 서울로 떠나는 아시아 항공 check in 할 때, 우리가 너무 피곤한데 뒷자리를 달라고 부탁하자, 오늘은 예상외로 사람이 많지 않다고 뒷자리로 주었다. 나는 네 자리를, 아내 진은 두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서 잠도 편히 자면서 좋은 여행을 하였다. 우리는 은평교회가 올해에 건축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었다. 우리가 받은 몇 달 치 연금과 모금한 돈을 다 해도 한국 돈 천만 원이 되지 않았다. 잠시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공급하여 주셔서 나머지를 채울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얼마 뒤 성경을 보던 아내가 자기에게 몇 달 치 나온 연금을 은평 건축헌금으로 내고 싶다고 하였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기도하자마자 이렇게 응답과 축복이 오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렇게 해서 한 600만 원이 되고 있었다.
은평 예배당 건축 3.22 주일
은평교회가 건축계획을 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우리도 조금 보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오늘 주일 설교는 아무래도 건축에 관한 관심을 북돋우기 위하여 느헤미야 2장에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헌신적이고 능동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설교를 했다. 그리고 나도 건축을 위하여 1,000만 원을 한다고 광고를 하고 지금까지 모인 700만 원 정도를 오늘 회계에서 전달하겠다고 선언했다. 애찬 뒤 판형과 회계 몇 형제들이 있는 자리에서 준비한 600에 푸른 치과에서 준 100을 보태어 700만 원을 먼저 헌금했다. 나중에 나의 이런 헌신의 모습으로 여러 사람이 헌금을 하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서 기뻤다. 오후 늦게 형제들이 우리를 일산 꽃동산으로 가서 벚꽃을 구경시켜 주고 저녁으로 맛있는 보리밥과 두붓국으로 대접해 주었다.
수원 가정교회 3.25 수
오늘은 수원에서 가정교회로 개척하고 있는 후배가 초청하여서 내려갔는데 저녁을 사랑채 식당이란 곳에서 전통궁중 식사를 대접받았다. 나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어서 가격이 궁금하여 알아보았더니 한사람에 25,000원이라고 해서 입이 딱 벌어졌다. 개척교회는 목회자 셋집에서 30여 명이 모였다. 선교헌금으로 10만을 주었다. 수원에서 김포 처형 댁에 돌아오니 자정이다. 바로 이 시간에 판만식 형제 부부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같은 시간에 도착하였다. 내일 중국으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선교헌금을 전해 주려고 먼 길을 달려왔다. 인민폐 2,000원+U$ 300을 전해 준 형제자매의 사랑이 고마웠다.
Dr. Lee 형제의 방문 8.26
우리를 지원하는 미국 Huston 서울침례교회의 목단강 목장(선교구역)이 있는 휴스턴 교회에 소속된 귀한 형제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Dr. 이용운 형제는 중국 대경 석유회사의 기술 용역으로 가끔 와서 협력하고 있었다. 경박호 일일 투어를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들려주었다. 함께 난청과 차이허 교회를 방문하여 형제자매들과 잠시교제하고 돌아오면서 교제하였다. 고향에 친구가 온 듯 반가웠다. 우리 농장에 가득한 과일들을 좋아해서 싸드렸다. 나눔의 집 식구들에게 좋은 음식을 만들어 드리라고 1000원 주시고 밤차로 대경으로 돌아갔다.
처형 부부 방문 8.25-9.1
김포에 사시는 둘째 처형 부부가 방문하여 주셨다. 오늘 주일은 예수 님을 믿지 않으시는 분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차이허 교회에서 복음을 전했다. 두 분은 나눔의 집 넓은 농장과 풍성한 과일과 농산물들을 보면서 좋아했다. 연길로 내려가다가 왕청현 묘령을 지나다가 길옆 밭 가에 앉아서 신 라면과 집에서 가져온 만토우(찐빵)를 먹는 맛 또한 괜찮은 것 같았다. 연길에서 삼꽃 여관에 든 뒤 두 분이 내일 장(백두) 백산(백두)백산 여행을 가도록 예약을 하였다. 마침 한족 가이드를 만나서 두 분을 부탁하자 조선말을 그런대로 하고 있어서 반가웠고 관광객 가운데는 조선 분들과 한국 분들도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아침 노블 치과병원에 가서 스케일링하였다. 내가 잘 아는 캐나다 한인 선교사가 세운 치과병원으로 중국에서도 알려진 최신장비를 가진 모범 병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스케일링을 할 때 이빨을 세어서 이 한 대당 3원씩 계산해서 받고 있었다. 두 분은 백두산 관광을 잘하고 오셨다. 다음 날 두만강을 따라 북한이 건너다 보이는 게산툰을 거쳐 도문 강변 공원에서 두만강 건너 남양시를 바라보면서 북한을 실정을 느끼고 있었다. 목단강으로 올라오다가 동경성 발해 전(읍)에 있는 발해 궁터에 들려보고 목단강으로 돌아왔다. 오늘 알잔 교회로 들어가다가 호수 가에서 냉커피를 한 잔씩 나누면서 잠시 쉬었다. 저녁 식사는 우둘 촌 왕 형제 집에서 중국 산골 농부 집에서 만든 음식으로 형제자매들과 어울려 먹는데 처형 내외가 잘 들어주어서 대행이었다. 우둘 식구들을 싣고 알잔 교회 저녁 집회로 갔다.
샤오 쥬(小九)교회 10.
쟈이와 왕자매가 방문하여 교회의 선물 1000원을 전해 주면서 잠시 헤어짐을 섭섭해했다. 우리는 오후에 먼 길을 온 자매들을 데리고 시내 동안구에 있는 도매 시장을 구경시켜 주고 윗도리 하나씩 사 주었다. 동녕에서 덩 자매가 10년 되었다는 인삼을 한 상자 가지고 왔다. 지금으로서는 아주 떠나는 것도 아닌데 모두 섭섭해하기만 하였다. 점심에 바오 주임이 자기 아는 공항 국내선 담당자와 만나서 식사하면서 우리 짐을 좀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분이 내일 공항에서 기다리겠다고 약속을 해 주었다고 한다. 마음 써 주어서 고마웠다. 우리가 가지고 나갈 짐이 좀 있어서 부담스럽기도 하였다. 하얼빈서 이홍국 형제 보이차를 가지고 인사차 내려왔다. 내 책과 자료를 좀 주었다.
안식년
오늘(10.5) 안식년으로 일 년 쉬려고 떠나는 날이다. 중국에 발을 디딘 지 13년 만에 처음으로 안식년이라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 떠나는 날이다. 우리에게 안식년이라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고 실제로는 중국 사역을 정리해가는 한 과정이기도 하였다. 시험 삼아 새 팀에게 맡겨 보는 것이다. 나눔의 식구들도 눈물로 잠시 헤어짐을 섭섭해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살림을 맡아오던 총무 자매가 계속 새 팀과 일할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놓였고. 우리가 다시 온다니까 노인들도 안심이 되는지 기도하고 있을 테니 건강하게 얼른 갔다 오라고 격려하여 주었다.
은평교회 10.7
오늘 은평교회로 갔는데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교회는 돌아오는 우리를 환영하는 플래카드를 강대상에 걸어놓고 꽃다발도 준비해 주어서 뜻밖의 일이었다. 진짜든 형식적이든 우리를 이렇게 환영해 줄 교회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환영 축제 분위기를 살려주어서 고맙고 즐거웠다. 약속한 은평교회 건축헌금 나머지 3백만 원을 마저 내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김도열 자매
여러 해 동안 중국 선교를 지원하던 김도열 자매가 연락이 왔다. 일산에 산다고 만나자고 하여서 여러 해 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롯데 백화점에서 점심을 대접해 주고 우리 옷을 사 주었다. 종로 5가에서 염일부 형제를 만나서 청계천을 거닐었다.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을 복원한 것은 역사에 남을 일이었다. 나는 청계천을 덮기 전 원래의 청계천을 다녀서 알고 있는 터라, 다시 청계천이 햇빛을 보게 된 것이 너무 기뻤다. 서울 대 도시 한가운데로 물이 흘러가게 한 것은 세계에 자랑할 만했다.
Chicago 경유 Canada로 10.17
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Chicago에 내려 안영배 목사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Buffalo에 내리자, 캐나다에서 내려온 은하와 주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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