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of France)
스트라스부르는 지난날 샤르망 대제 시대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지로 지금도 유럽의 서울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서울(capital) 역할을 하는 중점 도시 세 곳 가운데 하나로 유럽연합(EU)의 의사당이 있다.
▶ 유럽연합(EU)은 유럽에 네 곳을 정치적인 중심 도시로 정하여 의사당을 두고 있다.
Brussels(Belgium), Luxembourg(Luxembourg), Strasbourg(France), Fankfurt(German)
프랑스 북동부 라인강의 서쪽 강변에 있는 그랑테스트 주의 서울로 인구 약 285,000명으로 프랑스의 일곱 번째 도시로 경제와 문화, 교육의 중심지로서, 역사적인 유적지와 건축물들이 있는 아름다운 관광 도시이다. 또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지막 수업’의 배경 지역인 알자스 로렝이 가까이에 있다.
유럽에는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느 크리스마스 시장이 세 곳에서 열리는데 이곳이 그 가운데 한 곳이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호화롭고 아름다운 축제장으로 그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유럽의 3대 크리스마스 시장-스트라스부르(프란스), 뉘른베르크(독일), 비엔나(오스트리아)
◎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방문 July 15, 1992
브뤼셀(Brussels)에서 스트라스부르를 방문하는 목적은 그곳에 있는 대성당에 EU 기가 만들어진 원형의 문장이 있다고 하여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룩셈부르크(Luxemburg)에 들러서 또 하나의 유럽연합(EU)의 국회에 세계에서 제일 큰 Computer가 있는데 그것이 마지막에 나타날 '짐승(Beast)' 의 이름으로 지어졌다 말들이 있어서 가는 길에 그것도 보고 싶었다. 나는 브뤼셀(Brussels) 역에서 밤 10:35분 유럽 특급 침대차로 떠났다. 잠시 뒤 열차 원이 와서 내 Passport와 표를 가져갔다. 그리고 Strasbourg에 가까이 오자 Passport와 표를 돌려주며 내릴 준비를 하도록 일러 주었다. 스트라스부르 역에 내리니 이른 아침 4시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합실 여기저기에는 신문지를 깔고 누워 자는 배낭여행 젊은이들이 많이 있었다. 나도 버려진 신문지들을 주어서 깔고 그들 틈에 누워 잠을 청해 보지만 차가운 바닥은 피곤한 나를 쉬게는 못해 주었다. 날이 밝아오자 버스가 다니며 출근하는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고 밤새 바닥에서 쉬던 젊은이들도 떠나가고 있었다. 지도를 보니 역에서 사원(Cathedral)이 1.2Km 정도 거리여서 걸어서 찾아갔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1439년 완공)
해마다 약 400만 명의 방문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성당 중 하나로 알려져 있고, 또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다. 안벽에는 성화들이 빈틈없이 그려져 있고 많은 스테인리스 유리 창문에도 호화로운 성화들이 새겨져 있다. 독일령일 때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이 도시는 빠르게 개혁신앙이 확산되었고. 1518년 루터의 95개조 논문이 대성당 문에 걸어지면서 기독교 교회당이 되어서 개혁의 신앙이 빠르게 전해지는 중심이 되었다. 프랑스령이 된 뒤에는 다시 가톨릭의 성당이 되었다.
☆12 별의 문양
오래된 사원은 대단히 크고 웅장했다. 안에 들어가서 먼저 12 별의 문장을 찾았다. 앞쪽 높은 Dome 천장에 EU기와 똑 같은 푸른색 바탕에 노란색 12 별이 있어서 신기했다. 어떻게 EU 기와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지!! EU 국기는 바로 이것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참 아쉬웠던 것은 내 카메라에 Zoom 기능이 없어서 가까이 당기어 찍을 수가 없어서 문장 사진을 찍는 일에는 실패했다. 탑 천장이 너무 높아서 눈으로 보면서도 담을 수가 없어서 몹시 안타까웠다. 거기엔 관광객들을 위하여 스냅사진을 찍어 주는 사진사도 없었다. 그때만 해도 Digital Camera가 없던 시대로 촬영 장비를 제대로 가지고 여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 절절하게 해 보았다. 사원의 기념품 가게에는 다른 카드는 많은데 이 12 별의 문장 카드만 없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오래된 이 건물을 보러 온 것은 아니었다. 사원의 많은 스테인리스 유리 창문에 그려진 아름답고 호화로운 그림들을 살펴보다가 반가운 그림을 발견하였다. 앞쪽 스테인리스 유리 창문에 그려진 마리아상 머리 위에 내가 찾는 파란 바탕에 황금색 12 별의 문양이 새겨져 있지 않는가! 반갑고 반가웠다. 꿩 대신 닭이라고 카메라에 담으면서 조금 위로가 되었다. 이 스테인리스 유리 창문(The stained-glass window)은 1956년 COE(유럽평의회)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마침 그 교회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분이 영어를 할 수 있어서 EU기의 12 별과 마리아 머리 위에 있는 12 별과의 관계를 물어보자, 아무 상관도 없다고 대답한다. 그분이 어느 정도 이런 면에 지식이 있는지 모르지만, 아는 것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는 Strasbourg이 EU의 수도가 되어야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과거 오스만 제국, 일명 신성로마제국의 샤르망 대제 시대에는 이곳이 유럽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란다. 시민들도 그러한 역사적인 근거를 가지고 Campaign을 하고 있어서, EU의 수도가 되어야 한다는 문구나 Sticker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EU국회를 찾아갔지만 관람 시간이 맞지를 않아서 안에 들어가서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문지기 가드에게 나는 멀리 캐나다에서 EU 의사당을 보라 왔다고 하면서 어떻게 안을 좀 볼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대단히 미안하다고 하면서 여기는 경비가 엄격해서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내일 개방 시간에 오라고 권한다. 섭섭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냥 돌아서야만 했다.
◎마지막 수업(The Last Class)
이곳은 내가 중학교 때 배운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된 알자스로렌 지역이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잠시 살펴보고 가고자 한다. ‘마지막 수업(La Dernière Classe)’은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Alphones Daudet,1840~97)의 단편 소설(1873)로 ‘알자스로렌’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871년 프랑스와 독일 간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지면서 알자스로렌 지방이 독일 땅이 된다. 그리고 학교에서 프랑스어 수업이 금지되자 한 교사가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을 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그날 마지막 프랑스 수업을 지도한 아멜 선생님은, 프랑스어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고 강조하면서, 한 민족이 남의 식민지가 된다고 해도 자기 언어를 잘 지키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리고 선생님은 칠판에 큰 글씨로, “Vive La France! (프랑스 만세)라고 쓰고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을 마쳤다.
▶ ‘알자스 로렌Alsace-Lorraine’지방은 라인 강을 중심으로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 사람이 많이 사는 땅으로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기를 열여덟 차례나 거듭하다가 1945년 2차 대전이 끝난 뒤 다시 프랑스령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민족 언어 말살 정책
중학생 때 ‘마지막 수업’을 공부하면서 국어 선생님이 민족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마지막 수업’이야기는 1989년까지 중학교 교과서에 실어 학생들에게 민족 언어의 중요성을 깨우치다가 사라졌다. 한국도 일제 때 알자스로렌의 프랑스 학생들이 겼었던 같은 경험을 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수업’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다. 1910년 한일 합방을 하면서 일제는 조선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려고 여러 가지 방면으로 노력을 했다. 그러나 민족의 언어를 지키려는 지도자들은 일찍이 1908년 8월 31일부터 일제의 조선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맞서 우리말과 글을 보존하려는 학술단체인 ‘국어 연구학회’를 주시경 선생을 주축으로 창립하여 한글의 맞춤법, 표준말, 한국어 사전을 내면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일제는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여 조선 사람을 일본 사람이 되게 하고자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우선 학교에서 1938년 3월 15일부터 조선어 교육을 금지시키고 오직 일본어만 가르치도록 교육법을 바꾸었다. 그리고 일제는 1942년에 조선어학회를 해산시키려고 교육자들을 체포하여 고문하고 옥살이를 시켰다. 그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열들은 한글을 지켜냈다. 그 결과로 조선이 해방되자마자 바로 한글 교과서가 만들어져서 전국 학교에서 한글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선열들의 덕분이었다.
김제화
jewhaki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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