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불꽃(Small Frame, 小小的花火)
나는 내 삶의 이야기 제목을 “작은 불꽃”으로 이름 지었다. 나는 복음 송“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어…”를 좋아한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산을 태워버리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경이롭다. 나 자신은 그저 “작은 불꽃”으로 큰 산은 못 태우더라도 작은 골짜기의 한 벼랑이라도 태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나온 나의 삶이 비록 보잘것없지만, 그냥 지워버리기는 너무 아쉬워서 이렇게 써 내려가 본다. 10대 후반 내 인생이 몹시 방황하면서 20대를 맞이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감동하여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도록 해 주셨다. 주님은 나의 삶을 변화시켜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살도록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자라는 인생을 통해서도 조그마한 일들을 이루셨다. 그 기적적인 축복과 경험들은 우리에게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값진 것들이다. 물질적으로 우리의 삶은 늘 넉넉하지 않았지만, 우리 안에 넘치는 성령의 은혜는 오히려 우리 삶을 더 넉넉하게 해 주셨다. 뒤돌아보면 후회스럽고 아쉬운 일들이 많지만, 나그네의 삶을 이만큼이라도 축복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가 고마울 뿐이다.
나는 일기를 쓰는 사람으로 사람이 왜 사는지를 몰라서 방황하며 반항하는 자로서 나는 10대를 차갑고 거칠게 살았다. 내가 살던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에서 월남하기까지, 4.19와 5.16의 격동기들을 거치면서 나의 10대 후반의 삶은, 어지러웠던 사회와 차가웠던 세파에 반항하는 자로서, 삶을 고뇌하며 죽음을 동경하던 어리석은 내 모습들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내 나이 스물한 살이 되던 해 주님은 이 불쌍한 인생을 불러 주시어 시들지 아니하는 시냇가의 푸른 나무같이 제 인생을 싱싱하게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23:3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음으로써 나의 인생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시작되었다. 구원받은 뒤로는 한국 형제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크고 작은 일들, 기쁘고 슬펐던 많은 일이 나의 글 속에 담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조그마한 길 한 모퉁이를 지키도록 허락하여 주신 주님의 크신 은혜를 큰 영광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이런 우리의 적은 수고가 시들지 아니하는 면류관(베드로전서 5:4)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도 좋다. 그날에 주님의 얼굴을 뵐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도 행복하다.
지나온 우리 믿음의 길은 한국 형제교회의 한줄기 역사이기도 하다. 내 믿음의 길은 인천 부평교회로부터 사후동 매카피 선교사가 이끄는 기독교 한국 선교부, 사후동 교회, 유평 교회, 율북리(지금 수부) 교회, 사천진리 교회, 강릉 교회 개척으로, 그리고 영국 형제교회의 장로님, Dr. Hudson이 설립한 Chelston Bible College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기 위한 유학, 독일 Hannover에 있는 Burg Strass 형제교회 초청으로 한인 선교사역, 불광동(은평) 교회 사역, 한 달간 일본 교회 방문, 밥존스 신학교 졸업, 수도 침례신학교 졸업, 캐나다 토론토 Tyndale Theological Seminary에 유학하면서 Central Gospel Hall(형제교회)에 6년 정도 함께하면서 교제하던 이 교회는
100여 년 만에 교회가 문을 닫는 서글픈 경험도 하였다. Central Gospel Hall 모임은 토론토 광역시 형제교회의 모 교회라고 할 수 있다. 한 세기 동안 인구가 늘고 도시가 북쪽으로 발전하면서 교회 식구들의 이동과 감소로 모임 운영이 어려워지자 부득이 문을 닫게 되었다. 아직 학생이었을 때 매주 우리 집에서 성경 모임으로 모이다가 독립교회로 발전하였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도 했고 생계를 위해 자매가 조그마한 fast food을 운영하면서 졸업하고 캐나다 영주권을 얻었다. 토론토 West Mount Bible Chapel(모임)과 Danforth Gospel Hall에서 교제하면서 중국 선교를 준비하게 된다. 1994년 처음으로 중국 선교 여행을 하면서 시작된 중국 선교는 그로부터 18년 동안 자비량 선교사로서 믿음 선교를 하게 되었고, 중국 선교 말년에는 중국에서 서울 은평 교회 식구로 돌아왔으며, 뒤에 은평 교회가 갈라지면서 우리는 고양 푸른 교회 식구로서 교제하게 되었다. 1998년 중국에서 사역하는 동안 북한에 굶주림 가운데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양식 지원하는 일을 위해 7차례나 드나들었다. 중국 선교 만으로도 힘이 든 나는 북한 지원사역을 위하여 평안도가 고향인 분을 모시고 들어가서 라선시 시장의 허가를 받아서 장애자 300여명을 하루 한 끼 먹이는 일을 하도록 주선하였다. 16년 중국 사역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와서 Hilltop Bible Chapel에 몸을 담고 교제하면서 해마다 중국을 방문하여 수 개월씩 머물면서 사역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남미 단기선교와 캐나다 원주민 선교에 참여한 경험들을 나누려 한다. 때 묻고 낡은 나의 일기장에는 한국 형제교회 역사의 흐름속에서 생겨난 개인들과 얽힌 크고 작은 일들을 그때 있었던 일 그대로 옮겨 본다.
◑ 때 묻은 일기장
내 나이 60대에 들어서면서 40여 년간의 남겨진 글(이만여 쪽)들이 어느 날 나에게 짐스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한 해 나는 캐나다에서 일기장들을 모두 중국 목단강 선교지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어느 저물어가는 가을 500쪽으로 computer에 정리하고 그것들을 한 곳에 쌓아놓고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 나니, 마치 내 인생의 지난 세월이 사라진 듯 마음이 서운해지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무거운 짐을 벗은 것같이 홀가분해 짐도 느꼈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은 내 삶을 정리해 가고 있는 것이며 해지는 저편의 시온성이 가까워 옴을 느끼고 있음이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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