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rinkuyu(데린쿠유, 땅 밑 도시)
카파도키아 지방의 불가사의한 자연환경은 우리에게 신비로움을 더해 주고 있다. 땅 위에는 마치 다른 위성에 와 있는 듯하며, 땅 밑에 흩어져 있는 수십 개의 동굴은 우리에게 또 놀라운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고 있다. 이 거대한 동굴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안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유물들로 미루어 약 4500년 전부터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주전 1600-1200년경에 히타이트 족이 이곳 카파도키아를 지배했을 때부터 이 땅 밑 도시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히타이트는 터키 북쪽 '아나톨리아'라고 불리던 족속으로 이 카파도키아 지역으로 옮겨와서 강력한 철기 문화로 이 지역을 지배했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거점으로 이 지역을 장악하려는 세력들과 히타이트는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적은 무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그 뒤에도 프로기아, 페르시아, 마개도냐, 그리스, 등이 이 땅을 차지하려고 겨루면서 주인은 계속 바뀌게 되었다.
▶ 동굴
땅 밑 동굴은 화산재와 용암이 굳어져 생긴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거듭되는 화산 활동으로 화산재와 용암이 번갈아 층층이 쌓여 굳어지면서 이런 기막힌 지하 공간의 특이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화산재로 만들어진 음해 암들은 쉽게 파여서 이 깊은 땅 밑까지 파고 내려와서 사람 사는 도시를 이루게 되었다.
▶ 기독교인들의 피난처
터키는 서기 17년 로마 티베리우스 황제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이때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으로부터 혹독한 핍박을 받으면서 기독교인들의 피난처가 된다. 1963년 발견된 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지하 동굴은 아주 체계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지하 밑에는 여러 개의 우물이 있고, 각 우물은 꼭대기 지상에 이르는 52개의 환기 장치가 연결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동굴 내부 온도는 일 년 내내 섭씨 15도를 유지하면서 신선한 공기가 유지되었다. 동굴에는 한 200개의 방이 있고 최대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니 얼마나 큰 도시인가! 1-2층은 주거시설과 각종 편의시설. 그 아래는 무기 식량 등의 저장고, 더 아래의 좁은 공간은 은신처, 무덤, 감옥 등. 좁은 통로에 함정도 있고 길을 막는 큰 90-300kg의 돌문이 있는데, 안에서만 열 수 있게 되어서 적들의 침입을 막았다. 한 번에 이 동굴 안의 사람들을 몰살시킬 방법은 환기통을 통해서 독약을 우물에 넣는 것이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서 각 우물물은 한 곳으로 모이지 않고 각각 흘러가도록 하였다고 하니 얼마나 지혜로운가! 이 지역에는 한 40여 곳의 크고 작은 동굴이 있다. 10km 떨어진 동굴까지 이르도록 지하통로가 만들어질 정도로 피난처로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 데린쿠유(Derinkuyu)는 깊은 우물(deep well)이란 뜻이다.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가파도키아 지방에는 40여 곳의 땅 밑(지하) 도시 가운데 일부만 공개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가 본 이 동굴이 가장 크다고 한다. 이 동굴은 11층(120m)까지 석회암을 파서 만든 땅 밑 도시인데 8층까지만 개방하고 있었다.
▶ 땅밑 도시의 발견
1923년 뒤로는 사람들이 동굴에 살지 않게 되면서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졌다가 1963년에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 땅 밑 세계가 이 지역에 40여 곳이나 되므로 시간을 두고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에 의해서 발견됐는데, 몇 가지 이야기들을 모아 보았다.
1. 한 목동이 잃은 양을 찾기 위해 동굴에 들어갔다가 이 거대한 땅 밑 도시를 발견하였다.
2. 1960년 한 농부의 집닭이 없어졌다가 여러 날 뒤에 돌아와서 이상히 여기다가 어느 날 닭을 쫓던 농부가 닭이 작은 구멍으로 들어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닭이 나오지를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한 농부가 닭이 들어간 구멍으로 겨우 들어갔다가 이 놀라운 지하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3. 동굴 부근에 살던 농부의 집 바닥이 움푹 내려앉으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4. 한 농부가 자기 집 지하실을 수리하면서 허물어진 벽을 두드리다가 벽이 뚫렸는데 뒤쪽에 공간이 있는 것을 발견하여 들어가 보니 그곳에 서늘한 공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껴서 계속 파 내려가다가 다른 통로가 나와 그 통로를 따라가 보니 많은 방이 있는 것을 보고 정부에 신고하였다. 이런 신고들에 따라 이 미지의 동굴은 학자들의 조사를 거쳐서 1965년에 일반에 공개하게 되었다.
▶ 그리스도인들의 피난처
실제로 긴 세월 동안 로마와 이슬람 등의 핍박을 이겨낸 곳은 괴레메보다는 이제부터 보게 되는 지하도시(Under Ground)라고 불리는 데린쿠유(Derinkuyu)이다. 핍박자들은 로마의 카타콤과 마찬가지로 이 동굴도 병사들이 기독교인들을 잡으려고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시체로 발견되기도 하여서 모두 들어가기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름을 들어부어 불을 질러 숨이 막혀 죽게 하거나, 타 죽도록 하는 잔인한 짓을 하기도 했지만, 기독교인들은 살아남았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지하 동굴에서 약 2세기 동안(187년) 동안 로마제국의 핍박과 환난의 시기를 이겨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죽음도 구차히 여기지 않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금식과 기도로 견디며 살던 곳이다. 또한 긴 세월 동안 이슬람의 핍박도 견디어 내야만 했다.
나는 1980년 150여 년 동안 로마제국의 환난을 피하며 살았던 로마의 지하 갱도 카타콤에 들어가 보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 이제 데린쿠유를 보면서 또 한 번의 충격과 감동을 하였다. 카타콤은 로마를 건설하느라 자갈을 파내면서 만들어진 갱도(동굴)인 데 비해, 데린쿠유는 화산 폭발 때문에 자연이 만들어 낸 천연동굴이다. 깊이와 크기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로마제국의 친위대가 카타콤을 정복하려고 여러 차례 노력하였지만, 미로같이 얽혀있는 동굴에서 로마 군인들이 길을 잃고 나오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서 결국, 정복하지 못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이태리 로마 방문기 참고)
▶ 땅밑 세상 탐사
동굴로 들어가기 전에 가이드는 류머티즘이나 무릎 관절이 안 좋은 분들과 혈압이 높고 심장이 안 좋은 분들은 밖에서 쉬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였다. 그리고 내려가는 곳은 붉은 화살표, 올라오는 곳은 푸른 화살표로 되어 있으니까 절대로 곁길로 나아가지 말고 이 표시를 따르고 가능한 가이드와 함께 움직여 달라고 당부를 하였다. 그리고 표를 사서 들어가는데 통로가 좁고 어떤 곳은 낮아서 허리를 굽히고 가야 하는 곳은 힘들었다. 얼마를 내려가자 허리를 펼 수가 있고 공간이 넓어지고 있었다. 8-9층까지 내려가는 길은 꼬불꼬불 얕고 높은 길을 내려가고 올라오는 길은 힘들었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지하세계에서 헤매다가 올라와 밖에 나오니 다른 세상에 온 듯하였다.
또 외부 침입자들이 길을 잃도록 미로처럼 여러 갈래의 통로를 뚫어 놓았다. 부드러운 음해 암으로 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깎아서 도시를 만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동굴은 주거 형태로 꾸며져 있는데, 교회와 학교, 침례탕, 침실, 부엌, 우물, 곡물 창고, 심지어 농장과 가축농장은 물론 감옥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빛도 공기도 없는 지하 동굴에서 사노라니 건강문제도 심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위험이 없을 때는 밖에 나가 볕을 쪼였다고 한다.
평소에는 동굴과 바깥 양쪽에서 생활하면서 농사도 짓고 짐승도 키우다가 침입자들이 올 때는 동굴 속으로 피하였다고 한다. 그 옛날은 교통이 불편하고 도시가 없는 아주 외떨어진 지역이어서 침입자들도 특별한 목적이 없이는 쉽게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로마도 칭기즈칸도 이 동굴을 정복하지 못한 이곳은 기독교인들의 안전한 은신처였다.
지하도시의 구성도
1.입구 2. 사용할 수 없는 입구들 3. 지하수 4. 환기통 5 교회 6. 돌문 (그림을 제공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 터키석 가공공장
하루가 기울어져 가는 늦은 오후 마지막으로 한 곳에 들렸는데, 터키석 가공공장이었다. 터키석은 12월의 탄생석으로 아름다운 색을 띠고 있었다. 터키 원석으로 가공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터키석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있었다. 판매장 직원은 한국말로 인사하는 것을 보니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몇 분은 여기 올 때 터키석을 사려고 작정하고 온 모양이다. 큰 목걸이와 반지를 내놓고 흥정을 하는데 끝까지 버텨서 원하는 값으로 사고 있었다. 한국 여성들의 물건값 깎는 재간들은 대단한 것 같다.
오늘은 너무 많은 것을 보면서 설명을 들었는데, 분량이 많아서 마음에 다 담기에는 넘치고 있었다. 강행군의 하루였다. 사실은 괴레메와 데린쿠유를 이틀에 나누어 보아도 바쁠 텐데 하루에 몰아보는 것은 무리였다. 이렇게 팀을 따라오면 시간 때문에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쉽다. 자연을 돌아볼 때는 괜찮지만, 역사 유물이나 사적을 탐사할 때는 시간 때문에 수박 겉핥기 식이 되어 서 아쉬웠다. 마침 가이드께서 당신이 만든 자료집을 주어서 고마웠다.
▶ Kaya Burju 동굴 Hotel
오늘 저녁은 Kaya Burju라는 호텔에 머물게 되었는데 이 호텔 일부는 동굴을 방으로 만들었다. 안에서는 동굴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밖에 나와 보면 동굴임을 알게 된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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