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마껭, 후바다, 후쿠오카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
점심을 함께 나눈 뒤 한일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 즐겼다. 도끼 의사, 노 형제의 사진첩에서 군의관으로 만주에서 근무할 때의 사진들을 보면서, 군국 주의 시절 모든 일본 남자들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지상명령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들도 의사가 되어서 아버지를 돕고 있었다. 뒷마당에는 전통적인 일본 정원을 꾸몄는데 이 군마현에서는 제일 아름답다고 소문나 있다고 한다. 일본 정원의 특색은 커다란 대 자연을 좁은 공간에 축소하여 드려 놓은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가정공원은 축소지향적인 성격을 가진 일본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가정공원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그곳에 며칠 있는 동안 대 자연 속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정원은 볼만했다. 정원에는 손님들을 위한 집을 지었다. 방에 드니 일본식 잠옷을 준다. 일본 풍치가 깃든 다다미방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미닫이 문짝에 그려진 까마귀가 서산을 넘어가는 그림을 보면서, 일본 아이들의 동요, “가라스도 잇쇼니 가에리마쇼-까마귀가 서산으로 넘어가는”한 절이 생각났다.
일본 형제들이 내일 어디에 가고 싶으냐고 물어서 시내와 농촌지대를 보고 싶다고 했다.
아침에 정원을 거니노라면, 헤엄치며 맞이해 주는 금붕어, 솔솔 부는 바람에 손짓하는 나무 잎들, 짹짹대면서 반갑다고 인사하는 새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하루 삶의 새 기운을 받았다. 아름답고 상쾌한 마침이다. 오전에 세마 형제 부부가 와서 우리를 데리고 산언덕으로 산책하면서 농촌의 이모저모를 볼 수 있었다. 일본 특유의 공동묘지를 돌아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한 농가에서 뽕나무 잎으로 누에를 키우는 것을 보았는데 한국과 같았다. 즐거운 산책이었고, 일본 농촌을 이해하는데 좋은 시간이었다. 돌아오니 점심으로 일본식 벤또(도시락) 회밥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지체 장애자 유아원
도끼 형님이 원장으로 있는 지체 장애자 유아원은 산속에 있었다. 도끼 의사가 우리를 데리고 가서 유아원을 돌아보는데, 내가 영국 독일에서 보던 시설과 같아서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주님의 사랑은 늘 그늘진 곳에 비추이는 생명의 빛인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높은 산줄기를 타고 오르니 분화구에 물이 고여서 된 아름다운 큰 호수가 나왔다. 도끼 노형이 우리 모드를 유람선에 태워주어서 호수를 달리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 주었다.
산여어 (山女魚, 야마메)
우리는 함께 내려오다가 도끼 노형이 차를 세우고 우리 모두를 내리라고 한다. 높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타고 지어진 허름한 초가에는 산여어(山女魚, 야마 메)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우리에게 맛을 보여주겠다고 하여 들어가니 연기와 먼지로 찌든 아주 오래된 초가집인데 마치 선 술집 같은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 계곡 물에서만 산다는 山女魚는 한국 산천어(山川魚로 크기가 굵은 손가락만 했다. 산 고기를 즉석에서 잡아 주어 한 마리씩 찍어 먹어 보니 맛이 담백하고 좋았다.
후바다 교회 6. 27. 월
오후 도끼 노형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새 힘을 얻고 호바다 교회로 옮겨왔다. 사역하는 형제는 나에게 장로를 세우는 일에 대하여 꼬치꼬치 캐어물었다. 오늘 저녁 교제에서는 분위기가 일본의 조상들이 한국을 침략한 일들에 대해서 교제를 하고 있었다. 젊은 세대들이 일본의 역사 왜곡으로 인하여 자기네 과거 역사 인식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은근이 알려주고자 하는 마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국가적인 큰 사건이야 다 인식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어떤 일들을 저질렀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국 형제들 가운데 나는 임진왜란 때 있었던 우리 문중의 역사를 마침 개인적으로 교제하고 있던 기시히 자매와의 교제에서 들려주면서, 한 일이 서로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화해해야 하며, 우리가 이렇게 교제하게 된 것을 감사한다고 말했다. 우리 조상들이 그런 짓을 한 줄을 처음 듣는다고 하면서 슬퍼해주었다. 일본 형제들이 차갑술 형이 일어를 잘하는 것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면으로는 문 노형보다도 듣기가 더 편하다고 말들을 했다. 그래서 우리가 문 노형은 일본에서 오래 사셨는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물으면, 문형은 오사카에서 살아서 그쪽 사투리와 발음이 있는데 비해서 차형은 한국에서 표준 일본어를 배우셨기 때문에 발음이 듣기에 편하다고들 했다. 차형은 자기가 일본어 잘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이 조선어 말살 정책에 의해서 한국어를 못 쓰게 하고 일본어만 하게 하는 정책 때문이라고 하는 간증을 하였다. 일본 형제나 자매들은 자기들의 조상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슬프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사실은 두 나라의 성도들이 만나서 영적으로 즐거운 교제들만 하면 좋을 텐데, 지난 역사의 어두운 면들을 나누게 되는 것이 좀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일본 형제자매들에게 숨겨진 저들의 역사를 일깨워주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러한 노력들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대한 역사의 한이 잠겨 있어서 이야기를 해야 속이 후련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본 사람들도 한국 교회를 방문하거나, 우리가 일본 교회를 방문했을 때, 일본 성도들이 우리의 조상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사과부터 하는 것을 보면 알기는 아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일본에 머물고 있는 기간에 교과서 왜곡 시비로 한 일 간에 시끄러운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교제도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었다. 이런 교제의 자리에서 사역자 네기시 형제가 약간 감정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일본의 믿는 젊은 세대들이 한일 간에 얽힌 역사를 바로 알아서 건강한 미래를 나아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할 수만 있으면 많이 알려 주는 것이 좋으리라 믿었다. 이런 교제가 자주 되풀이될 필요는 없지만 지성과 역사적인 식견을 갖춘 형제나 자매들에 의해서 건전하게 나누어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뒤틀어진 역사인식을 가지면 국수주의 내지는 군국주의에 빠지게 마련이다. 혹 일본 교회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경제적인 후원에만 마음이 있어서 할 말을 하지 않고 저자세로 교제하는 것은 한국교회와 민족의 품위를 떨어트리는 일일 것이다. 가시이 자매님이 성구 액자를 하나씩 선물로 주었다 또 나를 29세 정도로 알고 빨간 넥타이를 주기도 해서 모두 한바탕 웃으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오전에 시간이 있어서 우리끼리 시내 구경을 나갔다. 어떤 전자 상점에 들어갔는데 여점원이 얼마나 친절하든지 모든 카메라를 다 구경할 수가 있었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잘 못 들어서 돌고 돌아서 찾아왔다.
마에바시(前橋) 교회 6. 28. 화
오후에 한 형제가 우리를 前橋 교회로 데려다주었다. 화요일 저녁 집회에는 성도들이 많이 모였다. 집회 뒤 우리는 일본 형제들과 늦게까지 교제했다.
小野上村温泉センタ(온천) 6. 29. 수
오늘은 이곳 형제들의 인도로 온천에 목욕하러 가는 날이어서 기대가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에 온천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 형제의 인도로 탕에 들어갔다. 온천물은 뜨거웠다. 억지로 몸을 담그고 한참 후에 일본 형제가 밖에 있는 야외 온천탕으로 나가자고 하여 따라 나갔다. 야외 온천탕은 저 멀리 주택들이 보였고 밝은 태양은 벌거벗은 남녀들을 비추이고 있었다. 밖에 있는 탕은 크고 넓은데 탕 가운데 남녀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갈대 같은 것으로 엮은 발을 쳐 놓았는데 다 뚫어져서 쌍방이 들여다보는 것은 아무 경계가 없는 것이었다. 여자들의 아름다운 육체들 그리고 모든 것들은 그림같이 보인다. 모두 태연한 것들을 보면서 여기서는 이런 정도에는 아무 감정도 없는 것 같이 보였다. 여자 쪽에서는 이쪽 남자들을 의식하지 않는지 이쪽을 향하여 탕 난간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모습들이 천연스러웠다.
옛부터 일본은 남녀가 유별하는 문화가 없었다. 한마디로 성 개방 사회였다. 남녀가 가리는 문화에서 들어내 놓는 개방형 성문화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남녀 혼탕은 일본에서는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온천탕에서 벌거벗고 함께 온천 목욕을 하는 장면들은 일본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며, 남녀 혼탕은 지금도 일본에서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유교의 남녀유별이라는 엄한 윤리의 틀에 갇혀서 가리고만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렇지 사실 속은 안 그러면서도 밖으로는 체 하고 살아온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그렇지, 열어 놓고 사는 것이 습관이 되면 무감각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가리지 않고 사는 문화가 유럽에서는 많이 퍼지고 있다.
요지경의 경험들을 하고 나오니, 휴게실에는 일본의 고전 전통 무용을 하고 있어서 잠시 구경을 하였다. 춤 이름이 가부키로 남자가 혼자서 아주 느린 동작으로 추는 고전 춤이다. 많은 목욕꾼들이 차를 나누며 춤 감상을 하고 있는데, 우리도 자리를 잡고 감상을 좀 하고 싶은데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 춤을 좀 더 이해하고 일본 사람들의 고전적 예술 감각을 좀 이해하고 싶은데 아쉬웠다.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전자 제품들을 Shopping 하고 혼죠로 돌아왔다. 혼죠 교회에서는 내일 떠나는 우리들을 위하여 송별식을 차려 주었다. 마에바시(前橋) 교회에서 어떤 분이 전자계산기와 각자에게 만 엔씩을 선물로 보내와서 너무 고마웠다. 문 노형은 내 설교를 통역하거나, 무슨 말을 하면 사사건건 짧게 하라고 잔소리를 하시는데, 내 설교를 통역하실 때면 얼마쯤 지나면 그만 짧게 하라고 짜증스럽게 말씀하시곤 하셔서 은혜가 되지를 않았다. 그럴 때면 강단에서 그만두고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곤 하였다. 이러니 말씀에 무슨 은혜가 있었겠는지? 가까운 거리라면 그만 떠나고 싶었다. 노인께서 좀 인격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상전 같이 막대하고 있어서 불편하였다. 그 뒤로 나는 일본에서 알량하게 일어를 하는 분들의 통역으로 말씀을 보는 일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차갑술 형님께서 통역해 주시는 것이 편했다.
할렐루야! 합창
송별식을 마치고 젊은 일본 형제자매들이 모여서 우리들을 위하여 찬양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헨델의 할렐루야를 부르겠다고 하자, 그때 우리 팀 대부분은 아직 그 노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일본 형제자매 팀들이 지휘자도 없이 부르려고 해서 나는 장난 삼아 일어나 되지도 않은 솜씨로 합창단을 지휘하여 웃기면서 재미있는 마무리를 하였다.
신칸센(新幹線) 히까리(光) 고속 열차 6. 30. 목
오늘은 이곳을 아주 떠나서 후쿠오카로 가는 날이다. 우리들은 혼죠에서 열차로 동경 우에노 역에 내려서, 전철로 동경 역에 와서 후쿠오카 급행 히까리를 타면서 고마웠고 수고 많았던 혼죠 형제들과 헤어졌다. 히카리(光) 열차는 신칸센으로 동경에서 후쿠오카까지는 475Km로 2시간 정도 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초고속 열차 가운데 하나였다. 일본 열도 남부를 가로지르면서 일본의 산하를 마음껏 감상할 수가 있었다. 아직 한국이 이런 열차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여서 이런 200Km 이상 달리는 고속 처음 타보는 분들에게는 환상의 열차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유럽에 있을 때 불란서 Paris에서 독일 Frankfurt(478Km)까지 오는 테제베(TGV)를 타보았는데, 넓고 넓은 들판을 달리는 테제베에 비해, 동경에서 후쿠오카로 가는 히커리는 가깝게 멀리 산과 들을 끼고 달려서 덜 지루함을 느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타보는 고속열차는 또 다른 경험이 되었다. 6시 45분경 어두움이 깃드는 규슈에 도착하니 형제들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집회 시간이 바빠서인지 저녁도 주지 않는 체 집회에 참여하게 했다. 끝나고 몇 개의 빵과 수프로 저녁을 먹도록 해 주었다. 우리들은 예배당에서 쉬었다. 주님이 우리를 일본 남부에서 이렇게 대접을 받으며 쉬도록 해 주셨다. 밤 10시 뒤에 일본 형제가 우리 모두에게 한국에 전화를 하도록 해 주어서 고마웠다. 너무 긴 시간 일본에 머물다 보니 어떤 교회의 방문은 큰 뜻이 없이 마지못해서 우리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는데, 나 개인의 감정 때문이라고 느끼기도 하는데, 그렇게 느끼는 형제들도 있어서 꼭 나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후쿠오카 교회 10. 1. 금.
새 아침은 후쿠오카 예배당에서 밝았다. 10:30 자매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주로 부인들이었다. 나에게 말씀을 부탁해서 말씀의 교제를 나누었다. 집회 뒤 자매들이 정성을 다하여 만든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오후에 두 형제가 우리를 데리고 시내를 구경하고 Tower에 올라가서 후쿠오카 항구와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제일 큰 쇼핑센터에 가서 6층까지를 다녀 보았다. 마침 안경점을 하는 형제가 있다고 하여서 들려서 나는 태양경(Sun Glass) 1,300엔짜리를 만 엔에 샀다. 저녁 집회에는 차형과 조 형제가 말씀을 교제를 하였다. 어떤 형제가 우리에게 좋은 볼펜을 하나씩 선물해 주어서 고마웠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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