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히로시마
오사카(大阪) 10. 2. 토
오전에 일본 형제들과 교제하고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오사카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13:45 히까리 고속 열차로 오사카로 떠났다. 모임에서 사랑의 선물 10,000엔씩을 주었다. 나는 일기를 정리하려고 식당차로 가서 쉬면서 쓰는데 1시간이 지났을까 조병현형제가 와서 그동안 서먹했던 마음을 푸는데 김종만도 왔다. 음료수를 함께 나누면서 그동안 서먹했던 마음들을 풀었다. 여럿이 어울려 다니다 보니 감정의 충돌도 있고, 모임에서 더 자기를 나타내거나 소개해 주는 강도에 따라 감정의 변화를 받는 일들이 있을 수 있었다. 누구를 소개하는 분도 듣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배려하는 소양이, 듣는 사람도 그러려니 하는 무던함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나 자신도 더 깊고 높은 수양이 필요함을 깊이 느꼈다.
문 노형은 완전히 Big Brother로서 행세했고 그리고 그는 가는 곳마다 김종만 형제를 박사들이 나오는 교회의 목회자라고 추켜 내 세워 주었다. 문 노형이 누구를 어떻게 내세워주느냐에 따라 일본 형제들에게 인기도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문 노형과 제일 가깝게 대화하며 눈치 보는 사람도 김종만 형제였다. 차갑술 형님은 떠오르는 주자로 아직은 알려지지를 않아서 일본인들에게는 낯 선 데가 있지만 노형이 잘 밀어준다면 일어 통역으로서는 크게 쓸 제목이 되실 분이셨다. 노형은 오사카 사투리로 말씀하시지만, 차 형은 표준어를 쓴다고 일본 형제들이 좋아하고 있었다.
오사카 역에는 여러 형제들이 나와서 우리를 맞이하여 주었다. 한 시간 정도 전차를 타고 이즈미(和泉)에 사는 후지와라 형제님 댁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나누었다. 전화를 걸게 해 주어서 고마웠다. 한국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는 형제는 성격이 괄괄하고 시원하여 좋았다.
아래 카드는 우리가 방문한 1982년 해인 12월에 후지와라 형제가 보낸 가족사진의 크라스마스 카드이다.
후지와라 형제 댁에서 저녁 교제를 마치고 우리는 이즈미(和泉)교회의 원로이시면 마을에서는 의인으로 알려진 의사 오가와(小川) 노형 댁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즈미 교회 진행부에서 내일 아침 집회에 내가 말씀을 보고 저녁에는 김종만 형제가 복음을 전해 달라고 알려왔다.
이즈미(和泉) 교회 10. 3. 주일
이 교회 주일은 아주 바쁜 일정이다. 10시 반에 시작된 만찬 예배 시간으로 시작해서 점심시간 뒤인 1시 반에 말씀교제 시간이 있고 1시간 반 휴식 뒤 다시 4시에 전도 집회를 한다. 그리고 7시에 형제회로 마치게 되는데, 한마디로 이곳 성도들은 하루종일 교회 활동에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즈미 교회 주일 예배 시간
10:30 - 12:00 만찬 예배
12:00 - 12:40 보고, 기도 시간
12:40 - 13:30 점심 식사
13:30 - 14:30 말씀 시간
16:00 - 17:30 전도 집회
19:00 - 20:00 형제 회
나의 오늘 설교는 창 12:1-3 말씀에서, “부름 받은 내가 바로 믿음의 조상이라눈 점을 강조하면서 믿음의 자손들이 태어나 번성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나의 간증을 곁들였는데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모임에서 우리들에게 사랑의 교제(물질)를 다른 곳에 가신 문 노형이 오시면 의논해서 주겠다고 하여 고마웠다. 오사카 모임에서 우리를 히로시마 관광을 시켜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이고' 형제가 전해 주었다.
히로시마(広島) 평화공원 10. 4. 월
어저께 주일을 바쁘게 보낸 우리가 이 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이는 것은 좀 무리였다. 5:30에 일어나 전철을 여러 번갈아 타고 며칠 헤어졌던 문 노형 일행과 만나서 원자폭탄의 최대 피해지인 히로시마를 갔다. 일본 패망의 처참한 상처를 볼 수 있었다. 군국주의의 정신병자들이 일으킨 대동아 전쟁과 진주만 폭격은 일본이 스스로 망하고자 작정한 일들이었다. 원자탄 하나의 그 위력이 이렇게 한 시가지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10여만의 목숨을 앗아갔고, 반세기가 지났어도 방사능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 만든 가공할만한 무기 앞에 이제 인류는 떨면서 살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시아 민족에게 이토록 잔인한 죄를 짓고도 안일 무사하리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큰 착각일 것이다.
1905 청일·러일 전쟁을 지켜보면서, 우치무라는 앞으로 일본은 더 큰 전쟁을 벌일 것이며, 하나님은 일본에 불벼락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적으로 말했다.
우치무라의 예언대로 일본은 하나님의 심판의 불벼락을 받은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악의 권력은 언제나 벌을 받고 망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무지한 살인자들이 심판을 받아 망할 때에야 그 심각성을 깨달으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랴! 이런 심판으로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근성이 사라졌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저지른 저들의 만행에 대해서 뉘우치고 사과하지 않으면서 역사 왜곡까지 하고 있는 이 섬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되어 갈 것이지는 또 역사를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일 왕궁’을 방문했을 때 이미 군국주의에 대한 나의 마음을 썼듯이,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일왕이 자신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 죄 없는 백성들의 생명을 희생을 시킨 엄청난 죄를 지었는데도, 일왕은 양심의 가책도 없는 것 같고, 백성들 또한 무지해서 인지 이 큰 희생에 대해서 그 책임을 왕에게 묻지도 않으니, 이 어찌 된 일인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왕에게 그저 이 한목숨 바치는 나라인가? 놀랍고 무서운 나라다. 시가지는 복구되었지만 부서진 시청 건물은 그대로 남겨두어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있었다. 전쟁은 인류의 악이었다. 인류에게 이런 큰 죄악을 짓고도 그 민족이 회개할 줄 모르고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여 자신들의 죄를 감추고 자손들에게 우리들은 아무것도 잘 못한 것이 없다고 가르치는, 저 악한 민족도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오사카 교회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불광동 교회에 왔던 대학생 형제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가웠다.
오사카 성 10. 5. 화
오사카 성은 조선 침략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천하를 통일하고 다스리던 곳이다. 이곳에서 조선 침략 계획이 세워지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본거지다. 우리 조상들은 그때 너무 세계를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 큰 화를 입은 것이다. 그 옛날 미개했던 일본은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백제로부터 글과 문화를 배워서 문명의 나라가 되는 길을 열어 주었는데, 이제 정복을 당하고 짓밟히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우리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의 좁은 세계관은 자기 발전이 없는 사람으로 우물 안 개구리로 완고해지기 마련이다. 대한의 젊은 형제자매들이여! 나아가서 세계를 배우라. 그리고 집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져라. 오후에는 우리 모두 다까스끼 교회로 와서 부인(자매) 회 집회에 참석하여 새로운 교제의 즐거움을 나누었다. 집회 뒤 문 장로님과 이 자매는 교토로 떠나고 우리는 이곳 자매들의 안내로 Shopping Center를 돌아보도록 해 주어서 고마웠다. 우리와 교제하기 위하여 모여진 저녁 집회에는 12명 정도가 모였다. 나에게 말씀을 부탁하여 교제를 나누었다.
月下美人(선인장 꽃) 10. 6, 1982.
수요일 저녁집회 설교를 마치고 강대상을 내려오는데, 한 자매님이 가까이 오더니, 자기 집에 일 년에 한 번 그리고 4시간만 피었다가 지는 꽃이 오늘 피었다고 보러 가자고 하여 일본 형제자매와 우리 몇이 따라나섰다. 자매님은 아파트에 홀로 살고 있었다. 꽃의 이름은 한국어로 월하미인(月下美人)이란 선인장 종류다. 대체로 6~9월에 피며, 밤 8시경에 피어서 아침에 시든다고 한다. 주인 자매는 원폭 피해자로 방사능 감염 자여서 정부에서 출산 정지 명령이 내려져서 일생을 홀로 살고 있었다. 외롭게 피었다 지는 귀한 꽃 한 송이를 우리 나그네들과 나누어 보려는 자매님의 마음이 아름다웠다. 우리 모두 그 아름다운 꽃을 처음 보게 되었다. 꽃말이 "밤의 고독"으로 우아한 흰 꽃 한 송이의 자태는 외롭게 사는 자매님만큼이나 가냘프게 보였다.
▶ 월하미인(月下美人), 일어 ゲッカビジン(겐까비진), 중국어 昙花(Tánhuā 담화), 영어 night blooming cereus
전설에 따르면, 히말라야 지역에 널리 피어 나는 월하미인(曇花)을 불교에서는 성스러운 꽃(성화)으로 여기는데, 3000년 만에 한 번 피는데, 피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져버리고 만다고 한다. 천년의 오랜 기다림 끝에 피었다가 찰나에 시들고 마는 탄화의 고사에서 나온 성어로 ‘탄화이씨엔(曇花一現)’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 탄화이씨엔(曇花一現) : “반짝하고 지나가는 좋은 시기”
( 인간의 기대와 바람은 잠깐 나타났다가 한순간에 덧없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나팔꽃 한 송이
나는 가냘픈 이 한 송이 월하미인을 보면서, 오전에 오사카 성에서 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에게 얽힌 '나팔꽃 한 송'이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옮겨본다. “어느 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마당에 많이 핀 나팔꽃을 보고 너무 좋아서 저녁에 꽃 Party를 열라고 명령했다. 저녁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뒤뜰 정원에 나와 보니 그 많던 나팔꽃이 다 없어지고 나팔꽃 한 송이가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가 화를 내자, 꽃 파티를 주관하는 신하가 와서, "많은 꽃보다 한 송이일 때 진정으로 그 꽃의 아름다움과 향취를 맛볼 수 있다"는 그럴싸한 말로 그의 노여움을 가라 안쳤다고 한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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