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새해 Jan.1. 1985
캐나다에서 처음 맞이하는 새해이다. 뉴욕에 갔다 온 지 여러 날이 지난 오늘 여행 가방을 정리하다가 $100 이 든 봉투 하나가 나왔다. 이름도 없는 선물이었다. 주님께서 주신 손길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내가 New York에 가서 믿는 분들을 위하여 적게나마 주님 일을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놀라운 주님께서 부족한 것을 여기서도 길을 열어 써 주시니 나의 주님은 놀라우신 분이셨다. 나는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cashier 일을 가르쳐 주겠다던 학생에게 전화를 하였다. 공부도 공부지만 일을 하여 벌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오후에 토론토에 와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는 누님 집에 살면서 영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마침 누님 내외는 한국에 나가고 아무도 없어서 지내기가 편했다. 그에게 여러 날 있으면서 가게에도 함께 있으면서 청소도 해 주고 물건 정리도 해주는데, 그는 나에게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사용 원리만 가르쳐 줄 뿐 손님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지는 않았다. 가르쳐 준다고 데리고 와서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아서 며칠 함께 있는 것이 미안해졌다.
TOEFL Course Jan 7 Mon
Trinity School의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TOEFL 점수를 따기 위해서 TOEFL Course를 택했다. 하나밖에 없는 한국 식품점에 가서 배추를 사다가 처음으로 김치를 만들어 보았다. 아내가 만드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아왔는데, 오늘 그 흉내를 내 보았다. 내 형편에 맛이야 어떻던 김치면 되었다.
가족이 Canada Visa 신청 Jan 11. Fri
한국에서 자매가 보낸 $ 2395을 보내왔다. 집에 전화하여 은하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이 Canada Visa를 신청을 했다고 했다. 오늘 Mr. McCarthy 가 나의 가족들을 위하여 천거해 주는 편지를 가져오셔서 잠시 우리 가족을 오게 하는 일에 대해서 교제를 나누고 떠날 때 $20 선물을 주셨다. 영어를 배우려고 애쓰는 상원 모친을 위해서 쉬운 회화를 녹음해서 갖다 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셨다. 상원 형제가 카드와 함께 $50을 선물로 주어서 고마웠다. 오늘은(1.17) 온종일 쉬지 않고 눈이 내렸다. 새해에 눈이 많이 내리는 걸 보니 올해는 풍년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River Drive Bible chapel Jan 20 Sun
아침 8시 Finch 지하철 Passenger Pick Up에서 McCarthy형이 나를 데리고 당신의 모임인 River Drive Bible Chapel로 갔다. 새로 시작하고 있는 모임으로 25여 명 정도 모이고 있었다. 모임에서 격려의 선물로 $ 50의 선물을 주셨다.
거절된 가족 비자 Jan 24 Th
아침에 자매로부터 Visa를 못 받았다는 전화가 왔다. 이럴 때 나의 신분과 재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내가 외국으로 움직이면서 나의 신분문제와 특히 재정 보증 문제는 필수로 따라다니는 문제들이었다. 그저 한국 땅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었다. 현실은 막막하지만 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다음 날 Dr. Philip 장로님에게 가족의 Visa가 Cancel 되었다는 전화를 드렸더니, 자기가 장로들과 의논해서 돕도록 해 보겠다고 하셔서 위로가 되었다.
장로들의 결정 Jan 27 Sun
오늘 예배 뒤 장로들이 나의 가족 문제를 위하여 의논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결론은 재정보증에는 Sign 할 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좋은 편지를 써주는 일에는 모두 동의를 하셨다고 했다. 교회에서 $25 수표를 주시면서 격려해 주셨다. 시카고 강태훈 형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기가 미국인이라 안 되고 토론토에 있는 동생에게 말해서 재정에 대한 서류를 만들어 주라고 하겠다고 해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이때부터 나의 가족이 캐나다에 오기까지 겪는 일들은 하나의 드라마 같이 되어가고 있었다.
학교장의 친절한 배려 Jan 28 M
학위과정을 하고 있는 학교 교장에게 우리 가족문제를 의논드렸더니, Dr. McCarthy로부터 형제의 가족문제를 들었다고 하시면서 학생 가족은 당연히 와야 한다면서 자기가 현금 $5,000 보증금을 걸어 주겠다고 해 주시어서 너무 고마웠다. 필요하다면 전보로 재정 보증서를 보내 줄 것이고 편지도 한 장 보내 주시겠다고 시원스럽게 말해 주어서 고맙기만 했다. 역시 사업을 크게 하는 분이시라 통이 크고 사람을 믿어주는 아량이 있었다. 또 가족 초청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셔서 이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내 자매가 세상을 너무 몰라서 Visa 받으러 갈 때 돈이라도 좀 만들어 놓고 가야 하는데 빈 손으로 가니 뭐가 되겠는가? 여기서 은행 잔고 증명서를 한 장 만들어 보내는 일에 Dr. Mccarthy 형이 $ 5000을 우선 나의 계좌에 넣어 주시겠다고 하셔서 고마웠다.
은행 잔고 Feb 1 Fri
오늘 한국 캐나다 대사관에 가족 비자 신청하는 일에 필요한 재정보증을 위하여 은행 잔고를 만들려고 하는데 McCarthy형이 $5000과 그리고 상원 형제도 $1000을 내 통장에 넣어 주어서 만 불이 조금 넘는 잔고증명서를 떼었다. 그리고 학교장의 그럴듯하게 쓴 편지와 오천 불의 재정 보증서를 만들어 주어서 함께 보냈다. 여러분들이 크게 적게 우리 가족의 비자 문제를 도와주시고 계셔서 고마웠다. 집에 전화를 하여 거기서도 돈을 좀 준비하여 은행 잔고를 만들도록 하고 여기서 보낸 재정 보증서가 도착하면 함께 비자를 신청하도록 하라고 했다. 그러면 좀 도움이 되려는지, 미국에서 Mr. Vance에게서 $250 이 왔다고 하여 어려운 가정에 조금 도움이 되리라 믿어서 마음이 놓였다. 오늘(Feb 4) 송찬 호형이 보낸 편지에는 자녀들 교육 등을 생각해서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뜻을 전해왔다. 엠마오 신학교 일로 열세에 몰려 있는 송 형이 많이 갈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네 생각에는 송형은 그저 한국에 있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New York 모임 방문 Feb 9 sat-
지난 수요일 New York에서 천형이 주말에 와달라는 전화가 와서 오늘 뉴욕을 가려고 길을 나섰다. 토론토에서 미국 Buffalo까지 Greyhound로 가서 날틀로 Newark에 내리니, 천형이 맞아 주었다. 천형 댁에서 쉬었다. 그동안 가정모임으로 모이다가 이제 New Jersey에 있는 Grace Chapel에서 미국 형제들과 함께 예배하고, 오후 2시에 아래층에서 한국인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주일 한인들의 예배를 마치고 저녁에는 남 형제 집에서 모여 12시가 넘도록 교제하였다. 한인 모임에서 $250의 선물을 주셨다.
![](https://blog.kakaocdn.net/dn/bfmoKO/btsGDJQTN9a/Z9jXqQg009XHh3i6dxO9AK/img.png)
신학교에 관심 있는 형제들 Feb 13 W
한국에서 박건신, 임석호 형제들이 나에게 전화하여 한국에서 신학교 입학하는 문제를 의논해 왔다. 아마 저들도 좀 더 연장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데 길이 없어서 멀리 있는 나에게 물어왔다. 도움을 받을 만한 이름을 소개하여 주었다. 오후 상원 형제 모친이 오셨다. 갈비 절인 것과 미역을 사 오셨다. 그리고 $ 20의 선물도 함께 주셨다. 모친이 마음을 많이 써 주셔서 고맙기만 했다. 한 열흘 뒤, 박건신 형제의 전화가 왔는데 수도 침신에 편입이 안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학교에서 1학년부터 하라고 권하는 모양이다. 정규학교인데 아무 학적 경력이 없는 데 편입하고자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았다. 저녁에 McCarthy 형이 영어 수업을 끝내고 잠시 교제하면서 또 $20의 선물을 주셨다.
두 번째 거절된 비자 Feb 25 M
지난주에 비자 신청을 하였는데 오늘 비자가 또 거절되었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두 번이나 Visa를 거부당했는데, 이제 길은 무엇인가?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하시려고 하시는지, 주님의 뜻을 알고 싶은 마음이다. 대사관에서는 아이들은 안 되고 부인 혼자만 가라고 한단다. 은하가 자기들은 괜찮으니까 엄마만 가도 된다고 하면서 나를 위로하는 밝은 마음이어서 안심은 되지만,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은하에 대해서 마음이 많이 쓰인다. 주일에 에스더 자매님이 $12을 주셨다. 며칠 뒤 캐나다 대사관에서 Visa를 거부한 이유로는 수원에 아파트도 팔고 캐나다에 영주 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라면서, 다른 방법으로 신청하라는 편지가 왔다고, 알려 왔다. 지난밤 눈이 엄청나게 내려서 모든 학교가 다 쉬게 되었다. 캐나다도 강원도 같이 눈이 많이 오는 나라이다. 다음 날 한국총영사관에 가서 가족 초청장을 다시 발급받았다.
Driving lesson Feb 29
오늘부터 운전교습을 받기로 하였다. 여기는 운전대를 한 번도 안 잡아 본 사람도 바로 길에 데리고 나가서 운전 교육을 하는 것이 한국과 완전히 달랐다. 한국에서 운전을 해 본 나는 별 문제없었다. 캐나다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가 가족 초청문제를 의논하자, 나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서 Dr. McCarthy 가 한국에 있는 미국 선교사 Doug(이수원)에게 전화를 하여서, 나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고,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한 것 같다. 며칠 뒤 나에게 한국에 전화한 일을 말씀해 주셨다. 이수원형이 나에 대해서 좋게 말해 준 것 같다. 이때부터 모임 분들이 나를 믿어주시는 것 같았다. 며칠 뒤 Shepherd 부근에 사시는 우리 교회 장로님 댁에 가서 한국 캐나다 대사관에 보낼 편지를 받아 가지고 왔다. 우리 가족을 위하여 마음을 써 주시고 계시는 몇몇 분들을 보면서 위로가 되었으며, 주님이 꼭 해 주실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Dr. Philip 장로님이 교회 편지를 아직 공증을 받지 못하여 수요일에나 찾을 수 있겠는지, 마음이 바쁘니 하루가 한 달 같이 느껴졌다. 한국에서 자매가 보낸 편지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들을 알려 와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함께 보낸 은하의 글은 나를 위로해 주고 안도의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 그의 넓은 마음이 이제는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그의 마음이 고맙기만 했다.(March 31) 삼월 삼일 수요일 강 모친이 $60을 주셔서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랑으로 주시는지라 감사히 받았다.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받아서 다 나를 주시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저녁 모임에서 Philip 장로님은 공증이 된 편지를 주셨다.
부활절 수양회 March 5. Fri
토론토 모임에서는 부활절 주말에 동서로 나뉘어 두 곳에서 학교 건물을 빌려서 하루 수양회를 해마다 열고 있었다. 두 곳으로 나누어 주말 수양회를 하는 데, 두 곳은 서로 좀 개방적인 모임과 좀 완고한 모임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분들은 오전과 오후를 나누어 두 곳을 번갈아 가며 참여하고 있었다. Harold 형이 나를 데리고 함께 참석하였는데, 여러 형제분들에게 나를 소개하여 주셨다. 그리고 캐나다 형제 교회의 선교회 회장인 Mr. Cofly에게도 소개했다. 그는 나의 사정을 이미 듣고 알고 있다고 하면서, 수요일에 Board 회의가 있는데 그때 의논하여 모두 동의하면 가족 초청을 위한 편지를 써 주겠다고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Harold 형이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는 $ 10의 선물을 주셨다.
New York 한인 교회 March 6. St
며칠 전 와달라는 초청이 있어서 오늘 New York으로 또 가게 되었다. 토론토에서 Greyhound 버스를 타고 미국 Buffalo 공항에서 타고 Newark 공항에 내리니 송 형제가 마중을 나와 주었다. 그동안 박형의 일로 천형과 조형제가 다툼이 있었고, 박형의 스캔들로 김순겸 형님이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이 일로 Chicago 모임이 나누어졌다는 걱정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이번 방문은 여러 가지 유쾌하지 않은 소식들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주일 예배는 식구들이 좀 더 늘어서 오붓한 마음이었다. 오후 우리 한인들의 예배가 끝나고 김순겸 형님이 자기와 같이 가자고 하여서 형님이 살고 있는 West Chest로 3시간 달려서 왔다. 형님은 성남에서 오셨는데 미국에 이민 오셔서 여러 가지를 하시다가 이제 구두 수선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딸 셋을 가진 형제는 아이들을 잘 교육하고 키우기 위해서 일부러 백인동네이고 시골인 이곳으로 왔단다. 그가 필라델피아에서 생선 가게를 할 때 거리에서 검둥이 남자와 흰둥이 여자가 껴안고 키스하는 것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고 내 딸들도 커서 저러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흑인들이 거의 없는 적은 도시 여기로 왔단다. 형님이 인종 색깔에 대해서 거부감과 차별 의식이 강한 것 같았다. 백인들 가운데는 아시아 사람들을 누렁이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열차로 New York으로 March 8-9. W
김 형의 Shoes Repair 가게에서 시간을 좀 보냈다. 내외분이 익숙한 솜씨로 구두 수선을 하고 있었다. 나도 뭔가 돕고 싶지만 딱히 도울 일이 없어서 미안했다. 버스로 Philadelphia 기차역에 와서 New York 행 Express 열차 표를 샀다. 떠나 올 때 김형이 $100의 선물을 주셔서 고맙기는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었다. 구두 몇 켤레를 수리해야 백 불이 되는지, 이렇게 큰 선물을 주시는지 조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New York역에 내려 천형의 가게로 가서 만나야 함께 그의 집으로 갈 수 있는데 시간이 바쁘다. 지리에 서툰 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요금을 넣어야 하는데 잔돈이 없어서 그냥 $10짜리를 넣으려고 하니까 기사가 못 넣게 한다. 정학한 액수를 넣으라는 것이다. 나는 잔돈이 필요 없다고 해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손님들에게 누가 잔돈으로 바꾸어 주실 분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바꾸어 주지를 않는다. 그래서 내렸다. 가게에 가서 껌을 하나 사자 잔돈이 생겼다. 미국서 시내버스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었다. 다음 시내버스를 타고 천형 가게에 오니 자매님이 가게 문을 닫고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반가웠다. 목요일 모임에서의 교제는 즐거웠다. 한인 모임에서 $250의 선물을 주셨다. 금요일 마침 천형이 두 아이와 토론토에 계시는 어머니를 방문하러 간다고 하여서 천형 차로 함께 토론토로 오면서 많은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MSC(캐나다 형제 교회 선교부) March 11. Fri
Harold 형에게 전화하여 뉴욕에서 돌아왔다고 안부전화를 하고 한국 형제들과의 교제 소식을 전하였더니 기뻐하셨다. MSC에서 나의 가족을 위하여 천거하는 편지를 써 놓았다고 찾아가라고 전하여 주셨다. 오후에 선교부 사무실에 가서 편지를 찾아왔다. 저녁에는 유학생인 심 학생이 일하는 가게에 가서 Cash 하는 일을 좀 배웠다. 잘 가르쳐 주어서 고마웠다. 서양은 이 Cashier만 잘해도 밥은 먹고살 수가 있었다. 익숙해지는 대로 일자리를 구해야겠다. 일자리가 필요한 나에게 누가 지렁이를 잡으러 가자고 권한다. 여름에 하루 밤에 $200은 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살펴보니, 나는 허리가 안 좋아서 할 수가 없어서 사양했다. 경제적인 걱정 없이 공부만 하다가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왜 이내 인생은 이렇게 피곤한지!
캐나다 운전면허증 March 26 F
그동안 몇 번의 운전교습을 끝내고 오늘 운전면허 Road Test 시험을 보러 갔다. 내 차가 없어서 개인 운전교습 차를 빌렸다. 내 차례가 되자 여성 시험관이 내 옆에 타고 그가 지시하는 거리에 나가서 이것저것 시험을 보았는데 합격이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바로 캐나다 운전 면허증을 받으니 이제 캐나다에 자리를 잡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운전면허증은 사진도 붙지 않은 그냥 종이조각이었다.(몇 년 뒤 이민자들이 사진이 붙지 않은 면허증의 남용으로 사고사 잦자, 사진이 붙은 플라스틱 카드로 바뀌어졌다.)
캐나다 재정 보증서 March 30 W
한국에서 자매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난주 세 번째로 다시 비자를 신청하였는데 이번에는 영사가 두 달 시간을 줄 테니 3년간의 재정 보증서를 캐나다에서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한단다. 스스로 포기하도록 자꾸 어려운 과제를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자매가 영사에게 나 혼자 가겠다고 하자, 당장 내일 신체검사를 받으라고 했다고 한다.
MSC 회장과의 의논 May 1 W
오후 MSC(선교부)를 방문하여 회장이신 Mr. Copley를 만나 나의 한국 사정을 말하고 나의 재정을 선교부 Count에 넣어 놓고 사용할 테니 재정 보증서를 한 장 만들어 달라고 의논을 드렸다. 회장은 다음 주에 회의 때 의논해 보겠다고 했다. 모임의 장로들에게도 같은 말을 하니 의논해보겠다 했다. 서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가족 일로 모두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할 뿐이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주님께서 돕지 않으시면 모든 것은 허사일 뿐이다.
징조의 말씀? May 4. st
아침 QT 말씀에서 읽은 말씀. “너는 네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사 7:11. 징조를 구하라는 말씀이 내게 대하여 무슨 뜻인지? 종일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은 영어 학교에서 Banquet이 열렸는데 대단했다. 함께 영어를 배우는 학생 가운데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오는 길에 차를 한잔하자고 해서 차를 마시면서, 내 생활을 묻기에 그저 지나가는 말로 주말에 할 일을 구하고 있다고 하자, 자기가 주말 job을 알아보아 주겠다고 해서 아침의 말씀 따라 한줄기 빛이 보이는 듯했다. 오늘 주일은 징조의 말씀을 따라 위로와 새로운 희망을 바라보는 날이었다. 오후 1:30 Harold형이 나를 데리고 북쪽에 있는 New Market Gospel Hall에서 열리고 있는 오후 수양회에 갔다. 두 시간 반 동안에 두 번의 말씀 시간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들던지? Harold형이 원래 이 모임에서 장로로 있으면서 영적으로 크게 넓게 활동하시던 분이었는데, 부인이 아이가 셋인데도 이혼을 원해서 이렇게 큰 일꾼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어서 딱했다. 그래도 여러 모임에서 여전히 부름을 받고 있었다. 왜냐하면 Harold형이 잘 못을 범하지 않았고, 자매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오후에는 Central 교회에서 장로님들이 내 문제를 의논하고 있을 텐데 좋은 결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녁에 Central 모임으로 돌아와서 장로들과 만나서, 내가 $5000을 교회 Count에 넣고 필요할 때 찾아 쓰도록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니, Dr. Philip이 영사가 자세한 사용 금액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재정 보증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Dr. Philip과 Harold형 두 분이 사무실에서 한참을 무엇인가 의논하고 나왔다. Harold형이 나를 데려다주면서 Dr. Philip이 정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한 형제분에게 연락하여 나의 일을 돕도록 해 보겠다는 의견을 나누었다고 들려주어서 기뻤다. 사실 그렇다. 누가 나서서 우리를 위하여 정부를 설득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우리와 한국 캐나다 영사는 지금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으로 우리로 하여금 불가능한 일을 해 오라는 숙제를 준 것이다. 주님께서 어떻게 도와주실 것인지 그 징조를 기다려 보아야 하겠다.
Mr. Eric Johnston May 6 M
저녁에 Harold형으로부터 아주 반가운 전화가 왔다. 정부에 영향력이 있는 Mr. Eric Johnston이라는 노형을 소개해 주셨다. 이 분은 원래 우리 교회에 계시다가 다른 모임으로 나가시는 70이 넘으신 노형이셨다. 나에 일에 대해서 전화를 의논하였다고 하면서 그분의 번호를 주시며 전화를 해보라고 하셨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재정 보증서라는 것 때문에 나는 지금 신경과민이 되어 있는데 징조가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가족문제로 시간을 많이 소비하니 마음이 집중되지 못하여 여러 가지 공부에도 지장을 크게 받고 있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Mr. Johnston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내일 만나자고 주소를 알려 주셨다. 다음 날 오전에 Mr. Johnston이 살고 계시는 APT로 찾아갔다. 그분이 사는 APT는 조금 고급스러웠다. 응접실에서 만나서 나의 신앙 간증을 듣고 싶어 하셔서 나의 구원 간증과 모임을 개척하게 된 간증을 들려드렸다. 여러 가지 나의 환경을 물어서 대답해 드렸다.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친절하시게 도 최선을 다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주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주님은 앞서서 도울 자를 준비해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분이 우리 아이들을 캐나다로 오도록 해 주실 주님의 사자셨다. 우리 모임의 Mrs. Virgin 노 자매님이 주님께로 가셔서 처음으로 Funeral House에 가서 서양 장례식장을 구경했다. 오늘 정형모 형제가 척추전문 치료사 학교를 졸업을 했다. 그 집에서 밤 3시가 되도록 교제하다가 오는 길에 자매님이 먹을 것을 많이 싸 주셔서 고마웠다.
Peoples Church 사립학교 May 8 W
Mr. Johnston께서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고등학교에 공부하는 일들을 알아보시고 전화로 알려 주셨다. 알아본 것은 6개월 전에 모든 유학생들의 자녀들에 대해 일 년에 $3,600을 미리 다 받도록 법이 바뀌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Peoples Church에서 하고 있는 학교에 알아보았는데 수업료를 조금 활인을 해 줄 수도 있다고 한다고 나와 만나기로 약속을 해 놓았다고 한다. 돈이 안 드는 공립학교에 보내려고 하는데, 노형께서 정해 놓은 약속이어서 만나 보았다.
Mr. Johnson 노형의 Ottawa 출장 May 10 Th
Mr. Johnston 노형께서 오늘 외국에서 온 Ontario Bible College 유학생 건과 내 문제를 가지고 450Km나 되는 수도 Ottawa 이민국에 가신다고 한다. 노형은 나를 도우시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그분은 나에게 김 형제는 주님의 일을 하는 형제로 알고 있으니 조용히 기다리라고 있으라고 하셨다. 월요일 오후에 돌아오니까 주말과 주일을 즐겁게 보내라고 격려해 주셨다. 나는 그분에게 당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못 데리고 온다면 그땐 나도 포기하고 돌아가던지 더 있던지 하겠다고 했더니, 바로 그거라고 하면서 좋아했다. 한국에 전화했더니 은하가 받았다 25일 이사를 한단다. 이 달만 기다려 보고 이사를 하도록 하라고 했다.
TOEFL 시험 May 11 St
오늘은 TOEFL 시험을 보는 날이다. 그동안 연습해 놓은 모든 실력을 테스트하는 날이다. 이제 살다가 별 시험을 다 치러본다. 처음 쳐보는 시험이라 좀 얼떨떨하기도 했고, 긴장도 되었지만 아는 것만큼 했다. 오후 1시경 Ottawa에 계시는 Johnston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들을 조건 없이 데려오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 자매의 이름과 내 여권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 참 놀라울 뿐이었다. 이사야 7장 11절, “한 징조를 구하라는” 말씀은 바로 이 분이셨다. 노 형께서 오늘 5월 13일 돌 아오시자 마자 오후 8:30경 오타와에 가셨던 Johnston 노형이 아이들 오는 일이 잘 되었다고 하시면서, 어저께 한국으로 전화를 했단다. Ottawa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상상이 되었다. 또 아이들이 오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에 의한 서류도 받아 왔다고 하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가! 내일 Toronto 이민국에도 가고, Education Board에도 가야 한단다. Director를 자기가 잘 안다고 하셨다. 또 형식상으로라도 주거비용과 생활에 따르는 경제적인 보증을 누군가가 서야 하는데, 자기가 생각하고 있다고 하셨다. 이제야 일이 이렇게 풀리고 있었다. 이제 기쁜 소식을 듣는 시간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주님의 성실하심에 감사할 뿐이었다.
일자리를 얻다 May 14. Tue.
함께 영어 공부하는 학생의 사촌 누님 가게에서 일을 하도록 소개해 주어서 Carton에 있는 Mini Mart를 방문하여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 나를 써 주겠고 해서 고마웠다. 임금은 한 시간에 $5씩으로 하기로 했다. 마침 일하고 있는 그 친구에게 바로 일을 배우는데, 이미 기본은 배워서 쉽게 할 수 있었다. 저녁때쯤에는 많이 익숙해졌다. 밤 12시에 문 닫고 돌아왔다. 이제 일자리도 얻었고 생활도 부분적으로 도울 수가 있게 되었다. 가족만 오면 되는 것이다. Mini mart는 큰 가게로 계산대가 두 개나 있고 식품부가 있어서 여자 직원 한 사람과 세 사람이 일을 하는 가게였다. 하루에 8시간씩 금 토 이틀만 일하기로 했다. 이제 다음 주부터 정식으로 일하기로 했다.
Johnston 노형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이곳 Immigration Office(이민국)에서 한국 영사에게 Fax를 보낸다고 한다. 이제 일이 본격적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Johnston 노형과 함께 People's School에 갔다. 여 교장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고 아이들이 오면 받아 주기로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가까이 와서 차 안에서 기도해 주시고 주머니에 $ 50의 선물을 넣어주셨다. 나는 이 기쁜 소식을 자매에게 알려 주려고 전화를 하여 이곳에서 되고 일들을 이야기하는 동안 아내는 훌쩍이고 있었다. 저녁에는 그동안 나 때문에 수고가 너무 많았던 정형모 형제 가족을 청해서 남강에서 저녁 대접을 하면서 우리에게 되어지고 일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지난주 정형제가 뉴욕 교회에 갔다가 오면서 나의 뉴욕 왕복 날틀 표를 가져다주어서 고마웠다. 다음 날 송찬호형의 전화가 왔다. 내 자매 Visa는 나오고, 아이들은 못 받았다고 알려 주어서 고마웠다. 대사관에서 이미 자매만 보내기로 되어 있던 일이었다. 아이들은 이차로 비자를 받게 될 것으로 믿는 마음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Johnston 노형에게 전화를 드리고 한국 가족 상황을 알려드리고, 내일 그분이 나가시는 Greenwood 교회에 가겠다고 하니 데리러 온다고 하였다. 주일 아침 Johnston 노형과 함께 Greenwood 모임으로 갔다. 예배 후 이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다가 주님께로 가신 어떤 자매님의 유품들을 차려놓고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게 했다. 나는 책 몇 권을 골랐다. 그리고 Mr. Hibbins 노형의 초청으로 그 집에 가서 점심을 나누면서 교제할 수 있어서 기뻤다. Johnston 씨와 돌아오는 길에 Bloor Korean Town에 이르렀다. 나는 그분에게 한국관에 들려 가볍게 한국 음식을 맛보고 가시라고 청하여 함께 한국 식당에 들어가 Noodle을 시켜 드렸다. 김치를 처음 먹어 보고는 맛이 괜찮다고 하면서 좋아하셨다. 한국 식당에 처음 와 보는 것이고 한국음식도 처음인데 맛이 있다고 하셨다.
Affidavits of Support(재정보증서) May 23 Th
Johnston 씨께서 한국 영사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들려주셨다. 일이 조금 까다롭게 되어 가는 것 같다. 영사가 나의 Affidavits of Support(재정보증서)를 보내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하면서 나보고 준비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 일에 동요되지 말고 하는 공부나 잘하라고 격려해 주셔서 고마웠다. 이 문제를 뉴욕에서 사업을 하는 천형에게 전화하여 재정보증 문제를 의논하니 자기 가게 이름으로 얼마를 써주겠다고 했고, 시카고에 계시는 강형도 얼마를 써 주겠다고 하셔서 힘이 났다. Johnston 노 형께서 전화를 하셨는데, 아이들 일이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다. 저녁에 우리 Central 교회로 오신 단다. 나를 위하여 교회가 준비한 편지를 가지러 오시는 모양이다.(May 29 수) 저녁에 오셔서 장로님들과 한참 교제들을 하시고 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시고 가셨다. 다음 날 오후 4시경 Johnston 노형께서 전화를 주셨다. 자기가 Ottawa 이민성에도 전화했고, 저녁에는 한국 캐나다 대사관으로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한국시간을 물으셔서 알려 드렸다. 아마 노형이 무슨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시는 것 같다. 이제 한 주간 안에 무슨 결정이 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학위 코스를 마치다 May
그동안 해 오던 B. A. Degree 코스를 마쳤다. 그리고 모임의 형제이신 Dr. Mcrae가 총장으로 있는 Ontario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원서를 냈다.
아르바이트 첫 수입 June 1 st
오늘 지난주 30시간 일한 임금 $150을 받았다. Canada에서 처음 일하고 번 돈이었다. 생활의 필요를 위하여 일하는 시간을 조금 늘렸다. 화요일 토요일은 오후 3시에서부터 밤 12시까지 9시간씩 하고 주일은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 6시간 주 3회 일하기로 했다. 이 Part time 하는 일은 나의 공부를 조금 힘들게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에세이 쓰는 일이 많은데 비해 내 영어가 짧아서 였다.
Johnston 노형의 회보 June 3 M
저녁 10:30경 Johnston 노형의 전화가 왔다. 어젯밤 한국 대사관으로 전화하여 Senior 영사를 불러서 한 시간 정도 전화를 했단다. 영사와 나눈 말씀의 요지는 UN에서 인도주의 국가라고 인정하는 우리나라에서 아버지를 학생으로 받았으면 그 가족도 받아 주어야지 가족을 분리시켜 고통을 주는 그것이 인도주의 나라냐고 세게 말씀을 하신 모양이다. 그랬더니 영사가 서류들에 Sign을 해서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했다고 하면서 일이 잘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Johnston 씨는 누구신가? 이 분은 캐나다 정부의 국방부를 대표하여 미국에서도 상주한 적이 있는 관료 출신이었다. 지금 이민성 여성 장관은 전에 이 분 밑에서 일하던 분이었고 교육부에도 아주 가까운 사람이 일하고 있어서 나의 신학교 외국 학생들에 대한 법적 문제를 이 분이 처리해 주고 계셨다. 그리고 정부 여러 곳에 이 분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또 지역에서도 주민들을 위한 정치활동을 하시는 지역 정치인으로 국회 상하 의원들이 알아 모시는 분이셨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일꾼을 세워주신 것은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이다.
오늘(June 5) MSC 선교 후원회에서 어떤 기탁자의 $50 수표를 나의 학비에 보태어 쓰라고 보내주셨다. 나는 고마움의 답장을 선교회와 기탁자에게 보냈다. 오늘 수요 저녁 집회 후 Johnston 과 Harold 가 교회 장로님들과 함께 사무실에 들어가더니 장시간 의논을 하면서 모종의 합의를 본 것 같다. Johnston 씨는 나에게 이 편지를 한국에 보낼 것이고 그리고 Ottawa에서도 한국 영사에게 압력을 가하는 모종의 Message가 한국으로 갈 것이니 기도나 하고 있으라고 했다.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시니 정말 고마울 뿐이었다. 다음 날 Johnston 노형이 한국 캐나다 대사관으로 Fax를 보냈다고 Harold 형이 알려왔다. 그리고 자매의 캐나다 입국 비자가 연장이 안 된다고 알려 와서 Johnston 노형에게 의논드렸더니 먼저 들어오게 하라고 하시면서, 자매가 들어오더라도 아이들 일은 계속할 것이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저녁에 뉴욕에서 사업하는 천형으로부터 미국에 와서 공부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하는 전화를 해 주어서 고마웠다. 수요 집회 뒤 Hilda 노 자매와 악수를 하는데 손에 무엇인가 쥐어 주는데 $ 100이었다. 내가 20시간 일해야 하는 큰돈이었다. 고마운 노자매님이 셨다.
자매가 오는 날 June 14. Fri
오늘은 한국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매가 오는 날이다. 그동안 마음고생만 하다가 결국 아이들은 남겨둔 채 먼저 오기로 했다. 9개월 만에 다시 보는 반가운 얼굴이다. 공항 안내에서 나를 찾는 소리가 있어서, 이민국 사무실에 갔더니 자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입국 수속을 하고 나왔다. 심과 그 친구가 차를 가지고 와 우리를 데려다주어서 고마웠다. 주일에 자매를 데리고 모임에 가니 모두 반가워하셨다. 사회자가 나의 자매가 와서 함께 하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소개를 해 주셨다. 예배를 마치고 Hilda 노 자매님이 우리를 데리고 Swiss Chalet에 가서 점심을 사주셨고, 집으로 데리고 가서 차를 나누며 교제를 하면서 손수 만드신 Jam, Marmalade Canning(집에서 만든 통조림)들을 주셨다. 자매회에서 살림 준비하는데 쓰라고 $100을 주셨다.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크셨다.
Student Visa June 25 T
나의 학생 Visa 연장을 위하여 학교에서 Attendance Certificate(재학증명서) 한 장을 받았다. 아이들 보증서에 고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신 Sounder 장로님의 Sign을 받았다. 시카고의 강형으로부터 재정보증서와 $ 100을 보내 주셔서 고마웠다. 아침 8시 Immigration에 가서 5시간이나 기다려서야 일 년 학생 Visa를 연장받았다. 오늘 수요 집회를 마치고 회계 장로님이 나에게 지난 주일에 나온 무기명 헌금 $ 100을 주셨다. 또 Harold 형이 오늘 저녁 설교하고 받은 사례금 $ 50도 나에게 주셨다. 주님께서는 여러 손길들을 통하여 도와주시고 계셨다.
Trinity English School June 17 TH
오늘은 또 Trinity English School 1년을 졸업 하는 날이다. 수료증을 받았다. 9월부터는 OTS에서 석사 코스를 공부하게 될 것이다. Mart 주인 내외가 한국에 나간다고 보낼 것이 있으면 보내라고 하여서 꿀, 비타민, 청심환을 보냈다. Harold 형이 나를 데리고 함께 식사하고 Ontario Place에 가서 두 편의 Video를 보고, Symphony도 들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해 주셨다.
오늘 주일(June 20) 예배를 마치고 Harold 형을 모시고 우리 집에 와서 냉면으로 대접해 드렸는데, 처음 먹어보는 메밀국수라고 하시면서 김치와 함께 맛이 좋다고 하셨다. 자기가 오늘 점심을 사려고 했다고 하시면서 사양함에도 불구하고 $20을 내놓으셨다. 이제 7월에 들어서면서 아이들을 데려 오려는 노력들이 두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국 캐나다 대사관 영사는 아이들까지 보내면 영주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능한 우리 가정을 나누어 놓으려고 하고 있어서 일이 쉽게 풀리지 않고 있었다. 7월 3일인 오늘 Johnston노형이 우리의 여권 복사 그리고 필요한 몇 가지 서류를 예배 전에 갖다가 달라고 전화하셨다. 노력해 주시는 노형이 고맙기만 했다.
주급을 받는 재미
여기 임금제도는 주로 시간당으로 임금을 결정하며, 매주 임금을 주고 있었다. 정확한 세금보고를 위하여 수표로 주는데, 아직 노동허가가 없는 우리 같은 학생들을 위하여 현금으로 주고 있었다. 방학이 되어서 일을 더하자 수입이 많아지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매주 힘은 들어도 돈 버는 재미도 있었다. 첫 주 30시간 $150, 둘째 주부터 46시간 $230로 매주 이 정도의 돈을 벌고 있었다.
교회의 선물 July 21 S
예배를 마치고 Dr. Philip 장로님 부부가 오늘 예배에 온 김상원 부부와 우리를 당신 집으로 초대하여 점심을 대접해 주셨다. 오후 Harold 형이 토론토 어느 모임에 오셨다가 잠시 들리셔서 교제하시다가 가시면서 오늘 교회로부터 받으신 사례금 $50을 주셨다. 우리 교회에서 $200을 새 살림에 보태어 쓰라고 주셨다. 수요일 Harold 형과 함께 세관에 가서 자매가 붙여 온 상자 6개를 찾아왔다. Johnston 씨께서 Ottawa에 이민성 노동 담당자 등에게 세 번이나 전화를 했다고 알려 주셨다. 노형이 하실 수 있는 데로 노력하시고 계셨다.
반가운 소식 July 26 F
오전에 Johnston 노형이 전화하셨다. Ottawa(캐나다 수도)에서 모종의 Message가 한국으로 갔으니, 아이들로 하여금 Visa 신청을 하도록 연락을 하라고 하신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인내케 하시다가 이제야 허락하셨다. 나는 바로 은하에게 비자받을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전화했다. 이번 주일에는(July 28) Johnston 노형의 Greenwood 교회 예배에 갔다. 예배 뒤 집으로 모시고 와서 다과와 인삼차를 대접해 드렸는데 차 맛이 좋다고 하셨다.
이제 8월이 되면서 나에게는 돈 벌기에 바쁜 달이기도 하고, 미국도 두 곳이나 방문을 하도록 되어 있어서 바쁠 것 같다. 미국 방문을 위하여 미국 visa를 받았다. 한국에서 미국 비자를 받기가 그렇게 어려운데, 여기서는 학생으로 있으니까, 미국 가는 일은 옆집 가는 것 같이 쉬운데, 이것도 유학생이 누리는 특권일 것이다.
8월 첫 주말 뉴욕 방문
New jersey Tenafly의 미국 예배당에서 한인들이 모이고 있어서 좋았다. 아직 설교의 은사를 가지신 형제가 없어서 나를 자주 초청하는 것 같았다. 모두 사업하고 사느라 바쁜 가운데서도 주님을 섬기려고 모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형제자매들이다.
Chicago 방문 Aug 17-19
Chicago 도착하니 John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강 형님 가정에서 쉬면서 많은 교제를 나누었다. 주일에 강형이 차를 타고 교회로 가면서 나보고 설교를 하란다. 왜 미리 엊저녁에 말해주지 않았을까, 좀 당황스러웠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에스겔 8장에서 “마음에서 우상을 제하라”라는 말씀으로 설교를 했다. 교회에서 $300, 상두 형제 $20, 강치 삼형이 $200을 교제해 주셨다. 저녁에는 나의 장래 문제를 위하여 여러분들이 의논해 주셨다. 월요일 사모님이 출근하시면서 두고 가신 봉투를 날틀에서 보니 $200 이 들어 있었다. 나에게는 너무 큰 선물이었다. 주님은 Chicago에서 내 등록금 거의 반을 축복해 주셨다.
학교에서 부름
미국에서 돌아오니 학교 교무처에서 왔다 가라는 편지가 와 있었다. 7월에 내가 제출한 TOEFL 점수가 학교에 요구하는 560점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겨우 500점 턱걸이를 한 것이었다. 그래서 입학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기다려 보아야 할 일이었다. 학교에 가서 교무처장을 만나보니 회의에서 TOEFL은 부족하지만 영국에서 일 년 동안 수업한 경험이 참작되어서 입학을 허락은 하는데 조건이 있다고 하면서 우선 한 과목을 해 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나는 나이도 있고, 시간을 그렇게 많이 허비할 수 없고, 빨리 마치고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서, 첫 학기에 Full Course(4과목, 12학점)를 해 보겠다, 결과가 낙제가 된다면 아예 공부를 포기하겠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좋다고 허락하여 주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입학이 허락되었다.
![](https://blog.kakaocdn.net/dn/m3Pwd/btrLK0Bq0EB/pvLe2BIqaeDqKwoYUTX4eK/img.png)
시계 선물 Aug 23 F
아내 손목에 시계가 없어서 오늘 자매를 데리고 Shopping Mall에 가서 $ 43.99되는 Timex 시계를 사서 선물했는데, 별로 받아보는 것이 없이 살아서인지 몹시 기뻐하였다. Mart에서 저녁 일을 마칠 즈음 주인이 오셨다. 함께 일하는 친구와 우리를 Chinese 식당에 초대해 주셨다. 주일 오후에 Harold 형이 우리와 의논할 일이 있다면서 오셨다. 당신이 집을 하나 샀는데, 우리 보고 거기에 살면서 관리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우리가 이층에 살고 아래층과 지하에 방을 만들어 세를 놓는 일등을 관리해 달라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고 $20을 주셨다. 하와이에서 Mrs. St. Clair가 $ 40을 보내 주셨다.
Ontario Theological Seminary 개학하는 날 Sept 5 Th
오늘은 기쁜 날이다. 입학식을 하는 날이다. 이제야 인정받는 학교에서 Master of Divinity 과정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마음의 한을 푸는 듯하였다. 앞으로 어떻게 부딪혀 나갈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감격하기만 하다. 캐나다에서는 가장 복음적이고 학교의 목표는 일선 목회자, 청년지도자 그리고 선교사를 길러 내는 교육을 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형제교회의 사역자가 학장으로 그리고 몇 분의 형제님들이 학부와 대학원의 교수로 있어서 큰 위로가 되었다. 9:00부터 Orientation이 시작되었다. 교수들의 개인 소개와 신앙 경험과 이 신학교에서 일하는 사명감들을 들려주어서 은혜가 되었다. 첫날은 이렇게 하고 다음 날 입학 수속에 대한 간단한 소개 절차를 비서들로부터 받고, 과목 선택 Paper를 작성하고 Tuition Fee(등록금) $1330, 도서관 Card(토론토 대학교 포함)와 학생회비 $121을 냈다. 오후에는 신입생들의 수양회로 Muskoka 수양 관으로 가는데 중국 학생의 차로 갔다. 아름다운 숲에서 우리는 휴식하면서, 또 여러 교수들과 교제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주일에는 성찬예배를 드렸다. 오후 Small Group 시간에서의 ‘거룩한 종’에 대해서 토론하는데 나는 영어가 짧아서 힘들었다.
첫 수업 Sept 9. Mon
![](https://blog.kakaocdn.net/dn/DWDm9/btrLOnPwMYS/YyLVNOkoO2Y0uCYnBZ6V5K/img.png)
이제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 학기는 4과목 12학점이 Full course인데 각 과목 Syllabus(시간표)를 보니 읽어야 할 책과 Report, Essay 등 한마디로 장난이 아니었다. 이제 영어로 공부하는 이 과정을 어떻게 지나가게 될지 하늘이 노랗기만 하다. 이제 공부를 시작한 지 첫 한 주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공부하는 방법이 한국과 근본적으로 달라 공부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벌써 신경이 과민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한두 분의 한국인 선배보다는 중국인 형제들을 처음부터 사귀고 또 몇몇 캐네디언 학생들을 사귀면서 그들로부터 공부하는 요령들과 자료들을 도움받게 되어서 공부를 반이나 다 한 것 같이 반가웠다. 여기서도 주님께서는 여러 언어와 문화가 다른 친구들을 통하여 나의 살길을 이렇게 열어주시고 계셨다.
며칠 뒤 아들 혁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사관에서 인터뷰 날 자를 기다리라고 한단다. 영사가 Toronto에 있는 내 문제가 아직 해결이 안 되었다고 한단다, 무엇이 문제인가? 궁금하기만 하다. 자매와 나는 힘써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다행한 것은 한인 업소들이 제법 있어서 일자리들은 있는 편이어서 우리들이 살아가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part time 일이 나의 공부에 많은 지장을 주고 있었고, 또 일을 나가는 자매를 Osgood 지하철역까지 매일 가서 데리고 오는 일도 나에게는 아까운 시간이었다. 어서 익숙해져서 스스로 다닐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자매가 가게에서 일하면서 피곤하여 코피를 흘렸다고 한다. 처음 해 보는 일이어서 힘든 모양인데 적응이 되면 괜찮아지리라 믿어진다. 한국에서 송찬호 형의 반가운 편지가 왔는데, 그동안 엠마오 학교 일로 여러 형제들과 화해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민국 Interview 요청 Sept 13 F
학교 내 사서함에는 이민국에서 온 편지 한 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아이들 때문에 interview 할 일이 있다고 날 자를 알려 왔다. 나는 김상원 형제와 Harold 형과 이민국 가기 전에 은행 잔고 증명서 만드는 일을 의논했다. 상원 형제가 $1100을, Harold 형이 다음 주일에 $5000을 빌려 주시기로 하였다. Mr. Johnston에게 전화를 하니 Ottawa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저녁에 모임에 오셔서 Ottawa에서 하신 일들을 들려주셨다. 자기와 가까운 재무장관이 Immigration 장관에게 보낸 협조 요청의 편지 두 장도 나에게 보여 주셨다. 보잘것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너무 수고가 많으셨다. 주께서 우리 가정의 재결합을 위하여 한 걸음씩 인도하여 주시고 계시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내일 이민국에 가서 만날 담당자도 자기가 아는 사람이고 우리 일로 그동안 이야기해 오든 분이란다. 내일 같이 이민국에 가자고 하셔서 큰 위로가 되었다. 상원 형제의 것과 Harold 형의 것을 넣어 은행 잔고를 떼었다.
Interview Sept 24. T
오전 8:30 Johnston 씨와 함께 이민국에 가서 담당자를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결과는 좋았다. 나의 매월 고정 수입을 $2,000 이 넘는 것으로 인정하여 주었다. 그리고 Johnston 씨는 이민관에게 선교적인 차원에서 캐나다 교회가 세계에 기여하는 수많은 예들을 말하면서 Mr. Jewha Kim의 교육을 돕는 것도 선교차원에서 Canadian 교회가 할 수 있는 큰 특권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Canadian 교회가 이 사람과 그의 가족을 보증하겠다는데 여러분들이 너무 까다롭게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인도주의 면에서 한참 설교를 하시고는 가지고 가신 문서(오타와에서 가져온)를 전해주니 이민관은 만족해했다. 한국 대사관에서는 나를 직접 만나서 재정 문제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 결과를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고 말해 주었다. 이제야 아이들이 올 때가 가까워 오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며칠 뒤 기쁜 소식이 아이들로부터 왔다. 캐나다 대사관에서 아이들에게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우리 가족을 향하신 주님의 은혜와 축복은 너무 크셨다. 관료 출신이신 노형의 조건 없는 사랑과 헌신에 무한한 고마움을 드리고 싶다. 바로 이런 은혜를 받은 우리도 남을 돕는데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저녁에 가게 일을 나가서 주인에게 공부에 지장이 많아서 화요일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니 주인도 좋다고 했다. 금토 주말만 일하기로 했다.
시험이 시험이다 Oct 3 Th
공부라고 몇 달 하고 나니 이제 시험기간이 오고 있어서 정말 시험이 되고 있었다. 조직신학 교수 Dr. Foster에게 시험 시간에 사전을 사용해도 좋은 가를 물었더니 시험지를 줄 테니 집에 가서 써 오란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는지, 놀랄 뿐이다. 며칠 뒤 교실 복도에서 학년이 일 년 위인 캐네디언 형제를 만났다. 나보고 공부가 어떤가 하여 묻기에 영어가 힘들어 필기가 곤란하다고 했더니, 이게 웬일인가, 자기 부인이 필기를 잘하는데, 몇 년 전에 조직신학을 공부를 했는데 필기를 잘해 놓았다고 갖다가 주겠다고 하여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언어 장애로 공부가 점점 힘들어 가고, 차가 없어서 교회에 가는 것도 힘들지만 나 자신을 이기고 나아가야만 했다. 수요 저녁집회를 마치자 교회에서 $200을 주셨다. 하와이 St. Clair 할머님이 보낸 $20 오다. 지난해부터 은퇴하신 이스라엘 선교사 Mr. Obstrosky 노형이 우리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하게 되었는데 오늘 $50 선물을 주셔서 반가웠다. 오늘 가게 주인이 일하는 삯을 시간당 $ 1씩 더 올려 주어서 반가웠다. 오후 4시부터 12시까지 8시간에는 헬퍼 만 세 사람이 일하는데, 주인이 나를 조금 믿어서 인지 관리를 부탁하고 있어서 내가 일하는 시간 동안은 모두 나의 관할 아래 있게 되었다. 주인이 오후에 퇴근하고 나면 8시간 동안 이 큰 가게는 내게 맡겨진다. 많은 상품과 현금이 거래되다 보니 주인은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하였다. 내가 저녁 수입 전부를 계산해서 금고에 넣고, Security Key(보안장치)를 올리고 문을 닫고 함께 나가는 것으로 일이 마쳐졌다.
기쁜 소식 Oct 22 Tue
이른 아침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린다. 아이들이 Visa를 받았다는 기쁜 소식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해 주셨고 그리고 응답해 주시기 위해서 여러 귀한 형제분들을 쓰셨는데 그 가운데 Mr. Johnston 노형은 우리들을 위한 주님의 사자였다. 나 홀로 캐나다에 온 지 일 년이 조금 지나면서 온 가족이 캐나다에서 합치게 되었다. 사실은 나의 학업과 가정을 지원해 주는 한국 교회는 없었는데, 한 교회도 없었다. 나는 이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Mr. Johnston, Dr. Phillip, Dr.Harold 노형들에게 알려 드렸다.
주택문제 해결 Oct 29. Tue.
오늘 Harold 형과 함께 Barton Ave. 에 사놓은 집에 가보았다. 아담한 2층 집에 옥탑 방이 딸린 집을 $11,7000에 집을 사셨다. 아이들이 오면 그리로 이사하게 될 것이다. 집세는 내겠지만 주택문제가 이렇게 쉽게 해결되니 이것도 주님의 축복이었다. 어쩌면 이 분은 우리 가족을 위하여 이 집을 샀는지도 모른다.
교육청 방문 Oct 31 Th
Johnston 노형은 벌써 아이들 교육 문제로 교육청에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함께 가보자고 하여 우리는 교육청에 가서 Mrs. Smith를 만나니 얼마나 친절하고 협조적인지 놀랍기만 했다. 이미 이 분이 다해 놓고 우리를 인사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오면 학교에 넣어 주겠다고 해 주셨다. 11월 첫날 오후 수업이 끝난 시간에 뜻 밖에 Harold 형이 학교로 나를 데리러 왔다. Kentucky Chicken을 사 가지고 당신이 산 새 집에 와서 먹으면서, 지하실은 방을 꾸며 세를 놓고 응접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의논했다. 나는 응접실에도 방이 한 칸 있으니까 전체를 세를 놓도록 하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이사를 하면, 지하실에 방들을 만들고 세놓는 일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20의 선물을 주시었다.
I. M. I.(International Mission Incorporate) Nov. 11 Mon.
미국에 있는 국제선교회에서 우리 학교에 와서 선교사 훈련코스를 소개할 때 내가 관심이 있어서 신청을 하였는데, 심사를 거처 오늘 선교회에서 2차 서류가 왔다. 선교사 훈련 코스에 참가하도록 허가되었다는 기쁜 소식이다. 방학 때 또 새로운 세계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Mr. Vance로부터 $250의 선물이 와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주일에는 교회에서 익명의 헌금 $200을 주셨는데, 내가 짐작하기로는 의사이며 반 친구인 마이클이 보낸 것이라고 믿어졌다. 교회의 광고 시간에 Joe 노형이 우리 살림을 위하여 광고를 해 주셨다. 고등학교 교장을 하셨던 Mr. Sounder 씨가 자기가 쓰던 책꽂이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비디오 설교 테스트 Nov. 18 M
오늘 설교 시간에는 각각 비디오 camera 앞에 서서 15분씩 설교하는 실습 시간은 참 힘들었다. 저녁 Mr. Harold가 내가 쓴 콩글리쉬 에세이를 고쳐 주셨다. 이 뒤로 학교의 모든 과제물은 이 분의 손을 거치게 된다. 영어 선생님으로 은퇴하시고 신학을 공부하셔서 박사 학위를 가지고 계시며 신학교에서 가르치시고 계셨다. 그분의 언어 실력은 나의 어색한 한국식 영어를 잘 다듬어 주시었다. 교회의 Joe 장로님이 전화를 하셨다. 우리 가정이 새로 꾸밀 살림을 위하여 $500 모아졌다고 연락해 주셔서 고마웠다. 토요일 저녁 오늘 일을 마치고 나니, 이번 주 23시간 일한 $138을 받았다.
은하, 혁이 드디어 Canada에 오다. Nov. 29 Fri
그렇게도 한국을 떠나기 어려웠던 아이들이 이제 캐나다 땅을 밟을 수 있게 되니 주님의 은혜가 클 뿐이었다. 어두워진 Toronto Peason Airport 출구에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캐나다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 은하는 동명여고를 졸업했고, 혁이는 명지고등학교 1학년 2학기에 캐나다로 오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의 편이셨다. 그리고 Mr. Johnston 노형, Harold 형, Mr. Phillips 등 모임의 기도와 후원을 우리 삶이 다할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을 새 집으로 데려다 놓고, 우리는 밤 두 시가 되도록 Harold 형의 작은 차로 Richmond 아파트에서 이삿짐을 4번이나 실어 날랐다. Harold 형이 너무 우리를 위하여 수고를 많이 해 주셨다. 다음 날 교회에서 주신 $500로 Good will에 가서 필요한 가구들을 사서 Harold 형의 차로 세 번이나 또 실어다 주셨다.
교회의 환영 Dec 1. Sun
오늘은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주일이다. 일 년여 이산가족이 되어서 마음고생들이 많았었는데, 오늘 우리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기도 많이 해주시고 힘써 주시던 교회 예배에 함께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교회에서 우리 가족을 일일이 소개해 주셨고, 예배를 마치고 모든 분들이 손을 잡아 주시면서 환영해 주시었다. Hilda 노 자매님이 우리 아이들이 왔다고 좋아하시면서 우리 식구들을 Swiss Chalet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점심을 사주셨다. 젊은 사람들이 귀한 이 교회에서는 나와 같은 나이 또래는 몇 명뿐이고 우리 아이들 같은 애들은 전혀 없으니까, 모두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고등학교 입학 Dec. 16 M
12월 5일 아이들을 데리고 Education Boarder에 가니 친절하게 서류를 꾸며 주시고, 아이들을 우리 집 가까운 Central High School에 배정하여 주었다. 학교를 찾아가서 부 교장을 만나니 우리를 ESL 교실을 보도록 안내해 주시고 학교를 돌아보게 해 주셔서 고마웠다. 내일 아이들 영어실력 Test를 하도록 시간을 잡아 주셨다. ESL(English Second Language) 반은 아직 영어로 정식 과정을 하기 어려운 외국 학생들을 위하여 같은 과목을 좀 쉬운 영어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교육과정을 말하는데, 이 과정에서 영어도 함께 배우게 된다. 며칠 사이에 아이들이 영어권 학교 학생이 되었는데,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해 나가며 잘 적응해야 할 것이다. 혁이는 연신 중학교가 서울에서 처음 회화 중심의 시범학교여서 일 학년부터 삼 학년까지 생활영어를 배워서인지 몇 마디라도 편하게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16일 오늘 아이들을 데리고 Central High School에 가서 입학 상담을 하고 서류 수속을 하므로 정식 입학이 되었다. 내일부터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토요일인 오늘 나는 Type writer 한대를 샀다. 원래는 컴퓨터를 사야 공부에 편한데 아직 형편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이 시대는 286이 나오든 시대로 학생들이 PC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던 시대는 아니었다. 오늘 주일에는(12.8) 우리를 생각해 주시는 여러분들이 쓰시던 살림살이들을 가지고 오셔서 고마웠다. 이번 주에는 일을 적게 해서 7시간 $ 42 밖에 안 되었다.
이민국에(12.18) 가서 아이들의 방문 Visa를 Student Visa로 바꾸었다. 오늘 25시간 일한 삯을 $ 150 받았다.
금요일인 오늘 나는 개인 경건의 시간에 고린도전서를 읽으면서 내가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지를 깊이 생각하도록 감동을 주셨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도 하나님도 알아주신다”고전 8:3,
“나는 자유인이어서 아무의 종도 아니지만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고전 9:19
한 해를 보내면서... Dec. 31 T
한 해가 저물어 가기 전에 우리 가족의 재 연합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우리 가족이 캐나다에서 다시 만남은 하나의 드라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월이 많이 지나고 나면 이 일들은 우리 가족에게 남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겨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이런 축복들을 이 삶이 다할 때까지 잊지 말 것이며, 기도해 주시고 밀어주시던 고마운 분들의 기대에 이르도록 주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김제화
'캐나다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캐나다 유학 1984 (0) | 2018.01.18 |
---|---|
I.M.I. 선교사 훈련 1986 (0) | 2018.01.18 |
캐나다 영주 권 1987 (0) | 2018.01.18 |
별장 휴가 1988 (0) | 2018.01.18 |
학교 졸업/ 영주권 예비 심사 (0) | 2015.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