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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유학

캐나다 유학 1984

 

 

Canada 유학의 길  9. 13 목  1984

해외로 나가는 두 번째 길이다. 은평 교회가 U$ 100의 선물을 주었다. 김포공항에 전송 나온 형제자매들이 내가 영국 갈 때 같이 공부하고 꼭 돌아오라는 부탁의 말들을 들으면서 헤어졌다. 나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마음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아무 생활 대책을 세워 놓지 못한 채 그것도 셋집도 똑똑히 마련하지 못해서 우선 동생 영희의 좁은 집에 방 한 칸을 쓰도록 맡겨 놓고 가는 나의 마음이야 오직 했겠는가! 못할 짓을 하는 나의 이 무책임한 자신을 탓하면서 고향산천을 떠나가고 있었다. 내 아내가 학생인 아이 둘을 데리고 사느라고 고생할 일을 생각하면 어지러움이 일어났다. 주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시고 인도해 주시리라 믿는 믿음만이 내 마음의 평안이었다.

 

공항 X-Ray 검사실

전송 나오신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느라 좀 늦게 check in 하고 들어갔는데 나를 찾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공항 직원이 나를 데리고 공항 밖에 있는 X-ray 검사실로 갔다. 나의 007 가방을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비디오들을 가지고 가느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고 열었다. 가방 안에는 그리스. 히브리어 책과 함께 영어회화 복사한 카세트와 책들이 있었다. 아마 검사관들도 자기들이 기대했던 물건들이 나오지 않으니까 좀 실망한 듯 보였다. 그러더니 한 검시관이 회화 카세트를 복제한 것은 불법이라고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 나이에 공부 좀 하려고 가는 데 영어가 짧아서 가지고 가는 것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반장 같은 분이 좋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해서 빠른 걸음으로 날틀을 타러 가는데 마침 늦게 공항에 나와 나를 찾고 있는 정희 동생을 만나게 되어서 몹시 반가웠다. 이 일로 내가 마지막으로 타자 날틀 문은 닫히고 있었다. 내가 탄 North West 날틀은 고국산천을 뒤로하고 동해를 건너서 일본 나리다 공항에 내렸다. 한 시간 휴식하는 시간에 shopping center를 구경하면서 작은 카메라 하나 샀다. 그리고 긴긴 밤 태평양 한가운데 날아 변경선에 이르니 다시 13일이 되어서 같은 날을 두 번이나 사는 편이 되었다. 밝아오는 해님과 함께 미 대륙을 날아 드디어 Chicago 공항에 내렸다.

 

미국 이민국 

입국심사대에서 캐나다로 가는 경유자인 나에게 자유로운 시간을 주지 않는다. 미국 이민국 직원이 캐나다로 가는 나를 마치 강제출국이라도 시키는 사람 같이 데리고 Air Canada 카운터로 가는 통로에서 시카고에 사시는 박준형 형님과 임 장로님이 나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다. 내가 시카고를 경유하여 가는 것을 아시고  일부러 오셔서 나를 격려하여 주시고 $ 50의 귀한 선물도 주셔서 고맙고 반가웠다. 외로운 여행길에 이렇게 잠시 위로 자를 보내 주신 주님께 감사했다. 시간이 되자 Air Canada에서 나를 제일 먼저 들여보낸다. 사실은 날틀에서 내려 경유지 Gate으로 바로 가면 간단한데, 박준형 형이 나오신다고 하여서 밖으로 나오려니, 이민국 직원이 왜 나가려고 하느냐고 물어서 시카고에 사는 친구가 나를 기다린다고 하니까 달아날까 봐 직원을 붙여서 모처럼 만난 형님들과 차를 나누며 교제도 못한 채 걸으면서 교제를 나누었다. Chicago에서 Toronto에 도착하니 어두워진 밤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보낸 편지를 부평에 있던 상원 형제가 받았을 텐데 나와 있지를 않았다. 한 반시간 기다리다가 할 수 없이 공중전화에 가서 전화 부에서 영어로 된 김상옥 형제 이름을  찾아서 전화하니 마침 상옥 형제가 받는다. 얼마 뒤 형제가 나와 주어서 반가웠다. 형제 집에 오니 부친과 모친도 계셔서 지어주는 따뜻한 식사를 하고,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내가 한국에서 오늘 캐나다에 도착한다고 보낸 편지가 오지 않았다고 해서 놀랬다. 이 집의 응접실에서 우선 쉬기로 했다.

 

 

Toronto에서 내 삶의 시작 9. 14 Fr 

토론토에서의 첫 날이 밝았다. 무릎을 꿇고, 여기까지 오도록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보이지 않는 앞길을 위해, 그리고 이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로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상원 형제가 한국 집으로 전화하게 해 주어서 고마웠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처음 맞이하는 주일인데 예배드리러 갈 곳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마침 노량진 교회에서 생활하던 정형모 형제가 부모를 따라 여러 해 전에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지금은 토론토에서 Chiropractor college(척추전문의)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형제가 와서 나를 데리고 Eglington East에 있는 Eglington Gospel Hall에 갔다. 처음 캐나다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셋방 찾아보기  9. 20 TH

이 집에 계속 이렇게 있을 수도 없고 방을 얻어야 해서 셋방을 찾고 있었는데 Richmond street West에 있는 Richmond Square에 가보라고 소개해 주어서 찾아갔다. 한국에서는 아직 상상할 수 없는 20층이 넘는 큰 Renting Building이었다. Office에 가서 물어보니 몇 개의 빈방들이 있다면서 내일 싼 방이 하나 나오는데 10시까지 와보라고 했다. 오늘 저녁에 상원 형제의 친구들이 와서 함께 Bowling장에 가자고 하여, 아직 한 번도 쳐 본 적이 없는 Bowling 장이 갔다. 휴일 저녁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Bowling을 어떻게 치는지 잠깐 배워서 치는 동안 Strike도 나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 날 아침에 허리에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독일에서 다쳐진 허리 디스크에 문제가 생겨서 좌골신경통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동안 좋아져서 잘 간수해 오던 허리가 일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몸을 도저히 가눌 수가 없었다. 

 

바퀴벌레 가득한 아파트 셋방

도저히 움직이기 힘든 허리를 여러 시간 달래어서 간신히 버스로 지하철로 Richmond 아파트 사무실에 가서 어저께 말한 5층에 있는 Bachelor 방을 보여준다. 들어가 보니 바퀴벌레가 득실거리고 찬장에는 바퀴벌레 똥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정말 기분 나쁘고 아찔했다. 좀 좋은 것은 한두 달 기다려야 한단다. 나는 직원에게 왜 방이 이렇게 더럽고 바퀴 벌레들이 있느냐고 물으니, 이 싼 아파트에 오는 사람들이 주로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 등지에서 오는 독신자들이 많은데 깨끗하게 살지 않아서 자기들도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내가 계약을 하면 사무실에서 청소하고 먼저 바퀴벌레 방제 약을 뿌려주겠다고 한다. 나는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 이 방을 깨끗하게 만들어 쓸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두 달 치(첫 달과 마지막 달) 수표를 끊어주고 계약을 하고 방과 현관 열쇠를 받았다. 세는 한 달에 $138이었다. 아파트 회사에서 방제 전문 기관에 연락하여 약을 뿌리려면 며칠 걸리니까 한 주 뒤에 이사하도록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한인들에게 들어보니 이 가격이 토론토에서는 제일 싸다고 한다. 아픈 허리는 나를 완전히 무능력하게 만들었다. 허리가 점점 더 나빠져서 아침에는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응접실과 부엌이 함께 있어서 식구들이 움직이기 전에 일어나야 하는데 움직일 때마다 온 마디가 으스러지는 것 같아 아침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가 나왔다. 좌골신경통의 통증을 어떻게 다 말하랴! 아침마다 한두 시간은 지옥순례와 같은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식구들 보기에 정말 미안했다. 정형이 마침 Chiropractic(척추전문 교정) 공부를 하고 있어서 나의 허리교정도 해주고 Ice 마사지도 해주어서 고마웠다. 며칠 뒤 몸을 움직이고 조금 부드러워지는 한 낯에는 불편을 참으면서 억지로 이사 준비를 했다. 구세군 중고품 파는데 가서 침대, 책상 등 우선 필요한 가구들을 몇 개 샀다. 오늘로 캐나다에 온 지 18일째로 날마다 좌골신경통으로 싸우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했다. 캐나다에서의 시작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희망을 안고 온 내가 할 일이 많은데 이러고 있을 수 많은 없었다. 어서 낳아서 일어서야 했다.

 

 강 모친님의 도움   10. 1 M

아침도 허리는 몹시 나를 괴롭히고 있는데, 모친님이 몸이 좀 풀어지는 대로 함께 살림도구를 싸게 파는 대를 안다고 함께 사러 가자고 하신다. 오후에 Bloor와 Bathurst Street에 있는 Honest에 갔다. 가격이 대체로 싼 물건들을 주로 파는 큰 매장으로 이민자들이 많이 애용하는 곳이었다. 쉽게 말해서 한 가정 살림의 필요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곳이다. 필요한 담요와 살림도구를 사는데 모친이 돈을 내시려고 해서 말리니, 당신께서 주님께 드릴 11조를 하나님의 종인 나를 위하여 쓰도록 했다고 당신이 값을 내시겠다고 하시면서 $ 85을 내주시고, 또 쌀과 고기 등을 사주시면서 모두 $ 104을 쓰셨다. 모친께서 이렇게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니 고마울 뿐이었다.

 

새 보금자리로 이사  10. 2 

고맙게도 정형모 형제가 학교를 마치고 오후 늦게 내 짐과 모친을 싣고 Richmond 아파트로 옮겨 주었다. 그동안 나 혼자 몇 차례 와서 청소를 하고 그래서 제법 깨끗하게 되었다. 짐을 다 내려놓고 정형제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간호사인 자매님이 직장에서 돌아와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즐거운 식사를 하고 다시 아파트로 와서 정리해 주고, 내 허리를 교정치료를 하여 주었다. 거의 매일 형제의 치료로 허리가 많이 부드러워지고 있어서 더없이 고마웠다. 이렇게 도우시는 손길들이 있는 것을 주님께 감사했다. 내가 얻은 방은 문제가 많았다. Oven이 고장 나서 수리시키고 나니, 레지에타 밸브에 물이 새기에 수리 신청을 했다.  냉장고 frozen 상자가 부서져 있었다. 이 모두 수리하느라 아파트 직원들이 수고를 많이 해 주었다. 그리고 내 방에 들어오는 물 배관에 달린 Valve 하나에서 물이 새는데 그것을 수리하느라 5층의 모든 물을 다 빼고 하루 종일이 걸렸는데 Plumer(배관 수리공)들이 정말 수고가 많았다. 이사하자마자 어수선 했던 문제들이 해결되면서 이제야 겨우 안정이 되었다.

 

Mr. Harold McCarthy 영어 선생  10. 4 목

오늘 영어 시간에는 Mr. Harold McCathy 에게서 성경영어를 배웠다. 강의가 끝나고 영어선생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형제교회의 설교자 인 것을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우리는 가까운 친구 같이 되었다. 토론토에서 80Km 북쪽에 있는 River Side Park Bible Chapel 모임의 장로요 성경교사로 모임 가운데 널리 알려져 있는 설교자였다. 한 시간 가까이 교제하다가 나오는데 주머니에 무엇인가 넣어주는데 $ 20의 선물이었다. Canadian 형제로부터 처음 받아보는 뜻밖의 선물에 고맙고도 놀라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교회를 찾고 있는 나에게 Central Gospel Hall을 소개해 주었다.

 

Central Gospel Hall  10. 7 주일

자치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맞이하는 주일이다. 나는 주소를 가지고 street car를 타고 Yonge에서 내려 Subway를 갈아타고 Bloor에서 내려 가까이에 있는 Charles St. E. 에 있는 Cetral Gospel Hall을 찾아갔다. 문에서 안내하시는 노형께 내 소개를 간단하게 하고 깜빡 잊고 천거서를 안 가지고 왔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우린 좀 Liberal 하니까 상관없지만 완고한 데 가면 뒷자리에 앉으라고 한다고 하면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고, 만찬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광고해 주시었다. Phillip 장로님은 은퇴하신 치과 의사로, 온화하시고 좋으셨다. 고맙게도 이 나그네를 위하여 점심을 초대해 주시고 한국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물으셨다.

 

 

스스로 머리 깎기  10. 6 토

오늘 Hair Trimmer를 하나 사서 혼자서 머리를 대강 깎았다. 서양은 이발료가 비싸서 나는 영국에 갈 때부터 Hair Trimmer를 가지고 가서 혼자 머리를 깎는 훈련이 좀 되어 있는 편이다. 저녁에 허리 교정하러 온 정형모 형제에게 뒷머리를 좀 쳐 달라고 했더니 제법 잘하는 솜씨였다.
 

Trinity English School  10. 12 금

오늘은 여기 온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3주간 방을 얻지를 못한 체 아픈 허리와 싸우며 지내던 시간들은 정말 고생스러웠다. 이제 아파트에서 조금 생활의 안정을 얻으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에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이제 등록한 degree 코스를 마치고 내가 가고자 하는 신학대학원에서 요구하는 토플시험 점수를 얻기 위하여 영어 실력을 올리는 것이 아주 절실히 필요하여졌다. 마침 가까운 곳에 영어만 전문으로 가르치는 Trinity English School이 있어서 교무실에 가서 상담을 하였다. 주로 이민자들을 위한 영어 학교였다. 나는 유학생이지만 입학을 허락하여 주어서 입학을 했다. 학비는 무료였다. 이민자들에게는 교통비도 주고 있었지만 유학생들은 자격이 없었다. 가르쳐 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무엇을 더 바라랴. 이런 혜택들을 주는 캐나다는 좋은 나라라고 느끼게 되었다. 나는 토플 공부를 위해서 한국에서 영어 학원을 다녀 본 적도 없고, 책으로 그런 공부를 해 본 적도 없다. 이제 여기서 영어로 토플 공부와 회화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 나이에 또 새로운 고난의 시작이었다. 학위 공부와 더불어 영어공부를 해야 하므로 몹시 바쁘고 피곤해질 것 같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아파트 사서함에는 시카고에서 서춘실 자매님의 격려 편지와 함께 $ 50의 선물 수표를 보내주셔서 힘든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 영어 학교는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서 캐나다 사회에 빨리 적응시키기 위해 있는 영어 전문학교였다. 유학생들도 같은 대우로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해 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군에 갔다 온 어린 학생들과 한 반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학교 과정은 4개월마다 반복되는 Course로 선생들은 모두 이 계통의 자격 있는 전문 선생들이었다. 이런 좋은 학교에서 일전 한 푼 내지 않고 좋은 선생님들로부터 영어를 배을 수  있어서 감사한마음이다. 캐나다는 참 좋은 나라였다.

오늘 저녁 McCathy 선생의 영어 수업을 마치고 나서 잠시 교제하는 가운데 내가 앞으로 공부하기 원하는 Ontario Theological Seminary(지금 Tyndale Theological Seminary)에 가보고 싶다고 하자, 함께 가 주기로 하면서 총장이 모임에서 널리 쓰임 받는 형제라고 소개한다. 교통비로 쓰라고 $ 20을 넣어주셨다. 이제 생활이 조금 안정이 되어가자 나는 가족을 어떻게 이곳으로 올 수 있도록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장로님들과도 의논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난번 약속한 대로 Dr. McCathy가 나를 데리고 Ontario Theology Seminary에 갔다. 4년제 신학 대학과 대학원이 있었고 북미주 대학 학점 인정학교였다. 학장도 잠시 만나보니 개방적인 형제교회에서 사역을 크게 넓게 하시던 분이었다. 이분은 캐나다 모임에서 자랐고, 미국 달라스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학부와 대학원에 몇몇 모임의 형제분들이 교수로 있어서 학교가 마음에 들었다.

 

Radio Annual Conference  10. 20 St

일 년에 한 번씩 이 지역 모임에서 주관하고 있는 Radio Annual Conference가 있는 날이다. Mr. McCathy 오셔서 나를 데리고 갔다. 고등학교 강당을 빌려서 하는데 전국에서 모임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미국 Emmaus Bible School에서 선교 학을 가르치는 형제의 말씀이 있었다. 휴식시간에 그 형제를 만나서 그곳 형편도 듣게 되어 반가웠다. 미국 IOWA 주에 있는 Emmause Bible School은 한 반세기 전에 성경 학교를 반대하는 형제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중요시하는 형제들에 의하여 설립되어 3년 과정으로 그동안 운영되어 왔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나와서 대학과정을 공부했으나 졸업을 하면 아무 학위도 없고 그저 수료증뿐이었다. 교육을 받은 자로서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위 학교에 진학할 수도 없었다. 그동안 동창생들도 학위과정 학교를 만들라는 요구가 많았다고 한다. 마침 주 정부에서 4년제 학사 과정으로 하라는 지시가 와서 부득불 학사학위 과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수료 코스들이 있지만 Degree를 위한 Full Course 가 생긴 것이다. 반세기 후의 일이다. 미국에서는 성경학교 학위는 Bachelor Theology(신학 학사)로 구분한다. 반세기가 되어서야 학위를 주는 정규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미국 신학교 학력 인정 기구에 들어갈 수준은 되지 못하지만, 복음주의로 연계된 학교에서는 학점 보충과 함께 석사 과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엠마오 자체가 교수들의 학력이 낮고 Doctor 학위를 가진 학자들이 이 당시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북미 학력인정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학력인정기구에서 요구하는 도서와 교수들 그리고 학교를 10년 이상 운영해야만 신청이 가능한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다. 앞으로 투자를 해서 수준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왕 수업료 내고 시간을 드려서 공부하는 학교라면 학위를 주는 수준의 학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지금은 많이 발전했으리라 믿는다.) 오늘 이 수양회를 주관하는 Leader 가운데 한 분인 Dr. Kay형제가 나에게 11월 10일에 있는 Missionary Breakfast prayer Meeting(선교사 조친 기도회)에 오라고 하면서 나에게 무료 Ticket을 주었고, 그 모임에서 한 5분 정도 말할 기회를 줄 터이니 한국에 대해서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늘(10.26) 독일 하노버에서 조광래 형제가 85년 여름에 방문해 줄 것을 청하는 편지가 왔다. 한인 모임에서 의논하였다고 하지만, 그분들의 뒤를 돌보아 주고 있는 스타인벡, 엘리사벳 등이 호응을 하려는 지는 두고 볼 일이다.(결국 이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떠날 때 가족들을 위하여 아무 준비를 하지 못하고 떠나서 지금쯤 가족들이 어떻게 먹고사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은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지 고등학교에 막 진학한 혁이는 어떤지? 어머니도 잘 모셔야 할 텐데...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두루두루 궁금한 마음들로 신경을 써서인지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마음이 편하지를 않았다.

 

 Summer Time에 10. 28 Sun

주일예배를 9시반에 시작하기 때문에 제시간에 맞추어 가려고 부지런히 서둘러 Sub Way에 도착하니 아직 철문이 열려 있지 않아서 참으로 이상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시간이 되었는데 왜 문을 안 여냐고 물어보니 오늘부터 Summer Time이 해제되기 때문에 한 시간 늦게 연다고 알려 주었다. 여기 와서 아직 TV. 나 Radio도 없고 신문도 안 보고 살다 보니 이런 일을 당하고 있었다. 기다리기 보다는 걸어서 교회에 갔더니 몇 노형들도 와서 예배당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모두 웃으시면서 형제도 Summer Time 피해자라고 하셨다. 잠시 뒤에 필립 장로님이 오셔서 문을 열고 예배당 안의 시계를 새로 맞추셨다. Summer Time 때문에 나는 서양에 살면서 세 번이나 겪은 사연이 있다. 한 번은 영국 학교에서, 두 번째는 불란서 여행 중에서, 그리고 이번 토론토에서이다.

▶ Summer Time은 영국식이고, 미주는 Daily Light Saving Time이라고 한다.

 

 Halloween Day 10.31 W

저녁은 상원 형제 집에 가서 보냈다. 오늘은 서양 귀신의 날인 Halloween Day라고 이 집 아들이 이상한 옷을 뒤 집어 쓰고는 집집마다 얻으러 다닌다고 나보고 함께 다녀오기를 부탁해서 아이를 따라 두 시간 정도를 다녔다. 호박 등을 켜 놓은 집에 가서 노크를 하고 주인이 나오면 ‘Trick or Treat “하고 지껄이면 주인은 사탕이나 초콜릿을 주곤 했다. 괴상한 날을 처음 경험해 보았다. 이렇게 얻은 먹을거리는 아이가 두고두고 먹을 만큼 많이 얻었다. 기독교 나라에서도 이런 귀신 놀이들이 없어지지 않고 지켜져 오고 있는 것이 참 한심하기만 했다. 

 

Halloween Day 유래

Halloween Day는 아일랜드에 살던 켈트족에서 유래된다. 켈트 신화에서 죽음을 관활 하는 ‘Samhain’이라는 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새해 첫날을 11월 1일로 친다. 한해의 마지막 날인 10월 31에 귀신이 자기 집으로 들어온다고 믿어서 못 들어오도록 집안 분위기를 어둡게 하고 집안을 차갑게 하고, 귀신보다 더 무서운 옷을 입고 있으면 귀신이 놀라서 들어오지 못한다는 풍속이 전해져 내려와서 핼러윈 장식과 복장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년 말인 10월 31은 “삼하인” 신을 기다리는 축제를 벌인다. 켈트족이 로마에 정복당하면서 로마 가톨릭 화 되어서 “삼하인”신을 기리는 축제를 가톨릭의 모든 성인의 날로 바꾸어 “All Hallow”라고  부르면서 오늘날의 Halloween Day가 되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미주에 정착하면서 퍼지게 되었다. 핼러윈 데이는 미국 캐나다 어린이들의 축제로 유명하다. 핼러윈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호박 등은 속을 도려낸 큰 호박에 악마의 얼굴 모습을 새기고 그 안에 촛불을 켜 놓은 것이다. 밤이 되면 도깨비, 마녀, 해적 등으로 가장한 어린이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Trick or Treat(장난을 할까요? 아니면 먹을 것을 주실래요?)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초콜릿과 캔디를 얻어 가는데, 가정마다 이 날은 아이들에게 줄 것들을 미리 준비해 놓는다. 이 때는 크리스마스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소비가 이루어지는 상업의 특수를 누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교민 교회들은 이 날 저녁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거리에 나가지 않도록 하느라고 노력하고 있는 편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은 이방 종교의 귀신들의 날들을 성경과 연관시켜 미화하여 우상과 귀신의 종교로 만들어 왔다. 예를 들자면, 바벨론 종교의 풍요와 식물의 신인 담무스가 동지에 죽어서 지하로 내려갔다가 춘분이 되면 다시 살아나서 지상으로 살아 올라오는 신화를 예수님의  부활절로 둔갑시켰다. 오늘날 교회가 지키는 부활절은 실제로는 성경으로 포장된 담무스의 부활 축제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 서양의 할로윈데이, 밸런타인데이, 정체불명의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등 귀신과 악습 놀이들을 그리스도인들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성경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말씀했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11.1 Th

시간이 더 가기 전에 캐나다 운전면허증을 내려고 오늘 운전면허소에 가서 $20을 내고 필기시험을 보았는데 합격이다. 시험은  Computer Screen을 보면서 보는 4지선다 객관식이었다. 바로바로 답이 나오는 것이 재미있었다. 한국은 필기시험인데 여기는 컴퓨터화된 선진국이었다. Road Test를 보기 위하여 도로 운전 연습을 해야 하는데, 차가 없으니까, 개인 운전교습 차를 돈을 주고 연습해야 할 것 같다. 여기 운전시험 구조가 한국과 근본 달랐다. 여기는 처음부터 바로 거리로 나가서 운전을 배우게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코스 중심으로 여러 번 해 보았지만 여기서는 아무 쓸데가 없었다. 아직 이때는 한국 면허증을 인정하지 않고 있을 때여서 새로 시험을 보아야 했다.(지금은 바로 바꾸어주며, 한글로도 필기시험을 볼 수 있다) 오후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잠시 쉬면서 신문을 보고 있는데 같이 영어 학교에 다니는 이화선 학생이 나를 보고 Coffee 초청을 하여 주어서 5층에 가서 대화를 나누는데, 자기는 수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다. 현실에 대한 상처와 회의가 있었다. 오늘 나는 본의 아니게 그녀의 인생 상담자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전하면서 삶의 가치와 목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행복한 삶에 대해서 나누었다. 나는 매일 성경 5장을 읽는 습관이 있는데 오늘은 나 개인의 경건의 시간에 창 24-29장을 읽고 마음에 큰 은혜를 누렸다.

 

OHIP(온타리오건강보험)  11. 2 Fri

온타리오 건강보험에서 6개월분 $ 178의 청구서 왔다. Rent를 내고 나니까 주머니에는 $470 이 남았다. 점점 가벼워지는 주머니 사정이 마음을 가볍게 하지 않고 있었다. Quebec 주 Montreal에는 영주권을 얻기가 쉽다는 말도 있고 신문에 보면 계속 구인 광고가 나고 있었다. 그쪽으로 연락을 해 보고 영주권을 쉽게 얻을 수만 있다면 공부보다는 삶을 위해서 어디든지 가고 싶은 생각들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몸무게가 70Kg에서 60Kg으로 줄어들었다. 몸과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았다. 안정되지 못한 현실과 두고 온 가족 때문일 것이다. 오늘 나는 유학생 자녀들도 고등학교까지 학비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Missionary Break fast Prayer Meeeting(선교사 조찬 기도회)  11. 3 St

이곳 모임 선교회에서는 "선교사 조찬 기도회"라는 행사도 매년 하고 있어서 대단히 발전한 모습이다. 기도회는 Prince Hotel에 열렸고, Missionary Service(캐나다 형제교회의 선교부)에서 주관하고 있었다. Dr. Harold McCathy 형이 나를 데리고 갔다. 식사 테이블에는 $10 이상을 헌금하라는 쪽지와 헌금 봉투가 놓여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마음이 좀 시험이 되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믿음대로 하라는 한국의 우리 정서와 얼마나 다른가! 그러나 또 얼마나 합리적이고 확실한가! 호텔에서의 조찬은 기본 식대만 해도 $10은 되기 때문이다. 한 600여 명이 왔고, 다섯 분 정도의 선교사들이 단에서 한 6분 정도씩 인터뷰도 하고 선교보고를  했다. 나도 마지막 그룹에 초대를 받아서 한국 모임의 전반에 대해서 간단하게 보고했다. 선교를 위해서 넓게 활동하고 있는 캐나다 형제교회의 선교회(Missionary Service)를 처음 만나보게 되어서 기뻤다. 참 좋은 사귐을 가졌고 한국에서 해보지 못한 새롭고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

 

▶MSC(Missionary Service Committee) 선교 후원회
잠깐 캐나다 형제교회의 선교를 후원하는 공식 기관에 대해서 알아본다. 1940년 캐나다 정부 정책에 따라서, 캐나다 형제교회는 해외 선교사들에게 송금을 할 수 있도록 MSC(Missionary Service Committee)라는 선교회를 만들어서  Revenue Office(세무청)에 등록하였다. 이로서 정부로부터  두 가지 혜택을 받게 되었다.  첫째 해외송금이 가능해졌고,  둘째로는 헌납 자들에게 면세 영수증을 끊어 줄 수 있게 되었다. 

 

Mrs. Homls 노 자매님이 점심을 초대 11.4. 주일

오늘 주일 예배 뒤에는 Mrs. Homls 노 자매님이 점심을 초대해 주셔서 그 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저녁 집회 시간까지 지냈다. 100년이 된 모임으로 지금 토론토의 거의 대부분의 모임들이 여기서 개척되어 나갔다고 한다. 도시가 북쪽으로 발전하여 나가면서 그동안 많이 옮겨가고 지금은 구성원들이 노인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편이고 내가 서너 명을 빼고는 젊은 나이다.  
 

캐나다의 첫눈

오늘은 11월 12일 첫눈이 흩날리는 쌀쌀한 하루였다. 영어 수업을 마치고 Mr. McCathy와 커피를 나누면서 나의 가족을 초청하는 일을 의논했다. 그는 선교사 후원회에 자기가 먼저 의논해 보겠다고 했다. 마음이라도 써 주시니 고마웠다. 그리고 나에게 자기를 부를 때 Harold란 자기 이름을 부르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편하게 Harold라고 부르게 되었다. 자기가 지난 수요일 어느 모임에서 설교하고 받은 $50 수표를 나에게 주셨는데 고마웠다. 한국에서 받은 말씀인 출 23:20 말씀대로 그는 주님이 보내 주신 나의 사자였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온타리오 주 의사당 방문 
오늘은 영어 학교에서 외국에서 온 모든 학생들이 온타리오 주 국회 의사당을 견학하러 갔다. 의회 안내자로부터 주 의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영국 의회제도 운영방식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캐나다 정치제도를 배우는 좋은 하루였다. 캐나다는 아직도 영국의 역사와 전통의 그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녁에 영어 수업을 마치고 Harold 형과 따로 시간을 내어서 오늘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을 나누었다.  

 

 

가족을 초청하기 위해서 오늘(11.21) 한국 총영사관에 가서 가족 초청장을 발급받아 손에 쥐니 가족들이 눈앞에 있는 듯 선하였다. 나온 김에 상원 형제 집에 가서 모친께 인사를 드리고 잠시 교제를 나누는데 11조를 모은 것이라고 $50을 주셨다. 오늘 주일은 교회에서 Potluck 주간이라고 해서 각자 별미들을 만들어 왔다. 남미에서 온 자매들은 쌀로 된 음식들을 가지고 와서 유학생 싱가포르 형제와 나는 실컷 먹었다. 오후에 상원 부부와 만나서 국회 의사당 등지로 다니며 사진들을 찍었다. 나에게 토큰 7개를 사주었다. 내게 돈이라도 넉넉했으면 저녁이라도 사 주고 싶었는데... 오늘(12.3) 12월분 Rent를 내고 나니, 남은 $310이 나의  전재산이다. 오늘 Harold 형이 내 아파트에 와서 전에 내가 영국 갈 때 쓴 영어 간증을 내가 다시 쓴 것을  고쳐주시는 데, 나도 어느새 문장 실력이 조금 좋아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Harold 형이 내 간증 문을 고쳐주고 갈 때 내 손에 $ 10을  쥐어 주었다. 박준형 형님이 보낸 편지와 $50의 선물이 도착하여서 반가웠다. 미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강형과 의논했다고 했다고 하면서 방학 때 오라고 고마운 말씀을 해 주셨다.  

아침 Curtain을 열고 창으로 내다보니 간밤에 소리 없이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다. 오늘은 수업은 하지 않고 모두가 Science Center(과학 박물관)에 견학을 갔다. 과학의 모든 것이 다 있고, 먹을거리와 오락 시설도 갖추어져 있어서 교육적으로 가족이 하루 시간을 보내기가 좋은 곳이다. 김 학생의 차로 시내에 들어오면서 자기는 누님 가게에서 일한다고 해서, 나에게 Cashier 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니까, 1월에 가르쳐 주겠다고 하여 고마웠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생각하던 차에 잘 되었다. 

 

나의 간증 11.21 Wed
저녁 모임에는 나에게 간증할 시간을 주어서 나의 구원받은 간증과 사역에 대하여 간증을 하였다. 마치고 나니 모두 나를 격려하여 주셨다.                             

 

교회의 선물 12. 9 Sun

주일예배 뒤 의자 정리를 하는데, Dr. Philip이 오셔서 교회에서 주는 교제라고 하시면서 봉투 하나를 주셨는데 $100이었다. 감사했다. 오후에 Hilda 노 자매님이 나를 데리고 Swiss Chalet 식당에 가서 Chicken을 사주셨는데 처음 먹어보는 닭요리가 맛이 좋았다. 점심 후  $100 이 든 선물 봉투 하나를 주셔서 고마웠다. 함께 한 Esther 자매님도 $10을 주셨다. 오늘은 축복을 받는 풍성한 주일이었다. 노 자매님들이 내 가족이 오면 아파트도 알아보아 주겠다고 하시면서 살림은 우리가 조금씩 모아주면 된다고 하시는 따뜻한 마음들이 고마웠다. 오후에는 말레지아 인들이 우리 교회당을 사용하고 있어서 그들의 예배에 참석해 보았다. 마침 내가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교 학장이신 Dr. Macrae가 설교를 하여서 끝나고 공부할 뜻을 말했더니 교무처장을 소개해 주었다. 나의 장래와 학교를 선택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

 

MSC 선물 12. 10 M

지난번 선교 조찬기도회에서 5분간 한국을 소개하는 말을 해서인지는 몰라도, 선교후원회에서 나에게 $150의 수표를 보내왔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선교사 조찬 기도회에 참석한 일만으로도 축복이었는데, 이런 더음의 선물을 받게 된 것은  Harold 형의 도움이 큰 것 같다. 또 독일 하노버에서 Elisabeth 자매님이 수표($ 88.60)를 보내왔다. 나의 공부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마웠다. 이렇게 가벼워져 가는 나의 주머니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우신가! 어디선가 방에 바퀴벌레가 자꾸 들어와서 약을 사서 뿌리고 그놈들을 박멸하느라 밤낮으로 투쟁을 하고 있다.

 

영어 학교 종강파티  12. 14 금

오늘은 영어 학교가 마치는 날이어서 각자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어 오기로 했다. 종강 파티에 가져온 각 나라 음식은 국제 음식 쇼 같았다. 함께 어울려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는 좋은 시간이었다. 남미에서 온 반 학생들이 나를 자꾸 끌어드려서 춤을 추게 하려고 해서 혼났다. 저녁에 New York에서 방문해 달라는 자매님의 전화가 왔다.

 

필립 장로님의 초청 12. 16

주일예배를 마치고 Mrs. Philip이 말레지아 형제와 나를 집으로 초청하여 점심을 대접해 주셨다. Christmas-eve도 함께 보내자고 청해 주셔서 고마웠다. 이번 주에는 전화를 놓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비자와 선물들
월요일 미국 총영사관에 가서 미국 방문 Visa를 신청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받았다. 한국에서 미국 비자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운데 일단 나오면 미국 비자를 받는 일은 쉬운 것 같다. 하와이에서 U$ 40을 St. Clair 할머니가 보내왔고, 시카고 강태훈 형께서 $200을 보내 주셔서 어려운 살림살이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서울에서 엠마오 학생들이 종강하면서 써 보낸 11명의 서신과 송찬호, 서명수 형들이 나를 위로하는 글을 보내 주었다.

 

New York 교회 방문  12. 22 토

나도  크리스마스 휴가이고, 정형모 부부와 꼬마 아들이 시간을 내어서 함께 New Yok에 있는 모임을 방문하기 위하여 떠났다. 나는 처음 차로 미국 여행을 하게 되어서 기뻤다. 그런데 이 즐거운 여행에서 문제가 생겼다. 자매님이 준비해 온 김밥을 차에서 먹고 체 했다 대단히 고통스러웠다. 뉴욕에 와서 전자제품 장사를 하는 천 형제 가게에 들러서 함께 천형 댁에서 쉬는데 속이 뚫리지 않아서 고통스러웠다. 저녁에 가정에서 교제의 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제대로 참석할 수가 없어서 미안하고 답답했다. 주일 예배는 New York과 New Jersey 지역에 흩어져 있는 몇몇 가정들이 교제하면서 모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 정한 장소가 없어서 형제들 가정에서 돌아가면서 모이고 있었는데, 오늘은 New Jersey에서 생선 장사를 하고 있는 남궁 형제 댁에서 모였는데, 재미있는 교제의 시간들이었다. 주일을 지나고 정형모 부부는 돌아가고 나는 남았다. 추형제가 나를 데리고 42번가에서 장사하는 자기 매형에게 전도할 기회를 마련해 주어서 전도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추형제가 나를 데리고 뉴욕시내와 흑인들 밀집지역인 할렘 가를 돌아보고 오니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성경 모임에는 외교관인 김 부부도 오셨다. 나는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설교를 하였다. 다과를 나누며 그분들과 재미있는 대화를 오래 하였다. 모두 1시가 넘어서야 헤어졌다
화요일에는 임 형 부부와 뉴욕에 들어가서 남궁 형제를 만나 한국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쉬었다. 저녁 모임에는 새로운 부부가 와서 전도와 교제들을 나누다가 1시가 넘어서 헤어졌다. 수요일 오후 1시 임 형 자매님이 와서 함께 Kentucky Chicken으로 점심을 먹고, 토론토 날틀 표를 이곳 형제 모임에서 사주시어서 고마웠다. 저녁에 천형 편으로 박준형이 Chicago로 다녀가라는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목요일 저녁에는 송 형제 집에 가니 부인이 마침 Catholic 이어서 구원의 진리와 Catholic에 대해서 많은 교제를 하였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가톨릭 학생부에서 교리문답 공부를 제법 했고, 연구를 했기 때문에 할 말이 많았다.

 

이른 새벽 남궁 형제와 생선 도매시장에 갔다. 엄청난 생선들이다. 몇 사람의 한인들도 볼 수 있었다. 남들이 다 잠자는 시간에 이 먼 도매시장에 가서 생선을 사다가 하루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모두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었다. 오전에 이구성 여학생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믿는 것이 이렇게 쉬운 거예요 하고 묻는다. 저녁 8시가 넘어서 김동순 씨 집에서 1시까지 교제하였다. 흥미로운 일은 남궁 형제의 부인된 자매가 고향이 우리가 율북리에서 교회를 개척하던 곳 가까운 곳으로, 간호사였는데 이민 와서 생선장수가 되었다고 하면서 웃는다. 고향 가족을 만난 듯 더 반가워했다. 그의 고향은 평택군 청북면 ‘어연리’로 우리가 개척하던 율북리와는 한 2Km 거리였다. 흑인 인구가 많은 이 지역에 이 사업은 좋다고 한다. 특히 금요일에는 가톨릭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생선을 많이 먹기 때문에 금요일 장사는 쏠쏠하다고 한다. 토요일 한 형제가 와서 나를 데리고 또 New Yok 관광을 시켜 주었다. 오후 어저께 전도한 이구성 여학생과 다시 교제해 보니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을 안다고 말했다. 할렐루야! 오늘은 12월 30일로 New York에 와서 두 번째 가지는 만찬 예식이다. 아직 만찬 예배에 익숙지 않은 분들도 있어서, 왜 만찬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가르치면서 예배를 드렸다. 한인 모임에서 $300, 김명섭 자매가 $50 선물을 주셨다. 년 말 크리스마스 휴가를 New York에서 형제들과 교제하면서, 또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섬길 수가 있어서 고마운 주간이다. 오늘은 한 해가 다가는 12월 31일 마지막 날이다. 천형이 나를 Newark Airport까지 데려다주었다. 날틀로 Buffalo까지 와서 버스로 토론토로 돌아오는 길은 가벼운 마음이었고, 즐겁고 좋은 여행이었다. 돌아오니 많은 편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John이 보낸 $100의 귀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세 달 반 다친 허리를 안고 캐나다 생활에 적응하면서 공부하느라 숨 막히는 생활을 해 왔다. 주님은 나의 앞길을 이렇게 예비하시고 계셨다. 이곳에 상원 형제와 정형모 가족이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한 해는 저무나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소란함을 잊고 새 삶을 향한 생각만 하고 나아가니 마음만은 편했다. 이제 가족이 어떻게 오느냐 하는 것만이 남아 있는 숙제일 뿐이다. 주님께서 한해도 이렇게 인도하시고 마무리해 주시고 계셨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경배를 드렸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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