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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여행기/Italy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 바티칸 April 25. Fri

오늘 우리 팀에는 두 분이 더해져 다섯 명이 되었다. 바티칸 시국과 카타콤 두 곳을 보기 위해서 한미 식당에서 내준 소형차와 유학생 가이드가 우리를 안내하였다.

 

 
 
 
◈ 로마가톨릭은 어떻게 땅을 가지고 나라 행세를 하게 되었을까?

 

 

▶ 역사적 배경


752년 교황 스테판 2세(Stephanus II, 752-757) 때에 이태리 북부가 롬바드(Lombard)족의 침입에 위협을 받고 있었다. 롬바드 족은 라벤나(Ravenna)를 향해 진격해 왔다. 유약한 교정은 그때 프랑크 왕국의 왕인(751) 피핀 3세에게(Pippin III)에게 군사적 보호를 요청했다. 사실 피핀은 자기 친조카인 드로고 왕을 수도원이 유폐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자로서, 조선조의 세조와 같이 떳떳하지 못한 군주가 되어 있었다. 자신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리화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피핀은 교황을 도와 롬바드를 물리쳤고 중부 이태리 일대의 영토를 교정에게 위임하였다. 이것이 교정령의 영토가 생기는 시작이었다. 교회사에서는 이 사건을 일컬어 "피핀의 증여(Donation of Pippin)"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렇게 고유의 영토를 가지고 있던 교정령은 1868년 이탈리아 통일 운동으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870년 9월 로마를 점령한 이태리는 1871년 5월 바티칸 궁전을 이태리에 귀속하였다. 교정에게는 바티칸 궁전, 라테라뇨 성당, 카스텔 간돌포 별장의 영구 사용권이 허용되었으나, 교정은 이에 반발하여 이탈리아 정부와 교정청과의 논쟁이 계속되었다. 거듭되는 논쟁 끝에 1929년 2월 11일에 이르러 무솔리니 정부와 교정청은 라테란 협약을 통하여 바티칸 시국에서의 교정의 완전 주권을 인정하고, 몰수된 교회재산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짐으로써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제법상의 주권국, 바티칸 시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 바티칸 시국 (Vatican City)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은 로마 북서부에 위치한 약 13만 3천여 평의 국토와 천여 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권국가이다. 베드로 광장 앞의 도로 위에 있는 흰색 선으로 이탈리아와 국경을 삼고 있다. 바티칸 시국의 영토는 바티칸 궁전을 중심으로 하는 구역뿐 아니라 베드로 성당, 그리고 그 주변 및 이탈리아 영토인 로마에 있는 성당과 궁전을 포함한 13개의 건물, 로마 동남쪽 120km 지점에 있는 교정의 여름 별장 지 카스텔 간돌포(Castle Gandolfo)를 포함하고 있다. 이 나라는 전 세계 8억 가톨릭 신자의 수령인 교정의 거처 및 집무실이 있는 교정청이 있으며 교정이 국가원수로서 교정 권을 행사하는 가톨릭 국가이다. 교정청이 주권 독립국가인 바티칸 시국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이태리와 1929년 맺은 “라테란 조약” 때부터이다. 이 조약으로 바티칸 시국은 절대군주인 교정이 다스리는 독립국으로서 모든 세속적인 정치권력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게 되었다. 바티칸 시국은 하나의 국가체제로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 신자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과 기구를 갖추고 있다. 바티칸 시국은 국제법상 전 세계 가톨릭 교회를 대변하는 특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권의 행사로 모든 나라에 교정 사절을 파견하고 있다. 바티칸 시국 (Vatican City)

 

베드로 성당 역사적 배경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가 312년 10월 28일 로마의 밀비오 다리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이 싸움에서 콘스탄티누스는 하나님의 꿈에서 본 P자에 X자를 겹친 군기를 만들어 사용하여 승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승리한 뒤에 그는 기독교신앙의 자유를 선포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그 위에 대성당을 건축할 것을 공포했다. 베드로 대성당은 32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349년에 완공되었다. 그리고 1503년 교정 율리우스 2세는 대성당의 재건축을 선포하고, 1506년 4월 18일 교황이 직접 초석을 놓으면서 대공사를 시작하여 120년 뒤인 교정 율리우스 2세가 1527년에 완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거대한 공사를 위하여 백성들은 많은 세금 부담을 지고 되었고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면죄부라는 것을 만들어 어리석은 민중들의 재물을 착취하는 악행을 저지르고, 이 어처구니없는 일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1517).  

▶ 베드로 성당

                

로마 천주교는 성경을 기반으로 하여 가나안, 애굽, 바벨론, 등의 종교와 혼합되어 변질된 우상 종교이다. 로마 가톨릭교의 중심인 이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은 120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걸작 품이기는 하지만 무지몽매한 민중들의 희생의 산물이다. 그 웅장한 건축과 예술품들은 대단하나 그곳은 우상들의 집합소로 반나체의 여자들이 난무하고 있는 모습은 음란한 이교의 신전을 방불케하고 있었다. 이 성당을 짓기 위해서 많은 돈이 필요했다. 각 영지에서 뜯어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성직자들에게서도 거두어들이고, 그래도 모자라서 교황은 Johann Tetzel이란 자를 내 세워서 면죄부를 파는 사기극으로 모은 자금으로 지어졌다. 이 면죄부 사기극에 분노한 사제 마르틴 루터에 의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빌미가 되었다. 그 지하에는 베드로의 무덤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교회를 세웠다는 허황한 교리를 내세우고 있었다. (로마 가톨릭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시면, 로마 가톨릭을 얼마나 아세요? 보세요)

 

면죄부란?
베드로 성당을 짓는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면죄부라는 부정수표를 만들게 된다. 즉 이 면죄부를 사면 죄가 용서를 받게 된다는 보증 수표 같은 것이었다. 면죄부를 팔기 각 교구를 돌면서 반강제적으로 사제들에게 선전선동을 하도고 하게했다. 판매 시장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활동을 벌리면서 선전선동을 했다. 즉 면죄부를 사는 사람의 돈이 돈 통에 떨어지기도 전에 연옥에 가 있는 자들이 천국으로 건너가며, 여기 있는 사람은 그 죄가 용서된다고 선전하여 교인들을 얼려서 팔아 모은 돈으로 이 거대한 우상의 신전을 세우는데 보탰다.

 

             
 
           ▶ 면죄부 판매 총책 테첼                                    면죄부 실제 모양
                  
면죄부에는 교황의 도장이 찍히는데 그것이 마치 사죄의 보증 같이 여겨졌다. 면죄부 판매 이익금은 판매총책 티첼과 간부들이 이권을 챙기고 나머지는 교정청에 바쳤다. 
 
             

▶ 시국 박물관 

Vatican 시국 박물관에 가서 미켈란젤로의 천장 벽화를 보면서 그 웅장한 화풍에 놀랐고, 그림을 그리느라 얼마나 고생들을 하였을까 동정이 갔다. 또 120년 동안 이 우상 집을 짓느라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피땀을 흘렸을까를 생각하면서,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희생된 생명들을 떠 올려 보았다.

 

▶ 시스티나 교당 천정에 그려진 천지 창조와 하나님의 심판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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