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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States of America/미국여행

단풍의 명산 Great Smoky Mountains

◐ 미국 단풍의 요람지(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Oct. 22 M.-25 Th, 2018

 

가을은 모진 세월을 견뎌 내고 맺어진 열매를 거두는 풍성한 철이다. 자연은 깊은 쉼에 들기 전에 아름다운 색깔로 수놓아 인생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은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이며 영광이다. 창조주의 놀라운 신비를 자연에서 깨달으며 여호와를 찬양하며 경배하게 된다. 이 깊어가는 가을에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신다. 가을은 우리를 자연과 동화되도록 이끌어  주며, 그 속에서 자신이 새로워짐을  발견한다. 이 깊어가는 가을에 내 인생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색깔의 옷을 입는 자연이 있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한국 사람들은 단풍의 아름다움을 즐기려고 설악산, 내장산 지리산 등을 찾듯이, 넓은 땅을 가진 캐나다 중남부 사람들은 단풍 열차가 다니는 Agawa Canyon이나, Muskoka Algonquin Park을 찾는다. 미국 사람들은 미국 중동부에 있는 Great Smoky Mountain을 보려고 찾는 사람이 해마다 천만 명이 넘는다. 

 

♣ 안영배 목사   

Smoky Mountain이 미국 중동부에서 단풍으로 이름난 산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여행을 준비한 분은 시카고에서 아가페 침례교회를 목회하는 안영배 목사이다. 목회자이지만, 미국 전역의 여행에 대해서는 이 분만큼 잘 아는 분도 드물다. 교우들과 목회자들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봉사하고 계시는 고마운 분이다. 안 목사와 나는 길에서 만난 인연을 가지고 있다. 1965년 우리 선교부 산하에 있는 경남 거창 장팔리 교회에서 한 겨울 목회를 할 때, 거창 시내 전도를 나갔다가 길을 가는 중학생에게 전도하여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 학생이 믿음 안에서 자라, 육군 장교로 제대하고 침례교 목회자가 되어 시카고에서 25년이 넘도록 목회를 하고 있다. 이번 단풍여행도 은퇴 목회자들을 위로하려고 마련하여, 멀리 캐나다에 사는 나를 이 여행에 함께하도록 불러준 고마운 후배이다. 

 

 

장충동 마당  Oct. 22  M
아침 6시 장충동에 모인 일행은 모두 11명으로 아름다운 그 이름들은, 안영배, 김정하+영아,  나창옥+정옥, 이종국+연금, 최화식+진선, 김병부, 김제화이다. 만남의
장소인 이곳은 큰 큰 쇼핑몰로 넓은 주차장에 며칠씩 차를 세워 놓을 수 있고, 한국 식당 장충동이 있어서 이곳이 만남의 광장이 되었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아직 어두움이 가시지 않은 길을 떠났다. 90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Indiana 주에 들어서서 방향을 바꾸어 65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동안 날은 밝아졌다. 인디애나주 서울 Indianapolis를 지나 광활한 들에는 거두어들인 옥수수밭과 아직 거두지 않은 콩밭이 널려 있었다. 

 

♧시카고에서 스모키 마운틴으로 가는 기본 길 

                 

아침 일찍 떠난 우리는 어느덧 켄터키 주에 들어서고 있었다. 고속도로변 휴게소에서 쉬면서 맛있는 음식들을 나누었다.

이제 우리는 Kentucky 주에 들어와 처음 만난 도시 Louisville을 지나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지금 우리의 호스트 안영배 목사님이 여기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영주권을 받기 위하여 Atlanta 캐나다 총영사관에 가는 길에 Chicago를 거쳐 Louisville에 들려 여러 해 만에 사랑하는 후배를 만나 기쁨의 교제를 나눈 적이 있는 곳이다. 65번 도로에서 61번 지방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Hodgenville 이란 조그마한 읍소재지에서 조금 더 산골로 들어가자 2995 Lincoln Farm Road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가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미국의 세 대통령 가운데 한 분이신 에이브러햄 링컨의 출생지이다.          

 

▶ Abraham Lincoln Birthplace National Historic Park, 아브라함 링컨의 출생지 국립 역사 공원

1906년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의 출생지를 보호하고 기념관을 건립하려는 모금 운동으로 10여만 명으로부터 35만 달러를 모아서 그때 그 농장을 사들이고 통나무 집을 복원하여 그 자리에 앉히면서 기념관을 설립하였다. 1909년 루스벨트 대통령초석을 놓고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지어진 기념관은 1911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 때에 완공되었다. 

 

Ж 링컨이 태어난 통나무 집
1808년 12월 링컨의 부모인 토마스와 낸시 부부는 Sinking Spring 농장 300 에이커를 200달러에 사서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들의 집은 그때 개척자들이 흔히 짓고 살던 통나무 집으로 흙바닥에 창문과 문 하나 그리고 조그만 화덕이 전부였다. 1809년 2월 12일 일요일 엄마 낸시는 곰 가죽으로 만들어진 침대에서 남자아이를 나았다. 할아버지 이름을 따서 아브라함 링컨이라 지었다. 앞으로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될 아이가 이 초라한 오두막에서 태어난 것이다. 링컨은 이 농장에서 2살까지 살다가 1811년 16Km 떨어진 Knob Creek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Ж 목가적인 변방 풍경(An Idyllic Frontier Scenic 

링컨 대통령의 생가를 복원하면서 그때의 모습을 재조명하고자 화가 Lloyd Ostendorf는 개척지의 목가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Lincoln 가족은 1800년대 초반에 켄터키 변경에 정착한 대표적인 가족으로 그 지역의 천연자원으로 자급 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Sinking Spring Farm에서 땅을 개간하여 채소를 재배하고, 통나무로 집을 짓고, 사냥도 하면서 두 자녀 사라와 아브라함을 키웠다. 

Frontier(프런티어)--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개척지와 미개척지의 경계 지방을 가리키는 용어로, 미개척지란 뜻.

 

1818년 10월 5일에 링컨의 어머니는 독초를 먹은 소에서 짠 우유를 마시고 중독(우유병)되어 34세로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새로운 엄마 사라 존스턴이 들어와서 링컨을 잘 돌보아 주면서 공부를 시켰으나, 가정환경으로 링컨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18개월 정도 순회 교사에게 교육을 받은 것이 전부이고 스스로 공부하였다. 1831년 링컨 가족은 일리노이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22세인 링컨은 독립하여 자립하는 길로 나아간다. 청년 시기에 링컨은 우체국장, 변호사, 뱃사공, 가게 점원, 토지측량 등 다양한 일에 종사하면서 온갖 고생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1832년에 일리노이주 의회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여 첫 정치 경험을 하였다. 1833년에는 관심이 있던 법률을 혼자 공부하여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고, 1834년 일리노이주 주 의원 당선을 시작으로  1846년 연방의회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 뒤 상원의원에 두 번이나 떨어지는 경험을 한 뒤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1860년 11월 6일에 미국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노예 제도를 폐하고 해방하였다.

 

 

링컨 암살사건

미국의 단합과 평화를 위해 노력해 온 링컨은 불행하게도, 유명 배우이자 극렬한 남부 지지자인 존 윌크스 부스에 의해 암살된다. 1865년 4월 14일 링컨 부부는 포드 극장에서 ‘우리 미국인 사촌(Our American Cousin)’이란 연극을 보고 있었다. 경호원이었던 존 파커는 링컨의 마부들과 한잔하려고 자리를 비워 대통령을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 두었다. 대통령 자리 뒤에서 기회를 노리던 부스는 기어 나와 뒤에서 링컨의 머리를 권총으로 쏘았다. 9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대통령은 4월 15일 오전 7시 22분 세상을 떠났다. 달아난 부스는 4월 26일 워싱턴 D.C. 에서 48K 떨어진 비비니아늬 Garret’s Farm에서 군인들과 싸우다가 사살당했다. Lincoln의 묘지는 그가 활동하던 일리노이주 Spring field에 마련되었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링컨에 대해서 배우면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그분의 출생지에서 파란만장한 그분의 삶을 생각해 보면서 이 땅에서의 삶은 한 낱 그림자에 불과하며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덧없이 허망함을 느꼈다. 죄 가운데서 잉태하고 죄가운데서 태어나  죄 가운데 살다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들이 어찌 이리도 악할까!!                                                                                                                                                                                                                                                                                  

우리는 다시 길을 재촉하여 Kentucky 주를 벗어나 Tennessee 주 London이란 곳에 이르자 달님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다. 오늘 우리는 거의 1,000Km를 달려왔다.

 

Gatlinburg(Tramway)  Oct. 23
Smoky Mountain으로 들어가는 북쪽 길목이다. Gatlinburg의 조그마한 마을로 여행객들이 잠시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재밌는 곳이다. 우리는 이 마을에서 Sky Lift를 탔다. Lift는 산 위에서 내리지는 않고 그대로 돌아 내려오는 코스로 40여 분 걸리는데, 긴 여행에 피로한 우리에게는 좋은 휴식이 되었다.

               

◎ 아흔아홉 굽이 오르는 길

이제 우리는 US 441길을 따라 Mt. Smoky에 들어섰다. 그리고 산 정상으로 오르는 구불구불 돌아 오르는 길은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었다. 마치 옛날 강릉의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 길을 연상케 했다. 해 지는 서쪽으로는 끝없이 이어진 산 넘어 산은 푸르스름한 짙고 엷은 색깔을 띤 대자연은 신비로움을 더해 주고 있었다.

 

산마루에  어느 정도 이르렀는데 차들이 더 움직이지 않고 길게 늘어서고 있다. 위에 주차장이 꽉 차서 차가 빠지는 대로 들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걸려서야 주차장에 이를 수 있었다. 우리는 그곳 잔디밭에 자유롭게 앉아서 좀 늦은 점심을 즐겼다. 그리고 깊은 골짜기 저 건너 첩첩 산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지만, 스마트 폰 카메라에 담는 그림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GREAT SMOKY MONTIAN NATIONAL PARK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은 미국 중 동부의 North Carolina 주와 Tennessee 주 경계선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 52만 에이커의 국립공원이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이 산은 동북부에서 가장 높고 긴 Appalachian Mountain Chain 산맥의 한 부분인 Blue Ridge Mountains의 일부이다. 1,800m가 넘는 주봉들이 이 산맥을 이루면서 58Km에 걸쳐서 웅장하게 솟아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 산의 이름이 Smoky인 것은 늘 산봉우리 언저리를 맴돌며 피어나고 있는 연기 같은 푸르스름한 안개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신비로운 안개 연기는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의 잎에서 나오는 탄화수소와 수증기가 합쳐서 생기는 현상으로 은은한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해마다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이 산은 풍부한 강수량과 따뜻한 기후로 130여 종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가문비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들이 높은 지대에 그 밑으로 활엽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산야를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는 나무들이 다 제 역할을 하겠지만, 그 가운데 붉은 가문비나무 숲과 어우러져 사탕단풍(sugar maple) 나무, 분홍색 떡갈나무(oak), 호두나무 과에 속하는 히커리 (hickory) 등의 독특한 색깔의 잎들이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게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산을 올랐을 때는 이제 막 무르익고 있어서 깊은 가을을 즐기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Clingmans Dome

클링맨스 돔은 애팔래치아 산맥의 가장 높은 곳으로 2025m이며, Smoky 산의 기장 돋보이는 곳이다. 꼭대기(산정) 전망대까지는 포장길을 따라 한 800m 정도 걸어 오르면 나선형 다리를 타고 위에까지 오르도록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에서 드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높고 낮은 산과 골짜기들이 한눈에 드어온다. 이 전망대는 재미있게도 North Carolina 주와 Tennessee주 경계선 양쪽에 걸쳐 16.4m 높이로 세워졌다. 하루해가 많이는 기울어가고 있지만, 해님이 서산 너머로 지는 모습을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해님이 북녘 정토로 돌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울 텐데, 아쉬운 마음이다.

 

 

 

Cherokee(체로키) 원주민 마을

  

이곳은 스모키 마운틴으로 올라오는 남쪽 길로 그 길목에 체로키 원주민 마을이 있다. 체로키 부족의 비극은 이미 알려져 있고, 그 이름이 상품 브랜드로도 사용되어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들리는 곳이다. 그 민족의 일부가 여기서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어서 그들의 생김새와 사는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이 마을을 찾는다. 우리도 산에서 내려와 이 마을에 있는 Super 8 motel에서 하루를 쉬면서 돌아보았다. 기대했던 체로키 박불관이 문을 열지 않아서 그들의 생활과 문화를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체로키 부족이 이곳에 민족 마을을 이루고 번성하며 관광산업을 일으켜 여유롭게 사는 것은 강제 이주를 할 때 이곳에 살던 체로키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혜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제 이주 때, 개인적으로 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 등 얼마의 사람들은 예외가  있었다. 그때 백인이었던 윌리엄 토마스(William Thomas)는 어렸을 때 한 체로키 가정에 입양되어 자랐는데, 그가 소유하는 토지가 지금 여기 Smoky Mountain에 있었고 그의 토지에 살고 있던 약 400명의 체로키족은 이주 대상이 되지 않았다. 또 Nantahala 지역의 약 200명의 Cherokee족은 미군에 협조한 일이 있어서 이주에서 빼주었다.  토마스는 강제 이주의 책임자 스콧(Winfield Scott) 장군에게 산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남도록 설득하여 허락을 받아 남게 되었다. 그때 토마스는 체로키인들에게는 오스카 쉰들러와 같았다.  지금 미국의 체로키 인구는 약 32만 명으로 북미 소수민족 가운데 제일 큰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

 

 

체로키 부족은 미 대륙의 동부에서 남동쪽 조지아주 북서 부근에서 미시시피강 유역의 넓은 지역에 처음부터 살고 있었다. 17세기 초 유럽의 백인들이 들어오면서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던 이들에게 불행의 회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18세기에 이르러 이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으려는 백인 침략자들로부터 자신들의 땅을 지키려는 치열한 싸움을 했다(치카모가 전쟁, Chickamauga Wars, 1794). 치카모가 전쟁을 치른 뒤 미국 정부와 휴전 조약을 맺는다. 5대 부족 연합을 결성한 체로키, 치카소, 무스코지, 촉토, 세미놀 부족들은 백인의 교육제도 등 백인 사회 구조를 받아들여 다섯 부족은 문명화되었다. 특별히 체로키족은 흑인 노예를 두고 대 규모의 축산업과 농장을 경영하는 수준이었으며, 체로키 부족은 자치 정부형태로 미국의 정치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였으며 미국식 학교 제도를 도입하여 교육에 힘썼다. 체로키의 학자이며 기술자인 세쿼야(Sequoyah)가 1821년에는 체로키 문자를 만들었다. 85음절로 구성된 문자는 배우기 쉬워서 빠르게 보급되었다. 체로키의 공식문자로 인정받았고 그들 자신의 신문도 발간하였다. 그들은 백인의 생활양식을 좋아했고, 백인들과의 혼혈도 이루어졌다. 지금 체로키의 혼혈인 가운데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가수와 배우들도 있다.

 

▼ 눈물의 길(Trail of Tears)

1830년대까지 평화롭던 살던 체로키의 한 마을, 달로네가(Dahlonega)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금을 캐려는 백인들이 그들의 땅에 무단으로 침입하자 백인들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다(세미놀 전쟁). 광대한 미시시피강 유역의 기름진 토지를 탐낸 백인들은 그곳의 원주민. 체로키와 다른 부족들을 쫓아낼 구실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금광으로 인하여 전쟁까지 벌어지자 강제 추방은 급속히 이루어졌다. 미국 정부는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으려고 인디언 추방법을 만들어 1838년 군인을 동원하여 백인의 문화를 받아들인 문명화된 5대 부족도 아울러 강제로 1,300Km나 떨어진 미시시피강 서쪽의 오클라호마 주로 강제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주정책은 추운 겨울이 닦아오는 12월에 시작되어 다음 해 3월에 도착하기까지 이들의 하루 양식은 옥수수 한 줌, 순무, 끓인 물이 전부로 추위와 배고픔과 질병으로 싸우면서 계속된 3-4개월의 행군으로 체로키 부족 약 16,000명 가운데 4,000명 이상이 죽었다. 그리고 여성들은 강간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 Amazing Grace는 이들의 장송곡이 되었고, 역사는 이들이 걸어간 길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오클라호마주 남동부 오작스 고원의 타 레카(Tahlequah) 지방이다. 

 

☞ 그때 체로키족의 호송 임무를 맡았던 한 미군의 일기에서 그들의 여정이 얼마나 비참하였는지를 볼 수 있다. 

“나는 하룻밤 사이에 22명이 치료도 받지 못하고 폐렴과 감기로 덮을 담요도 없이 얼어 죽는 것을 보았다.”

“서부를 향해 계속되었던 그 길고 고통스럽던 여정은 스모키 산맥 언덕에서부터 오클라호마에 설치한 서부의 인디언 지역에 이르기까지 4,000여 개의 말 없는 무덤을 남기고 1839년 3월 26일에 끝났다.”

더 자세한 내용은 jewhakim.tistory.com. 미국 원주민 학살 사

 

◆ 1995년 화가 Max D. Standley는 체로키 부족이 당한 “눈물의 길”을 화폭에 담아냈다.

▶ 미국의 7대 대통령 Andrew Jackson(앤드루 잭슨) 

어려서 부모 형제를 다 잃고 혈혈단신 자수성가하여 군 장군에서 대통령에까지 오른 인물로 남북전쟁의 영웅이다. 미국 돈 20불짜리에 그 의 얼굴은 남기고 있지만, 그는 인디언 추방법을 만들어 가장 비인도적이고 잔인한 원주민 말살 정책의 책임자로 원주민들의 비극을 만들어 낸 장본인으로 “Indian Killer(원주민 백정)”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역사에 남겼다.  

 

 

▼ 미국 정부의 사과

2004년 캔자스주 상원 의원 '샘 브라운백(Sam Brownback)은 과거 인디언 부족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원주민에게 사죄한다”라는 공동 결의안을 제안했는데, 2009년 말에야 연방 상하원에서 통과되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2월에 이 결의안에 서명했다. 그리고 2010년 5월 20일 미국 정부는 과거 아메리칸 원주민인에 대한 폭력 행위와 잘못된 정책들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다.

 

▲ Trail of Tears National Historic Trail(눈물의 길 국립 역사의 길) 지정

미국 정부에 의한 강제 이주로 고난의 행군을 한 "눈물의 길"을 기리기 위하여 미 의회는 1987년 그 길을  '국립 역사의 길(Trail)'로 지정하였다. 매년 그 길을 가는 각종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이 길은 북캐럴라이나에서 오클라호마까지  3,540km( 2,200ml)이며  5개 이상의 원주민 부족들이 여러 경로로 걸어간 길로 9개 주에 걸쳐 뻗어 있다.

 

 "눈물의 길" 기념 고속도로 71

아칸소(Arkansas) 주를 통과하는 71번 고속도로를 "눈물의 길 기념 고속도"로 지정하였다. 

 

 

단풍 열차(Scenic Train)   Oct. 24

오늘은 단풍 열차를 타는 날. 19번 길을 따라서 약 11Km를 달리니 Bryson city에 닿았다. 우리를 태우고 갈 9시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단풍 열차는 재미있게 7등급 정도로 나누어져 있는데, 계절에 따라 등급이 조정되고 있었다. 일등석은 $ 100인데 편한 자리에 각종 음료수와 식사가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삼등석은 아무 서비스도 없는 그저 앉아서만 가는 초라한 자리였다. 이왕 한번 왔다가는 길, 일등석을 타고 서비스를 받아보고 싶은데, 3등을 타자는 분들이 더 많았다. 

열차는 원시림의 숲을 가르며 달리고 철로를 따라 왼쪽 계곡으로는 Fantahala 계곡 강물이 거칠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도시의 빌딩 숲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더 없는 휴식공간이며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에 알맞은 여행이다.  우리가 탄 3등 열차는 얼마나 오래된 차인지 낡고 환경이 좋지 않았다. 열차는 갔다가 돌아오는데 70.4K로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4시간 반 정도 걸렸다. 갈 때는 서는 역 없이 숲 속 깊이 들어가 끝 역에서는 내리지 않은 채 화차만 돌려 달고 다시 돌아오다가 중간역인 Nantahala Gorge에서 40분간 휴식하도록 내렸다. 작은 원주민 마을은 먹을거리와 원주민들이 만들어 파는 민속 물들이 반기고 있었다.        

 

Ridge Parkway(푸른 언덕길)
블루리지 파크웨이는 스모키 마운틴에서 버지니아 주까지 이어지는 750Km가 넘는 드라이브 코스는 산등선으로 난 길을 타고 뻗어 내린 산맥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는 것은 환상적이다. 곳곳에 들리게 되는 전망대에서 펼쳐진 산야의 붉게 타오르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의 호스트인 안영배 목사님은 우리가 Blue Ridge Parkway를 얼마 동안 타보는 경험을 하도록 어저께 올랐던 스모키 산 위로 다시 올라와서 Blue Ridge Parkway를 타고 North Carolina 주 쪽으로 한참을 가다가 방향을 바꾸어 40번 그리고 75번 길을 따라 북으로 달리다 보니 Tennessee 주에 들어서서 Knoxville을 지나 Caryville이란 마을에 이르러서 날이 저물어 Super 8 Motel에 여장을 풀었다.

 

Cumberland Falls State Resort Park   Oct 25

 

모텔에서 아침을 제공하기 때문에 편하고 시간이 많이 절약되었다. 75번 고속도로를 따라 Kentucky 주에 들어서면서  산 너머에서 불타오르는 해돋이의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켄터키 주의 관광 명소인 Cumberland Falls에 도착했다.

 

컴벌랜드강이 휘어져 흐르는 이곳에 폭포를 중심으로 트레일, 캠프장. 모텔 등 여러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리조트이다. 큰 폭포는 아니지만, 골짜기 가득 떨어지는 작은 폭포는  계곡의 산야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곳이 이름이 나 있는 것은 이 폭포에서 보름달이 뜨는 밤에 달 무지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일은 보석 채굴의 체험이다. 보석이 나는 개울의 모래를 한 숟갈 그릇에 담고 젖어보면 다양한 보석과 화석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을 찾을 수 있는지는 그날의 운에 달려 있다고 한다.

 

 

 

∬달 무지개(Moon bow, Luna Rainbow)
Cumberland Falls에서는 Moon bow가 뜨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장소 가운데 하나이다. 무지개 하면 해가 떠 있을 때 생겨나는 현상으로만 알고 있었다. 신비롭게도 달 무지개도 ‘빨주노초파남보’ 색깔을 띤 무지개로 보름달 밤에만 나타난다고 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달 무지개는 백 무지개라고도 한다.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안개나 엷은 구름이 끼지 않은 맑은 보름달이 뜬 밤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달 무지개를 매달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달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한다. 상태가 좋은 달 무지개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어도 사진 전문가들은 광도가 좋은 카메라로 노출을 길게 하여서 달 무지개를 잡는다고 한다. 우리가 둥근달 주위의 일어나는 달무리를 볼 때가 있는데 그것이 곧 달 무지개, 또는 달궁이다. 달 무지개의 원인은, 햇빛에 의해 생기는 원리와 같다. 떨어지는 폭포 물의 안개 물방울이 달빛의 굴절되어 생겨나는 현상으로 하늘이 맑을 때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  개울가 쉼터의 점심
우리는 개울물이 흐르는 쉼터(Park)에서 자리를 잡고 아직도 따뜻한 전기밥솥의 밥과 사발 라면에 절인 밑반찬들로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가스 불에 끓인 물로 만든 커피 한잔이 개운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먹을거리를 위해서 사모님들의 수고가 많으셔서 고마웠다. 우리는 북으로 북으로 오르다가 Indiana 주에 들어왔다. 오늘 우리는 짧은 거리이기는 하지만 네 개의 주, 테네시, 노쓰 캐롤라이나, 켄터키, 그리고 인디에나 주의 경계선을 넘었다. 일리노이주를 포함하면 이번 우리 여행은 5개 주를 넘나들면서 한 여행이 되는 셈이다.

 

Brown County State Park

이곳은 Indiana 주에서 이름난 단풍지대로 우리가 찾은 마지막 코스이다. 이곳의 산세가  그레이트 스모키 산맥과 닮았다고 해서 '리틀 스모키'라는 별명이 붙은 브라운 카운티는 울퉁불퉁한 언덕과 능선 그리고 안개가 계곡을 둘러싸고 있다. 인디애나주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거의 32km에 달하는 나무 숲이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 전망대에 이르면 깊고 넓은 산야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에서 내려와 맥도널드에 들러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잠시 쉬었다. 북으로 올라오는 동안 간간이 비가 내리면서 날이 어두워졌다. 일리노이 주를 얼마 앞두고 미국에서 이름난 뷔페식당 Golden Corral Buffet& grill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교제를 나누었다. 

 

 

저녁 9시경 우리 일행이 처음 만나 떠났던 장충동에 도착하면서 우리의 여정은 마쳐졌다. 주안에서 수고하시던 동역자들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교제하며 지낸 며칠은 즐겁고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김제화/ jewhaki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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