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생활 8.21-9.15 1979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기만 하다. 내 팔자에 세계의 도시 런던에서 한 달을 생활하게 됐으니 말이다. `Logos Language School에 가서 한 달 회화반 오전 과정을 등록했다. 세를 든 이 층 집주인은 Greece 사람으로 자기네는 아래층에 살고 이 층 방 4개를 학생들에게 세를 놓고 있었다. 방세는 한주 £17이었다, (£1=4.24DM).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온 학생들이 살고 있었다. 하나의 공동 냉장고는 자기 물건은 표시를 해야 했다. 가스레인지로 알아서 해 먹는다. 내 형편에 방세가 싼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가 내 일생에 또 오리라고 생각지 않아서 돈 보다 얻게 될 가치가 더 크리라 믿었다. 자치에 필요한 간단한 살림 도구를 준비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영어반에는 아프리카, 동남아에서 온 학생들도 있어서 재미있었다. 또 총칼로 세계를 지배한 기독교 식민 제국주의(Imperialism) 나라 서울, 런던에서 나는 부족한 영어도 좀 배우면서 런던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영국은 선교사와 군대가 함께 세계를 정복하고자 했던 기독교 나라로서 인류에게 가장 큰 죄를 지은 나라이기도하다. 몰락한 영국은 침략 제국 시절 여러 나라에서 빼앗아 온 고대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고, 또 영어를 팔아 국가 수입을 올리는데 한몫을 하고 있었다. 오전에는 영어 공부하고 오후에는 런던의 박물관 등을 찾아보았다. 런던에 있는 동안 찾아본 곳들을 British Parliament, Westminster Abbey, Tower Bridge, National History and Geological Museum(자연 지구 박물관), Homme Museum(인류 박물관), Clockmaker’s Museum(시계 박물관), Hide park, Buckingham Palace, Piccadilly Square, 등 여러 많은 곳을 돌아보며 과거에 번영했던 침략 제국주의의 흔적들을 돌아보았다.
사무엘슨 이란 사람은 런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런던에 싫증나면, 그 사람은 인생에 싫증 난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지는 런던에 가 보아야 안다. 런던은 박물관의 도시이다. 런던 거기에는 세계를 침략하여 빼앗아다 놓은 전리품들, 즉 남의 나라 역사적인 유물들을 한데 모아 놓은 곳이어서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매일 박물관에서 박물관으로 다니면서 건성으로 보아도 한 달이 모자랄 것이다.
British Museum(영국 박물관)
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이다. 한 해에 무려 400만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세계 최대의 인류문화유산을 모아놓은 박물관이다. 한 세기 영국이 식민 제국으로 불리 울 때는 “해지지 않는 나라”라고 할 만큼 식민지가 많았던 영국은 세계 각 나라의 유물들을 강탈해 모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 박물관은 1759년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국립박물관인 영국 박물관이 세워졌고 지금의 그리스 양식의 건물이 지어진 것은 1853년이다. 오늘날 이 역사적인 박물관이 있기까지 몇 사람의 헌신이 있었다는 것에 나는 감동했다. 1753년 영국 정부가 첼시에서 거주하고 있던 한스 슬론 경이 소유하고 있던 화석, 주화, 메달, 사진 등 8만여 점의 소장품과 로버트 코튼 경, 옥스퍼드 백작 로버트 해리의 고서를 모아 공개하는 것으로 대중 박물관이 시작되었고, 1759년 정부가 이들의 자료들을 사드려서 오늘날과 같은 규모로 커졌다고 한다. 사회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내 것을 나눌 줄 아는 머리가 트인 영국 사람들은 존경할 만하다. 여기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내 것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두의 것이 될 수 있어야 참된 가치와 유익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적은 것을 한 곳에 모은다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 수 있을 텐데,
나는 이 역사적인 British Museum을 영국에 있는 동안 두 번 가서 돌아보았다. 엄청난 규모와 자료들에 압도되었다. 하루에 도저히 다 볼 수 없는 곳이며, 참고자료를 가지고 내게 필요한 것만 보려고 해도 며칠은 보아야 할 곳이었다. 특히 구약성경의 역사 배경을 이루고 있는 고대 바벨론, 그리스, 이집트,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애급의 미라들, 함무라비 비석, 이스라엘과 중동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 등은 볼 만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었다. 영국은 강제로 빼앗은 남의 나라 문화유산들을 차려 놓고 돈을 벌고 있었다. 또 성경 사본들을 진열한 곳은 나의 마음을 끌었다. 처음 보는 파피루스 조각들, 양피지 사본들은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한국관도 한쪽에 조그만 하게 차려져 있어서 반가웠지만, 너무 초라했다. (지금은 한국관이 좀 커지고 다양해졌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이다.)
영국 국회 의사당-British Parliament
의회 민주주의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의회 정치의 전당이 바로 국회 의사당이다. 웨스트민스터사원 동쪽으로 템스강 옆에 신 고딕 양식의 의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의사당에는 높이 102m나 되는 탑인 빅토리아 타워가 있어 개원 중에는 그 탑에 국기가 게양된다. 그리고 그보다 약간 낮은 높이 98m의 시계탑에는 런던의 명물인 큰 시계 '빅벤(Big Ben)' 이 영국 의회를 상징하고 있다. 이 시계탑을 ‘빅벤’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당시 건축공사의 담당자였던 Benjamin Hall의 애칭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시계 문자판의 지름이 7m이며, 15분마다 울리는 종소리는 1859년 이래 거의 끊임없이 전국에 시보를 알려 주고 있다. 의사당 안에는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고 승리한 위대한 분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Westminster Abbey)
국회 의사당과 마주 보며 서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서쪽(West)에 있는 사원 (Minster) 이란 뜻이다. 이 건물은 1065년 12월 28일 왕 에드워드에 의해서 지어졌다. 교종의 후원으로 왕위에 오른 다음 그 답례로 성지순례를 약속했으나 지키지 못하여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이 사원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1066년부터 모두 42명의 영국 왕과 여왕들의 웅장하고 화려한 대관식이 펼쳐지는 장소로 유명하다. 그리고 왕족의 결혼식, 장례식도 이곳에서 펼쳐진다. 이 사원은 실내 공동묘지라고 할 만큼 무덤들이 많았다. 역대 영국의 왕과 여왕, 정치가, 작가, 음악가, 기사, 배우, 왕족 등 3,000명이 넘는 이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천로역정의 작가 요한 번연도 여기에 잠들어 있고, 북쪽 회랑에는 William Gladstone(Plymouth Brethren출신) 수상 등 역대 정치가들이, 그리고 남쪽 회랑에는 과학자,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다.
런던 타워-Tower of London
런던시 동쪽, 템스(Thames)강 북측 강변에 있다. 화이트 타워라고도 불리는 타워는 하나밖에 없는 출입구가 남서쪽 귀퉁이에 있으며 런던 시내와 연결된다. 이 Tower는 런던의 요새이면서 왕의 감옥이었다. '반역자의 문'이라는 수문의 별명은 오랫동안 감옥으로 쓰이던 런던탑에 호송되는 죄수들이 이 문으로 지나갔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많은 죄수가 이 타워에서 살해되거나 처형되었으며, 성 바깥의 타워 힐에서 공개적으로 처형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오늘날 화이트 타워에 있는 무기창고와 그 옆에 있는 17세기 후반의 벽돌 건물에는 중세 초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무기와 갑옷, 투구 등은 볼만했다. 이 탑은 특별해서 런던 시장의 관할을 받지 않는다. 이곳은 국왕을 대신하여 육군 원수 중에서 임명되는 관리 장관이 관리하며 16세기 여왕의 집에서 살며 흔히 “비피터, beefeater”라고 부르는 보초 근위병을 거느리고 있다.
런던 다리 (London Bridge)
양쪽 두 탑으로 다리로 연결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런던의 명물 중의 하나로 자리 굳힌 타워 브리지는 영국이 식민 제국 주의가 절정기를 이루던 때 호레이스 존스 경이 빅토리아 양식 디자인으로 1887년에 착공해 8년 공사 끝에 1894년에 완공되었다. 템스강의 가장 하류에 있는 데 큰 배가 지나가면 90초 동안 1100t 다리 판을 팔자 모양으로 들어 올리는 움직이는 다리였다. 길이가 270m이다. 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시절에는 하루에도 50회 이상 다리가 올려졌지만, 지금은 주 2∼3회만 올려지기 때문에 보기가 쉽지 않다. 나는 새벽에 이 다리를 걸어서 건너 보았고, 한 번은 런던 타워에 갔지만 들어 올려지는 다리는 보지 못했다. 탑 안에는 다리의 구조와 런던 다리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으며 다리 위에 놓인 유리로 된 육교에서 런던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타워 브리지는 크고 작은 고딕풍의 첨탑이 있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중세의 성을 연상시킨다.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
영국에는 한국의 이순신 제독과 같은 위대한 해군 제독 Nelson이 있었다. 1805년 영국을 침공하려는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를 남쪽 트라팔가 바다에서 격파하여 다시는 그들이 영국을 넘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제독은 이 해전에서 전사한다. 영국 정부는 영웅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광장의 이름을 “Trafalgar Square” 라고 짓고 1841년에 만들어졌다. 넬슨 제독의 동상이 있는데 높이 55m의 원 기둥(Column) 위에 세워져 있고 대좌의 네 면에는 그의 유명한 4대 해전이 그려져 있는데 1805년 트라팔가 해전이 정면에 새겨져 있다. 제독의 동상이 세워진 뒤 대좌 주위에는 네 마리 사자상이 있는데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하는 뜻으로 노획한 프랑스의 대포를 녹여서 만들었다. 민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목숨 내놓은 위대한 인물 넬슨 제독의 동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종들도 그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이 한목숨을 내놓으면 그 이름이 천추에 빛나게 될 것이다. 광장 북쪽에는 내셔널 갤러리가 있고 서쪽에는 캐나다 하우스가 있는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피카딜리 광장-Piccadilly Circus
피카딜리 광장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복잡하였다. 다른 광장보다는 좀 현대적인 젊은이들을 위한 광장 같이 느껴졌다. 런던 사람임을 알려주는 검은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코크니(런던 토박이)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고전과 현대가 공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영국의 살아있는 자존심을 보여주는 마당이라고 한다. 다양한 문화행사가 일 년 내내 끊이지 않고 열리는 이곳은 영국의 문화거리라고 한다. 나는 여기에서 "Sex Shop"이라는 신기한 간판이 있어서 무엇을 파는 곳인지 가 보았다. 아직 한국에서 이런 가게들이 공적으로 거리에 없던 시절이라 별것이 다 돈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런 흥미 있는 가게들이 많았고 포르노 영화관도 있어서 별천지 세상이었다.
하이드 공원(Hide Park)
넓은 공원은 운동시설, 호수, 미술관 등이 있어서 시민의 편안한 휴식처였다. 대리석 아치 남쪽에는 유명한 “스피커스 코너”가 있는데 말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올라가서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연설장이다. 나도 영어만 유창했으면 한번 왔다가는 길에 올라가서 복음을 전해 볼 텐데, 아쉽기만 했다. 1872년 이래 지금까지 이곳에서는 연설이 계속되고 있다는데, 바로 이곳에서 민주주의 발상지인 영국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물오리들이 노는 호수가 벤치에서 걷느라 지친 다리를 쉬면서 마시는 한 목음의 코카콜라가 단숨에 목마름을 풀어주었다.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
1837년 빅토리아 여왕 이래 영국 왕실의 주거지로 여왕이 궁전에 있을 때는 정면 중앙에 왕실 깃발인 로열 스탠드를 내건다고 한다. 여행객들이 버킹검 궁을 찾는 데는 비록 그 안은 볼 수 없지만, 왕궁 근위대 교대식이 볼만해서이다. 나는 가서 버킹함 궁을 둘러보기는 하였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서 근위병 교대식을 보지는 못했다.
시계박물관-The Clockmakers' Museum
흥미 있는 곳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시간을 재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물시계, 해시계, 연소 시계, 모래시계, 등 나로서는 어떻게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도구 기구들을 사용하여 시간을 재는 연구들을 해 온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물시계 해 시계 온갖 종류의 시계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박물관에 세종대왕 때 만드신 물시계(자격루, 옥루)와 해시계(일구)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 우리가 편리한 시계로 시간을 쉽게 재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이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기계식 시계는 1364년 프랑스의 앙리드윅이 만들어 냈다고 한다. 일찍이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물 시계, 해 시계의 아이디어와 모양이 아주 비슷하여 놀라웠다.
인류, 자연역사 박물관-Homme, Natural History Museum
자연의 생성과 인류의 기원과 발전은 다윈의 진화론의 이론에 따라 펼쳐 놓고 있었다. 인류 관으로 들어가는 문은 엄마의 그것으로 들 어가는 상징으로 만들어 놓아서 해학적이었다. 넓은 전시실에서는 남녀 인간 자체를 안과 밖을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해 놓아서 그 생긴 모습, 그리고 정자와 난자가 만나 져서 인간으로 태어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아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해 놓아서 뛰어난 실물 교육장이었다.
지구가 만들어진 과정과 지구의 안과 밖, 그리고 지구의 활동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지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땅속에 묻혀 광맥과 보물들이 흙과 돌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캐내어 가공하는 과정들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하나님이 창조한 각양각종의 동식물들의 발전과정과 분포들을 일목요연하게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니치 천문대 (Royal Observatory Greenwich)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던 Greenwich 천문대를 보러 갔다.1675년에 찰스 2세에 의해서 세워진 영국의 천문대로, 런던 외곽 그리니치 구역의 그리니치 공원에 있다.
본초자오선(The Prime standard meridian)
북극과 남극에서 이 천문대를 연결하는 본초자오선(The Prime(standard meridian), 즉 경도(Longitude) 0도 0분 0초를 기점으로 하여 여기서 동경(the east longitude), 서경(the west longitude)을 나누어지는 0도이다. 동서의 두 0도 선은 노란 스테인리스(황동, 黃銅) 선이 표시되어 길게 뻗어 나가고 있는 양옆에는 각 나라의 위치가 동경 서경 몇 도에 지점에 있는지를 표시해 놓고 있었다. 이곳이 지구의 중심이다. 오늘 내가 경도 0도를 밟고 지구의 중심에 서서 지구의 회전과 같은 속도로 돌고 있는 레이더를 바라보면서 돌고 있었다. 무선 통신사 교육을 받을 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GMT(국제표준시)의 현장 내가 서 있다. 이 천문대의 시각이 곧 국제표준시간(the Greenwich Mean Time)이라고 부른다. GMT는 경도(Longitude) 0도 0분 0초에서 시작된다. 세계 모든 지역은 이 본초자오선 위에 그려져 있다.
이 0도 지점에서 서울은 동경 127도 00분에 표시되어 있고 아홉 시간이 빠르다. 즉 GMT 낮 12시는 한국은 저녁 9시이다. 본초자오선 0도에서 동쪽으로 15도마다 한 시간씩 더해지고(+ 1), 반대로 서쪽으로 15도마다 한 시간씩 줄어든다(- 1). 이 국제표준시는 항공 선박 또는 사람의 생명을 구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국제 협약으로 하늘, 바다, 땅위 지구 위 어느 곳에 있든지 자기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도록 거미줄 같이 그려져 있다.ㅍ
어떻게 Greenwich 천문대가 지구의 중심이 되었을까?
그곳 안내판에는 1884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만국지도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했다고 적고 있다. 영국이 1675년 그리니치 천문대를 세운 데는 영국인들의 삶과 죽음이 걸린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영국은 바다를 통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었고 정확한 항해술을 위해 해상 무역의 절대적인 천문 지도가 필요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지 200년이 지난 1700년대에도 대양에서 항해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1707년 지브롤터에서 돌아오던 영국 함대는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암초와 충돌하여 2000여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귀중한 상품을 잔뜩 실은 영국 무역선도 이 무렵 위치 파악을 못해 난파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망망대해를 항해할 때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그 위치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만일 두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서로 알면 정확한 경도를 알 수 있고 결국 현재 바다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도 측정기
이러한 영국 사람들의 염원을 시계수리공인 John Harrison이 오차가 거의 없는 경도측정 시계를 만들었다. 1773년 존 해리슨의 경도측정시계 발명 이후로 영국은 그리니치 천문대를 세계 표준시각, GMT와 경도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후 180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 무역선의 72%가 그리니치 천문대를 경도 표준으로 삼는 해양지도를 사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1884년에 미국 Washington에서 “열린 만국 지도 회의”에서 자연스레 그리니치 천문대가 시간과 공간의 중심이 되었다. 일찍이 영국인들은 정확하고 선진적인 항해 시스템을 가지고 세계로 뻗어 나가 정복과 약탈(식민 제국주의)의 날개를 펴고 있었다.
한국 대사관 9. 3 Tue
대사관에 가서 다음 독일에 가면 무 비자로 갈 수 있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가보고자 8개국 경유 신청을 했더니 5개국만 준다. 창구 아가씨에게 네덜란드는 꼭 가야 한다고 했더니 아가씨가 모르겠다면서 가지고 들어가더니 금방 고쳐서 가지고 나왔다. 제멋대로 하고 있었다.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는 적성 국가가 아닌 이상, 책상에 앉아 있는 영사가 이유도 밝히지 않으면서 제 마음대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었다. 아주 불쾌한 일이었다. 독재정권 밑에서의 국가 공직자들이 백성을 대하는 태도가 이랬다. 어서 이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백성을 친절하게 살펴주는 자유민주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서독으로부터 두 자매가 보낸 우편물이 왔다. 내가 즐겨 듣던 Dvorak Symphony No.9과 손수건 3개를 문내순자매가, 라면 15개와 김치, 고추장, 그리고 깻잎을 문 자매가 보내왔다. 물건값보다 우편료가 더 비싸서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때 런던은 아직 한국 식당도 식품점도 없고 한국 사람이 얼마 없어서 이런 귀한 것을 구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라면이 먹고 싶어서 큰 식품 전문 슈퍼를 뒤지니 대만에서 온 것이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러나 우리 맛이 아니었다.
런던 주일 모임
런던 북부에 있는 모임 주소를 알아서 전화했더니, 주일 아침 지하철역에 나를 데리러 온다고 하였는데 내가 그 시간에 갔는데 나를 데리러 나온 형제님은 보이지 않아서 궁금하기만 했다. 저녁 집회라도 가고자 다시 전화를 드렸더니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약속 시간에 한 형제님이 오셨다. 내가 아침에 왔었다고 하니까, 자기도 왔었는데 서로 시간을 잘 못 알고 있었던 같다면 미안하다고 하여서,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저녁 모임에도 60명이 모여서 은혜로웠다. 약 4주간의 영어 공부는 재미있었는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게 전부인 것 같다. 런던 생활도 어느 정도 몸에 배고 많은 경험도 했다. 이런 귀한 은혜를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했다. 내일은 Wales 북부 수양회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현재 주머니에는 £160가 남아 있다.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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