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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2003-2004

차이허 교회/탈북자 돕기 2004

차이허 교회 2.29 2004

몇 달 만에 타이허 교회 수요 집회에 갔다. 케냐에 단기 선교 갔다 온 간증과 함께 사진들을 보여 주었더니 모두 좋아들 했다. 이들에게 아프리카의 검은 사람들이 사는 Kenya 소식은 꿈에도 들어 볼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오전 예배를 마치고 바로 이 교회에 속한 베이꺼우(北沟) 가정교회로 갔다. 자매님들이 우리가 왔다고 손수 만두(饺子)를 만들어 한 상 차렸다. 큰 누에고치를 볶아 놀려 놓고 자꾸 먹기를 권하여 망설이다가 겨우 하나를 먹어보았다. 누에고치는 단백질이 많아 몸에 좋다는 것은 아는데, 나는 한국에서부터 누에고치 먹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 적응을 못 하고 있었다. 말씀의 교제를 마치고 음식상에 둘러앉아 나누는 교제 또한 큰 즐거움이었다.

 

나눔의 집 침례식 3.29

차이허 교회 350여 명을 거느린 사역자 루오() 형제와 경로원 직원인 주 자매의 침례식을 양로원 목욕탕에서 가졌다. 침례를 순종한 아름다운 마음을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실 것이다.

 

춘양 탈북자들 돕기 3.5-6

캐나다 토론토 김 장로님은 탈북자들을 돕기 위하여 모금 깡통을 만들어서 한인 가게에 놓아 모인 헌금을 지난번 주셨다. 이 귀한 헌금을 어려운 가운데 있는 탈북자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춘양 학습 가는 길에 가져갔다. 여러 가정 교회에서 온 탈북자들이 14명이었다. 형편에 맞게 200~500원을 나누어 주고 복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음식을 잘 준비하여 나누면서 교제를 나누었다. 한주 뒤 이분들 가운데 얼마는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 한민족의 고난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 서글펐다.

 

딱한 조선족 할머니 12.22 2004

 

우리 경로 원에서 10Km 떨어진 중예허(中也河)촌의 한족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조선족 장자매가 찾아왔다. 아주 딱한 처지에 놓여있는 조선족 한 씨 할머니를 소개했다. 패륜아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여서 아들을 피해서 손녀와 숨어 살고 있었다. 손녀 박금이는 왕청 한국 사람들이 하는 기술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할머니는 평생직장생활을 하여서 지금 퇴직금으로 400원을 받고 있는데, 매월 얼마씩은 손녀의 공부를 위하여 나가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했다. 우리 집에 있기를 원하여 달마다 100원만 내고 와서 살라고 허락했더니 몹시 기뻐하면서 눈시울을 적신다. 그리고 손녀 금이는 내 집같이 와서 생활하도록 했다. 할머니는 예수님을 믿고 계셔서 더욱 반가웠다. 이렇게 해서 또 한 식구가 늘었다.

 

중예허 한족 교회의 나눔의 집 위문 12.30

중예허 중국 가정교회에서 사탕과 수건들을 가지고 와서 율동과 찬양들로 노인들을 위문하여 주어서 고마웠다.

 

저무는 한 해
숨 가쁘게 달려온 이 한해에도 주님은 다시 오시지 않은 채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시 열릴 새해를 맞이할 특권을 주님은 여전히 주시고 계신 것은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 앞에 어떤 일들을 만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금은 모르지만, 주님의 섭리 가운데서 우리의 걸음을 한 걸음씩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김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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